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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있다. 특정 종교의 신이 없을 뿐이다. 신이 없는데 우주가 있다는게 더 말이 안된다. 하드웨어가 있는데 어찌 소프트웨어가 없겠는가? 신이 있다는 말은 우주의 소프트웨어가 파편적으로 흩어져 존재하지 않고 통일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주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간섭받고 있다.
신을 개인을 돌봐주고 처벌하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고대 노예제의 영향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하인의 관계로 상상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이 그렇다. 신은 인간을 심판하지 않고 처벌하지도 않는다. 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인간이 신을 위해 존재한다.
세포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머리카락을 확 깎아버리고 발톱을 확 깎아버린다. 멀쩡한 세포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7년 안에 세포는 죄다 죽어서 몸을 빠져나간다. 그렇다고 인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세포 하나하나의 운명에 신경쓰지 않는다. 신은 인간 하나하나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다.
신은 인간 집단 전체의 운명에 신경쓴다. 인간도 신체 전체에는 신경을 쓴다. 성형수술을 한다며 턱을 깎아내기도 한다. 헌혈을 한다며 멀쩡한 적혈구 세포를 타인에게 넘긴다. 헌혈된 적혈구의 입장에서는 버림받은 것이다. 전체의 밸런스를 깨뜨리지 않는 한 부분의 변화에 신경쓰지 않는다.
주최측 입장에서 도박장에서 누가 돈을 따든 상관없지만 하우스가 망하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나쁜 사람이 이길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이 이길 수도 있지만 하우스가 망하지 않으려면 속임수 쓰는 사람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은 심판받았다.
그들이 하우스를 위태롭게 하였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해도 되지만 선을 넘으면 제재가 들어간다. 모든 나쁜 짓을 다 처벌하면 사회는 활력을 잃고 자생력을 잃는다. 인간들이 지나치게 신에게 의지하고 복지부동에 들어가므로 역시 하우스가 망한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들에게 공평하지 않다.
신의 입장에서 인간은 신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공평하면 물체를 쥘 수 없다. 엄지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고 검지가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약지는 놀아도 된다. 눈은 신경써서 정밀하게 만들었지만 똥꼬는 대충 만들어서 치질에 걸리도록 놔두는 것이다.
신을 섬기고 기도하라는 말은 아니다. 전쟁터에서 적군의 대포알은 공정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전쟁터에서 병사의 역할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병사는 전쟁터를 벗어날 수가 없다. 죽거나, 살거나, 지거나, 이기거나 간에 병사는 총을 쏴야 한다.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그래야 인간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현재 미완성이다. 개인은 미완성이다. 집단으로 완성된다. 공간의 집단도 미완성이다. 시간의 역사로 완성된다. 우리은하를 벗어나 우주의 모든 은하에 모든 지성체의 모든 문명을 다 합쳐야 겨우 신은 완성된다. 신은 다만 신 자신을 완성할 뿐이다.
인간이 신의 완성에 기여해야 하는 이유는 애초에 신의 세계관 설정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의 완성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설정오류다. 존재의 소프트웨어를 다시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인간은 선으로 기여하지 않고 활동으로 기여한다. 신의 입장에서는 무위가 악행보다 나쁘다.
적군이든 아군이든 용서될 수 있지만 총을 쏘지 않는 병사는 용서될 수 없다. 선악이라는 개념을 극복해야 한다. 옳고 그름이라는 개념도 넘어야 한다. 능동이냐 수동이냐가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꿰면 일이 풀린다. 고비를 넘고, 천장을 뚫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면 악은 용인된다.
이재명의 인생에서 언제나 선하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활력을 유지하되 선이 악보다 커야 한다. 위선보다 위악이 필요한 이유다. 위선은 혼자 앞서가다가 팀을 파괴하게 되지만 위악은 함께 가므로 세상을 바꾼다. 앞에서 이끌면 무리가 흩어지지만 뒤에서 쫓으면 무리가 한 방향으로 간다.
