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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고전읽기(2. 12.) 자료입니다.
J. 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윤시인 역, 두레 1990.
5. 농민문제
1) 문제제기
레닌주의의 기본문제, 그것의 출발점은 농민문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문제이며,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성취되고 강화될 수 있는 조건에 관한 문제이다. 권력을 향한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의 문제로서 농민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농민문제가 지니는 심각하고 지대한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박탈하지는 못한다.(기초77)
농민문제에 대해 제2인터내셔널의 당들이 내보인 무관심한 태도와 심지어 때때로 보인 무조건적 반감은 서구에서의 발전의 특수한 조건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 당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이 혁명을 두려워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권력으로 인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혁명을 두려워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권력으로 인도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혁명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군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기초78)
농민이 갖는 일정한 조건으로 인해 농민 내부에 숨어있는 혁명적 잠재력은 이미 소모되었는가? 그렇지 않은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잠재력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하여 활용하고 착취당하는 대다수의 농민들을 부르주아지의 예비군−서구에서 부르주아 혁명기 동안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군으로 전환시킬 가망성, 어떤 근거가 있는가? 레닌주의는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즉 레닌주의는 농민의 대다수 내부에 혁명적 역량이 존재함을 인정하며,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하여 이것들을 활용할 가능성을 인정한다.(기초79)
2)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기의 농민
러시아에서 혁명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부르주아지의 강화가 아닌 약화를,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예비군의 증가가 아니라 주요 예비군의 손실, 즉 농민의 손실을 초래했다. 러시아 부르주아 혁명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아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자신의 주위에 수백만의 농민을 결집시키면서 최전방으로 나서게 했다. 부언하자면, 이는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화된 이유를 설명해준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는 프롤레타라이독재의 맹아이자 과도적 단계였다.(기초81-82)
이러한 특수성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그것은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서구에서보다 발전된 계급투쟁의 조건하에서 수행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당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미 하나의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되었는 데 반해,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기질에 겁을 집어먹고(특히 1905년의 교훈 이후에) 혁명적 기질 비슷한 모든 것을 상실한 채 혁명에 대항하여, 노동자와 농민에 대항하여 차르 및 지주와의 동맹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기초82)
러시아 부르주아 혁명의 특수성을 결정지은 상황: ㄱ) 혁명 직전에 러시아 공업의 전례 없는 집중, ㄴ) 차르 충복들로 이루어진 견딜 수 없는 경찰체제와 결부된 공장 착취의 가증스런 형태들, ㄷ) 1905년 혁명 이후 차리즘에 대한 노예적 굴종과 노골적인 반혁명으로 전향했던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무기력, ㄹ) 시골에서 지주의 무제한적 권력과 결부된 가장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농노제적 유제의 존재, ㅁ)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질식시키고 또 그 폭정이 자본가와 지주의 억압을 격화시켰던 차리즘, ㅂ) 러시아 정치생활의 이 모든 모순을 심각한 혁명적 위기로 융합시키고 혁명에 거대한 추진력을 제공했던 제국주의 전쟁.(기초82-83: 요약)
물론 사회혁명당은 카데츠보다는 ‘나았고’, 또 그들의 강령은 ‘적합’했으며 거의 농민적 강령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단지 농민에게만 의지하려고 생각하고 적이 주로 자신의 힘을 끌어냈던 도시에서 약했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사회혁명당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기초84)
3) 프롤레타리아혁명기의 농민
이전에, 선행한 시기에는 혁명의 근본문제가 차르와 지주 권력의 타도였던 반면, 더 이상 차르가 존재하지 않고 지루하리만큼 긴 전쟁으로 국가경제가 피폐화되고 농민을 완전히 파산상태에 이르게 했던 때인 2월혁명 이후의 시기에는 전쟁 종결이라는 문제가 혁명의 주된 문제로 등장했^다. 무게의 중심은 순전히 국내적인 문제로부터 주된 문제−전쟁으로 명백히 옮아갔다. ‘전쟁을 종결시켜라’, ‘전쟁으로부터 벗어나자’−이것은 전쟁에 지친 국민과 주로 농민의 일반적인 절규였다.(기초85-86)
그러나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임시정부를 타도하는 것이 필요했고,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타도하는 것이 필요했으며,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의 권력을 타도하는 것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그들, 그들만이 ‘승리의 그날’까지 전쟁을 질질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르주아지를 타도하는 것 이외에는 전쟁으로부터 벗어날 어떤 길도 없었다.(기초86)
따라서 케렌스키 통치기는 고통 받는 농민대중에게 하나의 위대한 실물교훈이 되었다. 왜냐하면 케렌스키 통치기는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국가권력을 지배하고 있는^ 한 전쟁에서 해방되지 못하며 농민들은 토지와 자유 그 어느 것도 얻지 못하리라는 점,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달콤한 말과 거짓 약속에서만 카데츠와 달랐지 실제로는 카데츠 정책과 똑같은 제국주의 정책을 추구했다는 점, 국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던 유일한 권력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연립시기의 실물교훈이 없었다면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기초87)
