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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 진화론의 의미
Q7 홍수 후 바닷물의 침습에 의한 육지토양의 염분농도는 식물이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까?
바닷물이 물러간 후 육지표면은 소금이 남아있어 식물이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17,8세기부터 이성주의자들이 성경을 비판할 때 사용하던 주장이다. 그러나 바닷물이 물러가면서 남긴 소금은 빗물에 의해서도 쉽게 용해되어 제거되며, 관개용수로 사용된 물에 의해서도 쉽게 제거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는 한 번의 강한 비에도 소금농도가 극적으로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홍수 후 지구의 곳곳은 바닷물의 급격한 후퇴로 인한 침식으로 수로와 계곡들이 잘 발달되어 있었을 것임으로 빗물에 의한 염분의 세척은 매우 신속히 일어났을 것이다. 바닷물이 물러간 후 수일에서 수주 후에는 육지의 대부분에서 염분은 제거되었을 것이고, 염분에 민감한 식물들까지도 쉽게 발아하고 자라기 시작하였을 것이다(24)
Q8 화분을 필요로 하는 식물의 경우 화분 시킬 곤충이 없는데 어떻게 번성하였습니까?
곤충매개식물(entomophilous plants)은 곤충에 의해서 번식하는 식물로서, 성경비판자들은 이들 식물들이 홍수후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나는 홍수 직후에는 곤충들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곤충매개식물은 종자를 퍼트리는데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먼저 곤충들을 생각해보자.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곤충들은 방주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곤충들의 수는 홍수말기에는 매우 증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들이 자라 처음으로 꽃을 피울 때쯤에서는 곤충들은 상당한 숫자로 불어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곤충매개식물들은 자가수분이나 바람에 의한 수분으로도 충분히 번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몇몇 연구자들은 식물의 꽃에 곤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을 씌운 후 관찰한 결과 곤충 없이도 수분이 이루어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곤충매개식물의 대부분은 곤충 없이도 씨를 퍼뜨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곤충들이 매개할 때보다는 수분율이 떨어지지만 멸종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하는 식물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소진화에 의해 종 내에서 변형된 식물일 것이다.(25)
Q9 홍수 후 황량한 세계에서 동물들은 먹이를 어디서 구했습니까?
어떻게 황폐화된 서식지에서 많은 종들이 살아남았을까? 홍수는 대부분의 종들이 생존에 필요로 하는 식량과 서식처를 파괴했을 것이다. 방주에서 내린 동물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방주에서 나온 육식동물들은 방주에서 내린 다른 동물 외에는 먹이가 없었을까? 이러한 생각들은 홍수 후 방주에 약간 남아있을 먹이 외에는 육지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홍수 후에도 먹을 것이 있었던 것이다.
1) 먼저 홍수 뒤에 남겨진 쓰레기들이다. 나무의 껍질들은 토끼, 코끼리, 호저(porcupine) 등에게 임시적인 좋은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2) 그리고 빠르게 자라난 풀들이다. 창세기 8장에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후 10월 1일에는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고, 40일 후에는 까마귀를 보내고, 다시 7일 후에(11월 17일) 비둘기가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왔으며, 홍수 다음해 1월1일에 물이 걷히고,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람 새 잎사귀가 난 후부터 100일 후에, 물이 걷히고 57일 후에 노아와 동물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씨앗으로 살아남은, 빠르게 자라는 풀들은 이 기간동안 충분히 발아하여 잎사귀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3) 또 다른 먹이는 해초(seaweed)들이다. 홍수기간동안 해초들은 광대한 지역에 번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소, 코끼리, 토끼 등은 해초를 잘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소, 말, 여우, 곰 등도 해초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아이슬란드의 양은 눈이 많은 겨울의 4달을 해초만을 먹고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버섯류도 좋은 식량이 되었을 것이며, 5) 파묻혀진 죽은 동물의 사체들도 식량이 되었을 수 있다.
