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정치)』
1. 이탈리아의 혁명가 그람시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결을 달리하는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한 인물이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핵심적인 이론가로 활동하던 그람시는 1926년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되면서 감옥에 갇혔고 결국 그 곳에서 숨을 거뒀다. 하지만 그람시는 감옥에 있으면서 더욱 중요한 작업을 수행했다. 사회변혁과 혁명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글로 남긴 것이다. 그 글 속에는 이탈리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였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필요한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 인식과 이론적 작업을 통해 도출된 견해가 담겨있었다.
2. 그람시가 중시한 것은 ‘이탈리아’라는 구체적인 상황이었다. 마르크스주의의 혁명론에 따른 도식적인 운동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이탈리아에서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민중들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혁명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서 초점을 도시 프롤레타리아와 농민들의 협력을 통한 국민적, 민중적 의식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혁명의 중점은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구체적 현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트로츠키의 국제주의와 ‘영구혁명론’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였다. “낡은 매커니즘을 새로운 형식으로 꾸민 이러한 입장의 이론적 허약성은 영구혁명이라는 일반이론의 껍데기를 썼는데, 그러나 그러한 이론은 도그마로 제시된 추상적인 예측 이상의 것이 아니며 사실에서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저절로 폐기될 이론이다.”
3. 그람시는 혁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투쟁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혁명의 중심은 ‘정치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핵심은 지도자와 피지도자, 즉 대중과 지도자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어떤 전략을 제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중을 규합하며 규합된 대중을 통해 어떤 실천을 수행하는가가 혁명의 중심인 것이다. “현대의 군주(공산당)는 지적·도덕적 개혁의 선도자이자 조작가여야 하며 또 그렇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은 또한 국민적·민중적 집단의지가 현대문명의 보다 우월하고 전체적인 형태를 실현하는 쪽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 지형의 창출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람시는 당시 지식인들의 허약성을 공격했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혁명적인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의식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자신이 속해있는 공산당에게도 가한다. 특히 특정한 범주에서 제외되어 주목받지 못했던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나 프티부르주아지에 대한 무관심이 이들을 파시스트 정당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이러한 견해는 2024년 미국대선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이 트럼프에 투표하게 만든 것이 민주당의 중산층과 노동자층을 모두 포섭하려는 애매모호한 전략때문이었다는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4. 그람시는 군사적 전략을 정치에 도입하면서 현재의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구의 상황은 러시아에서 성공한 ‘기동전’ 형태의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서구 사회는 국가의 권력과 함께 시민사회가 성장하였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형성되었고 국가가 동요할 때에는 당장에 시민사회 사이의 견고한 구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국가는 단지 외곽에 둘러쳐진 외호에 지나지 않으며 그 뒤에는 요새와 토루의 강력한 체계가 버티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의 전략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영구혁명의 개념이 아닌 시민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며, 기동적 형태의 전략이 아닌 ‘진지전’ 형태의 전략을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즉 정치정당이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시민적 헤게모니를 선취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정치정당은 ‘사실상의 권력’을 지녔고 헤게모니적인 기능을 행사하며 시민사회 속의 이해들 간의 갈등을 균형짓는 역할도 수행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사실상 정치사회와 깊이 얽혀서 모든 시민들은 오히려 정당이 군림도 하고 통치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5. 시민사회의 헤게모니 장악은 결국 전통적인 국가와의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를 장악한 세력은 새로운 도전을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하고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새로운 변혁을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국가와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국가생활의 형태, 곧 ‘관료에 의한 지배’가 없어도 개인들과 집단들의 활동이 스스로 국가적인 성격을 지닐 형태로 발전시키고 산출하기 위해서(다시 말하여 국가생활이 자발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야말로 국가숭배는 끊임없이 비판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무력적 충돌과 함께 새로운 타협책도 추구될 것이다. 반드시 폭력적인 방법만이 변혁의 도구는 아닌 것이다.
6. 그람시의 정치적 견해는 1920-30년대 이탈리아의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공업화된 북부와 농업 중심의 남부 문제가 충돌하고, 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식민지 상실에 따른 국가적인 위기는 파시스트 정권의 부상을 가져왔다. 그람시의 혁명이론은 이러한 이탈리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일반 대중들의 정치적, 경제적 권익과 힘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치정당’을 통해 시민적 헤게모니를 장악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 간의 연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극변하게 하는 방법은 불가능하며 결국 꾸준한 투쟁과 연대를 통한 ‘진지전’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최악의 파시즘 시대, 감옥에 갇힌 절망적인 혁명가의 사고적 실험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떤 파괴적 허무와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한 인간의 용기였다. 변혁의 내용에 대한 찬반은 다양할 수 있을지라도,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열정은 그 자체로 존중할 수밖에 없다.
첫댓글 - 어떤 파괴적 허무와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한 인간의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