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굴뚝
고봉진
우리 집 애가 작년부터 파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 기숙사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모든 학생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제도적으로 한 학생이 장기간 머물 수 없게 되어 있어, 안정된 주거를 마련한다고 소위"스뛰디오" 하나를 얻어 지내고 있다. 생 루이 섬에 있는 낡은 건물의 3층 한 귀퉁이 방인데, 이어져 있는 바로 옆 건물이 17세기에 베르사유 궁전의 설계자로 유명한 르 보(Le VAU)가 설계했다는 '로쥥(lauzun) 관'이다. 지금은 파리 시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살고 있는 집 고양이 낯짝 같은 중정(中庭)을 지나 센 강변 쪽으로 나 있는 집 대문을 나서면, 낮 동안에는 흔히 관광객 한 두어 사람이 손에 지도를 들고 길모퉁이에 서서 어정거리고 있는 것을 만나곤 한다. 동네 전체가 몇 백년 된 낡은 건물들로 되어 있어 특정한 건물만이 아니라 거리 자체도 구경거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집들의 겉은 낡은 옛 모양을 하고 있어도 내부는 상당히 개조되어 있다. 아이 집도 고풍스러운 나선 형 좁은 목조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서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현대식 분위기로 바뀐다. 난방이고 취사 시설이 모두 전력을 사용하게 되어 있고, 욕실 겸 화장실도 프랑스 재래식이 아닌 미국식으로 꾸며져 있다. 좁기는 하나 구석구석 공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놓아 나 같은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어 저절로 실소를 할 정도다. 가끔 들르고 머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여름이 지나면 파리의 날씨는 언제나 어쩐지 으스스하다. 서울 보다 위도가 높아 중국 동북 성 하얼빈과 거의 같다. 가을부터 봄에 이르기 까지는 짧은 해가 기울면 바로 어두워진다. 학교서 집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온기가 그리울 텐데 아이가 혼자 지나는 방은 언제나 싸늘하기 마련이다. 전기로 난방을 하니 방을 비우는 동안은 스위치를 끊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위치를 넣어도 그렇게 빨리 방안 공기가 데워지지 않는다. 저녁 마다 어둡고 썰렁할 빈 방문을 열고 들어설 아이를 생각할 때 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파리에서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보면 건물 마다 조그만 굴뚝들이 지붕 위로 많이 돋아 나 있는 것이 내려다보인다. 한 건물에 여러 가구가 사는 복합 주택들이 많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하지만, 아이 집 같이 전기로 난방을 하는 집이 많고, 그 외에도 도시 가스나 석유류로 집중난방을 하거나 지역난방 공급을 받는 것들이 많으니, 그것들이 모두 난방이나 취사용의 벽난로나 화덕 같은 것을 위한 굴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부엌이나 화장실의 환기를 위해 세워진 것들일 게다. 그러니 저녁때라고 해서 새삼스럽게 연기가 피어 오르는 굴뚝은 드물다. 오페라 "라 보엠"의 첫 막 서두 부분에서 '로돌포'는 푸념을 한다. 장소는 파리, 가난한 학생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던 라틴 구,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다. "회색 빛 하늘에, 파리의 수많은 굴뚝들로부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 쓸모없는 사기꾼 늙어빠진 난로란 놈은 영주님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네." 그들 가난한 젊은이들의 지붕 밑 다락방에서는 땔감이 없어 난로에 불기가 없다는 탄식이다. "라 보엠"의 시대적 배경은 19 세기 중엽, 그 때만 해도 난방은 나무나 석탄이 주 연료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제대로 난방을 하지 못하고, 남의 집 지붕 밑 다락방에서 벽 틈으로 새어 드는 외풍에 떨어야 했다. 도시는 달라도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안데르센의 동화 속의 "성냥팔이 소녀"가 살던 다락방도 "집안은 추웠습니다. 지붕이라고는 이름뿐이지 커다란 틈새가 나서 짚이나 걸레 쪼가리들로 막혀 있었지만, 그래도 바람은 휙휙 스며들었습니다."라고 묘사 되어 있다. 많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런가 하면 난방을 하는 집 굴뚝을 청소하는 가난한 소년들이 길거리를 돌며 적은 돈과 한 끼 끼니를 얻기 위해 하루 종일 "굴뚝 청소 하세요!" 하고 소리치며 떠돌았다.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집"가운데 "굴뚝 청소부 예찬"이라는 시니컬한 글이 그들의 처지, 그리고 그 때의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칼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이라는 과격하고 파괴적인 격문을 돌리고 있던 세상이었다. 그런 시대도 지나갔고, 난방 방식도 바뀌었다. 지금 파리에 집집마다 나 있는 굴뚝의 역할도 자연히 달라진 것이다. 소년 시절 하교 시간이 되면, 발걸음을 재촉하며 땅거미 지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 왔다. 지름길 좁은 골목을 들어서면 집집마다 처마를 겨우 넘는 높이로 달려 있는 나지막한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서는 길 위로도 내려와 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땔감은 대부분이 신탄이었다. 잘 마른 장작을 태우는 연기는 맵지도 않고 오히려 코에 향기로웠다. 집집마다 따뜻한 불빛이 창문을 환히 밝히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부엌에는 어머니들이 시장한 얼굴로 들어설 식구들을 생각하며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을 것이다. 불빛이나 불기같이 우리의 마음을 안온하고 푸근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얼마 전 영남 알프스 연봉으로 등산을 갔다가, 짧은 가을 해를 잘못 계산해 험준한 산 비탈에서 어둠을 만났다. 방한구도 음료수도 비상식량도 준비한 것이 없었고, 여자 분들까지 끼어 있는 일행이었다. 이건 정말 진퇴양난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당혹감으로 사방을 둘러보는데, 멀리 위로 조그만 불빛 몇 개가 깜박이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그 때 느낀 안심감이란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것은 춥지 않은 잠자리를 뜻하며, 따뜻한 음식, 그리고 산짐승들로부터의 방패막이가 제공 되는 것임을 뜻했다. 이윽고 몇 채의 산장이 모여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눈물이 나오도록 더욱 반가웠던 것은 집 주위를 감싸고 있는 땔나무 태우는 매캐한 연기 냄새였다.
그래서 오늘도 파리 우리 애가 사는 집 지붕 위에서 만이라도 어스름 저녁에는 따뜻한 연기가 피어올랐으면 하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이고 엉뚱한 바람을 굴뚝같이 간직하고 지난다. ♥2003-01-04 essaykorea
--------------------------------------------------- 고봉진(高奉鎭) 雅號 一宇 1938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한국일보사 기획 담당 이사. 기획 재무 담당 상무이사. 상임고문 역임. 한국일보-타임라이프. 한주전자주식회사 회장 역임. 현재 한국일보 감사 및 한국일보 멀티미디어 대표이사. 재단법인 심경문화재단. 복지 법인 애광원 이사. 종합잡지 '세대'에 수필 '등산' 발표(1970년) 후 각 지면에 단속적으로 각종 산문 집필. 수필문우회 회원(1986년). '현대한국수필문학상' 수상(1992년). 수필문우회 부회장(2001년) 수필집 : 향수여행. 흔들리는 당신을 위하여(공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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