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수 농협중앙회 장흥군지부장
(도청 출신 대덕중 21회)
인터뷰 서승옥(장흥 주재기자)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담
베이비붐 세대들은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그 당시 국가나 농촌경제는 물론, 모두가 가난한 살림으로 보릿고개를 경험한 시절이며 더욱이 우리 집은 젊은 연세에 작고하신 조부님의 영향으로 부친은 어린 나이에 한 가정의 가장의 버거운 짊을 일찍 경험해야 했고 그런 와중에 어머님과의 결혼으로 동생들과 자식들을 한꺼번에 성장·교육·결혼이 이어지는 상황에 향우님의 어린 시절은 다른 집에 비하여 좀더 많은 가난과 어려움을 경험하셨다 고 하였다.
이런 집안사정으로 솔직히 어린 시절 많은 추억보다는 집안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고, 이미 취학 전에 꼴 망태를 시작으로 쟁기질, 가을이면 겨울난방용 팔월나무하기, 겨울이면 노 젖어 김 채취 등 지금도 동네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보다는 일 잘한 어린이로 기억되지만 여름방학이면 도청저수지에서 친구들과 개 수영하던 일, 동네 뒷 어등산에서의 소몰이, 초등· 중학교의 소풍 때마다 단골장소로 늘 용(소)둔벙을 비롯한 천관산, 아주 크게 느껴지고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다 있는 대덕장, 국민학교때 가을운동회 날은 전면민의 축제의 장으로 기억된다 고 하였다.
부모형제에 대한 이야기
지부장님의 아버지께서는 약주를 드시고 취기가 오르시면 "내가 그 당시 광주 서중학교를 합격하셨는데 가정형편상 다닐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 하시곤" 하였는데 그게 한이 되셨는지 집안 상황이 어려워도 우리 자식들에게는 빚을 내서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학교까지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전형적인 "가시고기" 형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젊은 시절 가장 존경하신 한 분으로 주저 없이 기억되신다고 하셨다. 어머님 역시 여장부로 5남매 뒷바라지와 농사일을 손수 다하셨다 고 하셨다 인천에 사신 형님(대덕중 17회 박일수) 한분이 계신데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워 주신 든든한 버팀목이 되시고, 고향 도청에 동생 한분이 고향 선산을 지키고 있다 고 하셨다.
출향 성장 과정 이야기
오늘의 지부장님이 있기까지는 그리 순탄하지 않으신 것 같다.
당시 국민학교·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관개(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한해와 수해가 번갈아 일어나서 매년 풍년보다는 흉년이 많았으며 김 양식 또한 흉작일 때가 많아 빈곤의 악순환이었던 상황으로 상급학교 진학 시 매번 깊은 고민과 불안감이 상존하셨다고 하셨다 `국민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부산으로 많은 친구들이 상경했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반절정도 또다시 그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고 한다 지부장님 역시 그런 상황임에도 앞날을 내다보신 여러 선생님들의 덕분으로 장흥고에 진학 졸업하시고 진학과 취업을 고민하다가 일체의 학비를 장학금으로 대체하는 농협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농협에서 6년간 근무하다가 광주와 전남지역본부 책임자, 구례연수원 교수, 광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지점장 등 농협내에서 중요한 보직을 두루 거쳐, 금년 초에 고향 장흥군지부장님으로 오셨다고 하신다. 지부장님께서는 그 동안 35년 동안 농협에 계시면서 고향은 물론, `고향 농협에 남다른 열정과 사랑으로 많은 물심양면의 지원으로 천관 관내 농민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기억하신다.` 고 하셨으며, `지금도 어떻게 하면 고향발전을 위하여 작은 미력한 힘을 보탤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신다.` 고 한다.
또한 지부장님은 일본 마스시다社 고노스케會長의 말처럼 늘 공부하고, 절약하고, 건강을 위하여 노력하신 것처럼, 바쁜 직장을 다니면서도 전남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와 경제학박사과정을 수료하셨으며 틈틈이 신문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계시고, 농업 관련 단체는 물론, 여러 기업에 출강도 하여 명강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아마 조만간 멋진 책을 출간할 계획으로 계신다 고도 하셨다.
이후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면 그 동안 축적하신 재능을 기부하시거나 사회봉사 활동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겠다. 는 소박한 꿈도 갖고 계신 듯하다.
농협 소개
장흥군 관내에 연간 3천억이 넘는 농산물유통 및 영농자재 구입의 경제사업과 5천억이 넘는 농업자금 조달은 물론, 농촌지역의 노인 복지사업, 장흥지역 농촌학생 장학금지원, 여성복지 사업, 다문화 가정 지원, 농업인 조합원의 복지 등 고향 농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총괄하는 막중한 소임이지만, 발전된 고향과 복지 농촌 건설에 최선을 다하고 계신 듯하였다.
다만, 최근 농산물가격의 하락과 당면한 한중FTA, 쌀관세화유예기간만료 등 농업·농촌을 둘러쌓인 일련의 상황이 우리 농업·농촌을 힘들게 하고 있어 천관가족 모두가 좀더 농업·농촌을 이해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으면 하고 걱정을 태산 같이 하였다.
천관가족에게 드리는 말씀
지부장님은 "월간천관" 편집위원 한 분 한 분 숨은 노고로 훌륭한 월간지가 발간되고 있으며 많은 격려와 함께 "월간 천관"의 좋은 소식들을 늘 기다리신다고 하였는데, 아마 그것은 ‘여우도 죽을 때 고향을 보고 죽는다’ 는 "首丘初心(수구초심)의 이야기처럼 고향에 계신 분들이나 천리타향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천관가족 모두는 늘 배려해주시고 상대를 이해하고 상황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주변 분들에게 좀 더 베풀고 생활하시길 바라며 고려 인종께서 길게 흥하라 하신 "長興(장흥)" 사람임을 항상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행복한 삶이되시길 바란다. 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