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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연주암
2026년 02월 16일(월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입니다.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 절벽에 연주대(경기도 기념물 제20호)가 있고, 연주대에서 남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연주암이 있습니다.
연주암은 본래 관악사로 신라 677년(문무왕 17) 의상대사가 현재의 절터 너머 골짜기에 창건했으며, 1396년(태조 4)에 이성계가 신축했습니다. 그러나 1411년(태종 11)에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뜻을 알고 유랑하다가 이곳 연주암에 머물게 되었는데, 암자에서 내려다 보니 왕궁이 바로 보여 옛 추억과 왕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 한 나머지 왕궁이 안 보이는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습니다. 연주암이란 이름은 이들 왕자의 마음을 생각해서 세인들이 부르게 된 것이라 합니다. 이 절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했습니다. 1868년(고종 5) 중수작업 때는 극락전과 용화전을 새로 신축했으며, 그뒤에도 1918, 1928, 1936년에 중수작업을 하여 현재에 이른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본당인 대웅전과 금륜보전(金輪寶殿)이 있고, 연주대에 응진전(應眞殿)이 있습니다. 대웅전 앞뜰에는 효령대군이 세웠으며, 고려시대 건축양식으로 된 높이 4m의 3층석탑이 있습니다. 그밖에도 비단에 그려진 16나한의 탱화와 고려시대 것이라는 약사여래석상이 있습니다. 이 석상은 영험(靈驗)이 많다 하여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연주암에서 연주대에 오르는 길은 때로 군(軍)에 의해 통제되지만, 신자들은 언제나 통행이 허용됩니다. 이곳에 오르면 서울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연주대는 1392년(태조 1)에 이성계가 무악대사의 권유로 국운의 번창을 빌기 위해 연주봉 절벽 위에 석축을 쌓고 30㎡ 정도 되는 대(臺)를 구축하여 그위에 암자를 지은 것입니다. 연주대에는 응진전이라는 현판이 있는 불당이 있고, 효령대군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연주대 바위 벼랑은 같은 간격을 두고 줄을 그어내린 듯이 침식되어 있으며, 뒤편에는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을 지닌 말바위(馬巖)가 있습니다.
관악산 정상
10세 때 왕세자에 책봉됐지만 25세에 폐세자가 돼 임금 자리를 아우인 세종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양녕대군(讓寧大君)은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주유천하하며 많은 시서를 남겼습니다. 속가제자가 돼 수도에 전념하며 스님처럼 생활했던 효령대군(孝寧大君)과 함께 이곳 연주대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이때 양녕대군이 연주대에서 지었다는 시가 있습니다.
“산하조작반 라월야용등 독숙고암하 유존탑일층(山霞朝作飯 蘿月夜舂燈 獨宿孤巖下 惟存塔一層)”
“산 노을로 불을 때서 아침밥을 짓고, 담장이 넝쿨에 비친 달로 등불을 삼고, 홀로 외로이 바위 아래 누웠더니, 오로지 한층 석탑만 남아 있구나.”
응진전으로 들어갑니다.
응진전 뒤편 출입구 부분은 꽃잎처럼 병풍이 감싸안고 있습니다.
연주대 응진전(戀主臺 應眞殿)
관악산 정상 부근에 있는 '암자'는 연주암(戀主庵)과 연주대 응진전(應眞殿)으로 구별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둘을 통틀어 부르지만, 엄밀히는 분리된 시설입니다.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 바로 아래, 깎아지른 듯한 암벽끝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법당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왕조 개국 초 1392년(태조 1)에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에 정할 즈음에 무악대사의 권유로 연주봉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석축을 쌓고 30㎡(9평) 정도 되는 대(臺)를 구축해 그 위에 암자를 지어 국운의 번창을 빌었다고 합니다. 이를 연주대라 하며 거기에는 응진전(應眞殿)이라는 현판이 있는 불당이 꾸며져 있습니다.
저멀리에서 보였던 응진전의 빨간색 연등들입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의 소원을 빌어서 연등에 걸려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응진전(應眞殿) 편액
전각 이름은 응진전으로,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 16나한을 모시고 있어 예로부터 기도 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악산 '응진전'은 연주대 정상 부근의 바위 위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작은 암자(절)로, 석가모니와 16나한을 모시고 있으며, 특히 기도발이 좋아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이 시험 합격, 소원 성취를 위해 많이 찾는 명당 기도처입니다.
