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성경 속에는 복합적인 진리이치가 들어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룰구원의 이치와 도리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를 했다. 이 세상 창조물 속에는 하늘과 땅과 바다가 있고, 바다의 어류의 생태계, 육지의 동물들의 생태, 그리고 사람의 생태가 있고, 그리고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 있다.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우리가 이뤄갈 수 있는 구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온전을 향한 그 인격 그 성품을 덧입을 수 있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도덕성, 즉 선 사랑 거룩 진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성, 즉 의와 주권 이런 것을 우리가 닮아갈 수 있도록 자연만물 속에 많은 이치를 넣어서 우리로 하여금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를 바로 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시사철,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어떻게 대비하나?’ 그걸 보면서 인생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생을 깨닫는 속에서 자기가 신앙 면에서, 영적인 면에서 자라가는 이치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봄’ 하면 어린아이를 상징한다. 농부가 밭에 씨를 심으려면 봄에 그 밭을 갈아엎어야 한다. 봄과 같은 어린아이의 마음 밭에도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줘야 한다. 봄에는 밭에 무엇을 심던지 심은 그것이 그대로 자라난다. 아무 것도 안 심었느냐? 안 심더라도 그 밭에는 가시덤불이나 잡초가 나게 돼 있다. 우리 어린아이들의 마음 밭도 그대로 두면 안 된다. 반드시 그 마음바탕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줘야 한다. 그러면 생명의 씨앗이, 진리의 씨앗이 들어가서 점차적으로 진리신앙이 주격적 지식이 되어서 자라나게 된다. 이러면 그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생명이 다하기까지 인간 자기를 만드신 소원 목적, 원인과 동기와 목적대로 살아가게 된다. 이게 인간의 참 삶이다. 이것이 아닌 삶은 짐승과 같다. 짐승이 사는 것과 똑같다. 골각 피부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사는 정신 사상 면은 짐승과 같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선악과 따먹은 세계에서 사람들이 너와 나를 볼 때 ‘저 사람도 나처럼 생겼구나. 저 사람도 사람이구나’ 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영의 눈을 가지고 고차원적인 신앙의 눈을 가지고 볼 때는 그 사람의 정신과 사상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하게 된다.
성경에 보면 모세의 어머니나 사무엘의 어머니나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진 신앙의 부모들이 나오는데, 이 부모들은 자녀들을 기르는데 있어서 영을 첫째로 꼽았다. 영은 진리지식을 먹어야 성장이 되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이 어릴 때부터 진리지식을 넣어줬다.
사람 속에 진리지식이 들어있으면 모든 사건 환경을 분별하고 판단을 한다. 그러니까 속지를 않는다. 말하자면 자기가 스스로 죽을 곳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말이다. 원수들이, 사단 마귀가, 거짓 종들이 함정을 파 놓은 곳에 가지를 않는다. 그들의 수법도 알고, 그리고 거짓된 교훈을 받게 되면 그 결과가 영원히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로 안 간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는 눈이 없다. 영은 죽어있고, 이성의 판단은 흐려있기 때문에 판단을 한다고 할지라도 고작 해봐야 선악과 따먹은 지식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해서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것에 욕심을 내고, 그 인간 기준지식으로 나간다.
이렇게 나가면 그 인간은 영적인 면에서 죽는 거고,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서 성공을 했다고 할지라도 인간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인격성, 영적 기능과 지능 면에서 사람이 망했다. 사람이 가치가 없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이런 사람들을 불바다 속에 집어넣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몹쓸 것은 집어넣어 버리는 거다. 그 이치를 우리가 알아야 한다.