왜 나만 불행하냐고 물으면 안 된다. 행복도 없고 불행도 없다. 그런 생각은 개인이 집단을 바라보게 유도하는 장치다. 개미는 행복과 불행에 신경쓰지 않는다. 여왕개미 페로몬 영역을 떠나지 않을 뿐이다. 인간은 신의 영역을 떠날 수 없다. 인간이 신의 일부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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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개념은 계속 커져왔다. 원래 신은 조상신이었다. 죽은 조상이 아직 살아있다고 우기면서 부족의 결속을 끌어낸다. 부족의 숫자만큼 신의 숫자도 늘어났는데 일신교가 등장하면서 신의 의미가 확대되었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신은 작다. 그런 신은 없어도 된다. 없어도 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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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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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 봤다. 놀랍게도 실용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인류 중에 없다. 경험과 실천을 강조하는게 보통인데 이는 진리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경험과 실천은 다른 모든 사상에도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경험과 실천은 지식에 대한 태도일 뿐 진리에 대한 관점이 아니다.
산수 문제를 푼다고 치자. 쉬운 문제라면 수학 공식을 몰라도 풀 수 있다. 그게 풀었다고 할 수 있나? 이론적 뒷받침이 아니면 복제되지 않는다. 재현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지 못한다. 주먹구구에 머물러 있다. 1+1은 2를 알면 지구와 달까지 거리도 알 수 있어야 이론이다.
생각과 실천은 똑같이 중요하다. 생각만 하고 실천은 거부하거나 실천만 하고 생각은 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용주의는 이론이 될 수 없다. 요령, 통박, 꼼수 따위가 이론은 아니다. 미국식 실용주의는 서구의 관념론 철학에 대한 비난일 뿐 독자적인 철학이 아니다.
관념론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데아가 우주공간 어딘가에 실제로 있다고 믿었다. 영혼을 구성하는 물질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이데아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서 헷갈린 것이다.
실용주의는 철학을 비난하는 반철학적 태도일 뿐 독자적인 철학이 아니다. 과학을 비웃는게 과학은 아니다. 주술은 과학이 아니고 미아리 점집은 철학관이 아니다. 주먹구구를 수학이라고 하는 자와의 대화는 의미 없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지식인의 대화상대가 아니다.
하드웨어가 있으면 소프트웨어가 있다. 관념론 철학은 소프트웨어에 주목한 것이며 그 반대편에는 하드웨어가 있다. 누구나 알듯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만 가지고 컴퓨터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소프트웨어가 없는 하드웨어는 쇳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철학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이 있다. 이상은 에너지를 끌어모은다. 현실은 에너지의 결집을 방해하는 물리적 장벽이다. 대표적으로 지리적인 장벽이 있다. 곧 지정학이다. 80억 인류가 힘과 지혜를 합치면 어떨까? 이게 이상주의다. 아프리카 정글에 숨어서 난 안 해. 배 째. 하면 현실론이다.
결국 진실은? 답은 에너지다. 방해자도 에너지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지리적인 장벽이 에너지의 동원을 방해하므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변혁은 에너지의 동원이 쉬운 곳에서 먼저 일어난다. 도시에서 혁명이 시작된다. 시골은 보수한다.
실용주의가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지리가 방해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돕는다. 원주민은 전염병으로 죽고, 비옥한 중서부 흑토지대는 생산력이 넘치고, 석유며, 철강이며, 석탄이며 없는게 없다. 에너지를 동원할 필요가 없이 에너지가 널려 있다.
실용주의란 철학이 필요 없는 축복받은 땅을 차지한 자의 배부른 소리였던 것이다. 유럽은 에너지가 없으므로 에너지를 동원해야 하고 그러려면 철학이 필요한데 미국은 에너지가 널려 있으므로 동원할 필요 없이 그냥 땅을 파면 된다. 뒷마당만 파보면 석유가 나와주잖아.
유럽은? 자원이 없다. 러시아 애들 꼬셔보면 어떨까? 석유가 터졌다는데. 불곰 애들 어떻게 꼬시지? 코사크 애들 졸라 거칠다구. 철학으로 작업치면 어떻게 안 될까? 영국의 선진기술을 넘겨준다고 해보자. 이게 철학이다. 없는 것을 가져오려고 설득하는게 철학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하드웨어는 지구다. 소프트웨어는 생각이다. 미국은 지구를 챙겼다. 지구만 파먹어도 백 년 동안 살림이 넉넉하다. 지구를 파먹으면 되는데 철학이 무슨 소용이람? 한국은 땅을 파도 석유가 없다. 하드웨어가 부족하면 소프트웨어로 수를 내야 한다. 철학이 필요하다.
