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한자가 멸하지 않으면 중국이 반드시 망한다.(漢字不滅, 中國必亡.)”라고 까지 주장하였다
https://youtu.be/HYDCwbaxFu8
https://youtu.be/0WqQWtWmcfk
■ 煩 : 번거로울 번
획수13획부수
火 (불화, 4획)
유래
會意(회의문자). 머리[頁]가 더워져...
1.번거롭다.
(1) 번잡하여 간단하지 않다.
法省而不煩 淮南子
법성이불번
(2) 장황하다.
憂深 故語煩 舊唐書
우심 고어번
■ 繁 : 많을 번, 번성할 번, 뱃대끈 반, 흴 파, 성 파, 날렵할 민
획수17획
부수糸 (실사, 6획)
1.많다.
(1)적지 않다.
正月繁霜 詩經
정월번상
(2)성하다.
草木繁廡 張衡
초목번무
(3)번거롭다.
繁碎職事 南史
번쇄직사
(4)섞이다.
刪裁繁蕪 後漢書
산재번무
(5)자주.
箠策繁用者 淮南子
추책번용자
2.무성하다.
卉木繁榮 陶潛
훼목번영
3.번성하다.
種類繁熾 後漢書
종류번치
4.바쁘다.
遺於繁務之中 羅隱
유어번무지중
■ 번체자繁體字
정체자(正體字,중국어 정체자: 正體字, 병음: Zhèngtǐzì, 주음 부호: ㄓㄥˋㄊㄧˇㄗˋ) 또는 번체자(繁體字,중국어 간체자: 繁体字, 정체자: 繁體字, 병음: Fántĭzì) 혹은 구자체(舊字體,일본어: 旧字体, 큐지타이)는 전통적으로 써 오던 방식 그대로의 한자 글자를 부르는 말이다(일본에서는 구자체, 중화민국에서는 정체자,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번체자라고 칭함). 전통 한자(傳統漢字)라고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만을 제외 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민국,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및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의 화교 커뮤니티들은 전통적인 한자인 정체자를 고수하고 있다.
명칭 논쟁
한자 문화권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통 한자(傳統漢字)를 여러 가지로 지칭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중화민국, 홍콩, 마카오 등을 포함한 전통 한자를 선호하는 지역들은 전통 한자가 의미와 형식 모두에서 정통성(正統性)이 있다는 의미에서 ‘정체자’(正體字)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에, 간략 한자(簡略漢字)를 선호하고 있는 중국 대륙에서만 전통 한자가 너무 복잡하며, 이제는 간략 한자로 모두 대체되었다는 의미에서 ‘번체자’(繁體字)로 지칭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전후에 새로 제정된 '신자체(新字體)'에 대비되는 명칭으로 '구자체(舊字體)'라고 부른다.
■ 간체자簡體字
간체자(簡體字,중국어 간체자: 简体字, 정체자: 簡體字, 병음: jiǎntǐzì) 또는 간화자(簡化字,중국어 간체자: 简化字, 정체자: 簡化字, 병음: jiǎnhuàzì)는 1960년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 공산당의 주도로 창안된 한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간체자는 과거 중국에서 존재했던 약자체를 모두 통칭하는 말이고,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규범화된 글자체만 지칭하는 말은 간화자라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원래의 전통적인 글자를 번체자(정체자)라고 하고, 중화민국에서는 정체자라고 부르며 간화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1956년 「한자간화방안(漢字簡化方案)」이 발표된 후 몇 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1964년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가 발표되었다. 중국과 싱가포르에서 사용되고 있다.