6) 상당기간동안 매우 중요한 먹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수생생물들이다. 홍수기간동안 전 지구의 물고기의 종 수는 감소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몇몇 종은 홍수 후 바다에 영양물질들이 풍부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숫자로 증가하였을 것이다. 또한 바닷물이 후퇴하면서 어떤 지역은 물이 갇혀 작거나 큰 호수를 이루다가 말라가면서 많은 물고기들을 남겼을 것이고, 이러한 지역에서는 많은 수생식물들과 죽어 가는 많은 물고기들을 먹이로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자, 하이에나,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이나, 매, 갈매기와 같은 각종 조류, 설치류, 파충류 등은 이러한 풍부한 물고기들을 먹으며 어쩌면 먹이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여유롭게 번식해 갔을지도 모른다.(26)
Q10 홍수 후 첫 번째 먹이사슬(food chain)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습니까?
홍수에 의해서 동식물의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생존하여 살아남은 동식물들은 주변에 경쟁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하였을 것이다. 특히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 중에서 곤충과 벌레들과 설치류들은 빠른 시간 내에 현저하게 증가했을 것이며, 이러한 동물들은 홍수 후 첫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에 비해 덩치가 큰 동물들의 개체 수는 천천히 증가하였을 것인데, 이것은 생태학적으로 먹이사슬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홍수 후에 떠다니는 많은 쓰레기나 나무 부스러기들은 곤충들이 알을 까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썩어 가는 동물의 사체들이나 채소, 해초 등에 파리는 많은 알들을 낳았을 것이다. 증식하는데 장애물이 없다면 1㎎의 작은 곤충의 알들은 6개월 후에는 1,200억배로 증식할 수 있으며, 300마리의 개미도 1년 안에 수십억 마리로 증식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홍수 후 초기부터 곤충들은 이미 상당수에 도달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은 충분히 먹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우, 야생돼지, 호랑이, 사자, 곰, 늑대 등은 곤충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땅속에서 사는 벌레(earthworm)들은 홍수에서도 어느 정도는 살아 남을 수 있다. 비 온 후에 길가에서 흔히 관찰되는 지렁이 같은 벌레들은 1년 동안 침수된 진흙에서도 살아남았으며, 물속에서도 수주 이상 살 수 있었고, 이들의 낭(capsules)은 나무뿌리에 묻어 수천 km의 바다를 건너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이 보고되어 있다. 물의 온도가 10℃ 이하인 지역에서 이들의 낭은 휴면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살아남은 땅속벌레들은 홍수가 물러가는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것이다.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조건의 1/4 수준만 되어도 earthworm 1000마리는 6개월 후에 73,000마리, 1년 후에 883,000마리로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대부분의 조류는 벌레를 먹으며, 뱀도 그렇고, 많은 육식성 포유동물들 예를 들어 여우, 오소리, 족제비, 너구리, 주머니쥐 등도 벌레를 즐겨 먹거나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땅속에 사는 벌레들은 홍수 후 먹이사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설치류(rodents)의 경우 그들의 증식율은 믿기 어려운 정도인데, 방해하는 경쟁자가 없을 경우 한 쌍의 쥐는 1년 만에 15,000마리로 증식할 수 있으며, 야생의 경우에서도 10개월에 2,557마리로 늘어남이 보고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의 번식은 홍수 후 땅에 먹이가 되는 벌레나 곤충들이 풍부하였다면 더욱 가속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수주에서 수개월후면 설치류들은 땅에 매우 흔하게 존재하여 육식동물들의 훌륭한 먹이감이 되었을 것이다.(27)
Q11 동물들은 대홍수 이후 어떻게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이동 분산하게 되었습니까?
남아메리카의 밀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무늘보나 개미핥기 등 빈치류는 느리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먼 근동의 아라랏산으로부터 옮겨올 수 있었을까? 캥거루 같은 유대류들은 오직 호주와 서반구에서만 발견되는데 어떻게 바다를 건너 왔을까?