4) 소비에트 권력수립 후의 농민
첫째 소비에트연방의 농민을 서유럽의 농민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세 번의 혁명으로 교육받았고,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또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하에 차르와 부르주아권력에 맞서 투쟁했던 농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토지와 평화를 얻었고 또 이러한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으로 되었던 농민−그러한 농민은 부르주아혁명기에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지도하에 투쟁했고 그 부르주아지로부터 토지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부르주아지의 예비군이 되었던 농민과 다를 수밖에 없다.(기초88)
둘째 러시아의 농업을 서구의 농업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곳에서 농업은 자본주의의 통상적인 길을 따라, 즉 대토지소유와 사적 자본주의적 라티푼디움을 한 극으로 하고 빈곤과 결핍, 임금노예제를 다른 한 극으로 갖는 농민층 내부의 격심한 분화의 조건 하에서 발전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그곳에서 붕괴와 몰락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 농업은 소비에트권력의 존재와 생산도구 및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그러한 발전을 배제하리라는 것에 이의가 없다면 유럽적인 길을 따라 발전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 농업의 발전은 다른 길을 통해, 수백만의 소농과 중농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길을 통해, 농촌에서 국가에 의해 특혜융자를 지원받는 대중적 협동조합운동이 발전하는 길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기초91)
이 모든 사실들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회의론자가 틀렸다는 것. 근로농민대중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으로 간주하는 점에서 레닌주의가 올바르다는 것. 권력을 쥔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업을 농업과 연계시키기 위해, 사회주의의 경제로의 이행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토대를 프롤레타리아독재에 제공하기 위해 이러한 예비군을 활용할 수 있고 또 활용해야만 한다는 것.(기초94)
6. 민족문제
1) 문제제기
제2인터내셔널 시기의 민족문제와 레닌주의 시기의 민족문제는 전혀 동일하지 않다. 그것들은 범위에서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고유한 성격상 서로 매우 다르다. 이전에는 대개 민족문제가 우선적으로 ‘문명화된’ 민족들과 관련하여, 문제의 좁은 영역에 국한되었다. 아일랜드인, 헝가리인, 폴란드인, 핀란드인, 세르비아인, 그리고 몇몇 다른 민족들−이것은 제2인터내셔널 지도자들이 관심을 두었던 불평등한 운명을 가진 인민들의 범위였다. 매우 야만적이고 잔인한 형태의 민족적 억압을 당하고 있는 수억의 아시아⋅아프리카 인민은 보통 그들의 시야 밖에 놓여 있었다.(기초95)
레닌주의는 이러한 심한 부조리를 폭로했고, 백인과 흑인, 유럽인과 아시아인, 제국주의의 ‘문명’ 노예와 ‘비문명’ 노예 사이의 벽을 허물었으며, 그리하여 민족문제를 식민지문제와 결합시켰다. 그럼으로써 민족문제는 특수한 국내적 문제에서 보편적인 국제적 문제로, 즉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종속국 및 식민지의 피압박인민들의 해방이라는 세계적 문제로 변형되었다.(기초96)
이전에는, 민족자결의 원칙이 대개 잘못 해석되었으며, 매우 빈번하게 민족의 자치권이라는 개념으로 협애화되었다. 심지어 제2인터내셔널의 어떤 지도자들은 자결권을 문화적 자치권으로, 즉 피압박민족들이 모든 정치권력을 지배민족의 수중에 남겨둔 채 그들 자신의 문화제도를 갖는 권리로 변질시키려고 했다. 그 결과, 자결의 개념은 합병에 투쟁하는 도구로부터 합병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될 위험에 처했다. 이제 이러한 혼돈은 청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레닌주의는 민족자결이라는 개념을 확장하여 종속국 및 식민지의 피압박인민의 완전한 분리의 원리로, 모든 민족이 독립된 국가를 가질 권리로 해석했다.(기초96)
따라서 자결의 원칙 자체가 제국주의 전쟁기에 명백히 사회배외주의자의 수중에 있었던 대중기만을 위한 도구에서 모든 제국주의적 열망과 배외주의적 책동을 폭로하는 도구로, 국제주의 정^신 속에서 대중의 정치교육을 위한 도구로 변형되었다.(기초96-97)
레닌주의는 민족문제를 목청 높은 선언의 고고한 언덕에서 단단한 지상으로 끌어내렸으며, 피압박민족의 해방투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당의 직접적 지지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민족⋅평등’에 관한 선언은 무의미하며 거짓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리하여 피압박민족의 문제는 피압박민족을 지원하는 문제, 민족의 진정한 평등과 독립된 국가를 위해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그들에게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다하는 문제로 되었다.(기초97)
이전에 민족문제는 개량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자본의 권력과 제국주의의 타도 및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일반적 문제와 무관한 독립된 문제로서 고찰되었다.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식민지 해방운동과 직접적 동맹 없이도 가능하고, 민족-식민지 문제는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투쟁 없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대로로부터 떨어져, 조용히,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가정되었다. 이제 이런 반혁명적 관점은 폭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족문제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의 연관 속에서만 그리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만 해결될 수 있으며, 서구에서 혁명이 승리하는 길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식민지 및 종속국의 해방운동과의 혁명적 동맹을 통해 열린다는 것을 레닌주의는 입증했으며, 또 제국주의 전쟁과 러시아혁명은 이 점을 확증했다. 민족문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일반적 문제 가운데 일부분이며,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의 일부분이다.(기초97-98)
피압박국의 혁명적 해방운동에 잠재된 혁명적 가능성은 이미 소모되었는가? 소모되지 않았는가? 만약 아니라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이 가능성을 활용하고, 식민지 및 종속국을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예비군으로부터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예비군으로 그것의 동맹군으로 전환시킬 어떤 가망성, 어떤 근거라도 있는가?(기초98)
