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예보되어 불안한 맘으로 아침을 열었다..
다행스러운건 아침 기온이 서운해서 계곡 트레킹이 아니더라도 여름 산행날 치곤 그런데로 괜찮은 날씨다..
오늘은 작은 아들하고 같이 동행을 하여 애 승용차로 동래역사를 향했다..
驛舍 주차장에 차를 박킹 시키고 4번 출구쪽으로 가니 오륙도가 없어 여러 산우님들이 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조이사님이 급히
오시더니 차가 큰 대로변에 있다고 알려 주신다..
아마도 오전 8시 이후엔 뒷쪽엔 감시 카메라로 주차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일것이다..
날씨가 궂었는데도 여러 산우님들이 동참을 해주셨다.
산행이사님 조정기님,천연기념물 회장 이유덕님,산대장 기장신사 이윤홍님,컬럼비아 남천점 점주인 정상봉군,김여주님,김순연님,
정수 오명석님,김종근님,젊잖은 중년 김영찬님,키큰 신사 박영옥님,김석만님,이태영님,김태현님,심상권님,박정택님,철마신사 김영
오님,노시인 김창석님,시인교수 임종성님,박영이님,이순여님,일일 총무로 수고해 주신 정혜영님,최경희님,김영미님,배평순님,
박형숙님,미소가 아름다운 임영희님,여용기님,이상원님,김시온님,박분래님,박달재신사 심재홍님,달그림자 정광영님,침묵자 김병국님,정수회장 김홍배님,서울댁 이성란님,술과의 단절자 김병규님,장명희님,강영자님,똥배지기 소담 정호권 까지 총 39명이다.
오늘 트레킹을 할 계곡은 산청군의 백운 계곡이다...
이 계곡은 아직은 오염이 들되어 깨끗한 자연그대로를 간직한 곳인데 난이도가 평이하고 위험 구간도 거의 없는 천헤의 계곡
산행 코스로 꼽는다..계곡을 따라 넓은 임도를 걸어 오르다 보면 헤아릴수 없이 많은 폭포와 소가 연속적으로 보인다.
특히 2~3m의 소형 폭포들이 즐비하여 더운 여름날 이 계곡을 찾으면 쉽게 물에 빠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수 없으리라...
이 계곡은 약 5km의 길쭉한 깊이를 자랑하는데 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로 알려져 있는 웅석봉(1099.3m)의 줄기가 남쪽으로
뻣어 내리는 능선아래로 이어져 있는 계곡이다.
이 계곡을 타고 끝까지 오르면 우측으로 웅석봉,좌측으로 감투봉과 용무림산 감수봉,수양산등으로 오를수 있단다.
백운산장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포장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지리산길 갈림길이 나오고 그 곳을 지나 또
오르다 보면 임도가 끊어진 넓은 臥瀑을 만나는데 오늘 트레킹 코스는 여기 까지로 되어 있다.
그러니 코스는 백운 계곡입구 백운 민박 삼거리~아함소~용문폭포~다지소~백운폭포~직탕폭포~지리산길 갈림길~끊어진임도
~백운 계곡입구로 원점이다...
이 백운계곡 입구 영산산장에서 계곡을 따라 나있는 완만한 고도의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정말 천혜의 자연이 잘 지켜져
있음을 가슴 깊숙히 고맙다는 느낌을 받는다..왜냐면 햐얀 반석과 깨끗한 계곡물의 조화가 너무 절묘하게 잘 맞기 때문이다.
이 계곡이 白雲이듯이 멀리서 보면 햐얀 바위랑 물보라가 이는 깨끗한 청정수가 어우려져 구름같은 착시 현상이 일어날수 있겠
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트레킹을 시작해서 여러 산우님들이 계곡을 끼고 나있는 임도를 따라 쭈욱 걸었는데 중간 중간 한팀씩 빠지더니 나중엔
국민은행 전직 지점장이였다는 중년 신사분과 같은 일행인듯한 여성분과 김종근님 작은애 상봉군까지 5명만 개념도상에
나 있는 길을 걸어 올랐다.
처음 나도 포기 했을텐데 작은 애랑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결국 먼저 오른 팀들과 합류는 했었지만 중간에 알탕도 하고 기다
리기도 했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합류를 한 셈이였다.
임도가 끊어진 곳을 지나 또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지점이였는데 정확한 지점을 표기할수는 없는 지점이고 작은애만 그곳에서
한 20여분을 더 걸어 올라갔었고 나머지는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한후 세분은 올랐던 등로를 따라 다시 하산을 했고 작은애랑
계곡 트레킹을 할려고 계곡을 따라 걸었다.
오를때 계곡을 따라 오르는것 보다는 내려가는 코스가 더 힘도 들 들고 여유로워 즐길수 있는 여유가 있다..
이 계곡은 정말 靑石이라고 하는 단단한 돌이 바닥에 깔려있고 그위로 맑은 물이 흐르니 淸明玉水라 발을 담그기도 미안할
지경이였다.