1) 오늘날 동물들은 대륙과 심지어 광막한 바다를 놀라운 속도로 횡단하며 이동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 1883년 크로카토아 섬의 화산폭발 당시 이 섬에서 서식하던 동물들은 완전히 멸종하였고 수년동안 이 섬에는 아무 것도 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25년이 지난 뒤에는 곤충, 벌레들뿐만이 아니라 각종 조류, 파충류들 심지어 소수의 포유동물까지 놀랍도록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많은 생물들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건너 왔던 것이다.
2) 과거의 대륙은 바다에 의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많은 진화론적 고고학자들도 과거에 베링해협이 육지로 되어 있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연결되어 있었고, 이 육교(陸橋)를 통해 사람과 동물들이 이동하였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사실 진화론자들은 대륙이동설이 유행하기 전까지 빙하기에 많은 물들이 얼음으로 갇혀 있어서 해수면은 낮았을 것이며, 따라서 유럽에서 여러 대륙 심지어 호주까지도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믿어 왔고 가르쳐 왔다. 사람들은 캥거루와 같은 유대동물(marsupials)들은 호주에서만 발견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캥거루는 호주에서 독특하게 진화됐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대동물들이 미대륙에서 발견되고, 화석은 유럽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최근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오리너구리 이빨 화석의 발견은 과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는데, 이들 유대동물들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같이 진화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호주와 남아메리카도 과거에는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3) 창조과학자들은 대부분 홍수 후 한번의 빙하기가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상당기간동안 대륙은 연결되어 있어서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수 후 대륙이 나뉘어졌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벨렉이 태어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 Two sons were born to Eber: One was named Peleg, because in his time the earth was divided ~" 창10:25). 이 시점은 홍수 후 백여년이 지난 시기여서 대륙이 바다로 나뉘어지기 전에 동물들은 충분히 분산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4) 또 하나의 중요한 분산 방법은 사람에 의해서 일 수 있다. 호주 개척 초기에 이주민들은 몇 마리의 토끼들을 가지고 갔다. 그러나 지금은 호주 대륙 끝에서도 야생의 토끼들을 볼 수 있다. "캥거루는 방주에서 내려서 호주까지 계속 깡충깡충 뛰어갔는가?" 가끔 이러한 비아냥거리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캥거루는 뛰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배의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하게 호주대륙에 도착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Q12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가능합니까?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많은 예에서 보고되고 있다. 호주대륙으로 전해진 많은 새들은 한 쌍으로부터 출발했고, 하와이군도에 전해진 Laysan Finch 새도 한 쌍으로부터 번식되었으며, 호주 빅토리아 지역에 전해진 미국산 밤색다람쥐(American Gray Squirrel), 하와이에 전해진 rock wallaby,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밸리아릭 섬에 전해진 토끼, 19세기 호주에 전해진 토끼, 바하마에 전해진 아메리카너구리(raccoons), French Ⅰ섬에 전해진 코알라, 캘리포니아에 전해진 고라니(elk),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양(sheep), 마우리티우스 섬에 전해진 짧은 꼬리원숭이(macaques) 등은 모두 한 쌍으로 오늘날의 숫자로 늘어났다. 또한 한 쌍은 아니지만 소수의 동물로 늘어난 예는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순록(reindeer), 유럽에 전해진 미국산 사향뒤쥐(muskrat), 남아메리카 광대한 초원에 살게된 유럽산 말들, 남아프리카에 전해진 여러 종류의 유럽지역 새들, 유럽에 전해진 중국산 꿩(pheasants) 등 많은 수의 동물들이 한 쌍 또는 소수에서 오늘날의 숫자로 번식하였던 것이다.(28)
Q13 떼로 모여 사는 동물인 경우 번식하기에 한 쌍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군집으로 모여 사는 동물들은 한 쌍만 있을 경우 번식할 수 없고 멸종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먼저 떼로 군집을 이루어 모여 사는 습성이 오늘날과 같이 과거에도 동일했는지를 알 수 없다. 바다새에서와 같이 떼로 사는 습성은 방주생활에서 생겨난 습성일 수 있다. 또 하나 바다사자나 다람쥐원숭이 같이 군집으로 사는 동물들 중 많은 수가 수태율은 좀 떨어지지만 동물원 등에서 한 쌍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군집을 이루는 새들중 많은 수가 독립된 한 쌍으로도 번식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음을 여러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동물들의 군집 크기도 같은 종 내에도 다양한데, 홍학의 어떤 군집은 수천 마리씩으로 집단 서식하나, 어떤 군집은 10쌍 보다도 적은 수가 모여 산다. 펠리칸은 6마리 보다 적은 수에서도 후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보고되었다. 군집생활은 홍수이후에 생겨난 습성일 가능성이 크며, 방주 내에서나 방주 밖에서 동물들이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없다.(29)
