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두 명과 교토를 보름간 다녀왔다.
꿈 같은 시간이었다.
일본은 열 번 정도 간 적이 있다.
도쿄도, 삿포로, 오사카, 후쿠오카, 나라까지도 다녀왔었지만 교토에 비하면 다른 도시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교토에 있어도 교토가 그립다. 소쩍새 울음소리''
라는 시인의 말처럼 교토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부터 일본여행은 교토만 갈거다.
오래된 상점,
한적한 골목길,
퇴색되고 풍화되고, 끊임없이 잔손보고 가꾼 적산가옥.
한 세월을 그곳에서 살며 일군 태연한 솜씨들.
그런 것만 봐도 1년이 짧을 것만 같은 도시가 교토다.
쥐띠여자 세 명이 보름동안 떠난 자유여행.
자유부인들.
우리는 눈만 뜨면 배낭 하나 둘러메고 산책하듯 숙소를 나왔다.
물론 남편에게는 자유시간을 선물로 주고.
하필이면 남편이 이사 날짜를 내가 여행을 가고 난 뒤로 잡아 마음이 쓰였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내가 돌아오면 이사를 하자고 했다.
염려 붙들어 매고 여행이나 잘 갔다 오란다.
포장이사기 때문에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한다고.
그런데 웬걸?
여행에서 돌아와보니 군데군데 짐보따리가 널부러져 있다.
내가 못 살아.
100만원도 넘게 준 포장이산데.
옷이 옷장에 걸려 있지 않다.
안방, 작은 방, 큰 방, 건너방 할 것 없이 옷박스들이 널려 있다.
거실이며 주방은 더 가관이다.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어차피 계절 바뀐 옷은 내가 정리할거고, 주방짐도 내가 편하도록 정리해야 하니까 이삿짐 센터 사람들에게 그대로 짐만 두고 가시라고 했단다.
내 참 어이가 없다.
남자들이란 이렇다.
옷을 옷걸이에만 걸어놓아도 이리저리 옮기기 편할 텐데.
팔에 힘도 없는데 질질 끌고 다니면서 어느 세월에 정리를 다 하겠냐고.
이번주는 하와이로 신혼여행 떠난 5학년 선생님 대타로 1주일간 기간제도 나가는데.
오늘 드디어 인평초 5학년 1반 기간제를 끝냈다.
내일은 남편과 새벽 비행기로 하노이를 갈거다.
이삿짐 정리는 에라 모르겠다.
세월이 가면 어느 때고 정리가 되겠지 뭐.
하노이의 하롱베이를 여행하고, 열차를 타고 베트남 남부까지 내려가는 제법 긴 여행을 할 것이다.
다낭도 호치민도 몇 번씩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처음 가는 북부 하노이에서 남부 호치민 까지 연결지어 가 볼 생각이다.
그것도 멋진 열차를 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풍광도 실컷 보고.
그러고 나서 5월 20일 부터는 유영초에서 출산과 육아휴직을 하는 선생님 대타로 1학년 기간제를 할 것이다.
기간이 너무나 길어서 안하려고 했는데 1학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승락했다.
고 귀여운 1학년이라니!
애들과 2월까지 재미있게 살아야지.
유영초에는 언제나 내게 친절한 정봉모교감도 있고, 무엇보다도 착하고 볼수록 매력덩어리인 광숙이랑 동학년이란다.
학년은 다르지만 중성적인 매력 뿜뿜 인 박재우도 있고, 싹싹하고 여자여자한 문화예술부장 선화도 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순수의 시대 1학년들을 데리고 잘 놀아야지.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