이 문제에 대하여 레닌주의는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즉 피압박국의 민족해방운동 내부에 혁명적 역량이 존재함과 또 이 역량을 공동의 적인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데 활용할 가능성을 인정한다. 제국주의의 발전 역학과 제국주의전쟁 그리고 러시아혁명은 이 점에서 레닌주의가 갖는 결론이 올바름을 완전히 확증하고 있다.(기초98)
따라서 ‘지배’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피압박⋅종속 인민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지할−결연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할−필요성이 있다.^ (…) 제국주의를 강화시키고 보존하는 경향이 있는 민족운동이 아니라 그것을 약화시키고 타도하는 경향이 있는 민족운동을 지지해야 함을 뜻한다. 어떤 피압박국에서는 민족운동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발전이 지니는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 경우에, 지지는 물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민족의 권리문제는 고립적인, 자족적인 문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일반적 문제의 일부분이고 전체에 종속되며 전체의 관점에서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기초98-99)
아프가니스탄의 국왕이 아프가니스탄의 독립을 위해 수행하고 있는 투쟁은 국왕과 그의 동조자들이 지닌 군국주의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분열시키며 그 토대를 와해시키므로 객관적으로 혁명적 투쟁이다. 반면에 예를 들어 제국주의전쟁 동안 케렌스키와 쩨레텔리, 드로델과 샤이데만, 체르노프와 단, 핸더슨과 클리네스와 같은 ‘필사적인 민주주의자’와 ‘사회주의자’, ‘혁명가’와 공화주의자에 의해 행해진 투쟁은 그것의 결과가 제국주의의 미화와 강화, 승리로 되었기 때문에 반동적 투쟁이다. 동일한 이유로, 이집트의 상인들과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이집트의 독립을 위해 행하고 있는 투쟁은 이집트 민족운동의 지도자들이 가진 부르주아적 기원과 부르주아적 명칭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이 사회주의에 반대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혁명적 투쟁이다. 이에 비해 영국 ‘노동당’ 정부가 이집트의 종속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투쟁은, 그 정부 구성원의 프롤레타리아적 출신과 프롤레타리아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회주의를 ‘찬성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이유에서 반동적인 투쟁이다.(기초100-101)
2) 피압박민족의 해방운동과 프롤레타리아혁명
민족문제에는 두 가지 측면, 두 가지 경향이 있다. 제국주의의 속박에서 정치적 해방을 추구하고 독립적 민족 국가의 형성을 추구하는 경향−제국주의의 억압과 식민지적 착취의 결과로써 나타난 경향과 세계시장과 하나의 세계경제 체제가 형성된 결과로써 발생했던 민족 간의 더욱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추구하는 경향.(기초103)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이 두 가지 경향은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상징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착^취하고 또 그것들을 ‘통합된 전체’의 틀 속에 강제적으로 보유하는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제국주의는 제민족을 합병과 식민지 정복이란 수단−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것 없이는 제국주의에 대해 상상할 수 없다−에 의해서만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기초103-104)
반대로, 공산주의의 입장에서 이들 경향은 단일한 대의−제국주의 멍에로부터 피압박인민의 해방이라는 대의의 두 측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단일한 세계경제체제 안에 있는 민족들의 통합은 오직 상호신뢰와 자발적 합의에 기초해서만 가능하며, 민족들의 자발적인 통합을 형성하는 길은 ‘통합적인’ 제국주의적 ‘전체’로부터 식민지의 분리를 통해, 식민지의 독립된 국가로의 변혁을 통해서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기초104)
그러므로 제국주의 정부와 싸우려하지 않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분리를 위한 ‘자신들의’ 식민지 피압박인민의 투쟁을 지지하려 하지 않는, 지배민족들(영국⋅프랑스⋅미국⋅이탈리아⋅일본 등)의 ‘사회주의자들’이 지닌 지배민족적 배외주의에 대항하여 완강하고 지속적이며 단호하게 투쟁할 필요성이 있다.(기초104)
그러한 투쟁 없이는 진정한 국제주의 정신으로, 종속국 및 식민지의 고통받는 대중과의 한층 긴밀한 연계의 정신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진정으로 준비하는 정신으로 지배민족의 노동계급을 교육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구러시아제국의 피압박민족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했다면, 러시아에서 혁명은^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고 더욱이 콜차크와 데니킨은 분쇄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민족의 공감과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러시아 제국주의의 족쇄를 깨부수고 이들 민족을 민족적 억압의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기초104-105)
여기에서, 자신의 민족적 편협성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도 자기나라에서의 해방운동과 지배국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간의 연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피압박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지닌 민족고립주의와 편협성, 무관심에 대해 투쟁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러한 투쟁 없이는 공동의 적을 타도하기 위한 투쟁에서, 제국주의의 타도를 위한 투쟁에서 피압박국 프롤레타리아트가 독립적 정책과 지배국 프롤레타리아트와의 계급연대를 유지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기초105)
7. 전략과 전술
1)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지도하는 과학으로서 전략과 전술
제2인터내셔널의 커다란 과실은 그 당시에 의회주의적 투쟁형태를 활용한 전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회주의적 투쟁형태가 지니는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사실상 유일한 투쟁형태로 인식한 데 있다. 또한 공개적인 혁명적 전투가 개시되어 의회외적 투쟁형태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을 때 제2인터내셔널의 당들이 이러한 새로운 과제에 등을 돌리고 이러한 과제를 떠맡기를 거부한 데에 있다.(기초109)