Q14 병원균과 같은 미생물들은 어떻게 살아 남았습니까? 노아의 식구들이 각종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홍수 시에 모두 사라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노아의 홍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균들이 오늘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 8명에 감염이 일어났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홍수와 함께 사라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아의 8식구는 콜레라, 티푸스, 소아마비, 결핵, 나병 등 온갖 질병의 병원균을 가지고 있었어야 하며, 심지어 매독, 임질 등의 성병과 회충, 요충 등의 각종 기생충, 에이즈 바이러스 등도 보유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정말 노아의 식구 8명에게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러한 질병은 전해질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주장들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병원균들이 사람에게서만 감염을 일으키고, 사람에서 사람으로만 전염되며, 홍수전과 오늘날의 병원균이 수천년 동안 전혀 변형되지 않고 동일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유효한 주장이다. 먼저 방주 안에는 영장류만도 400여종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들이 증상을 나타내지 않고 사람의 감염병 균들을 보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기생하는 촌충과 같은 기생충은 중간숙주인 돼지나 소와 같은 여러 동물에 무증상으로 존재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 감염병의 80% 이상이 동물로부터 전염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기생충들은 한 숙주에게만 기생하지 않으며, 병원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specialization)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를 감염시킨 결핵균은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는데, 나중에는 사람만 감염을 일으키는 종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많은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이 보유하고 있던 균들이 변형되어 훗날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한 숙주에만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많은 균들이 실제 다른 종에도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개의 디스템퍼는 고양이에게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최근에는 변형이 일어나 사자에게도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균들은 짧은 기간 내에 변형이 일어나 감염 방법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밝혀졌는데, 어떤 바이러스들은 원래의 숙주에서 다른 동물로 옮겨가면서 맹독성이 증가되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기생충인 선충류는 소진화의 결과 단지 3년만에 숙주를 완전히 바꾸어 나중에는 원래의 숙주에 기생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도 최근에 영장류로부터 변형되어 발생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매독은 인도마마(yaws)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진화론을 믿는 연구자들도 사람 질병의 대부분이 수백만 년의 인류역사 중 단지 마지막 수천 년 동안에 발생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병원균과 기생충들이 방주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도 있다. 먼저 병원균이 매개 곤충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말라리아의 경우 모기 몸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시체 속에서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홍수가 끝난 후 초기에는 식량의 부족으로 죽은 사체들을 파내서 먹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포나 내생포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 파상풍균이나 탄저균은 아포를 형성하여 상당기간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건조 상태로 살아남을 수 있다. 박쥐에 감염을 일으키는 rabies 바이러스는 공기 중 먼지로 날아다니다 동굴탐험가에게 감염되곤 한다. 마지막으로 극지방에 동결로 살아남을 수 있다. 시베리아의 매머드와 같이 병원성 미생물들에게도 갑작스런 동결이 일어났다가 추후에 해동되면서 동물에 접촉이 일어났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식구들이 수많은 질병을 앓고 있지 않았다면 병원균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과장에 의한 오해이다.(30)
Q15 고대문명들은 다같이 홍수 설화를 가지고 있다는데, 이는 노아 홍수를 의미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대격변적 대홍수에 대한 기억이 지구상 대부분 민족들의 신화나 전설 속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대홍수 전설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지방뿐 아니라 이집트의 경전, 인도 산스크리트의 고어, 태평양 여러 민족들의 민담, 남 북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뉴질랜드 원주민, 유럽의 토착민들의 전설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신화는 어떤 과학적 가치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인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신화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습고 불합리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앗시리아인들과 바벨로니아인들은 여러 개의 홍수전설을 가졌었고, 그 중 길가메쉬의 서사시는 성경의 기록과 매우 유사하다.【그림2-11 참조】서사시 열한번째 석판에 기록된 이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다른 전설들과 같이 배를 건조해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실으라고 명령받은 한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가축과 야생 짐승들이 그 배로 들어온 후 그 문이 닫혔다. 그 후 번개, 천둥, 지진, 지하수의 분출과 어둠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마침내 그 폭풍이 가라앉고 배가 땅에 닿았다. 그 사람은 한 마리 비둘기와 한 마리 제비 그리고 한 마리 까마귀를 먼저 내보내었다. 그 후 그는 배에서 나와 희생제물을 드렸고, 신들은 그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무지개를 보내주었다."
