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이승복 동상'이 철거 위기에 놓였다. 6일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이승복 동상 철거를 지시했다. 노 교육감은 최근 열린 간부회의에서 "지난주 초등학교를 방문해 보니 이승복 동상이 있었다"며 "시대에 맞지 않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빠른 시간 안에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울산에는 태화, 강남, 복산 등 10여 곳의 초등학교에 이승복 동상이 남아 있다.
이승복은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가택을 침범한 북한 공비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로 저항하다 살해당했다. 9세에 불과한 어린아이였던 그는 공비들에 의해 입가가 찢기는 등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은 북한의 인명 살상과 인권 유린을 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소식은 당시 <조선일보> 보도로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반공 소년의 상징'이 된 이승복은 이후 교육 소재로 쓰이거나, 전국 초등학교 운동장에 동상으로 세워졌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승복 기사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 내용이 교과서에서도 삭제됐고, 전국에서 여러 이승복 동상이 철거됐다.
반면, 대법원은 2009년 2월 <조선일보>의 이승복 사건 보도는 거짓이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김모씨에게 "<조선일보>에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대법원은 2006년 11월 형사재판 최종심에서 "이승복 기사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해 작성한 사실보도"라며 김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확정했다.
올해 들어 남북 해빙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이승복 동상 철거를 지시한 노 교육감은 진보 성향의 교육계 인사로 재야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이 많다. 195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노 교육감은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부터 1986년까지 현대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노동문제상담소 간사와 고교평준화실현 시민연대회의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울산지부 지부장을 지냈다.
진보정당에서 정치 활동도 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민생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2010년 진보신당 울산시당 위원장, 2012년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공동위원장 및 공동대표로 일했다. 이 밖에 노동인권센터 대표,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지냈다.
작년에는 '김복만 교육감 대법원 조속 판결 촉구와 울산 교육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와 '박근혜 정권 퇴진 울산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울산 최초 진보 교육감으로 당선됐다. 1997년 전태일 노동상, 1997년 울산 경실련이 기억하는 시민상, 2002년 울산여성유권자연맹 우수교육위원상 등을 받았다.
올해는 이승복 사망 50주기가 되는 해다. 시민안보단체 ‘블루유니온’ 대표 겸 안보전문 언론사 ‘블루투데이’ 발행인을 맡고 있는 권유미씨는 지난여름 동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펴내 이승복의 기개와 희생을 기렸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승복의 어린이다운 순수한 마음을 떠올려보라”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진실을 외친) 그에게 위로의 뜻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