이후의 시기에야,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직접적인 행동의 시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 즉 부르주아지 타도의 문제가 당면한 실천적 행동의 문제로 되었을 때,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의 문제(전략)가 가장 화급한 문제의 하나로 되었을 때, 의회적이거나 의회외적인 모든 투쟁형태와 조직형태(전술)가 분명히 드러나 버렸을 때−이러한 시기에 이르러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위한 하나의 완전한 전략과 정교한 전술이 수립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레닌이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억눌렸던 맑스와 엥겔스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빛나는 사상을 대낮의 광명 속으로 끌어냈던 것이다.(기초109)
2) 혁명의 단계와 전략
전략이란 주어진 혁명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 타격방향을 결정하고, 이에 조응하여 혁명세력(주요 예비군과 2차적 예비군)의 배치계획을 작성하여, 주어진 혁명단계 전기간을 통해 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기초110)
전략은 혁명의 주력과 그 예비군을 다룬다. 그것은 혁명이 한 단계 한 단계 경과함에 따라 변화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정 단계 내내 변화하지 않는다.(기초112)
3) 운동의 간만과 전술
전술은 운동의 간만, 혁명의 고양과 퇴조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행동노선을 결정하는 것이며, 낡은 투쟁과 조직형태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고 낡은 슬로건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고 이러한 형태들을 결합함으로써 그 노선을 수행하는 투쟁이다. 전략의 대상은 차리즘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차리즘에 대한, 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을 수행하는 것인 반면에, 전술은 보다 덜 중요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술의 목적은 전쟁 전반에 걸친 승리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싸움이나 어떤 특정 전투에서의 승리이며 혁명의 고양과 퇴조의 당해 시기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에 부합하는 어떤 특정한 캠페인이나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술은 전략의 일부분이며 전략에 종속되며 전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기초112)
4) 전략적 지도
혁명의 예비군은 다음과 같다. 직접 예비군: 1) 농민과 일반적으로 그 국가내의 주민 내부의 중간계층, 2) 인접국의 프롤레타리아트, 3) 식민지 및 종속국에서의 혁명운동, 4)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획득물과 이득−프롤레타리아트는 우월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강력한 적의 환심을 사고 휴식기간을 벌기 위해 일시적으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일정부분을 양보할 수도 있다.(기초114)
간접 예비군: 1) 프롤레타리아트가 적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예비군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그 국가내의 비프롤레타리아 계급간의 모순과 투쟁, 2) 프롤레타리아트가 할 수 없이 퇴각을 하는 경우 공격이나 책략에 활용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적대하는 부르주아 국가들 간의 모순, 갈등, 전쟁(예를 들면 제국주의전쟁).(기초114)
전략적 지도의 임무는 혁명발전의 일정 단계에서 혁명의 주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이 모든 예비군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예비군의 적절한 사용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어떠한 필수적인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다음의 것들이 원칙적인 조건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기초115)
첫째 결정적인 순간, 즉 혁명이 이미 성숙해 왔고 공세가 최고조에 달하고 봉기가 임박하고 예비군을 전위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성공의 결정적인 조건이 되는 때에 적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혁명의 주력을 집중시키는 것. 예비군을 활용하는 이러한 방식의 실례로 1917년 4월부터 10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당의 전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할 것도 없이 그 당시에 적의 가장 취약한 점은 전쟁이었다.(기초115)
둘째, 결정적인 공격을 위한 순간, 즉 봉기를 개시하는 시점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전위가 끝까지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예비군이 전위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고 적진영이 최고로 당황하는 순간과 일치하도록 때맞추어 선택하는 것.(기초117)
이러한 조건을 무시하면 ‘속도 상실’이라는 위험한 오류에 빠지게 되고 당은 운동에 뒤처지거나 지나치게 앞서가게 되어 실패할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봉기의 순간을 잘못 잡은 이러한 ‘속도 상실’의 실례는 소비에트 내부에 동요가 여전하고 전선에서 군대가 여전히 기로에 서 있으며 예비군이 아직 전위로 성장하지 못했던 때인 1917년 9월에 민주주의파 회의를 저지함으로써 봉기를 개시하려했던 일부 동지들의 시도에서 볼 수 있다.(기초118)
셋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도상에서 어떠한 난관이나 복잡함에 직면하더라도 채택된 경로를 벗어나지 않고 추구하는 것. 이것은 전위가 투쟁의 주된 목적을 놓치지 않고, 대중들이 전위의 주위에 집결하려고 분투하면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조건을 무시하면 어부들에게 잘 알려진 ‘방향 상실’이라는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방향 상실’의 실례로 우리는 민주주의파 회의 이후 즉시 당이 예비회의에 참여한다는 결정을 채택했던 우리 당의 잘못된 행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순간에 당은 예비의회는 우리나라를 소비에트의 길로부터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길로 변경시키려는 기도이며, 이러한 기관에 대한 당의 참여는 모든 것을 혼란시키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 하에 혁명적 투쟁을 수행하고 있던 노동자와 농민을 혼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잠시 망각했던 것이다.(기초118-119)
넷째, 적이 강할 때, 퇴각이 불가피하고 적이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전투에 응하는 것이 명백하게 불리할 때, 주어진 세력관계상 퇴각만이 적의 타격으로부터 전위를 보호하고 전위의 예비군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일 때, 적절한 퇴각을 실행하기 위하여 예비군을 운용하는 것.(기초119)
이러한 전략의 목적은 시간을 벌고 적을 분열시키고 후에 공세를 취하기 위해 힘을 축적하는 것이다. 브레스트 강화조약은 이러한 전략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조약의 체결은 당으로 하여금 시간을 벌게 했고, 제국주의 진영의 내분을 이용하게 했으며 농민의 지지를 확보하게 해주었으며, 또한 콜차크와 데니킨에 대한 공세를 대비하여 힘을 축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기초119)