씨름을 해도 하드웨어가 딸리면 꾀씨름으로 수를 낸다. 농구를 해도 키가 작으면 외곽 삼점슛 기술로 승부해봐야 한다. 한국이 사는 길은 무역이고 그러려면 설득을 해야 하고 따라서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서구가 한류에 꽂힌 것은 유교철학의 이념미에 반했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사람을 반하게 만드는 매력이다. 일본 사무라이 칼보다 한국 선비 갓이 더 매력적이다. 어떤 철학을 가지는가는 어떤 매력을 가지는가다. 미국은 땅이 넓어서 매력이 필요 없다. 양키라고 부르는 이유는 교양이 없기 때문이다. 땅을 백만 평씩 차지했는데 뭔 교양?
매너, 에티켓, 문화 다 필요 없다. 그래서? 술을 잔뜩 퍼먹고 아내와 자식을 구타한다. 금주법이 시행된 배경이다. 땅이 많이 있으면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으며 그러므로 교양과 매너와 에티켓과 문화는 필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몽둥이찜질이 먹히는 것이다. 패면 된다.
이게 미국식 실용주의 최종결론이다. 이건 철학이 아니고 정신병이다. 호강에 받쳐서 요강에 빠졌다는 말이다. 지금 트럼프가 하는 행동을 보라. 금주법 시대에 알 카포네가 하던 짓이다. 알 카포네는 술을 밀수하다가 소득을 숨기려고 우유배달업을 했는데 대박이 났다.
처음부터 우유배달이나 할걸. 술장사 괜히 했네. 이런다. 미국은 뭐를 해도 돈이 되는 나라였던 것이다. 조폭이 탈세하려고 한 눈가림 사업이 대박이 나서 더 많은 소득을 안겨주었을 정도로 아무거나 투자만 하면 다 돈이 되는 나라였다. 그렇게 흥청대다가 경제공황 났지.
본론으로 돌아가자. 생각은 소프트웨어고 지구는 하드웨어다. 지구에 2억 명이 살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땅이 넉넉하면 생각은 필요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니 술과 마약과 폭력에 빠졌다. 그게 실용주의다. 우리에게 땅은 부족하므로 생각을 해야 한다. 철학이 필요하다.
반철학은 철학이 아니고, 주술은 과학이 아니고, 한의는 의학이 아니고, 주먹구구는 수학이 아니고, 이발소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지하철 시는 시가 아니고, 뽕짝은 음악이 아니고, 사이비는 종교가 아니고, 마술은 기술이 아니다. 참과 거짓은 엄격하게 구분이 되어야 한다.
진짜 실용주의는 따로 있다. 미국식 실용주의는 철학에 대한 비난이다. 그렇다면 진짜는? 이상과 현실의 통합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하는 것이다. 개미집은 그 자체로 하드웨어이면서 소프트웨어다. 원래 자연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다. 인간이 쪼개놨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말하자 그 이데아가 3만 피트 공중에 어디쯤 있다고 착각한 데서 헛소동이 시작된 것이다. 답답한 서구인들. 이데아는 현장에 있다. 미국인들에게는 땅이 이데아다. 땅을 백만 평씩 차지하면 그게 이상이지 그보다 이상적인 환경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구조론으로 보면 구조가 이데아다. 구조가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별도로 있는게 아니고 어떤 둘이 만나는 방식이 소프트웨어다. 너와 나의 관계가 형제냐, 부부냐, 사촌이냐, 동료냐, 적군이냐 그 관계 자체가 소프트웨어를 형성한다. 이데아는 현장에 있다.
진짜 실용주의는 현장주의다. 이데아는 멀리 공중에 있다. 천국에 있다. 외계인이 조종하고 있다. 이런 개소리 하지 말고 당신이 발을 딛고 선 현장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즉 실용주의는 관념과 실천의 통합, 생각과 지정학의 통합, 자동차의 차체와 운전기술의 통합이다.