석가모니
관악산 연주대
관악산 정상에서 경유 동쪽으로 이어지는 석맥끝에서 마치 연꽃으로 둘러친 반석위에 응진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작은 돌로 채워넣었으나 천연자재 자연그대로 좌우 암반 선익이 둘러 응진전을 보호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연주대 응진전
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89)스님은 ‘관악산 영주대(冠岳山 靈珠臺)’라는 시를 지어 부처님의 가피 충만하시기를 기원했습니다.
“관악산에 올라서 한양 도성 바라보니(冠岳登臨望漢城)/ 푸릇푸릇 맑은 기운 멀리 우뚝 서리네(蔥蔥佳氣遠崢嶸)/ 북쪽 호위 삼각산은 천년동안 변함없고(三山擁北千年屹)/ 남쪽 두른 한줄기 강 만고에 푸르러라(一水圍南萬古淸)/ 팔만가지 장안에 햇살 가득 비추니(八萬長安天日照)/ 삼천세계 부처님 등불 밝게 빛나네(三千世界佛燈明)/ 멀리 바라보니 푸른 바다 아득한데(遙看碧海蒼茫外)/ 지는 해 노을 가에 백로가 비껴나네(落照紅邊白鷺橫)”
이처럼 창건부터 1700년대 중순까지 ‘연주대’는 ‘영주대’였음을 문헌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연주대로 바뀐 시기는 조선 후기로 보여 집니다. <일성록>에 을묘(1795) 윤2월16일 정조대왕이 수원에서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하에게 묻길 “관악산이 저기에 있구나. 연주대는 어디인가?”하여 연주대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고려의 유신들이 개성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해 연주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연주암이 보입니다.
영산전
연주암 템플스테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산전(靈山殿) 편액
수덕사 주지를 지내신 송원 설정(松原 雪靖 1941~ ) 스님의 글씨입니다.
금륜보전(金輪寶殿)
금륜보전은 불교사찰에서 금륜(金輪)과 보전(寶殿)이 결합된 전각 명칭으로 주로 칠성여래를 모시는 공간에 사용됩니다.
'금륜'은 사륜(네 개의 바퀴)중 하나로, 세계를 지탱하는 대지와 우주 질서의 상징을 의미하며 '보전'은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입니다.
금륜보전(金輪寶殿) 편액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의 글씨입니다.
평남 중화 출생으로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ㆍ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ㆍ백운거사(白雲居士). 서예 각체에 두루 능한 명필입니다.
그는 18세 때 청나라에 유학하여 견식을 넓혔으며 조석진, 안중식과 함께 서화연구회를 창설하고 후진을 양성했습니다. 그는 큰 글씨를 잘 썼으며, 묵란, 묵죽에 뛰어나 죽란보를 남겼습니다.
산신탱, 칠성탱, 독성탱
칠성탱(七星幀)
1926년(불기 2470)에 제작되었습니다.
독성탱(獨聖幀)
산신탱
연주암 12지신탑
석탑은 돌로 만든 다층 구조물로, 불교신앙과 예술적 가치를 함께 지닙니다.
12지신상 석탑은 각 띠 동물(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을 조각해 사찰이나, 석탑의 수호와 복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사용됩니다.
연주암 12지신탑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불기 2518년(1974) 주지 송원(松園) 스님에 의해 신축되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지장탱화, 아미타회상도, 신중탱화
중앙불단에는 개금한 소조불좌상과 함께 호분을 칠한 석조불좌상 및 보살상 2구, 그리고 채색한 동자상 등 모두 5구의 불보살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본존 석조불좌상은 조선말~근대에 조성한 것으로 호분을 칠했으며, 높이 32cm정도입니다.
좌우에 있는 소조보살좌상 2구 역시 비슷한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며, 높이는 30cm 규모입니다.
아미타회상도
과천 연주암에는 보경당 보현스님이 근대 새로운 도상과 기법으로 1932년에 그린 불화가 있습니다. 보현스님은 축연스님을 비롯한 서울·경기지역 화사들의 계보와 화풍을 잇는 화사로서 주목되는 스님입니다.
아마타회상도는 중앙의 설법인을 취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뒤쪽에 가섭과 아난존자가 시립하고 있고 앞쪽에는 아미타불을 보관에 모신 관음보살이 연꽃위에 정병을 안치한 연꽃가지를 들고, 대세지보살은 보관에 정병을 모시고 흰 연꽃을 들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좌우로 미륵과 지장보살, 문수, 보현보살 등 6대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석가모니불
주존불인 석가모니불이 선정인을 취하고 계십니다.
