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우상에 대한 성경적인 답, 또 교리적인 답 지난주에는 초대 교회의 답을 가지고 나눴습니다.
오늘은 우상숭배와 우상의 재물에 대한 목회자 제 개인의 견해를 가지고 잠깐 말씀 나누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사도행전 15장 29절에서 예루살렘 공유의 우상의 제물을 멀리하라고 했는데 이 사실과 그리고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장 14절과 20절에서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 우상 제물에 대한 성경적인 답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도 금지해야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도 멀리해야 하고 그리고 그것은 성도로서 책망받을 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거예요.
두 번째로 고린도전서 10장 19절과 20절에서 우상 제물을 먹는 것과 우상숭배 조상숭배였죠. 조상 숭배는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견해를 성경적인 답으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지내는 건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고 우상의 제을 취하는 것 또한 귀신과 교제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을 멈춰야 하고 오히려 성령 안에서 성령과 교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우상의 제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의 방편도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음식이 우리를 더럽게 하거나 깨끗하게 하지는 못해요. 그러나 우상 제을 먹는 것은 잘못하면 우상숭배의 한 방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에 대해서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져 있고요. 연약한 자를 상하게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거예요.
우상의 제을 먹는 건 우상숭배의 한 방편이 되고 우리가 우상의 제을 먹는 것은 여러 가지 이렇게 어떤 파급 효과를 통해서 결국 우상을 숭배하는 거라는 거죠. 우상의 제을 먹으면 또 우상의 세력이 더 커지고 우리가 우상의 세력이 커지면 결국 우상이 흥왕하게 되는 거고 그럼 나는 우상의 제을 먹었지만 결과적으로 결론적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게 한 꼴이 되는 거죠. 그래서 우상숭배 제을 먹는 것을 조심하라.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믿음이 약한 자가 우상 제을 이제 알고 먹는 것을 보면 얼마든지 시험에 들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하라고 합니다.
네 번째로 칼빈은 기독교 강요 11장 13항에서 우상숭배는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의 쇠퇴라고 합니다. 교회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 또 우상의 제을 먹는 것은 순수성을 잃었다는 거예요. 이게 칼빈의 견해예요. 저도 이 견해를 지지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좋은 것은 허락하는 건 성경적인 거죠. 말씀을 많이 읽는 것, 전도하는 것, 사랑하고 교제하는 것 이런 것은 우리가 개방하고 또 많이 권장하고 권면해야 되지만 반대로 우상과 관련된 것은 더 조심하고 더 조심해야 될 거라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우상에 대해서 조심하지 않는 것은 순수성이 떨어졌다는 거죠. 순수한 믿음에서 멀어졌다는 견해예요. 그래서 칼빈은 교회가 성도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그 교회에 나와 성도가 순수성에서 멀어졌다고 이렇게 봅니다. 저도 그 견해를 믿어요. 그러니까 신앙이 오염된 거죠.
다섯 번째로 믿음이 강한 자 우상의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신자는 자신의 자유를 남용해서 다른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지 말고 오히려 반대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자세를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셨잖아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강함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형제의 연약함을 담당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으로 인해서 이게 형제의 시험거리가 된다면 우리는 철저히 경계하고 또 조심하게 된다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음식은 우리를 범죄하게 할 수도 없고 음식은 대개 객관적인 거예요. 보편적인 거죠. 여기 어떤 가치를 담기가 어려워요? 그렇지만 가치를 담기 어렵더라도 우리가 신앙이 약한 자가 내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본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그가 연약해진다면 우리가 삼가 조심하고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오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순종의 강도가 더 세지는 것이고 그리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자유가 되게 많아진다는 거예요. 자유 성령 안에 자유케 되는 거죠. 내가 이 자유를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거예요. 방종하는 자유가 아니라 그래서 성령 안에서의 자유를 우리가 조심하게 사용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여나 우리가 나의 자유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신앙이 있어요. 물질이 나를 범죄케 하거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질을 취했어요. 근데 그것이 연약한 자에게 약점이 되고 넘어지게 하는 거리가 된다면 철저하게 조심해야 된다는 거예요. 나의 자유로 인해서 형제와 자매가 믿음에서 멀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거죠.
내가 얼마든지 자유케 할 수 있어요. 내 믿음의 양심을 따라서 그렇지만 그 믿음의 양심이 내 주변의 연약한 자를 넘어지게 한다면 우리는 더 조심하고 더 조심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거죠. 그러니까 주일날 주일의 개념이 구약의 안식일처럼 이렇게 율법적인 개념은 좀 아니에요. 주일은 어떤 신앙 고백적인 측면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주일에 대해서 좀 자유를 가진 중직자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근데 문제는 그것을 보는 믿음이 연약한 자가 그것에 인해서 시험에 든다면 그 자유는 쓰면 안 된다는 거죠.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여섯 번째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서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 바울의 관점이 교회가 우상 제을 대하는 관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믿습니다. 다섯 번째와 같은 견해인 거죠. 그러니까 내 자유가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영원히 그 자유를 포기해야 될 만큼 교회 공동체는 너의 믿음의 형제들은 소중한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멈춰야 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무슬림들이 먹는 할랄 음식도 할랄법에 의해서 이슬람의 의식을 거행한 후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상의 제과 동일하게 여겨야 된다. 그래서 이것을 먹는 것 있는 것 거하는 것 보는 것을 조심해야 된다.
여러분 우리가 무당이 구타하는 자리에 있다고 해서 지금 우리에게 큰 영향력은 없어 오히려 무당이 굿을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죠. 여러분 두 가지를 깨닫게 될 게 하나는 내가 믿음이 좋구나 진짜 성령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경험하거나 아니면 나는 믿음이 약할 뿐만 아니라 성령이 지금 나와 함께하지 않는 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뿐인 거예요.
무당의 굿에 참석하게 되면 근데 그런 것도 조심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듯이 할랄법도 마찬가지로 의식을 행하고 난 이후에 이 음식이 만들어져요. 그럼 결국 우상의 제물과 같고 이슬람이나 이방신들이 이런 제도 안에 두는 것은 그 영적인 피해를 알기 때문에 그 안에 두려고 이렇게 제도를 쓰고 이런 음식을 만들려고 하고 이걸 타 나라에 다른 국가의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 입는 것 거하는 것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과 사상의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우리가 늘 삼가하고 조심해야 된다는 겁니다.
계속 우리가 이제 지켜야 될 어떤 계명들에 관한 것들 또 신앙의 규범들에 관한 것들을 오후 예배 이야기하고 길게 좀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길지만 짧게 우상의 제물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 우상 숭배는 당연히 금지돼야 되는 것이고 우상숭배도 물질이 우리를 어떻게 주관하지는 못하지만 이것이 교회나 아니면 성도에게 악영향이 있다면 그것조차도 철저히 우리는 삼가야 된다.
더 나아가서 물질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물질이 유통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에 보면 우상의 영향력이 다 뒤떨어지게 돼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먹고 취하는 것도 조심해야 된다. 더 나아가서 순수성이라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잘 지키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과 제가 우리 애가 성경이 규범하고 있는 우상숭배나 제물에 대한 말씀들을 잘 지켜 행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 때 교회는 순결한 공동체가 되고 오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순교할 때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고 주님이 맡기신 일들을 우리가 기쁘게 수행해 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우상숭배나 우상의 제물로 인해서 공동체에 해가 되거나 또 우리 영원히 피폐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씀의 기준을 따라서 조심하고 경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