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의 호남 기행
-금강을 따라서 (12)
세상의 으뜸 도시, 세종특별자치시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의 합강공원은 금강 8경의 하나이다. 여기서 미호천이 금강으로 들어온다. 따라서 세종시는 미호천과 금강이 만들어놓은 강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또 안개의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가 분지형이라 공기순환이 느리고, 세종보, 미호천과 금강 등이 안개발생의 최적여건이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1일 세종시는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 충북 청원군 일부를 병합하여 우리나라 17번째 광역자치단체가 되었다. 동쪽은 충북 청주시, 서쪽은 충남 공주시, 남쪽은 대전광역시, 북쪽은 충남 천안시와 경계를 이룬다.
세종특별자치시 이름은 2006년에 전 국민의 공모로 정했다. 세종대왕이 세종시 전의면의 초수(椒水)로 눈병을 치료한 역사성, 또 세상(世上)의 으뜸(宗), 나라의 중심이라는 뜻도 있다 한다.
성삼문(1418~1456)은 세종 20년인 1438년에 식년시에 급제하여 집현전학사로 뽑혔다.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했고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즉위하자, 단종 복위운동에 나섰다가 대역죄인으로 처형을 당했다.
이 성삼문의 문절사가 이곳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 마을에 있다.
성삼문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도총관 성승이고, 어머니는 현감 박첨의 딸이었다.
외가인 홍주 노은골에서 태어날 때다. 하늘에서 ‘낳았느냐?’하고 묻는 소리가 3번 들렸다 한다. 그래서 이름을 삼문(三問)이라 지었다 한다.
1456년 6월 8일 성삼문은 아버지인 성승을 비롯하여 이개, 하위지, 유응부, 박중림, 김문기, 박쟁 등과 함께 군기감 앞에서 능지처형을 당했다.
특히 성삼문은 멸문의 참화를 당했다. 아버지와 동생인 삼빙, 삼고, 삼성, 아들인 맹첨, 맹년, 맹종 등 남자는 젖먹이까지도 살해되었다. 아내와 딸들은 관비가 되었으며, 가산은 몰수되었다.
이때에 또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세종 때의 명장 김종서 장군이 있다.
세종시 장군면 대교리에 김종서 장군의 묘와 그의 아들 김승규의 명정을 모신 정려각이 있다.
김종서(1383∼1453)는 충남 공주시 의당면 월곡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도총제를 지낸 김추이고 어머니는 대사헌 배규의 딸이었다.
김종서는 고려사, 세종실록, 고려사절요의 편찬 책임자로서 문무를 겸비한 강직하고 위엄 있는 장군이었다. 허나 단종 1년(1453)에 세조에 의해 살해됨으로써 계유정난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김종서에게는 당시 효심 깊은 두 아들이 있었다. 이 두 아들도 아버님과 뜻을 같이하다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후 두 아들의 시신은 찾을 길이 없었고, 김종서의 시신 일부만 고향으로 돌아와 선산에 묻혔다.
그렇게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김종서는 3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영조 22년(1746)에 복관이 되었다. 정려각을 세우고 묘 입구에 홍살문도 섰다. 비석이 세워져 문무 겸비 충신의 묘임을 알려주게 되었다.
임난수(1342~1407)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정벌의 공을 세웠다. 당시 전투에서 오른쪽 팔이 잘리자, 그 팔을 화살통에 넣고 싸워 이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고려 말에 세종시(공주) 연기면 양화리로 낙향하였기에 이곳에 숭모각과 가묘가 있다. 또 그가 고려의 멸망을 애통해하며 심은 6백 살이 넘은 암수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면 운다고 한다.
임난수의 묘는 연기면 합당리에 있고, 그의 둘째 아들 임목이 아버지의 절의를 기리며 지은 독락정이 세종시 나성동에 있다. 망망한 들을 펼치며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며 은자처럼 은거하던 독락정은 이제 도시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주변에는 큰 건물이 들어서고 금강에는 현대식 대교가 놓여졌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변하더라도 이 독락정은 우리에게 옛 선열의 기개와 기상을 깨우쳐 줄 것이다.
이 독락정 앞의 금남교, 조금 아래 한두리대교, 또 그 아래 학나래교가 있다. 그리고 세종보를 막아 호수공원을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세종시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건설된 신흥도시다. 건설과정에서 여러 말이 많았고,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세종시는 말 그대로 세상의 으뜸가는 도시가 될 것이니, 이곳을 금강이 지나감은 역사의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게다. 그렇게 금강이 청벽대교를 지나 공주시로 들어간다.
임난수 장군 사당 앞의 암수 은행나무
인걸은 간데없지만...
첫댓글 오랫만에 반가운 글과 함께 안부인사 드리게되어 감사 드립니다. 바쁘신 시간중에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 카페를 보듬어 주심에 거듭 감시드리오며 늘 건강에 유의하셔서 유익한 시간 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健勝"을 기원합니다.
그동안 개인 사정으로 쉬었습니다.
금강을 따라 위도를 지나 군산항에서 마무리합니다.
금강처럼 흘러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