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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장 제양공의 종말 (4)
- 제(齊)나라에게 밉보이면 나라가 결딴난다.
확실히 이 무렵의 제양공은 강했다.
북융의 침공을 받아 정장공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제희공 시절과는 전연 딴판이었다.
제양공(齊襄公)이 죽은 후 곧이어 제나라에는 제환공(齊桓公)이라는 임금이 등장하게 되는데, 제환공은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춘추시대 첫번째 패공으로 인정받는 대위업을 이루게 된다.
제환공(齊桓公)이 아무리 명군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관중이 아무리 뛰어난 재상이라 하더라도 그토록 짧은 시일 내에 천하 제후국들을 압도할 만한 군사력을 보유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아마도 그가 패업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제양공(齊襄公)시절에 구축해 놓은 탄탄한 군사력이 밑받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제양공(齊襄公)은 그냥 강한 게 아니었다. 무도(無道)했다.
유달리 복수심이 강했다.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이었다.
한마디로 제 기분 내키는대로다.
- 제(齊)나라와는 가까이하지 마라.
주변 제후국들 사이에 제양공은 일약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제양공(齊襄公)에게 패한 주왕실은 물론 노나라도, 송나라도, 정나라도 모두 제나라와의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제양공(齊襄公)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 묘하다.
강자일수록 오히려 불안해하며 자기 자신을 쥐어짜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돈 많은 갑부가 재산을 잃지나 않을까하여 밤잠을 못 자는 경우와 똑같다.
제양공(齊襄公)도 그런 부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왕실은 물론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제나라를 공격하지나 않을까 늘 불안에 떨었다. 둘러보면 믿을 만한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나 자신만 믿을 뿐이다.'
그는 모든 대부들과 군사를 불러놓고 명령했다.
"국경 경비에 만전을 기하라!"
국방의 수반으로서 당연한 명령이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이웃한 노나라, 연나라와 국경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멀리 규구(葵丘) 땅까지 경비대를 파견할 계획까지 세웠다.
규구(葵丘) 는 엄밀히 말하면, 제나라 영토는 아니었다.
지금의 하남성 조현(曺顯) 서쪽 일대로서 송, 정, 노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소읍이다. 제나라 수도 임치성과는 1천 리나 넘게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제양공(齊襄公)은 이 곳에 군대를 파견하여 수비군을 주둔시키려 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규구(葵丘) 파견에서부터 발생했다.
과연 누가 그 먼 곳까지 나가 경비를 맡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제후국들이 봉토를 다스리는 방식은 주왕실이 제후국을 다스리는 방식과 꼭 같았다.
즉 철저한 봉건제도에 의해 자신의 영토를 다스렸다. 각 영토마다 영주가 있고, 군주는 그 영주들을 다스림으로써 자신의 봉국을 유지해 나간다. 따라서 군주가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 권력을 지닌 임금 개념은 아니다.
군주는 공실의 대표자이자 나라의 최고 우두머리일 뿐 각 지역의 일은 영주에게 맡긴다. 그러므로 군주가 갖는 권력은 공실에 대한 지분 뿐이며, 나머지 권력은 유력한 귀족들에 의해 분산되어 있다. 군주가 각 귀족들에 대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는 온전히 공실의 힘이 얼마나 센가에 달렸다.
공실의 힘이 세면 귀족 즉 대부(大夫)들은 군주에 복속하고, 공실의 힘이 약하면 대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정나라가 어지러운 군주 쟁탈전을 벌이는 중에서도 정경 제족(祭足)을 내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정치 형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당시의 정치 질서요, 관행이었다.
제(齊)나라 정치구조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제양공(齊襄公)이 누이동생 문강과 불륜을 일삼는 패악무도한 군주이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실 내부의 문제일 뿐이었다. 제나라의 여러 귀족들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군주의 명령이나 행위가 귀족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해 타산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 군주의 명령이 있으니 무조건 따른다.
이런 개념은 아니었다. 군대를 동원하여 변방을 지키는 일이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자기 영지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고생만 하고 헛심을 쓰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규구(葵丘) 처럼 제나라 영토도 아니요, 1천 리나 떨어진 타국 한복판에 가 머무른다는 것은 그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결정적인 타격이다.
"규구(葵丘) 를 지켜라!"
제양공(齊襄公)이 명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지명하는 수밖에 없다. 제양공은 정청에 모인 신하들을 둘러보다가 대부 연칭(連稱)과 관지보(管至父)의 얼굴에 가서 멎었다.
"그대들이라면 능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연칭은 대장이 되고, 관지보는 부장의 임무를 수행하라."
연칭(連稱)은 제양공의 후궁인 연씨의 오라비이다.
제양공(齊襄公)과는 혈연으로 맺은 관계이다. 이런 겨우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지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관지보(管至父)는 이제 막 대부 반열에 오른 신참이다. 아직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명령을 내리면 따를 수밖에 없다. 제양공이 두 사람을 지명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군사는 충분히 내주겠다."
연칭과 관지보는 땡감 씹은 표정을 지었으나, 드러내놓고 반발할 수가 없었다. 거역하면 제양공(齊襄公)에게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칭(連稱)은 나름대로 관록이 있고, 작으나마 세력도 구축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담긴 말을 할 정도는 되었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물었다.
"변방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고생스러운 일입니다. 주공께서 신들을 믿고 파견하신다니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다만, 외로운 섬과도 같은 규구 땅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언제쯤이면 다른 사람과 교대해 주시겠습니까?"
마침 시종이 쟁반에 잘 익은 참외를 받쳐들고 들어와 제양공 앞에 놓았다.
제양공(齊襄公)은 그 참외를 보면서 대답했다.
"흠, 지금이 참외가 한창 익을 무렵이로구나. 내년 참외가 다시 익을 무렵에 교대할 사람을 보낼테니, 그대들은 안심하고 규구로 가라."
이렇게 해서 연칭과 관지보는 도성 임치와는 멀리 떨어진 규구(葵丘) 땅으로 떠나갔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