5) 전술적 지도
전술적 지도는 전략적 지도의 일부이며 전략의 임무와 조건에 종속된다. 전술적 지도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투쟁형태와 조직형태에 정통하는 것이며 주어진 세력관계에서 전략적 성공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최대의 성과를 얻기 위하여 투쟁과 조직의 형태들이 적절히 활용되도록 책임지는 것이다.(기초120-121)
첫째 주어진 순간의 운동의 간만 동안 우세한 조건들에 가장 적합한, 따라서 대중들을 혁명적 입장에 서게 하는 것과 수백만을 혁명전선으로 끌어내어 기거에 배치하는 것을 용이케 하고 확실케 할 수 있는 투쟁과 조직의 형태들을 정확히 제시하는 것.(기초121)
문제는 전위가 구체제의 존속이 불가능하고 그것의 타도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 대중이 이러한 필연성을 이해하고 전위를 지지할 각오를 표명해야 한다는 데 있다. 광범위한 대중들이 구체제의 타도가 불가피함을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인식하도록 해주는 것과 그들이 혁명적 슬로건의 올바름을 경험으로부터 더욱 쉽게 터득하도록 해줄만한 투쟁방식과 조직형태를 장려하는 것이 전술의 임무이다.(기초121)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전쟁과 제국주의의 옹호자로서의 그들의 마각을 아직 드러내지 않았고 멘셰비키와 혁명당의 평화와 토지와 자유에 대한 발언들의 허위성을 대중들이 그들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1917년 4월에, 당이 봉기를 부르짖었던 ‘좌익’ 공산주의자들을 추종했었다면, 당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유리되었을 것이고 노동자계급은 광범한 농민⋅병사대중 내부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대중들이 케렌스키내각기에 이러한 경험을 갖지 못했더라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을 고립시키지 못했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독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기초122)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이 지니는 위험성은 그 전술이 당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지도자로부터 설 기반이 없는 소수의 보잘것없는 음모가들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었다는 점이다.(기초122)
레닌: “승리는 전위만으로 쟁취될 수 없다. 전체 계급이나 광범위한 대중들이 전위를 직접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하거나 적어도 전위에 대하여 우호적인 중립을 취하기 전에 전위만으로 결정적인 전투를 감행한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짓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범죄 행위일 것이다. 전체 계급과 광범위한 노동인민대중 그리고 자본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그러한 입장을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전과 선동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들이 그들 스스로의 정치적 경험을 가져야만 한다.”(기초123)
둘째, 어떤 주어진 순간에 여러 과정의 사슬 가운데 특정 고리, 즉 그것을 움켜쥘 경우 사슬 전체를 장악하여 전략적 성공을 위한 조건을 마련해주는 특정 고리를 찾아내는^ 것. 여기서 문제는 당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들 중에서 특정한 당면 임무−그 과제의 수행이 중심목표를 이루고 있고 그것의 완수가 그 외의 다른 당면한 과제의 성공적 수행을 보장해주는 특정임무−를 골라내는 것이다.(기초124)
레닌: “일반적으로 혁명가, 사회주의의 지지자 또는 공산주의자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슬 전체를 장악하고 다음 고리로의 이행을 견고하게 준비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 움켜쥐어야 하는 사슬의 특정 고리를 매 순간마다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기초125)
6) 개량주의와 혁명주의
레닌주의는 개량에 반대하고 일반적으로 타협과 협상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이는 전적으로 틀렸다. 볼셰비키는 어떤 의미에서 ‘모든 사소한 것도 도움이 된다’는 점과 어떤 조건 하에서는 일반적으로 개량, 그리고 특히 타협과 협상이 필요한 것이고 유용하다는 저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확실히 문제는 개량이나 타협 그리고 협상이 아니고 개량이나 타협의 이용에 있다.(기초126)
개량주의자에게 혁명적 사업은 어떤 부수적인 것, 말하자면 단순히 눈가림을 위한 것이지만 개량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지의 지배 하에서 개량주의자들의 전술에 의한 개량이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강화시키고 혁명을 붕괴시키는 도구로 변질되는 이유이다.(기초127)
반대로 혁명주의자에게 중요한 점은 혁명적 사업이지 개량이 아니다. 혁명주의자에게 개량은 혁명의 부산물이다.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조건 하에서 혁명주의적 전술에 의한 개량이 자연히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붕괴시키고 혁명을 강화시키는 도구, 혁명운동을 더 한층 발전시키는 거점이 되는 이유이다. 혁명주의자들은 합법작업과 비합법작업을 결합시키는 하나의 보조물로서, 즉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기 위하여 개량을 받아들일 것이다.(기초127)
반대로 개량주의자들은 모든 비합법활동을 포기하기 위하여, ‘부여된’ 개량의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며 혁명을 위한 대중의 대비를 좌절시키기 위하여, 개량을 받아들일 것이다.(기초127)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던 이전 시기에는 개량이^ 혁명의 부산물이었던 반면, 프롤레타리아독재하의 지금에 이르러 개량의 근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성과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축적된, 이러한 성과들로 이루어진 비축물에 있다.(기초128-129)
8. 당
제2인터내셔널에 대한 비난에 대항하여 그것을 옹호하면서, 카우츠키는 제2인터내셔널의 당은 평화의 도구이지 전쟁의 도구가 아니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쟁기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혁명적 행동의 시기에 어떤 중요한 조치를 취하기에는 무력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상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제2인터내셔널의 당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투쟁에 걸맞지 않으며, 그 당들은 노동자들을 권력으로 인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적 정당이 아니라 단지 의회선거와 의회투쟁에 적합한 선거기계일 뿐이라는 것을 뜻한다.(기초130)
그러므로 새로운 당, 전투적인 당, 혁명적인 당, 권력장악을 위한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도할 만큼 대담하고 혁명적 상황의 복잡한 조건 속에서 진로를 찾아낼 만^큼 충분한 경험이 있으며 목적지에 이르는 길에 잠복하고 있을 모든 암초를 피해갈 만큼 유연한 당이 요구된다.(기초131-132)