신앙의 어머니들, 신앙의 부모들, 신앙의 교역자들, 신앙의 인도자들은 영을 제일 첫째로 여긴다. 그래서 진리지식으로 먹여 살리는 거고, 성장시키는 거고,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 거다. 그 다음에는 일반지식이다. 일반지식은 보조지식, 활용적 지식이다. 그 다음에는 몸, 육신, 신체다.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보면 자기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전이라. 따라서 육신도 잘 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지식으로, 지혜지식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고자 하는 성도는 성령님이 계신다 그 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 몸을 함부로 여기지를 않는다. 귀하게 여긴다. 세상 사람들처럼 술이나 먹고 담배나 피우며 자기 몸을 망가뜨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기의 몸을 망가뜨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자연법칙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큰 죄이다. 자연법칙을 어기면 자기의 자연생명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어놓은 목적이 상실이 돼버린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부모로 통해서 자기의 몸을 낸 것인데, 자기 몸을 함부로 해서 육신이 죽어버린다면 부모 앞에서 그 자식은 불효자식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모르니까 인간 자기를 모르고, 인간 자기를 모르니 부모형제나 다른 사람을 알 리가 없다. 이런 사람은 선악과 따먹은 자기의 기준지식을 가지고 사람과 연관성을 가지게 되니 어떻게 다른 사람 앞에 모범이 되겠느냐? 이러면 밥 먹고 사는 하나의 인간밖에 안 된다.
인간 자기가 사람일진대 사람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줘라.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해줘라. 그러면 사람이 사람 가운데서 참 살만하다. 사람 가운데 사람이 사는 게 기쁘고 즐거워야지 힘들고 고통스럽고 짜증스럽고 한다면 그거 어디 힘들어서 쓰겠느냐? 자기도 짜증스럽고, 보는 사람도 짜증스럽고.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 가면서 산다. 모르면 그렇게 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진리지식을 제일 먼저. 영이 귀중하니까. 그 다음에 일반지식이다. 일반지식은 보조지식이요 활용적 지식이다. 우리가 진리지식을 자기의 주격적 지식으로 삼고 살면서 일반지식은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거다. 그리고 몸으로 활동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진리지식이 주격으로 되어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활용하고 이용하게 되는데, 활용하고 이용하는 데는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이렇게 들어간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영 성장을 위해서, 영 구원을 위해서 시간도 드리고, 물질도 드리고, 활동도 한다.
이 영의 성장을 위하여 물질투자, 노력투자, 시간투자를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자기의 사는 거다. 그게 삶이다. 그렇게 사니 자타 속에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이 입어져 간다. 이게 인간의 삶이다. 그런데 이방 불신세상의 부모들 중에 그래도 의식이 있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있어서 일반지식을 최우선적으로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부귀영광을 누리며 살아야 되겠다’ 하고 생각을 하니 그렇게 되려면 일반적으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반학교에서 세상문물을 많이 습득을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진리지식은 아예 없다.
그 다음에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일반적인 측면에서 깨닫지 못한 부모들은 지식보다는 몸을 더 귀중하게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좋다고 하는 것을 잔뜩 먹인다. 그러면 그 몸이 뭐가 될까? ‘몸이 뚱뚱하다. 약하다’ 그런 면만 보지 말고 그 자식은 먹는 것만 밝히게 된다. 먹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은 생각을 안 한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하니 예수님을 믿는 부모들마저도 자식에게 첫째로 꼽는 것이 일반지식을 첫째로 꼽는 거다. 그런가 하면 속화되고 타락된 목사님들의 세계도 일반지식을 첫째로 꼽고 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성경에서 뭘 배웠겠느냐? 배우지를 못했으니, 깨닫지를 못했으니 여전히 일반지식을 첫째로 삼고 나가고 있는 거다. 이게 속화된 기독교다. 이게 말세교회의 현상이다.
기독교 안에서 거짓 종이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 교회 안에 거짓 종들만 있느냐? 거짓 교인들도 있고, 거짓 집사, 거짓 장로들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열매를 따먹으려고 하느냐? 세상의 것을 열매로 따먹으려고 한다.