지장탱
신중탱
신중탱은 중앙에 금강저를 두 팔에 감싸고 합장한 동진보살이 화려한 깃털 투구를 쓰고 있습니다.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뒤쪽에 제석천과 범천, 일월천자, 동남동녀가 자리하고 있고, 앞쪽에는 사천왕, 여래팔부중, 산신 등 선신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통일원종각(統一願鐘閣)
통일원종각(統一願鐘閣) 편액
통일원종각(統一願鐘閣)의 글씨는 연주암 주지로 계셨던 송원 청봉(松園 靑峰 1933~2019)의 글씨입니다.
송원 스님은 연주암주지, 방배동 일심선원 주지, 방배동 청봉사를 개원했습니다.
통일원종(統一願種)
통일원 종각 아래 용천굴
종무소
종무소 건물 툇마루에 앉아 음식을 먹가나 담소를 나누는 장소가 별당입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좋듯이 따스한 햇살이 좋은 계절에는 이런 툇마루에 걸터않자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무량수(无量壽) 편액
흔히 무(无)자는 사람(大)의 머리 위에 일(一)자가 합쳐진 회의문자로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고문이체자(古文異體字)입니다.
추사 김정희 (金正喜, 1786∼1856) 는 이 ‘무량수’의 뜻을 좋아했던지 관악산 연주암 현판과 예산 추사고택에 ‘무량수’ 글씨를 남겨 놓았습니다.
두 곳의 글씨는 동일하지만 연주암에는 김정희가 가장 많이 사용한 호 ‘완당(阮堂)’을 사용하였고, 추사고택에서는 ‘승련노인(勝漣老人)’이란 다른 호를 사용하였습니다.
과천 주암동에 과지초당을 마련하면서 과천을 오고 간 추사는 제주와 북청 등 두 번의 유배가 끝나고 과천 과지초당으로 돌아와 4년간 거주하면서 숱한 명작을 남겼습니다.
산기일석가(山氣日夕佳) 편액
산기일석가는 산 기운은 저녁 노을에 더욱 아름답다 라는 뜻입니다.
내용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동진의 도연명이 지은 "음주(飮酒)" 제 5수의 일부입니다.
편액 머리 인장은 ‘산정일장(山靜日長)’입니다.
일제시대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신 위창 오세창(葦蒼 吳世昌 1864~1953)의 글씨입니다.
오세창은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이며, 당대 최고의 전각가이자 서화감식가입니다. 특히 그가 남긴 ‘근역서화징’, ‘근역인수’는 전근대 한국미술사의 보고입니다.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연주암 12층 석탑(정확히는 연주암 삼층석탑)은 현재의 대웅전 앞에 효령대군이 세웠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높이 3.4~4m로 각 층의 받침 수와 옥개석(지붕틀) 구조 등에서 정형성을 벗어난 독특한 특징을 보입니다.
연주암 3층 석탑은 고려 후기에 속하는 양식을 나타내고 있음을 볼 때, 창건 연도가 꽤 오래된 고찰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천수관음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인 공양간 윗층에 건립되어 있습니다. 불기 2540(1996)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천수관음전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 편액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 편액은 노천월하(老天月下) 종정의 글씨입니다.
천수관음
천수관음은 불교에서 자비와 구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보살입니다.
'천수'는 천 개의 손을 의미하며, 이는 무한한 자비와 중생을 구제하려는 힘을 상징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천 개의 손과 눈을 가진 형태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천수천안관자재보살
천수관음은 천의 손과 천의 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이라고 합니다.
천수관음의 형태는 온몸이 황금색이며, 두눈과 두손 아래 촤우로 각각 스무개의 손이 있고, 그 손은 각각 하나씩의 눈을 쥔 40수 40안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보살의 자비와 구원 범위가 무궁무진함을 상징하는 것이고, 특히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모든 소원을 성취시킨다고 합니다.