1) 노동계급의 선진부대로서의 당
당은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계급의 선진적 부대이어야 한다. 당은 노동계급의 최량의 분자들, 그들의 경험, 그들의 혁명적 기질,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에 대한 그들의 헌신적인 애착을 흡수해야 한다. 그러나 당이 진정으로 선진적인 부대이기 위해서는 혁명적 이론과 운동의 법칙에 관한 지식 및 혁명의 법칙에 관한 지식으로 무장해야만 한다. 이것이 없다면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의 방향을 정하거나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도할 수 없다.(기초132)
당이 노동계급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기에 그치고, 자연발생적인 운동에 끌려 다니며, 자연발생적인 운동이 지니는 정치적 무관심과 타성을 극복하지 못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시적인 이해를 초월할 수 없고, 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인 이익을 이해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당이 아니다. 당은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야 하며, 노동계급보다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하며, 자연발생적인 운동의 뒤꽁무니에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도해야 한다.(기초132)
프롤레타리아트의 선진부대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익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당만이, 오직 이러한 당만이 노동계급을 노동조합주의의 편협한 길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당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도자이다.(기초133)
어떤 군대라도 전쟁에서 패배의 운명에 처하고 싶지 않으면 노련한 참모부를 필요로 한다. 하물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들의 불구대천의 적들에 의해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러한 참모부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디에 이러한 참모부가 있는가? 오로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당만이 이러한 참모부로서 기능할 수 있다. 혁명적 당이 없는 노동계급은 참모부 없는 군대이다.(기초133)
그런데 당은 단지 하나의 선진부대일 수만은 없다. 당은 계급의 한 분견대, 계급의 한 부분이어야 하며, 그 존재의^모든 뿌리가 계급과 밀접하게 묶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부대와 노동계급의 나머지 부분과의 차이, 당원과 당원이 아닌 인민들과의 차이는 계급이 소멸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차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열이 다른 계급의 구성원들로 보충되는 한, 전체 노동계급이 선진부대의 수준으로 향상된 처지가 아닌 한 존속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벌어지고 또한 당이 비당원 대중들로부터 유리된다면, 당은 하나의 당이기를 그칠 것이다. 비당원 대중들과 연결되지 않고, 당과 비당원 대중들 간에 유대가 존재하지 않고, 이 대중들이 당의 지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중들 사이에서 도덕적⋅정치적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당은 계급을 지도할 수 없다.(기초133-134)
2) 노동계급의 조직화된 부대로서의 당
당은 단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만은 아니다. 진정으로 계급투쟁을 지도하길 원한다면 당은 동시에 그 계급의 조직화된 부대이어야 한다. 자본주의하에서 당의 임무는 막대하고 대단히 복잡하다. 당은 내외적인 발전이 극히 어려운 조건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지도해야 하는데, 정세가 공격을^ 요구할 때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공세로 지휘해야 하고 정세가 퇴각을 요구할 때는 강력한 적의 타격을 피할 수 있도록 프롤레타리아트를 지휘해야 하며, 수백만의 미조직된 비당원 노동자들에게 투쟁에서의 규율성과 체계성 및 조직성과 인내성을 심어주어야 한다. 당 그 자체가 규율과 조직의 화신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화된 부대일 때 당은 이러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기초135-136)
당은 동시에 상위와 하위의 지도부를 가지고 있고 소수가 다수에 복종하고 모든 당원들에게 구속력을 지니는 실천적 결정을 내리는, 이러한 조직들의 하나의 단일한 체계이며 그것들이 하나의 전체로서 공식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당은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하나의 단일하게 조직된 전체일 수 없다.(기초137)
레닌: “이전에는 우리 당은 하나의 공식적으로 조직화된 전체가 아니라 단지 분산된 그룹들의 집합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룹들 사이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 이외에 다른 어떤 관계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조직화된 당이 되었다. 이는 권위가 확립되었고 사상의 힘이 권위의 힘으로 전화되었으며 당의 하급기관이 상급기관에 복종한다는 것을 뜻한다.”(기초137-138)
소수가 다수에 복종하고 중앙이 당 사업을 지도한다는 원칙은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라는 비난이나 동요분자들의 공격을 심심치 않게 발생시킨다. 이러한 원칙들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전체로서의 당에 의한 체계적 사업과 노동계급의 투쟁을 지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거의 논증할 필요도 없다. 조직문제에 있어서 레닌주의는 이러한 원칙들을 어긋나지 않게 적용한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원칙에 반대하는 투쟁을 어리석고 비판할 가치도 없는 “러시아적 허무주의”, “귀족적 무정부주의”라 부른다.(기초138)
3) 프롤레타리아 계급조직의 최고 형태로서의 당
당은 노동계급의 조직화된 부대이다. 그러나 당만이 노동계급의 유일한 조직인 것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또한 많은 다른 조직들을 가지는데 그 조직들 없이는 자본에 대항하여 성공적인 투쟁을 벌일 수 없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장조직, 의회그룹, 비당원 여성협회, 출판⋅문화⋅교육 조직, 청년동맹, 혁명적 투쟁조직(공공연한 혁명적 행동의 시기에 대비하여), 국가조직 형태로서(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면) 대표자들의 소비에트 등, 이러한 조직들 중^의 대부분이 당외조직이며, 그것들 중의 단지 몇몇 조직이 이 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당의 곁가지를 구성한다.(기초139-140)