간화된 내용은, 변과 방으로 사용되지 않는 간화자 350자(제1표), 변과 방으로 사용하는 간화자 132자와 변과 방 14개(제2표), 제2표를 참고한 간화자 1753자(제3표), 총2235자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간체자 대조
간체:번체
户:戶
见:見
讠:訁
贝:貝
车車
钅:釒
长:長
门:門
青:靑
韦:韋
页:頁
风:風
飞:飛
饣:𩙿
马:馬
鱼:魚
鸟鳥
麦:麥
黄:黃
齐:齊
齿:齒
龙:龍
龟:龜
丰:豐
역사
오늘날 통용되는 간화자
체계는 중화인민공화국이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추진한 결과물이지만, 한자를 간소화하여 사용하는 경향은 갑골문 시절부터 있어왔다. 다만 초서를 비롯한 극도로 간략화된 필기체가 생겨나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간략화된 한자가 대중적으로 쓰인 적은 없었다.
청나라 말기, 1909년, 육비규(陸費逵)가 〈교육 한자〉창간호에 ‘일반 교육에 속자를 채용해야 한다.(普通敎育應當採用俗體字.)’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간략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1919년 5·4 운동 이후 중국의 전통 문화와 가치에 대한 반발이 심해졌고, 그 가운데서 한자를 중국 근대화의 장애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졌다. 한자를 간략화하거나 아예 없애자는 주장들이 지식인들에 의하여 강하게 제기되었다.
5·4 운동을 이끈 푸쓰녠(傅斯年)은 한자를 일컬어, “소와 뱀 같은 귀신의 문자다.(牛鬼蛇神的文字.)"라고 혹평하였다.
중국의 대문호인 루쉰은 “한자가 멸하지 않으면 중국이 반드시 망한다.(漢字不滅, 中國必亡.)”라고까지 주장하였다.
5·4 운동시대 1920년 전현동(錢玄同)은 신청년(新靑年)에 한자 획수를 줄이는 방안(減省漢字筆畫的提議)을 발표하고, 1922년 육비규와 함께 국어 통일 주비회(國語統一籌備會)에 상용 한자 전체의 획수를 줄일 것을 제안했다. 1934년에도 간략화된 한자를 제안하여, 1935년에는 2400자에 이르러 '간체자보(簡體字譜)'의 초안이 마련되었다. 국민정부의 교육부에서 324자의 '제1차 간략 한자표(第一批簡體字表)'를 발표했지만, 반대 여론으로 인해 실시되지는 않았다. 그 뒤로 간략자(簡略字)에 대한 수집은 줄었으나, 1937년 '자체 연구회(字體研究會)'가 1700자의 '간체자표 제1표(簡體字表第一表)'를 발표했다.
1955년, 중국 문자 개혁 위원회(中國文字改革委員會)가 '한자 간화 방안 초안(漢字簡化方案草案)'을 발표하고, 1956년 1월 '한자 간화 방안(漢字簡化方案)'이 정식으로 발표되어, 514자의 간체자와 54개의 간화된 변과 방이 채용되었다. 그 뒤, 간화자는 1959년까지 네 번 발표되어, 1964년 '간화자 총표(簡化字總表)'로 정리되었다.
1977년, 중국 문자 개혁 위원회가 새롭게 '제2차 한자 간화 방안 초안(第二次漢字簡化方案草案)'을 발표하여, 한자의 새로운 간략화를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 대혁명 직후에 만들어져서 너무 졸속한 방안이었고, 자체가 너무 간략화되어 읽기 어렵고 또한 원래의 뜻을 모조리 망쳐놓았다는 등의 비판을 들으며 8년간의 시험 후 결국 폐기되었다.
이 간화자는 이간자(二簡字)라고도 불린다. 그 이후 새로운 문자 개혁은 하지 않고, 간화자는 안정기에 들어 갔다.
1992년 장쩌민(江澤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은 '모든 인쇄물에는 간체자만 사용한다. 양안의 한자에 관한 차이는 현상을 그대로 유지한다. 단 서예(書法) 등의 고귀한 예술 작품 등에는 번체자를 사용해도 무방하다.'라는 지침을 발표하여, '간체자를 추구하되 번체자를 반대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