앗수르어로 기록되어 있는 이 '길가메쉬서사시'의 서판은 열 한번 째 서판으로 1873년 니느웨의 아쉬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되었다. 창세기 기록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유사한 점이 매우 많아 동일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홍수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의하면 모든 중국인들은 대홍수를 극복함으로써 이름을 떨친 옛 선조 "누와" 의 자손이라고 한다. 누와가 성경의 노아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형문자인 한자에서도 노아 홍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배 선(船) 자는 아래와 같이 배 주(舟)와 여덟(八) 명의 사람(口)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방주에 8명이 탔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홍수 홍(洪) 자는 노아의 8식구(八)가 함께 손잡고(共) 치뤄낸 물난리, 계집 여(女) 자는 첫 번째(一) 사람(人)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서( ) 만든 사람, 금할 금(禁) 자는 하나님(示)께서 두 나무(林)에 대해 명하신 것, 탐할 람( ) 자는 두 나무(林)를 바라보는 여자(女)의 마음, 지을 조(造) 자는 흙(土)에 생기( )를 불어넣으니 사람(口)이 되어 걸어다님(造), 서녁 서(西) 자는 최초의(一) 사람(人)이 살던 동산(口)있던 방향 (에덴동산이나 아라랏산은 중국사람들에게는 서쪽이었음), 올 래(來) 자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나무(木)사이에 숨어있던 두 사람(人人)이 나옴...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31) 또한 미국의 인디언들은 무려 58개의 대홍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인디언들이 많이 살았던 미시간 지방 일대에서는 오래된 석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석판 중 5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석판이 있는데 첫 부분에는 일그러진 태양아래 한 노인이 경배하는 모습이 보이며, 둘째 부분은 큰비가 내리고 있으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세 번째 부분은 물위에 떠 있는 큰배가 보이고 40 주야를 나타내는 네모진 40칸이 좌우에 있으며, 나뭇잎을 물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다. 넷째 부분은 둥근 태양과 함께 큰배에서 동물들이 쌍쌍이 내려오고, 네 사람의 남자들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고,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인 무지개를 볼 수 있다. 궁창 위의 물로 인한 빛의 산란으로 태양이 일그러져 보이다가,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둥근 태양이 보인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석판은 노아의 홍수를 매우 정확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레이져(1854~1941)는 북·중·남아메리카의 130개 인디오 종족중 대홍수를 주제로 한 신화를 가지고 있지 않는 종족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고대 멕시코의 티마르포포카 그림문서에는 "하늘이 땅에 다가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산도 물속으로 숨었다. 바위가 땅위에 모든 것을 뒤덮고, 테트존트리(구멍이 많이 난 용암)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끓어오르고 붉은 산이 춤추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과테말라에 사는 인디오인 키체족의 포플부흐 라는 고서에는 "대홍수가 일어났다.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검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어떤 사람들은 지붕으로 기어올라 갔지만 집이 무너져 땅으로 떨어졌다. 또 그들은 나무에 매달렸지만 나무는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린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동굴 속에 피난처를 찾았다. 그러나 동굴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 이리하여 인류는 멸망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마존강의 인디오 전설에는 "어느 날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무서운 소리가 났다. 만물이 암흑 속에 잠긴 뒤에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만물을 휩쓸어 버렸고, 온 세계가 물에 잠겨 버렸다." 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바벨론 설화에서 온 설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홍수 이야기는 이렇게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바벨탑 사건이나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 사건은 전 세계에 설화로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이 사건들은 국지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며, 노아의 홍수만이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 한반도에도 과거 우리 조상이 이주해 살기 전에 사람들이 살았으나, 그 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가 오랜 후에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노아 홍수 이전에 한반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홍수 때문에 다 죽어버려 노아의 후손이 중앙 아시아로부터 바이칼 지방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기까지 한반도에는 아무도 살지를 않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96년 9월 3일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었다. 홍수가 시작하여 온 땅이 물에 잠기자 높은 데로 올라가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두 번째 장면을 주시하자.