이러한 모든 조직들은 어떤 조건하에서는 노동계급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조직들이 없다면 당은 계급투쟁의 여러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부르주아적 질서를 사회주의적 질서로 대체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세력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단련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기초140)
그러나 어떻게 이러한 많은 조직들에게 단일한 지도가 행해질 수 있는가? 이러한 많은 조직들이 지도상의 이탈을 낳지 않으리라는 어떤 보장이라도 있는가? 이들 각각의 조직들이 자신의 고유한 특정분야에서 자신의 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에 서로 방해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조직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활동해야 하는 바, 왜냐하면 그 조직들은 하나의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기초140)
그렇다면 다음의 물음이 제기된다. 이러한 모든 조직들의 행동노선, 일반적 방침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지도의 통일성을 획득하고 연결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험을 지니고서 이러한 전반적인 노선을 도출해낼 수 있으며, 지도의 통일을 이루고 지장이 없도록 충분한 권한을 가지고서 이러한 조직들이 그 노선을 수행하게끔 설득할 수 있는 중앙조직은 어디에 있는가? 그 조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이다.(기초140)
왜냐하면 무엇보다 먼저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비당적 조직들과 직접적인 연계를 갖고 있고 그 조직들을 상시적으로 지도하는 노동계급 내의 최정예 요소가 집결된 중앙이기 때문이다. 둘째, 당은 노동계급의 최정예 요소들이 결집된 중앙으로서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이 그 계급의 모든 형태의 조직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가장 좋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계급의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가장 좋은 당은 학교로서의 그 경험과 권위를 바탕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 대한 지도를 집중시킬 수 있는, 따라서 노동계급의 모든 비당적 조직들을 당과 그 계급을 연결시키는 보조기관 및 매개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은 이를 위해 요구되는 모든 권한을 가진다.(기초140-141)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조직의 최고형태이다. 물론 이 말은 노동조합⋅협동조합 등의 당외조직들이 공식적으로 당의 지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러한 조직들에 소속되어 있으며 확실하게 그 조직들에 영향을 미치는 당원들이, 이러한 당외조직들이 그들의 활동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에 가까워지도록 이끌고 자발적으로 당의 지도를 수락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기초141)
4) 프롤레타리아독재의 도구로서 당
당은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최고 형태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그 계급의 조직들 가운데 주요한 지도세력이다. 그러나 이 말이 당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표나 자기완결적인 세력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뜻한 것은 아니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연합의 최고 형태일 뿐 아니라, 동시에 독재가 아직 달성되지 않았을 경우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을 완수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며, 독재가 이미 달성되었을 경우 독재를 공고히 하고 확대시키기 위한 도구이다.(기초142)
만약 당 이외의 프롤레타리아 조직들이 권력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제국주의라는 조건 및 전쟁의 불가피성 그리고 위기의 존재가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수립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의 모든 세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혁명운동의 모든 실오라기를 한 곳으로 모이게 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당은 그렇게 중요한 의미로 부상할 수 없었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다른 모든 조직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기초142)
프롤레타리아트는 성공적인 권력장악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자신의 참모부로서 우선 당을 필요로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조직을 자신의 주위로 불러 모으고 투쟁이 전^진하는 동안 전체 운동의 지도력을 집중할 수 있는 당이 없었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혁명적 독재를 수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논증할 필요도 없다.(기초142-143)
그런데 독재를 “유지하고 확대한”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말은 수백만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조직성과 규율성을 불어넣는 것, 프롤레타리아 대중들 사이에 프티부르주아 분자들의 좀같은 영향력과 프티부르주아적 습성들에 대항하는 굳건한 힘과 방파제를 만드는 것, 프티부르주아층을 재교육시키고 개조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적 활동을 고양시키는 것,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이 계급을 폐지시키고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세력으로 그들 스스로를 교육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단결력과 규율을 지닌 강력한 당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기초143-144)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를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당을 필요로 한다. 당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하나의 도구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부터 계급이 소멸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사라지면 당도 역시 사라질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기초144)
5) 의지의 통일, 분파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는 통일의 구현으로서의 당
단결력과 철의 규율을 지닌 강력한 당이 없다면 프롤레타리아독재의 달성과 유지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의지의 통일이 없다면, 모든 당원들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행동의 통일이 없다면, 당내에서 철의 규율은 불가능하다.(기초144)
