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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7시간 전
대학로극장 쿼드 제작 연극 '신파의 세기'...12월 17일(일)까지 총 18회 공연 정진새 연출 특유의 재치로 역사성과 현실 감각을 담아 비판적 시각 드러낸 창작 초연작 |
[미술여행=윤장섭 기자]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이창기) 대학로극장 쿼드가 올해 마지막 제작 작품으로 연극 '신파의 세기'를 11월 28일(화)부터 12월 17일(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연극 '신파의 세기'는 가상의 중앙아시아 신생 자립국 ‘치르치르스탄’의 ‘국민문화’진흥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해외의 우수한 대중문화를 나라의 정체성으로 도입해 30년을 지속한다는 것이 사업의 핵심.
한국의 국립현대극장(National Contemporary Theater: NCT)의 팀장 미스터케이가 총 사업비 30억 불의 프로젝트 입찰 경쟁을 위해 중앙아시아로 출장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진=대학로극장 쿼드 제작 연극 '신파의 세기' 공연알림 포스터
한국의 고유한 극 문화인 신파가 해외에서 도입 검토된다는 가상의 설정 속에서, 외국인 배우가 입찰 과정의 시연 형식으로 신파를 재현하는 극중극이 이번 공연의 관람 포인트다.
‘K-신파’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곳곳의 풍자부터, 젊은 현 세대 배우의 몸을 통해 자유롭게 연기되는 변형된 전통까지 다양하고 새로운 자극을 선사한다. ‘K-신파’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이번 작업은 연극성‧신파성의 역사적 고찰과 세대적 맥락 속에서 전환된 대중문화에 관한 세심한 관찰의 결과물이다.
‘K-신파’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곳곳의 풍자부터, 젊은 현 세대 배우의 몸을 통해 자유롭게 연기되는 변형된 전통까지 다양하고 새로운 자극을 선사한다.(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한 정진새가 극작과 연출을 맡았으며, 한국방송평론상을 수상한 양근애 드라마터그가 작품에 참여했다. 이야기는 실제와 가상의 현실이 뒤섞이는 장면전환과 더불어, 정진새 연출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시대 비판적 시각을 동시에 제시한다. 배우 김준우, 전선우, 최솔희, 유다예, 김빛나, 심효민, 베튤(ZUNBUL BETUL)은 국립현대극장 공연팀 팀장 미스터케이, 치르치르스탄의 공주들, 수행비서, 현지인 배우 등을 연기한다.
배우 김준우, 전선우, 최솔희, 유다예, 김빛나, 심효민, 베튤(ZUNBUL BETUL)은 국립현대극장 공연팀 팀장 미스터케이, 치르치르스탄의 공주들, 수행비서, 현지인 배우 등을 연기한다.(사진=출연 배우들)
정진새 연출은 '신파의 세기'를 통해 ‘역사성’이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신파성과 한국연극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연출의 고민은 한국연극사에 신파가 자리한 필연적 과정들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역사를 만들어낸 선배들에 대한 공감과 존경심으로 갈무리됐다. 한국연극 100년사와 현재의 케이팝까지 다양한 시간을 녹여낸 이번 공연을, 연출은 가치판단을 잠시 접어두고 편견없이 그저 즐기기를 추천한다.
사진=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미술여행 DB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는 ‘창작 초연 중심 1차 제작·유통극장’으로서 블랙박스 극장의 가변성과 예술적 실험성을 담은 창작 초연 작품을 선보여 왔다. 올해 선보인 3편 중 마지막 작품인 <신파의 세기>는 작품개발 리서치, 워크숍, 제작, 발표까지 2년여 간의 자체 제작 과정을 거쳤다.
서울문화재단 이창기 대표
서울문화재단 이창기 대표는 “대학로 내 유일한 공공 제작 극장으로서 선보이는 그간의 작품 개발 노력이 안정적인 제작 환경에서 출발해, 관객에게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전달되는 결과를 내고 있다”라며, “향후에도 제작 작품, 자체 기획 시리즈 등으로 공연 창작 활동 지원과 신작 개발 시도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연극 '신파의 세기'는 쿼드 누리집(www.quad.or.kr)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연극 '신파의 세기' <시놉시스>
중앙아시아의 한 신생자립국에서 유망한 광물자원이 발견된다. 국가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치르치르스탄은 자원의 개발과 사용에 대한 권리를 외국 기업에 일정부분 넘기면서 경제 부흥을 비롯한 포스트 현대화를 달성하려 한다. 해외 우수한 대중문화를 국가의 멘탈리티로 삼아 30년을 지속한다는 것이 치르치르 국민문화 사업의 핵심이다.
