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요지
1) 우리가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 휘장(몸과 마음)을 찢을 수 있을까?
2)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육체는 죽일 수 있으나 마음은 죽일 수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이 후손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3)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없애 버릴 수 있을까?
4) 성경의 죄에 관하여는 대속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모델이 되어 주셨을 뿐이다.
나. 본론
1) 우리가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 휘장(몸과 마음)을 찢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그 생명의 그 빛이 우리 마음 세상 안에 임할 수 있을까? 달리 표현을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 휘장(몸과 마음)을 찢을 수 있을까?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러나 원어로 보는 성경은 역사적 사건을 말씀하시지 아니한다(시제가 없다). 그래서 파라볼레(비유)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핵심을 알아내지 못하면 헛일이다. 어떠한 종교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2)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육체는 죽일 수 있으나 마음은 죽일 수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이 후손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육체는 죽일 수 있으나 마음은 죽이지 못해서 마음이 또 다시 육체를 입고 태어나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 마음(휘장, 카르디아)을 없애버려야 태어나는 일이 없어진다.
3)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없애 버릴 수 있을까?
성경에서 우리 마음을 없애는 방법을 자세하게 말씀해놓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 사건은 파라볼레(비유)다. 비유(파라볼레)는 비사(파로이미아)와 연결되어 있다.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해 주셨다고 그동안 우리가 배워왔고 그렇게 알아 왔다. 이것은 성경에 없는 거짓이다. 번역을 잘못하였고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이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 사해 주셨는데 왜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죄가 거하고 있는가? 기도를 해도, 예배를 드려도 금식을 해도 어떻게 그렇게 죄가 내 안에서 멀쩡히 살아 있을까?
4) 성경의 죄에 관하여는 대속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모델이 되어 주셨을 뿐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대속이 아니라 속죄다. 속죄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시범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속죄가 비유(파라볼레)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래서 성경 말씀은 종교인들이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인들이 이천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세워놓고 종교를 만들고 종교를 통해 해석해 왔고 이를 통해 통치해 왔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의 그 빛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왔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한 격이 되었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