수많은 폭포와 소를 거쳐 물에 빠지기도 하고 물위를 걷기도 했지만 바위에 이끼같은게 없어 미끄럽지도 않아 걷는데 전혀
위험 하지도 않았고 물을 끼고 즐기면서 내려오니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충분히 즐길꺼리는 되었다.
폭포를 타고 내려오기도 했었고 작은 폭포를 그냥 횡단하는 재미도 솔솔했었다.
긴 와폭은 약 30m 이상되는 멋스러운 곳도 여러곳 지난것 같았다.
이 계곡의 백미인 백운 폭포는 약 5m의 높이에서 낙하되는 물이 시원스럽게 솟아진다.
그 많은 물을 받아내는 소가 시퍼렇게 멍이들어 금방이라도 이무기라도 나올듯한 분위기였다.
하산 종료시간인 3시를 거진 딱 마쳐서 내려오니 모두 뒷풀이를 하느라 왁자 지껄하다.
삼겹살도 굽고 닭삼계탕도 끊여 놓았다..
회장님과 정혜영씨랑 같이 동참을 하신 이쁜 여시님들이 처음으로 무심을 찿아주셔서 수고로운 봉사까지 해 주셨다.
닭죽 한그릇을 받아 먹고 수박 한조각을 먹으니 배가 불러졌다.
일일회비 이만 오천원에 이만한 뒷풀이를 대접하는 산악회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술에다 푸짐한 안주인 먹거리들이 풍성한게 우리 회장님의 후덕한 인심 때문은 아닐까?
이런 모습에서 무심을 이르길 명품 산악회라 하지 않을 까 자찬을 해본다..
중간에 약간의 비는 뿌렸지만 오늘 날씨도 좋았고 물에 들어가 놀기에 기온도 적당해서 정말 멋진 계곡 트레킹이였다.
백운 계곡은 또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셨던 南冥 曺植선생이 즐겨 찿았고 그분의 체취가 지리산록 중에서 제일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남명 선생이 남겼다는 白雲洞,龍門洞川,嶺南第一泉石,南冥先生杖之所등의 글자가 암석에 뚜럿이 세겨져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푸르른 산에 올라보니 온 세상이 쪽빛과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그칠줄을 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서도
세상을 탐한다'는 시문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도 넉넉해서 인지 또 회장님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단성면 묵곡리에 있는 성철대종사님의 생가와 겁외사를 둘러보게 했다...
엄부이신 이상인님과 자모 강상봉님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셨고 속명는 영주(榮柱)이고,법호는 퇴옹(退翁)이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자치통감을 배우면서 한문논리를 터득하신후 다른 이에게는 더 배우시지 않고,1936년 봄 해인사로
출가하여 河東山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수계득도 하였다고 한다.
1939년 도를 깨친 이후 파계사 성전암에서 행한 10여년의 장좌불와(長座不臥)와 동구불출(洞口不出)즉, 벽을 보고 좌선하길 십년
하면서 문밖을 한번도 나서질 않았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자기 관리에 철저했는지 짐작하면서도 믿기질 않는다..
1981년 1월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7대 종정에 추대되어 불교사에 한획을 긋게 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山是山,水是水)"이라는 범어를 내려 온 국민의 불심을 일깨웠다.
1993년 11월4일 새벽 해인사 퇴선당에서 제자들에게 '참선 잘해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세수 82세 법랍58년에 열반에 드신 분이
시다...(겁외사 안내간판에서 발취)
겁외사(劫外寺)라는 의미는 '상대유한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솟아진다..
앞을 잘 분간키 어러울 정도로 많은 비가 솟아지더니 부산에 진입하니 언제 그랬냐는듯 도로가 하나도 젖질 않았다.
이번 백운 계곡 트레킹에서 얻은 교훈은 이런 천혜의 지원을 아끼고 잘 보존하여 자자손손 영원히 물러주어야할 유산이라는
것은 백번 지당한 애긴데 어떻게 지킬것인지 의문이 가는 문제였다..
왜냐면 그런 자연 앞에서 돈이 우선시 되어 평상 하나에 십오만원에 대여를 한다고 했고 개인 사유인 주차장에 버스를 주차시키
는데 오만원을 받는다는데 왠지 씁쓸한 뒷맛이 였다..
아무리 기득권을 가진 주민들의 몫이라해도 너무 지나친 폭리여서 이곳의 商魂이 깨끗한 자연을 오염시킬까 두러워서다..
오늘은 작은 애랑 처음으로 가져본 오붓한 시간이였고, 오래 기억하고픈 추억을 만든 하루였다는데 오늘을 감사히 여겨본다.
오랫만에 동참을 하신 산벌레님도 건강한 모습을 보여 반가웠고,친구 광영씨도 따뜻한 미소가 더 멋지게 보인 하루였다..
명품 똥배가 사라져 가서 불쌍해 보이는 소담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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