연극 '신파의 세기' 극중 한 장면.(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국립 현대극장의 팀장인 미스터 케이는 상급기관의 제안을 받아 중앙아시아로 가게 된다. ‘신파극’를 주제로 문화사업에 참여하면 어떻겠냐는 기재부 주무관의 요청이다. 케이는 프로젝트 성공 여부에 따라 회사의 내년 예산이 달려 있다는 말을 듣고 불안함을 느끼는데, 같은 시간 그의 고등학생 딸인 민주는 한국의 엔터산업을 주제로 한 수행평가 준비에 한창이다.
치르치르스탄의 마리 클리셰 공주는 국가서열 2위의 왕녀다. 세 명의 공주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국민문화 콘텐츠를 밀고 있는데, 입찰에 성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왕위 계승에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한국유학의 경험이 있는 클리셰는 K-신파의 저력을 알아보고, 신파극 복원 및 구술 작업을 진행해왔던 한국연극의 공공극장에 연락을 한 것.
치르치르로 날아온 케이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원조 신파극이 아니라 신파성을 담은 극적인 드라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업의 규모가 30억원이 아니라 30억불(3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케이는 주저없이 입찰에 뛰어 들게 된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경쟁 상대가 둘째 공주 클레르가 밀고 있는 한국의 “K-POP”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사진=연극 '신파의 세기' 극중 한 장면.((서울문화재단 제공)
<연출의 글>
사진=연극 '신파의 세기' 정진새 연출
<신파의 세기>는 2021년 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구)동숭홀을 리모델링한 극장에서 ‘프리-오픈(pre-open)’ 시즌의 작품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워크숍과 리서치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주제와 형식을 개발해보자는 취지였었고, 전환(轉換:trans)이라는 구체적인 화두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자신과는 맞지 않지만)
연극의 의미와 가치가 급변하는 시기에 잘 맞는 큰 주제였습니다. 다른 연출가 동료들과 라인업을 구성하는 것이었기에 나름 구색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따라서 저는 평소에 하던 드라마 방식 대신, “환전(換錢)극장” 이라는 포럼 연극(forum theater)을 제안하였습니다. 창작자의 야망(이라고 쓰고 욕망이라고 읽는)을 금액으로 환산해서 돌려주는! (전환은 무슨, 환전이 답이다!) 경박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극장문화가 빈약하고 부재한 한국연극의 현실을 풍자해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었지요. 그러나 극장의 기획팀으로부터 대차게 까였습니다. 나름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제안자의 진지하지 못한 태도와 얄팍한 수가 바로 읽혔나 봅니다. 그리고 몇 주간의 고민 끝에 떠올린 키워드가 ‘신파(新派)’였습니다.
‘신파’라는 주제로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점점 확신이 생겼습니다. 비판과 열광이 교차하는 수다 자리를 통해, 신파를 감각하는 창작자들의 복잡한 속내를 알게 되었다고나 해야 할까요. 같이 대화를 해준 이들은 신파를 좋아하면서도 미워하고, 없어져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것이 드라마의 필요조건임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파를 말할 때, 창작자이면서 한민족이면서 누군가의 딸/아들이었고 시민이었습니다. 이러한 신파의 다중성, 양가성, 불가해성을 담아, 역사적 고증을 통해 지금을 돌아본다는 취지의 기획안은 극장으로부터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선택되었습니다.
이듬해, 극장은 “쿼드(QUAD)”라는 이름이 생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제작PD들은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리서치는 간간이 이어졌고, 대략 아카이빙(스러운) 퍼포먼스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시대별로 신파극의 내용과 양식을 정하여 발표하는 것이 당시 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응원해 주면서 논의했던 주체들도 다 떠난 마당에, 그리고 이미 개막 시즌도 미뤄진 상황에 굳이 이런 내용으로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럴 거면 그냥 환전극장이 나 할 걸...) 하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코로나도 장기화되던 시기였고, 미투 이후 쌓여가고 있었던 새로운 제작문화의 역량도 점점 약해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지난해 겨울, 충동적으로 초기의 공적(公的)인 방향성에서 벗어나, 그냥 아주 사적 (私的)인 방식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실은 신파를 재현하고 모방하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었거든요.