부모들이 그런 세상정신으로 자녀들을 가르친다면 그 열매가 제 마음대로 열리겠느냐? 자기가 나고 살고 죽는 것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인데 자녀들을 키우는데 있어서 제 마음대로 되더냐? 그러니까 세상을 살기가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세상을 보면 인간 외에 다른 피조물들은 물론 인격성이 없는 거지만 이 피조물들은 인간들처럼 고생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자연법칙대로만 사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연만물을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라’는 그 면이 전부 어그러져 버렸다. 그러니 첫째는 사람에게 고통이 온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람 때문에 짐승이 죽는다.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영이 주격이고, 몸 신체 육신은 소유격이다. 그러니까 몸은 영의 성장을 위해서 의의 병기로 쓰여질 몸이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건강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몸을 악의 병기로 쓰다가 육신이 멸망을 받는 자들이 많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못해서 고민을 하는 자가 많고, 또 자기 몸까지도 제 마음대로 못해서 병을 만들어서 사는 자들이 많다.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그 속에 뭐가 없어서 이렇게 된 거냐? 보이는 결과 속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느니만큼 그 원인을 알아야 사람이 치유가 들어가는 거다. 인간의 결과가 왜 이렇게 된 것 같으냐? 아담 하와가 뭘 따먹어서 이런 결과가 온 거냐? 선악과를 따먹어서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담과 같은 결과가 안 되려면 뭘 따먹어야 할까? 생명과를 따먹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말세의 교인들이 생명과는 안 따먹고 일반지식을 가지고 성경구절을 들어서 하나의 종교인으로 살고자 하니 교회가 어떻게 바로 돼 나갈까?
우리는 제일 먼저 영을 위한 진리지식을 자기의 주격적 지식으로 삼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일반지식이다. 그 다음에는 몸 신체 육체가 된다. 그런데 예수님을 안 믿는 부모들의 교육은 그 중요성을 어디에 먼저 두느냐? 일반지식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몸 신체다.
우리가 이런 사람을 볼 수가 있는데, 물론 몰라서 그런 건데,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부모가 딸을 안 믿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서 그 딸이 시집에서 ‘제사니, 뭐니’ 해서 고통을 겪는 일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이게 왜 그런 거냐?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거냐? 왜 그런 결과가 나온 거냐? 그냥 딸을 잘못 보낸 거냐? 예수 믿는 사람에게 보내지 않아서 그런 거냐? 뭐가 잘못돼 있는 거냐? 진리지식이 안 들어있다.
내가 아는 목사님의 자식이 교육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주일날 시험을 치니까 이 목사님이 시험을 치지 못하게 하니까 사모님이 남편 몰래 딸에게 주일날 가서 시험을 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귀가 합격을 시킨 건지 합격을 해서 선생을 하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시집을 갔는데, 그 남편이 미국에 가서 박사공부를 할 거라서 딸 부부가 같이 미국으로 간다고 한다. 박사? 박사면 안 죽느냐? 박사면 안 얻어맞느냐? 박사면 하루에 밥을 여섯 그릇을 먹느냐?
우리 딸은 주일날 임용시험을 시험을 치러 가지를 않았는데, ‘끝내 시험을 못 치고 죽을 때까지 고생만 하다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면 가서 시험을 쳐라. 아버지의 말 때문에 시험을 못 치고 있다면 결국은 예수님을 원망하고, 아버지를 원망할 테니까. 주일날이라는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 사상이 중요한 거다. 그래서 계:에 보면 짐승의 표가 나온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짐승의 표를 바코드라고 하면서 사람을 붙잡아서 이마에 바코드를 찍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그런 말이 아니다. 짐승과 같은 정신 사상을 말하는 거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 짐승의 표가 뭔지를 몰라서 거의가 짐승의 표를 다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성경에 말세에는 노아 홍수 때와 소돔 고모라 때처럼 될 거라고 했고, 또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도 한 것 같다. 그러니까 말세에는 교회에 나가는 교인들은 많은데 신앙사상 면에서 믿음이라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전부가 세상 판이라 그 말이다. 그러니 말세인 오늘날 교인들이 교회에 앉아있어도 목사님들로부터 평신도까지 이마에 짐승의 표를 많이 받겠구나. 불에 타질 교인들은 많겠지만 정말 온전하게 구원을 이뤄나가는 교인들이 얼마나 될까?
