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과학
Affective Science 情感科学
감성과학은 감정, 정서 등 감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감성과학은 철학과 미학을 중심으로 하는 감성학(Ästhetik)과는 다르지만 크게 보면 (감성의 제반 학문인) 감성학의 하위개념으로 볼 수 있다. 사전적 의미의 감성(sensibility, 感性)은 대상을 받아들이는 감각적 인식능력이자 정서(情緖)의 상태다. 철학에서 감성은 이성(理性)에 대응되는 개념이면서 주어진 외부의 대상을 지각하여 표상을 형성하는 인식능력이다. 감성의 어원은 지각인 라틴어 sēnsibilis다. 그런데 감성과학에서 감성은 감각적 지각이 아닌 ‘정동의, 정서의’에 가까운 Affective다. 어원은 라틴어 동사 ‘영향을 미치다’인 afficere의 명사 affectus다. 라틴어 아펙투스(afféctus)는 감정, 상태, ‘~를 지니고 있는’이다. 따라서 감성학의 감성(sensibility)은 내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감각에 가깝고 감성과학의 감성적(affective)은 그 영향을 받아 지니게 된 감각에 가깝다.
감성과학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감성의 상대적 개념인 이성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데 감성은 그렇지 못하다. 감성을 측정하거나 예측하는 것도 어렵고 감성을 추론하고 인지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근대 기계론과 과학에서는 감성을 이성의 하위인식능력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물음은 ‘감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도 안에서 감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하는 감성공학이 발달했다. 감성공학(human sensibility ergonomics)은 명칭에서 보듯이 인간과 사물의 상호작용에 관한 인간공학(ergonomics)을 감각과 연결한 학문이다. 1988년 호주에서 열린 제10회 국제인간공학회[The tenth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Ergonomics Association]에서 처음 명명된 감성공학은 인간 중심의 과학적 기술이다. 이후 감성공학은 인지공학, 디자인, 반도체, 신경망, 감성처리, 마이크로, 동력전달 등 여러 영역에 적용되었다.
감성과학과 감성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성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과학은 객관 타당한 보편적 체계를 가져야 한다. 감성과학 역시 감성을 객관 타당한 보편적 체계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근대 합리주의 사상과 자연과학 이후 감성은 이성에 비하여 하위영역이거나 논리화가 어려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경험적 감성은, (지성을 포함하는) 이성과 함께 인식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인간 생활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과학과 감성을 연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되었던 것이다. 그 토대이자 근거인 감성측정(affective measurement)은 대상에 대한 인간의 감성적 반응을 객관 타당한 데이터로 체계화한다는 뜻이다. 감성을 데이터로 체계화한 다음에는 측정된 감성자료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감성평가(affective evaluation)가 필요하다.
감성의 객관 타당한 자료로 감성의 심리를 연구하는 감성심리와 감성의 생리를 연구하는 감성생리는 감성융합의 토대가 된다. 감성융합(affective convergence)은 로봇공학(robotics), 인공지능(AI), 인터페이스에서 보듯이 인간의 감성을 기계와 연결하는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센서(sensor)를 이용하여 섬세하고 민감한 감성자료를 축적하고 가공하는 한편 그래픽처리를 강화하여 얼굴인식, 자율주행과 같은 과학기술로 발전시켰다. 감성과학은 기계설계, 상품디자인, 보건 의료, 의복, 주거, 교통, 환경, 식생활, 구매와 판매, 예술,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활용된다. 21세기의 감성과학은 신경과학, 인지과학, 물리학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새로운 감성과학은 감성 자체의 물리적 원리를 제반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21세기 중반에는 의식과 감정을 가진 인공감정지능(AEI)이 출현할 것이다.
인공지능에서 보듯이 신경과학, 인지과학, 물리학에서는 이성의 영역만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도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데카르트와 뉴턴에서 구체화된 기계적 세계관이 감성과학에서 실현될 것이다. 인간이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감성을 가진 기계의 출현으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새로 설정될 필요가 생겼다. 특히 물리주의적 심신일원론에 의하면 모든 것은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말은 감성을 포함한 미묘한 영역도 물리적 체계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물리주의 일원론자 김재권은 ‘완전히’가 아닌 ‘거의 충분히(near enough)’라고 표현하면서 물리적 일원론의 관점에 서 있다. 남은 문제는 지극히 감성적인 감각질(qualia)을 과학적으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결국 감성과학은 인식론을 넘어서 인간의 존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인간이 만든 새로운 인간종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다. (김승환)
*참고문헌 Jaegwon KIM, Physicalism, or Something Near Enough,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5).
*참조 <감각>, <감각자료>, <감각질>, <감성>, <감성[칸트]>, <감성학의 의미와 어원>, <감정⦁정서>, <기계론>, <물리주의>, <심신일원론[스피노자]>, <아펙투스[스피노자]>, <인공지능 AI>, <초월적 감성학[칸트]>, <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