SF적 상상을 더해보니 20세기 초 조선은 21세기 초 치르치르스탄(이름 무엇...)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국내용’ 신파극은, ‘글로벌한’ K-드라마로 확장되었고, 초점 또한 ‘(극)예술’에서 ‘(극)문화’로 맞춰졌습니다. (범)아시아적 관점에서 신파를 보니, 그것은 근대 서양/일본을 모방한 식민지의 극장국가적 행태였고, (탈)역사적 관점에서 신파를 보니, 그것은 세기를 넘어 여전히 계속되어 온 피땀눈물 착즙감성의 작태였습니다.
2023년 초, 다소 지난한 과정 속에서 이 작품은 비로소 <신파의 세기>라는 제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문제목인 “Scene far from 20C”는 근대연극이 시작되었던 지난 20세기에 대한 패러디일수도 있고, 오마주일수도 있습니다.
모쪼록 앞서 신파의 길을 걸어간 지난 세기의 선생님과 선배들께서 노엽지 않게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중앙아시아의 가상적 국가라는 설정이지만, 인접국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바람도 함께 전합니다. 공공의 적(?)으로 등장하는 케이팝 또한 실제로는 애호(愛好)하는 작가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NCT 죄송...) 그런 소망들이 작품의 주제와도 연결된다 하겠습니다.
지난 시절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마음이 아팠던 건 연극이 자기의 집을 잃어버린 순간이었습니다. 1930년대 신파극의 공간이었던 ‘동양극장’은 하루아침에 (기업의 일방적인 철거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술가들이 쌓아올린 노력이 단번에 무너질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이 허망하게 여겨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거기의 사실은 지금 여기의 사실과 완전히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원주아카데미극장, 서교예술실험센터, 반디돌봄센터, 학전소극장, 인천아트플랫폼그리고 남산예술센터까지. 이 공간들은 운영예산을 구하지 못해서, 혹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혹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혹은 아무 이유도 없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세기 내내 관객과 민중들을 위해 울고 또 울었던 공연예술가들은, 실제로 무대 위에서 자신의 딱한 처지를 연상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들이 놀 때 일하는 우리들은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는 이토록 초라해져가고 희미해져가는 예술가 존재와 존엄, 존경을 떠올리며 <신파의 세기>를 만들었습니다. 공연을 찾아와주신 관객여러분께서도 그러한 현실을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 동숭홀의 기억을 품고 있는 ‘쿼드’에서도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한 역사(歷史)가 지워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3 대학로극장 쿼드 제작 연극 '신파의 세기' 정진새
사진=연극 '신파의 세기' 공연 연습 한 장면
● 우리가 두고온 미래
신파(新派)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장면이 펼쳐졌다. 1910년대 소설 『장한몽』의 표지에 그려진 이수일의 발길질을 참아내는 심순애, 1936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고등신파’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 오빠의 손에 잡혀간 홍도, 1960년대 영화 <자유부인>에서 아들을 안고 잘못을 뉘우치는 오선영, 1970년대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아이를 그리워하는 혜영과 같은 ‘비련의 여주인공’. 또 1990년대를 풍미했던 로맨스 영화 중 순애보를 다룬 ‘최루성 멜로영화’ 역시 신파의 자장 아래 있다.