예수 믿는 우리는 일반지식을 진리지식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말아라. 왜냐하면 세상은 자기만 부지런하면 자기의 어떤 특기로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로 살 수가 있는 거고, 또한 못 배웠더라도 이 세상은 못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만큼 자기가 머리를 쓰면 얼마든지 잘 살 수가 있는 거다. 세상은 그렇게 돼 있다. 그런가 하면 자기가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자기의 몸이 상하는 쪽으로 살고 있다면 그건 죽는 거다. 아무리 높은 직에 있어도, 돈을 많이 벌어도 자기 몸속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다면 그 돈이 어디에 다 소비가 되겠느냐? 결국 자기 몸을 살리느라고 다 소비되고 말더라. 이런 사람은 인격 면에서 고상한 자로, 진리 자체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생각 밖이라. 아예 꿈도 못 꾸고 있다.
신앙지식을 가진 어머니들은 일반지식을 가진 어머니들과는 자녀들의 마음 밭에 뿌리는 씨앗이 질적 차원적으로 다른 거다. 하나는 하늘의 씨앗 생명의 씨앗을 심는 거고, 하나는 땅의 씨앗을 심는다. 하나는 하늘의 지식, 하나는 땅의 지식이다. 어릴 때부터 받는 기준적인 지식에 따라서 자라나면서 자기의 소원과 목적과 취미와 간구성과 추구성이 달라져 버린다. 하나는 하늘의 소원 목적을 가지게 되고, 하나는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지게 된다.
성경에 보면 ‘둘이서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이런 말씀이 있는데, 물론 이것을 두 사람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걸 축소시켜서 자기에게 주시는 은밀한 말씀으로 보면 자기 개인에게 버려질 것이 있고, 데려감을 당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걸 하나는 불신자를 말하는 거고, 하나는 택자를 말하는 것으로만 보면 안 된다. 성경에 이걸 기록을 해서 나에게 준 것이니 자기에게 유익이 되게 깨달아야지 하나는 불신자고, 하나는 믿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나는 지금 예수를 믿고 있으니까 자기는 데려감을 당한다고만 생각을 하지 말아라. 예수 믿는 자기에게도 버려둘 것이 있고, 가지고 올라갈 것이 있는 거다.
‘나는 그렇게 안 된다’ 그게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진 대로 되는 거다. 말하자면 사람이 먹은 대로 그 살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먹었으면 그 똥 싸기 마련이다. 쌀밥을 먹었는데 보리 똥이 나올 리가 없다. 쌀밥을 먹었으면 쌀밥 먹은 살이 찐 거지 보리밥 먹은 살이 찐 게 아니다. 사람은 먹은 대로 살이 찌고 먹은 대로 나온다. 사람은 무엇을 배우던 자기가 배운 그것을 써먹는 사람이 되고 만다. 배운 대로 들어가는 거다. 뭘 배웠던지 배운 그것으로 가치판단 평가를 하기 때문에 그 면에 대한 욕심을 품게 된다. 속이지 못한다. 이걸 무시하면 안 된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방세상에서 영재교육으로 치닫고, 또는 일등국민이 되자고 하고, 또는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 하고 있을 때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고 얼마나 웃으실까?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훌륭하다고 본다면 그렇게 보는 그 사람은 망해버린다. 돈이 많은 것이 훌륭하게 보였으니까 자기도 역시 그와 같이 살려고 할 테니까 그렇다.
사람이 참 인격성장이 없으면 일반세상에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사람이다. 시:에서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뭐가 망한다는 거냐? 사람의 인격 면에서 사람 자체가 망해버렸다. 사람이 망해버렸구나. 망한 사람에게는 기대할 게 없다. 악한 사람이 돼버린다.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원망불평하고, 자기 신세타령이나 하고, 자살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누구든지 이런 사람에 대해 말을 할 때 ‘그 사람 나쁘구나’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거냐?
엊그저께 뉴스에 나오는데, 많이 배운 사람인데 사람을 죽였다. 세상은 그런 거다. 세상공부를 아무리 많이 했어도 자기들끼리 회의하다가 멱살을 잡고 싸운다. 도를 닦다가 자기들끼리 각목을 들고 두들겨 패기도 한다. 내가 신학교 다닐 때 다른 학교의 신학생들이 각목을 들고 데모를 했는데, 그들을 가르친 목사님이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신학교에는 모두가 엘리야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같이 공부를 하다 보니 큰 실망을 했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 돈이 아까웠다.
