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닛시 / 엡6:10-18
유명한 피카소 작품 중에 손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조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영어로 'The hand of the God'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입니다. 이 작품이 표현하는 것은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것 같고 힘 있는 것 같아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도, 축복도, 성공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고,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기도한 결과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충성한 결과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행한 모든 일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 16:3은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희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전에 미국의 대통령이 우주선을 발사할 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죽는 것, 흥망성쇠는 하나님 손에 맡길 뿐입니다. 6월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들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현충일이 있고, 6.25 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달이어서 호국의 달로 명명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6.25 상기 주일이기도 한데, 성도가 싸우는 싸움은 어떤 싸움인지, 그리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어떠해야 하는지를 본문을 중심으로 “여호와 닛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앞부분에서 우리가 살면서 맺어지는 여러 종류의 인간관계,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상전과 종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종말로’라고 본문을 시작하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 엡6:10-11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가 대항해 싸워야할 적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적은 우리의 행복을 파괴하고,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고, 우리의 삶을 패배로 이끌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영적인 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늘 깨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대적은 바로 사단 마귀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마귀라는 단어가 복수로 기록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언제나 단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로서 적대세력의 우두머리를 뜻합니다. “마귀”는 문자 그대로의 뜻은 “참소 자”입니다. 삶의 무대 배후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이 사단 마귀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보다 힘이 있고, 지혜로운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단 마귀와의 싸움인 것을 알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2.선한 싸움에 승리를 위해 영적 무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본문 엡6:13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군사의 무장처럼 성도가 취해야 할 전신갑주에 대해 본문에서 몇 가지로 말합니다. *신실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14절). 여기서 '진리'란 참, 성실, 진실하다는 말입니다.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두 마음을 품어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허리띠는 일하려 하는 자의 성실한 자세를 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벧전1:3)라고 했는데, '허리를 동이라'는 말과 '근신하라'는 말은 동의어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14절) 했는데, 성도를 참소하고 정죄 하는 마귀를 이기려면 내 공로를 내세우지 말고 예수 십자가의 공로를 앞세우며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가슴에 호심경을 붙이고 있는 사람은 내 의가 아닌 주님 안에서 십자가 공로로, 믿음으로 의로워진 자가 되어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라 고백하며 예수님의 공로만 자랑합니다.*전도가 성도의 무기입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15절) 마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갖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하여 전도자의 발을 꽁꽁 묶어 놓으려 하지만 주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되고, 전도할 때 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죄 앞에 얼마나 당당했으며, 유혹 앞에 얼마나 꿋꿋했습니까? 얼마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까? 문제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는 유혹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정직했다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시험을 이겼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우리가 시험도 이기고, 자신의 욕심도 이기고, 두려움도 이기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영적 무장을 갖추어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들이되시기를소망합니다.
3.선한 싸움에 승리를 위해 합심하여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위대한 사역자 바울 곁에도 수족처럼 협력해 주었던 바나바, 실라, 디모데, 누가, 브리스길라 부부, 오네시모, 루디아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갈라디아 교인들은 할 수만 있으면 눈이라도 빼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협력자들이 귀합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도 같이 협력하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사단을 대적하는 담대한 신앙입니다.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아말렉을 대항해 담대히 싸웠습니다. 아말렉은 성도들이 대적하여 싸워 이겨야 할 사단의 모형입니다. 구약 본문에 ‘싸우라’ ‘쳐서’ ‘싸우고’ 라는 전쟁 술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에는 전진, 공격, 후퇴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신앙생활을 왜 공격이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성도가 싸워야할 대상인 사단은 대적하고 공격해 물리쳐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그 곳 거민과 싸우게 되는데 너희가 쫓아냈고, 쫒아내지 못했고” 라는 말이 반복해서 기록된 것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사탄의 권세를 점령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기억할 것은 나와 내 가정에서 나의 생활을 괴롭히는 사탄의 세력을 쫓아내는 것에 신앙생활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밤낮 공격하는 사탄의 힘은 우리보다 강함을 잊지 말고 신앙생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본문 엡 6:11에서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고 한 것입니다. 구약 본문의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 광야 르비듬에 이르고 보니 마실 물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반석에서 물이 나와 백성이 갈한 목을 축이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에서의 후손인 아멜렉 족속이 일어나 지쳐버린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하여 공격해 오므로 불가피 하게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모세가 피곤하여 손이 내려올 때 전세가 역전이 되어 이스라엘이 폐하여 도망치는 희한 한 일이 반복하여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산꼭대기에서 몇 차례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아론과 홀은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잡아 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하여 아론과 홀이 근처에 있는 큼지막한 돌을 굴러다 놓고 평안히 앉도록 모세를 모셔 놓고 아론이 이편에서, 홀은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므로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멜렉과 그 백성을 처서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우리 모두 선한 싸움에 승리하기 위하여 한 마음으로 합심하고 협력하여 기도하고,담대한 신앙으로무장하여 사단마귀를이기고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