그뿐인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를 그린 <국제시장>(2014)이나 어머니의 사랑과 효심으로 관객을 울린 영화 <신과 함께>(2017), 외국인 시청자에게 재발견된 <오징어 게임>(2021)에서 가족애를 다룬 장면 등도 신파라는 용어와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이렇듯 20세기에서 21세기로 건너오는 동안 신파는 ‘새로운 연극’에서 눈물이 흘러넘치는 ‘올드’한 문화물을 칭하는 것으로 자리바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면 신파는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다. 오히려 원래의 뜻으로부터 이탈하여 그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한국적’ 정서의 나눌 수 없는 잔여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을, 사랑을, 이웃을, 국가를 호명하면서 나 아닌 나를 둘러싼 세계를 가리키는 신파(적 순간), 그것은 무구한 슬픔처럼 보이지만 때로 막강한 영향력을 내재한 정치적 감수성이다. 실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 진짜 존재한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 신파적 정서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신파의 세기>는 가상의 국가 ‘치르치르스탄’에 건너간 신파극, 아니 ‘K-신파’를 상상한다. 갑자기 경제적 부흥을 맞이한 신생 ‘자립’국가(‘독립’이 아니다) 치르치르스탄의 지배자들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정서를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문화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자국의 전통이나 인접 문화가 아니라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세계문화를 전유하려는 마리 공주들의 기획은 엉뚱하고 순진하고 어딘가 위험해 보인다.
사진=연극 '신파의 세기' 공연 연습 한 장면
대학로에서 치르치르스탄으로 파견을 나간 김민식은 입찰 규모에 여러 번 놀라면서 한국연극과 한국문화, 나아가 한국의 현실을 되짚는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연극의 기획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도 상상적 공간을 통해 시간축을 뒤흔들어 과거로부터의 축적이 아닌 미래로부터 소급되는 문화예술의 힘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The Scene Far from the 20th century>이라는 영어 제목의 언어유희에서 엿볼 수 있듯, 이 연극의 전략은 일종의 ‘거리두기’ 혹은 메타적 시선이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치르치르스탄의 상황은 과거 일본제국과 식민조선의 상황과 겹쳐질 수 없다. 그곳은 서구중심의 세계사를 학습해온 우리가 미처 모르는 세계의 반대편이다. 여기서 민족, 전통, 문화, 공동체는 한국이 지켜내고자 했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지 않은 미래이며, 치르치르스탄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레트로’한 시간이다.
신자유주의와 후기자본주의 이후, 말하자면 공동체에 대한 믿음도 거시적인 이념에 대한 기대도 없는 시대, 신파는 시효를 다한 문화적 퇴행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신선한 충격일 수도 있다.
연극은 다양한 신파 장면들을 통해 신파의 과잉된 정서가 겨냥해온 국가주의와 가부장제, 근대적 질서와 보편성에 대한 믿음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현지 조달 배우를 통해 재연된 낯설고도 익숙한 신파 장면들은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규범, 도덕, 신념의 그림자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치르치르스탄의 현실이 신파 장면과 겹쳐질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재현되지 않은 현실의 외부이다. 그런 점에서 신파를 전유하려고 한 마리 클리셰의 기획은 이미 실패가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진새 작가 특유의 유머와 위트는 때로는 예리하게 때로는 허무하게 자본에 잠식되어 버린 문화예술의 현실을 짚는다. 그가 신파라는 올드해 보이는 화두를 기꺼이 앞세운 까닭은 ‘보편성’이라는 판타지를 잃어버린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는지를 성찰하기 위함이 아닐까.
사진=연극 '신파의 세기' 공연 연습 한 장면
극의 현재 사이에 끼어든 신파 장면들은 “우리가 20세기에 버리고 온” 것이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파의 세기>는 노스탤지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움도 회한도 없이 미래에 깃든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은 때로 아찔하다. 멈춤과 유예 없이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겨우 한 줌의 진심을 헛헛한 웃음으로 붙잡을 뿐이다.
<신파의 세기>를 함께 만들면서 문화와 예술이 우리 삶에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 그 안에 모순과 부조리와 아이러니와 역설이 다 들어 있었다. 눈물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눈물을 참는 노력을 하면서 재빨리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는 날들이 쌓여갔다. 낡은 것은 물러가고 새로운 것이 오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모르고 오고 낡은 것이 새 옷을 입고 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신파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문화가 무엇인지를 되묻는 일이다. 더는 자기 시대의 문화를 구성할 수 없고 개별적인 취향으로서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키치적 문화 소비의 시대, 진짜 울음을 구하는 민주의 목소리가 가닿는 곳은 어디일까. 우리가 두고 온 미래는 어디로 흘러갈까. 답은 모르지만 궁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기 위해 극장을 연다. 웰컴 투 치르치르....- 양근애
● 연극 '신파의 세기'와 극장, 그리고 관객들과의 만남
독자로서 처음 만난 '신파의 세기'는 낯설면서도 익숙했습니다. 오래되었지만 단순히 철지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여전히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텍스트로 만났습니다.