플라톤은 자동차 밖에서 운전기술을 찾았던 것이다. 자동차는 찾아놨고 이제 운전기술만 찾으면 된다고 떠벌리며 절대로 그 자동차에 타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상과 현실, 이데아와 실천은 체와 용의 관계다. 이상이 용이고 현실은 체다. 구조론으로 보면 용이 체에 앞선다.
체를 확보하고 다음 용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용은 움직이고 움직임이 교착된 것이 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상주의자는 현장 밖으로 나가서 뭔가 수를 내려고 한다. 왜?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가면 뭔가 수가 나지 않을까? 일본 애들이 뭔가 알던데.
프랑스인은 이국취미가 있다. 서재를 일본풍, 인도풍, 아랍풍, 아프리카풍, 중국풍 따위로 꾸며야 한다. 그들이 달라이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들은 멀리서 이데아를 찾는다. 요즘은 한국문화를 기웃거린다. 한국애들이 뭔가 한 이데아씩 감추고 있는거 같은데 함 파볼까?
구조론은 현장주의다. 닫힌계를 걸고 내부를 압박하면 이데아는 자동으로 획득된다. 신토불이니 유기농이니 환빠니 하는게 민족주의라는 닫힌계를 걸어 내부를 압박하는 기술이다. 반일하는 이유도 외부를 타격하여 되돌아오는 반동력으로 내부를 압박하는 돌려까기다.
알아야 한다. 그들이 일본을 치지만 사실은 한국을 때린다. 국힘도 마찬가지로 중국을 때리고 북한을 때리지만 실제로는 한국을 때린다. 80년대 정청래가 반미운동을 한 것도 사실은 미국의 손을 빌려 한국을 때리려는 것이다. 자기편을 인질로 잡아 쥐어짜는 기동이다.
등가원리에 의해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 것과 더 많이 내부를 압박하는게 결과가 같기 때문이다. 이데아는 압박이며 압박은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지 미국인들처럼 외계인이나 찾고, 초능력 찾고, 달착륙 음모론 하며 자꾸 밖으로 기어나가서 뭔가를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미국은 밖으로 나가서 신대륙을 찾아 재미본 경험 때문에 자꾸만 생각이 밖으로 나가서 겉돌게 된 것이다. 구조론의 답은 도구주의다. 도구를 압박하는 것이다. 자기반성 필요 없다. 내 탓 아니다. 성찰 필요 없다. 진정성 필요 없다. 남 탓도 필요 없다. 중간의 도구를 탓하라고.
남 탓.. 음모론, 냉전, 사상대결.. 이게 다 빨갱이 때문이다.
나 탓.. 성찰, 진정성, 자기반성 소동.. 이게 다 내 잘못이다.
나무가 잘리지 않으면 나무 탓도 아니고 내 힘이 부족한 탓도 아니고 목수가 오전 내내 연장을 벼르더니 오후에 집을 한 채 뚝딱 지어놓더라고 연장 탓이다. 욕으로 안 되면 짱돌로, 돌로 안 되면 죽창으로, 창칼로 안 되면 총으로, 총으로 안 되면 대포로, 정 안되면 원자탄이다.
좌파.. 자기반성, 성찰, 진정성으로 인간을 쥐어짠다.
우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며 남탓신공을 시전한다.
실용.. 동료와 팀플레이가 안된게 문제다. 포메이션을 바꾼다.
이재명이 말한 자연의 일부다. 자연을 탓하지 않고 나를 탓하지도 않고 둘을 연결하는 중간고리를 탓해야 한다. 그쪽으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 훈련을 했다. 의도적으로 나 탓을 거부하고 남 탓도 거부하고 중간의 지정학 탓을 하기로 했다.
조선이 가난한 이유는? 흥선대원군 탓이다. 명성황후 탓이다. 남 탓은 개소리다. 진정성놀이, 성찰놀이 하는 자기반성도 개소리다. 진실은? 지정학적 이유다. 생산력 탓이다. 남인도는 잘살고 북인도는 못산다. 많은 나라들이 남쪽은 잘살고 북쪽은 못 한다. 지정학 때문이다.
