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물'에 대한 최초의 해석은 정현(鄭玄)이 내놓았다. "'格'은 '올래(來)' 자와 같고 '物'은 '일 사(事)' 자와 같다. 지식이 선(善)에 깊으면 선한 일이 따라오게 되고, 그 지식이 악(惡)에 깊으면 악한 일이 따라오게 된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일이 따라오게 됨을 말한다(格, 來也. 物, 猶事也. 其知於善深, 則來善物. 其知於惡深, 則來惡物. 言事緣人所好來也)."
이것은 남송 주희(朱熹)에 의해 "사물의 원리를 궁구하여 밀고 나가 그 지극한 곳에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窮推至事物之理,欲其極處無不到也)"라는 의미로 재해석됐다.
주자(朱子)는 격(格)을 '이른다(나아간다.)' 치(致)는 '이른다(지극하게 하다.)' 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주자의 설은 만물은 한 그루의 나무와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그 이치(理致)를 가지고 있어 깊이 연구(硏究)하면 속과 겉의 세밀함과 거침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 것이다.
왕양명(王陽明)은 격(格)을 '바로잡다' 로 해석하여,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 마음의 본체)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고 옳은 생각을 행해야 마음의 본체인 물(物)이 회복된다고 보아, 마음을 바로잡아 양지를 발휘하는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왕양명은 격물(格物)의 물(物)이란 사(事)다. 사(事)란 어버이를 섬긴다던가 임금을 섬긴다던가 하는 마음의 움직임, 곧 뜻이 있는 곳을 말한다. ‘사’라고 한 이상에는 거기에 마음이 있고, 마음밖에는 ‘물’도 없고 ‘이’도 없다. 마음의 움직임, 즉 뜻이 있는 곳을 말함이라 했다.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심(心)을 표현한 것이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매일경제
첫댓글 格物`하니 어떻한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