연습실에서 '신파의 세기'는 배우의 몸과 말이 되었습니다. 공간과 소리,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신파’가 얼마나 쉽고 즉각적인지, 어떤 힘을 가졌는지 느꼈습니다. 무엇이든 신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상했던 곳에서, 전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신파를 만났습니다. 그것을 비판적으로, 또 어떤 부분은 긍정하며 바라보았습니다. 신파를 이루는 어떤 마음과 기술에는 부정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사진=연극 '신파의 세기' 공연 연습 한 장면
작품이 만들어지며 여러 시대와 주체, 범위의 신파의 조각들이 쌓였습니다. 그것들은 닮은 듯 다르고, 또 다른 듯 닮았습니다. 그것이 명료하게 정의하기 힘든 현재의 현상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신파의 세기를 지나며 남겨진 흔적들이 지금, 여기를 어렴풋이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나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지나가게 될 신파의 세기를 지금, 여기에서 인식하고 있는 존재들에게로 생각이 확장됩니다.
객석에서 이를 함께 감각하게 될 관객님들의 시선이 궁금해집니다. '신파의 세기'와 극장, 그리고 관객님들의 만남이 신-신파, 뉴-뉴웨이브, 누벨-누벨바그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조연출, 황세희
● ‘우리’는오늘도 함께웃고, 울고, 마주하며 ‘연극’을 만듭니다.
연극 <신파의 세기>는 약 2년간의 우여곡절 많은 제작기간을 거쳐 대학로극장 쿼드의 23년 마지막 제작공연으로 관객 분들을 만나는 작품입니다. 본 작품은 과거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신파를 공유했던(공유하는) 예술가, 그리고 예술계의 모습을 한국 안팎의 시선으로 공유하며, 작품 속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통해 여러 인간의 감정과 모습(어쩌면 나와 내 옆에 앉은 당신의 모습들도)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연극 '신파의 세기' 공연 한 장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간다는 가정하에 제작 과정 중의 짧은 소해로 글을 시작합니다. 아주 사적인 첫 만남부터 떠올려 보고자 합니다.
정진새 작가님(그리고 연출)를 처음 마주한 시간은 아마도 10여년 전쯤으로 거슬러 갑니다. 저와 작가님은 당시 축제 구성작가와 행정스태프로 서로 인사 나누고 이후 극장과 축제 등 이곳저곳에서 (간접적으로) 각자의 시간을 쌓아갔습니다. 항상 손에 노트와 펜을 쥐고 계셨던 모습이 인상 깊었지요.그리고 올해 초 <신파의 세기> 대본리딩 때 다시 마주하였습니다.
정진새 작가님의 상상 속 세계관들이 글자들과 함께 펼쳐지며 특유의 위트와 말맛이 가득한 대본을 받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했던 배우님들도 기대감 반, 긴장감 반으로 리딩을 시작하며 <신파의 세기> 작품의 제작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신파’란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관객들과의 감정공유를 위해 ‘우리’는오늘도 함께웃고, 울고, 마주하며 ‘연극’을만듭니다.
사진=연극 '신파의 세기' 공연 연습 한 장면
‘신파’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어떤 다짐과 마음으로 캐릭터를 그려낼까? 등의 무수히 많은 질문을 워크숍 방식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만들어 가는 작업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수개월이 지나며 프러덕션에 함께한 (아마도) 모두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기 위한 시간을 쌓아가고, 서로의 마음을 읽어가며 ‘우리’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팬더믹 이후, 하나의 작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 모여 오랜만에 마주하는 따뜻함, 배려, 존중, 이해와 공감..(더 좋은 말들이 생각이 나질 않네요)들이 가득한 반가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관람하시는 동안 텅 빈 블랙박스 극장에서 관객 여러분들을 웃기고, 울리며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신파’를 경험해 보세요. 그리고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연극을 신파와 함께 그려 낸 예술가들의 단단한 힘도 힘껏 느껴가시길 바랍니다. - 제작PD 이지은
한편 연극 '신파의 세기'는 11월 28일(화)부터 12월 17일(일)까지 총 18회 공연된다.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은 오후 3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인터미션 없이 100분 공연된다. 만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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