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진 태풍이 잠든 후 혼자서 주영숙
그토록 설치던 풍파가 한숨 돌릴 때 모순된 상황을 알아챘지만 꼼짝하지 못했어. 진공관 한구석에서 숨죽이는 괴물처럼 태산인지 파도인지 왈카닥 뒤집어서 풍비박산되는 배는 서른넷 내 청춘의 분신. 이뤄도 가뭇해져 갈 운명의 푯대 거머쥐었어.
잡으면 잡힐 것만 같은 청산도를 바라보며 어서 가자, 가자, 재촉하는 소리엔 돌이질 했어. 야멸찬 풍파 헤치는 게 어디 한두 번이었냐며 익숙하게 헤엄쳐가는 친구들의 팔다리가 눈부셨어. 눈부셨지만 나는 손을 흔들었어. 어서 가! 당신들이라도 부디 살아라, 하고
세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저는 열 살짜리 우리 큰딸이랑 나흘 뒤면 첫돌인 막내까지 3녀 2남 눈망울들이 머릿속을 채웠지만 그렇게 체념하였어. 이승 인연은 여기까지였다고
급기야 파선 조각에 이 한 몸 맡긴 채로 수백 번이나 파도에 쓸려 아래로, 아래로, 까마득히 곤두박질쳐져서는 물고기 눈알과 딱 맞닥뜨렸다가, 이내 파도의 등쌀에 밀려 드높이 떠올라 자꾸만 멀어져가는 신기루 같은 섬을 바라보았어.
그러다 아물아물하게 정신을 놓았는데, 하룻밤이 지났는지 이틀 밤이 흘렀는지 며칠이나 흘렀는지 저승인지 이승인지 어쨌든 눈을 떠보니 온데간데없어진 태풍
기진맥진하여 고향이라고 돌아오니 모두 귀신이라도 본 듯 깜짝깜짝 놀라더니 귀신같은 사람들이 우우 몰려오더라. ‘왜 혼자만 살아왔느냐’며 성토대횔 열더라.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잃었지 도대체 헤엄이라곤 개헤엄 밖에 몰라서 차라리 배와 함께 죽자 했는데 얼떨결에 살았다는 나 홀로 못 죽고 돌아온 이 죄를 용서하라는 그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았지.
잠깐 새 사라져갔던 그들은 틀림없이 든든한 수영실력 덕에 살아나리라 여겼는데 후회도 실망조차도 삼켜버렸던 나더러 혼자만 살아왔느냐 아우성치는 유가족들이라니! 자지러지는 내 혼을 붙들고 중얼거렸어. 서럽게 메아리치는 생즉필사 사즉필생*이여!
*태풍 사라호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오셨던 아버지의 독백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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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눈에 잡힐듯한 배경 난정 선생님의 지세포 生家군요
노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내 친구는 광훈이는 아버님 앞?
참으로 단란한 모습의 가족 사진입니다. 그 모진 태풍은 사라호 태풍일테지요. 김동출
개암님, 댓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세포의 저 집을 보셨군요.
광훈이, 아버지 앞 맞고요,
그 왼편 막내 광문이는 당시에 팔게 깁스를 한 상태라 저렇게 어정쩡한 자세랍니다.
우리 아버지가 사라호 후유증인지 51세에 돌아가셨는데
우리 막내(광통신 개발자)도 51세에 갔지요.
그리고 어머니는 84세에 가셨고,
어머니 왼편은 당시에 함께 살던 저의 이종언니고요.
암튼 감사합니다.
즐거운 나날 되세요.
제가 1977년부터 2년 동안 일운초등학교에서 근무했지요. 그곳이 초임. 생전에 생가에서 어머님 자주 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