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지난번에 아들 집에 왔을 때도 혼자 발품을 팔아가며 걸었었지만 학교가 워낙 넓다보니 몇 군데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어디를 갔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오늘 다시 아들과 며느리의 안내를 받으며 대학 구내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학부 학생 수가 대략 3만1천여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학원생이 약 6천여 명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볼더 대학의 학생 수가 볼더 시 인구의 절반 정도가 되는 듯했다. 지금은 방학이기도 하거니와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조용하다. 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여전히 고풍스런 멋을 풍기고 있었다. 아들이 대학원 졸업식을 한 콘서트홀이 그 주변에 함께 있었다. 내년에 아들이 박사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할 때는 꼭 참석을 하리라고 건물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먹었다. 그때면 아무래도 코로나는 멀리 달아났을 것이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미식축구 경기장 입구에는 볼더 대학의 상징인 버펄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경기가 열리면 경기 시작 전에 항상 버펄로를 직접 몰고 나와 경기장을 한 바퀴 돈다고 한다. 미식축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이기에 대학 경기장인데도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10만 명이면 볼더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수다. 경기가 열리는 날은 덴버에서도 경기를 즐기려고 몰려든다고 한다.
경기장은 문을 닫아놓아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았으나 겨우 스탠드와 운동장 한 귀퉁이만이 얼핏 보일 뿐이었다. 대학 경기인데도 입장권이 10만 원 정도라고 하니 미식축구 인기를 알 것도 같다. 이곳 대학 팀은 1990년에 전국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운동장의 본부석 위에 이를 크게 새겨놓았다. 그 이후로는 아직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소 건물들은 이곳저곳 꽤 많은 곳의 입구 위쪽에 사람 이름을 새겨놓았다.
그 건물을 기증한 사람 이름이라고 한다. 미국은 기부 문화가 발달해서 대학도 상당 부분을 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기부를 하고 그 돈으로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다면 대학과 학생이 동시에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미국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면 사회에 환원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면 자식에게 물려준다. 미국에서는 기부가 일상이 되어 있다.
특히 대학의 경우 상당수 기부자가 자기 모교에 기부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은퇴를 하고나서는 자기 모교 주변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애교심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대학 시절의 낭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들이 대학에서 낭만을 즐길 때 우리는 대학에서 술을 즐기기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술을 즐기다보니 대학 시절이 특별히 기억에 남을 것도 없을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들의 기부 문화가 부럽다. 우리도 한동안 유력 인사들의 대학 기부가 공론화된 적이 있었으나 기부를 자녀의 대학 입학과 연계하는 것은 특혜라는 주장이 워낙 강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우리는 내가 잘 달릴 수 없다면 노력을 해서 잘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달리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서 나와 같이 달리게 하려 애쓴다.
남이 달리는 것을 장하게 여겨 박수를 치는 법이 절대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에서도 개인 경기를 주로 하는 육상이나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진단도 있을 정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 잘 되는 꼴을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요즈음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노동자가 돈을 버는 것은 당연시 되고 기업가가 돈을 버는 것은 해악으로 간주되는 세상이다.
무주택자가 집을 마련하면 장려할 일이고 집을 가진 사람이 다시 집을 넓히고자 하면 지탄을 받는 세상이다. 가진 자가 더 갖는 것은 죄악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걸 평등이라고 여긴다. 우리에게 평등은 능력과는 하등 관계가 없이 모두가 똑같이 가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평등은 산술평균을 지향한다. 따라서 뛰어난 개인은 환영 받지 못한다. 나와 내 편이 하는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선이고 나와 다른 편 사람이 하는 행위는 그것이 무엇이든 악이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둘 중 하나만이 존재한다. 그 둘을 중재할 중간지대가 없다. 그러므로 이전투구는 일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속성이 대학에 기부하는 것은 자녀와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 자녀가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기 때문이란다. 기부를 하려면 공으로 하라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평생 기부를 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 없으니 황새 다리를 뱁새 보폭으로 묶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니 대학들은 학생들의 호주머니와 정부의 돈줄만 쳐다본다. 정부를 쳐다본다는 말은 정부 문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서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속에서 학문을 한다는 말이다. 그걸 학문이라고 해야 할지 항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볼더 대학교 미식축구 경기장 - 문이 닫혀 있어 틈새로 경기장 전면 쪽 스탠드를 찍었다. 10만명 정도 수용규모라고 한다>
모처럼 청명한 하늘을 배경 삼아 이곳저곳 대학 건물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지난번 가본 적이 있는 구내식당 앞을 지났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문을 열지 않았단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한번쯤은 더 가보고 싶은 곳이다. 뷔페식 메뉴는 일류 뷔페식당을 뺨칠 정도였다. 세계 여러 나라의 풍습과 입맛을 고려해서 코너를 구분해서 서로 다른 음식을 내놓았다. 그리고도 우리 돈으로 8천 원 정도라고 했었다.
대학 건물 주변은 어디나 잘 단장된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잔디밭 어디에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잔디에 들어가지 마시오’ 같은 팻말은 없었다. 학생들은 그 잔디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기도 하고 서로 뒹굴며 장난을 치기도 하는 온전히 학생들의 공간이었다. 다람쥐의 공간이었고 이름 모를 새들의 공간이었다. 드물게는 붉은 여우의 공간이었고 사슴의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