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수타수마왕이 있었는데,
이 왕은 정진하고 계율을 지키며 항상 진실한 말을 했다.
어느 날 새벽에 수레를 타고 채녀들을 데리고 동산에 가서 노닐려 했다.
성문을 나서는데 어떤 바라문이 와서는 구걸하며 왕에게 말했다.
“왕께서는 큰 복덕을 지니신 분이시고 저는 빈궁한 자이니,
가엾이 여기시어 적당히 베풀어 주옵소서.”
왕이 말했다.
“좋다. 그대가 요구하는 대로 주리라. 그러나 내가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기다려라.”
이렇게 말을 남기고 동산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면서 즐기는데, 이때 녹족(鹿足)이라 불리는
두 날개 가진 왕이 허공으로 날아와서 궁녀들 사이에서 왕을 잡아가니, 마치 금시조가 바다에서
용을 잡아가는 것 같았다. 궁녀들이 통곡하니 온 동산이 진동하고 성 안팎이 깜짝 놀라 슬픔에 잠겼다.
녹족은 왕을 지고 허공으로 날아가서는 머무는 곳에 이르러 99명의 왕들 틈에다 놓으니,
수타수마왕은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녹족왕이 말했다.
“위대한 찰리왕이시여, 그대는 어찌하여 어린 아기처럼 울고 있는가?
사람이 나면 죽음이 있고 모이면 이별이 있는 것이다.”
수타수마왕이 대답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신용을 잃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데 오늘 아침 성문을 나올 때
어떤 바라문이 와서 나에게 구걸을 하기에 돌아오거든 주겠노라고 했다.
항상할 수 없음[無常]을 생각하지 못한 채 그의 마음을 저버려서 스스로
남을 속이는 죄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우는 것이다.”
녹족왕이 말했다.
“그대의 뜻이 그처럼 거짓말을 한 것을 두려워 하니, 그대를 다시 돌아가도록 허락하노라.
7일 동안 바라문에게 보시를 하고 나서 다시 돌아오라. 만일 7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나에게는 두 날개의 힘이 있으니, 그대를 잡아가는 일이 어렵지 않다.”
수타수마왕은 본국으로 돌아와서 마음껏 보시를 하고 태자에게 왕위를 넘겨 준 뒤에
백성들을 모두 모아 놓고 참회의 말을 했다.
“나는 지혜가 온 백성에 두루하지 못하고 다스리는 법이 법답지 않았다.
다만 진심으로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지금 나의 몸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떠나노라.”
온 나라의 백성들과 친척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만류했다.
“원컨대 대왕이시여, 의지를 굳게 하시어 이 나라를 자비로써 보호하소서.
녹족귀왕(鹿足鬼王) 같은 이의 말을 개의치 마시고 무쇠 집을 짓고 날랜 군사를 배치하셔야 합니다.
녹족이 비록 신이라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했다.
진실한 말은 으뜸가는 계율이요, 진실한 말은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다.
진실한 말은 작지만 크고 거짓말은 지옥에 빠진다.
나는 이제 진실한 말을 지키니 설사 몸과 목숨을 잃을지라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길을 떠나 녹족왕에게 이르렀다.
녹족은 멀리서 보고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이구나. 신용을 잃지 않았다.
일체의 사람은 모두 몸과 목숨을 아끼는데 그대는 죽음에서
벗어남을 얻었거늘 다시 신용을 지키러 왔구나. 그대는 큰 사람이다.”
이때 수타수마왕이 진실한 말로 찬탄했다.
“진실한 말을 하면 사람이요, 진실치 못한 말을 하면 사람이 아니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진실한 말을 찬탄하고 거짓말을 나무라니,
녹족왕이 듣고 신심(信心)이 깨끗해져서 수타수마왕에게 말했다.
“그대는 지금 이 법문을 잘 말해 주었다. 이제 그대를 놓아 주노니,
그대는 이미 풀려났다. 그리고 99인의 왕들도 그대에게 주겠으니,
마음대로 제각기 본국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말하자 백 명의 왕이 제각기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니,
이러한 갖가지 본생의 모습이 시라바라밀(지계바라밀)의 구족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