대웅전 측면
연주암 효령각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둘째 형으로 스님이 된 효령대군의 초상화가 보존돼 있다고 하는데 문이 닫혀있어 영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연주암 효령각은 효령대군(1396~1486)의 영정을 모시는 전각으로, 효령대군은 조선시대의 불교 신자로 연주암에서 수행을 하며 불교 중흥에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이 관악사로 불리던 연주암에서 주로 머물며 수행을 했던 곳으로 연주암에서 영정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효령각 주련은 임금 자리를 버리고 불교에 귀의한 대군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출자왕국통불역(出自王宮通佛域) 앙첨천국상선대(仰瞻天國上仙臺), 스스로 왕궁을 나와 부처님 계신 곳 왕래하니 영주대 높은 곳에서 우러러 불국을 바라보네.”
원래 관악산 연주대(戀主臺)는 의상대사가 화엄의 진리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 신령스런 구슬을 모신 대(臺)를 만들어 영주대(靈珠臺)라 불렀습니다. 영주는 <화엄경>의 “파도 밑에 신령한 구슬이 숨어 있다네(波底隱靈珠)”란 말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식(識)의 물결과 파도 속에는 마음의 진주가 절로 숨어 버리지만, 마음의 티끌 속에 깨달음의 자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비유해 결국 영주는 불성(佛性)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효령각(孝寧閣) 편액
조계종 노천월하(老天月下 1915~2003) 종정의 글씨입니다.
효령대군의 영정은 현재 경기유형문화재 8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초기에 그려진 후에 모사본으로 여러번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작품은 초기 작품이 아닌 것으로 추정됩니다. 작가는 미상입니다.
관악사로 가는 길
관악사가 보입니다.
관악사 종무소
무량수각(無量壽閣) 편액
관악사
삼세불과 16나한
사바세계의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약사유리광세계의 교주이신 약사불, 극락정토세계의 교주이신 아미타불 삼세불과, 좌우에 아난과 가섭존자를, 양 옆에 16나한님을 조성하였습니다
중앙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 약사여래불과 마하가섭, 아난존자
중앙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석가모니불
좌우에 16나한상
16나한은 부처님이 입멸하시고 나서 미륵부처님이 오시기까지 이 세상의 중생을 교화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분들입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구타니주 제1 빈도라발라타사존자, 가습미라국 제2 가낙가벌차존자, 동승신주 제3 가낙가발리타사존자, 북구로주 제4 소빈타존자, 남섬부주 제5 낙거라존자, 탐볼라주 제6 발타라존자, 승가다주 제7 가리가존자, 발자나주 제8 벌사라불다라존자, 향취산중 제9 수박가존자, 삼십삼천 제10 반타가존자, 필리양구주 제11 나호라존자, 반도파산 제12 나가서나존자, 광협산 제13 인게타존자, 가주산제14 벌나파사존자, 취봉산 제15 아씨다존자, 지축산 제16 주도반탁가존자입니다.
16나한들 중에서 부처님 당시에 살았던 몇 분만을 소개합니다.
먼저 빈도라발라타사존자는 꼬삼비 우데나왕의 사제의 아들이었습니다. 식탐이 많았지만 부처님을 만나 아라한이 되었고 신통력이 뛰어나 허공에 날아올라 전단나무 발우를 가져오다가 부처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독성님, 나반존자님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반타가존자와 주도반탁가존자는 형제인데 동생이 머리가 둔해서 게송 한개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환속하려는 동생에게 부처님은 수건을 하나 주면서 “더러운 것을 닦자(라조 하라낭)"라고 말하면서 청소하는 법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는 “라조 하라낭"이라는 문장을 되뇌이며 날마다 청소를 하였고 곧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아라한이 되자 명료하게 설법하는실력을 갖추게 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나호라존자는 부처님의 아들로서 8살에 출가하여 20살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남들 모르게 수행을 열심히 하였다고 하여 밀행제일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 16아라한들은 부처님이 입멸하고 미륵부처님이 오시기전까지 무불(無佛)시대에 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대웅전 측면
대웅전
전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대웅전 내부
석가모니불과 좌우 협시에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이 주불로 모셔져 있으며, 우측(좌협시)에는 연꽃 가지를 든 관세음보살, 좌측(우협시)에는 보주와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협시로 모셔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의 수인(손가락 모양)은 항마촉진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결가부좌한 채 오른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을 가볍게 땅에 댄 것입니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습니다.
때로는 전법륜인과 선정인을 취하기도 합니다만 항마촉지인은 석가모니부처님만 취하는 수인입니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닫집
신중탱
대예적금강신(大穢蹟金剛神)과 하단 동진보살(童眞菩薩)
관악사 위쪽으로 연주대와 기상레이더
깔딱고개
대피소
과천향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