이미 목사가 돼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가서 뭘 배우느냐? 정신이 썩었다. 목사가 뭐냐? 성경을 전문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교인들에게 성경을 바로 깨닫게 하고 가르쳐 주는 이게 하나님의 종이요 목사다. 그런데 뭘 더 배우려고 들어가느냐?
우리가 규모도 작고 별스럽게 보이지만 자화자찬 같지만 아직까지 우리교회 같은 교회가 없다. 나는 그렇게 본다. 긍지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타 교회에 다니는 것처럼 시시하게 믿을 바에야 아예 오지 말아라. 우리교회는 그런 교회가 아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가 여기서 교훈하는 것은 우리교인들 전부가 내적 실력 면에서 목사님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목사는 교인 하나하나를 주님 차원으로 밀착을 시켜야 한다.
사람이 왜 악해졌느냐? 공부를 안 해서 그런가?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인가? 아니면 마음 밭에 무슨 씨앗이 심어져서 그 모양인가?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모르면, 자기에게 있어서 무엇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고로 어린아이들의 마음 밭에 먼저 영을 위한 진리지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진리지식을 심어주는데 있어서 말만 한다거나, ‘아무개야, 엄마 아버지는 바빠서 교회에 못 나가니 너나 갖다 오너라’ 한다면 아이에게 진리지식이 심어지겠느냐?
그 다음에 사시사철의 두 번째는 여름이 있다. 여름은 혈기 왕성한 청소년 시절로 비유할 수 있다. 여름에는 나무가 잘 자란다. 청소년은 감성이 예민한 시기인데, 이 세상은 악한 것이 많고 악한 자들과 유혹과 미혹이 많은 세상이다. 거짓 것이 많고 불의와 부도덕성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니 탈선이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성경을 가지고 사회를 보면 걷어치울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허가를 받아서 한다고 할지라도 아이들이 비뚤어져 자라날 수 있는 요소라면 다 집어치워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정화가 된다. 사회가 정화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 곳이 세상이다.
이런 것을 하나님의 주권섭리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런 것들이 있도록 해서 믿는 사람들을 옆에서 꾀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누가 믿음이 바로 섰느냐? 얼마나 잘 믿느냐?’ 하는 면으로 시험거리를 많이 만들어 놨다. 그렇지만 깨닫고 알면 그런 것들 전부는 이용물이다. 깨닫는데 이용물, 진리신앙으로 달려가는 면에 이용물이다.
교훈적인 측면으로 보면 앞으로 교인들을 유혹할 수 있는 상상 못할 일들이 세상에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청소년들을 일일이 뒤따라 다니면서 감시를 하면서 ‘이것은 하라. 이것은 하지 말아라’ 할 수가 있겠느냐? 참 어렵다. 그래서 제일 좋은 방법은 어떤 사건과 환경을 만나더라도 가치판단 평가적으로 정평 정가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그 어떤 사건과 환경에서도, 그 어떤 시험에서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돼버린다.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지식밖에 없다. 다른 것은 없다. 일반적인 지식을 가지고는 인간 자기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오지를 않는다. 진리이치의 가르침이라야 하나님 앞에서나, 인간 앞에서나, 만물 앞에서나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인간으로 자라나게 되는 거다. 진리지식이 아니면 값진 젊음을 죄만 짓다가 결과에 가서는 고통을 거두고 가게 된다. 진리지식이라야 만이 사람이 스스로 통제가 된다.
진리지식에는 고차원적인 지혜지식, 기능 지능 면이 들어있어서 이런 교훈을 받으면 사람이 명철해지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통제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시: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신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진리지식이 들어있는 사람은 그 진리지식이 그 사람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를 않고 세상을 제 멋대로 살다가 자기가 어려워지니 ‘하나님, 날 좀 지켜주십시오’ 할지라도 이미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어지게 돼 있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