이는 물론 당내에서 의견대립의 가능성이 그럼으^로써 거세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철의 규율은 비판과 당내에서의 의견대립을 거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규율이 “맹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반대로 철의 규율은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복종을 거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직 의식적인 규율만이 철의 규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대립이 해소된 후, 비판이 철저히 행해지고 하나의 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모든 당원들의 의지와 행동의 통일이−그것이 없이는 당적 통일이나 당내의 철의 규율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는−필수적인 조건이다.(기초144-145)
그렇지만, 이것으로부터 분파의 존재는 당의 통일이나 당의 철의 규율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분파가 있다면 여러 개의 중앙이 있게 되는 셈이고, 여러 개의 중앙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내에 하나의 공통된 중앙이 없으며 의지의 통일이 깨어지고 규율이 약화되고 허물어졌으며, 독재가 약화되고 붕괴되었음을 뜻한다. 물론,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반대하여 투쟁하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지도할 의사가 전혀 없는 제2인터내셔널의 당들은 분파의 자유라는 자유주의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의 규율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활동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완수하고 공고히 하는 임무를 조건으로 하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당은 “자유로울” 수 없으며 분파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 당은 모든 분파주의와 당내의 권력의 분산을 배제하는 의지의 통일을 대표한다.(기초146)
6) 당은 기회주의적 요소를 숙청함으로써 강화된다
당내 분파주의적 원천은 기회주의적 요소들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계급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프롤레타리아트화한 농민과 프티부르주아지 및 지식인의 유입으로 끊임없이 다시 채워진다.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 상층, 주로 부르주아지가 식민지로부터 뽑아낸 초과이윤에 의해 부양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은 부패의 과정을 겪고 있다.(기초147)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들 모든 프티부르주아 그룹들은 당내에 침투하여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인 풍조와 문란하고 모호한 기질을 유입시킨다. 분열과 분파주의의 원천이 되고, 당을 내부로부터 해체시키고 붕괴시키는 주인(主因)은 대개 이들 프티부르주아 그룹들이다. 이러한 “동맹군”을 후방에 두고서 제국주의와 싸우는 것은 전후방으로부터 두 개의 포화에 휘말리는 위치에 스스로를 밀어넣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자들에 대항한 무자비한 투쟁과 당으로부터 그들을 추방하는 것은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성공적으로 투쟁하기 위한 선결요건이다.(기초148)
당내 사상투쟁으로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패배시킨다”는 논리, 하나의 단일적 당이라는 경계 내에서 이들 분자들을 “극복한다”는 논리는 당을 활동불능과 상시적인 허약상태로 내몰고, 당을 기회주의의 밥이 되도록 하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 당이 없는 상태로 만들며,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데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주무기를 앗아갈 우려가 있는 썩어빠진, 위험스러운 논리이다.(기초148)
우리^ 당은 내적 통일과 비할 데 없는 단결을 이루는 데 성공하였다. 그것은 첫째로, 제때에 기회주의적 오염을 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당의 대열로부터 청산주의자들과 멘셰비키들을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당은 기회주의자, 개량주의자, 사회-제국주의자, 사회-배외주의자, 사회-애국주의자, 사회-평화론자들을 일소함으로써 발전하고 강화된다. 당은 그 스스로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추방함으로써 강고하게 된다.(기초148-149)
9. 사업스타일
레닌주의는 당과 국가의 활동가의 전형을 양성하고, 사업에 있어서 특수한 레닌주의적 스타일을 창출하는 이론과 실천의 학교이다. 이 스타일의 독창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 명확한 특징을 갖는다. ㄱ) 러시아적인 혁명적 진취성 ㄴ) 아메리카적인 능률. 레닌주의의 스타일은 당과 국가의 사업에서 이들 두 가지의 명확한 특징을 결합시키는 데 있다.(기초151)
러시아적인 혁명적 진취성은 타성, 판에 박힌 습관, 보수주의, 정신적 침체, 그리고 예로부터의 전통에 대한 노예적인 굴종을 벗는 하나의 해독제이다. 러시아적인 혁명적 진취성은 사고를 자극하고, 사태를 진전시키고, 과거의 것을 분쇄하고 전망을 제시하는 생명력이다. 그것이 없다면 어떠한 진리도 불가능하다.(기초151)
레닌은 항상 공허한 “혁명적” 미사여구를 소박한 일상적 활동에 대비시키면서 “혁명적” 계획을 날조하는 것은^ 진정한 레닌주의의 정신에, 그리고 레닌주의라는 말 자체에도 모순된다고 역설했다. 레닌은 말한다. “일상적인 사업에서 거만한 빈말을 보다 적게 하고, 보다 더욱 소박해져라…정치적인 소동을 보다 줄이고, 가장 소박한, 그러나 지극히 중요한…공산주의 건설이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인 사업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여라.”(기초152-153)
아메리카적인 능률은 장애물을 알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모든 장애물을 사무적인 인내를 가지고 제거하며, 일단 시작된 일은 비록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완수될 때까지 계속하는−그것이 없이는 진정한 건설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불굴의 힘이다.(기초153)
그러나 아메리카적인 능률은 만약 그것이 러시아적인 혁명적 진취성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편협하고 무원칙적인 실용주의로 타락할 온갖 위험을 가지고 있다. 종종 일부 “볼셰비키”로 하여금 혁명의 대의를 실추시키고 방기하게 했던 편협한 경험주의와 무원칙한 실용주의의 병폐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겠는가?(기초153)
어느 누구도 이 실용주의의 병폐에 대해 레닌만큼 그렇게 통렬하게 비판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것에 “편협한 경험주의자” 그리고 “머리가 나쁜 실용주의자”라고 낙인을 찍었다. 그는 항상 그것을 생생한 혁명적 활동 및 우리의 일상적 활동의 모든 문제에 대해 혁명적 전망을 가져야 할 필요성과 대비시키고, 이 무원칙적인 실용주의는 “혁명적” 계획을 날조하는 것만큼이나 진정한 레닌주의에 모순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기초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