조선이 가난한 이유는 주원장이 바다에 배를 띄우지 못하게 해서 첨저선을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가 바다를 건너지 못하니 이양선을 두려워하고 서양인들과 만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미국이 필리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항로에 일본은 있었고 조선은 없었다.
유럽은 반대로 아프리카를 낀 지중해 나라가 못살고 북해를 낀 나라들이 잘산다. 독일이 잘사는 이유는 북해와 발트해를 동시에 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해와 발트해에 양다리 걸친 나라는 독일 하나뿐이다. 미국도 한때 오대호 끼고 시카고가 번성했다. 교통로가 답이다.
교통로가 지구의 소프트웨어다. 이데아가 먼 곳에 있지 않다. 교통로가 이데아다. 수도를 내륙에 정한 나라는 대부분 가난하다. 한반도가 북위 30도 선에 내려와 있었다면 백 년 전부터 조선은 부자다. 답을 멀리 동떨어진 이상이 아닌 현장과 도구에서 찾는게 실용주의다.
진짜 실용은?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상을 찾는 것이다. 액션이 소프트웨어다. 미국식 실용주의는 이상을 부정하고 경험과 행동에서 답을 찾지만 진짜 실용주의는 행동 그 자체가 곧 이상이라는 것이다. 즉 이상을 오히려 긍정하는게 진짜 실용주의다.
유럽식 이상주의 – 동료와 손잡게 하는 이상적인 인격을 얻어야 한다고 말만 하고 당장 눈앞의 동료와는 합을 맞추지 않아서 혼자 고립된 채로 멸망.
미국식 실용주의 – 행동으로 말한다면서 단독플레이만 하고 동료와 합을 맞추지 않음. 트럼프 혼자 날뛰는 삽질.
행동하다 보면 동료와 합이 맞는다. 동료와 합을 맞추는게 이상주의다. 축구시합의 이상주의는 축구장 안에서 찾아야 한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뭐를 어쩌는게 아니고 동료와 패스를 연결시켜야 한다. 패스가 척척 연결되는 것이 축구의 이상주의다.
1. 답은 현장에 있다.
2. 답은 둘을 연결하는 도구에 있다.
3. 답은 주체와 객체의 연결방식에 있다.
한 방향으로 집단의 압력이 전달되는 구조를 만들면 에너지는 결집된다. 답은 그곳에 있다.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역사 이래 모든 주의 주장은 집단을 결속시켜 한 방향으로 힘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균형이 맞아야 한다. 에너지가 전달되는 경로를 알아야 한다.
그게 구조다. 계를 정하여 압력을 걸고, 중심을 도출하고, 균형을 이동시키고, 변화를 전달하고, 간섭을 유발해야 한다. 그것이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어려운게 아니다. 원교근공이다. 멀리 있는 파트너와 손을 잡아야 중심의 도출이 쉽다. 가까운 형제는 중심이 안 맞다.
서구문명 기준으로 멀리 있는 중국과 손잡고 가까운 러시아를 때려줘야 한다. 지금은 거꾸로 러시아가 문명적 거리가 먼 중국과 손을 잡고 가까운 미국을 때린다. 한중일 대화해로 가야 한다. 먼저 한일연합으로 중국을 회유하고 미국과 연결하여 러시아를 타격해야 한다.
각자 원하는 것을 가져야 한다. 부자와 지식인과 노동자가 각자 원하는 것을 가져야 한다. 좌파가 실패하는 이유는 지식인의 아스퍼거 취향을 노동자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PC가 솔깃한 사람은 경증 아스퍼거라는 증거다. 혼자 아스퍼거로 만족하지 왜 타인에 감염시켜?
지식인은 아스퍼거 짓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남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지구 온난화에 신경쓰이는 사람은 아스퍼거다. 나는 왕년에 이디오피아 가뭄 소식에 잠을 못 이룬 적이 있다. 위선보다 위악이라야 한다. 엘리트가 축구장을 가야지 노동자가 테니스를 칠 수는 없다.
엘리트가 민중을 배워야지 노동자가 엘리트를 배울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게 되면 노동자나 하고 있겠느냐고. 강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피해자 코스프레 어리광은 곤란하다. 사소한 일에 상처받는건 자랑이 아니고 대가족이라는 방패막이가 깨져서 약해진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