Q16 노아의 홍수로 엄청난 퇴적물이 쌓였다면 당시 바닷물은 흙탕물이어서 물고기들이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지구에는 엄청난 퇴적물들이 있는데 이들이 1년여의 홍수로 퇴적되려면 방주는 진흙 수프 위에 떠 있었을 것이고, 물고기들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물이 실제 어떻게 퇴적물을 운반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모든 퇴적물이 홍수기간 철저히 섞여져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퇴적물은 이와 같이 쌓여지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퇴적물을 "basin" 안으로 이동시키고, 이들은 퇴적되어 다시 섞이지 않고 계로부터 독립된다. 그래서 같은 용량의 물이 더 많은 퇴적물을 대륙을 가로지르며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퇴적물들은 대홍수 시 물에 의한 수압으로 다져지기 때문에 재비산없이 연속적으로 퇴적될 수 있는 것이다.(32)
3. 궁창 위의 물과 큰 깊음의 샘
Q1 궁창 위의 물은 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노아 홍수의 시작은 두 가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 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7:11,12)" 즉 큰 깊음의 샘이 터지는 사건과 하늘의 창들이 열리는 사건으로 엄청난 비가 오게되었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는 창조 둘째 날에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하늘)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음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 밖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오늘날 대기권 안에 비를 내리게 하는 구름과는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물층은 거대한 수증기 천장의 형태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수증기로 구성되어 있어 불가시적 이었지만 지구의 기후와 기상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이로 인한 가장 직접적이며 분명한 효과는 지구 표면의 온도를 따뜻하고 균일하게 유지시켜 온화한 기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는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특별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홍수전의 수증기층은 이를 투과하는 태양의 복사 에너지를 대부분 흡수 보유하여, 그 열을 계절적으로나 위도적으로나 오늘날보다 더 균일하게 지구 위에 분배함으로써,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현 대류권의 특징인 위도상 온도차 및 지형에 따라 발생되는 대기의 순환이 억제되었을 것이다. 일정하고 대규모적인 기상전선은 없었을 것이므로, 홍수전의 기후는 따뜻했을 뿐만 아니라 격렬한 폭풍우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수증기는 공기 및 다른 대기권내의 가스보다 대체적으로 더 가볍다.
그러므로 대기권 상부에 한 때 광대한 뜨거운 증기막이 있었다는 가정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또한 대홍수 전에는 비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창세기 2장 5, 6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수증기막의 효과로 인하여 고도가 높아짐에 따른 온도의 감소율도 적었을 것임으로, 증기는 증발된 후 가벼운 안개처럼 재응축되어 이슬로 내리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물의 순환은 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안개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33)
Q2 궁창 위의 물은 어떤 형태였습니까?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대기권에 의해 떠받쳐 있는 수증기 형태의 물로 생각한다. 즉 지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담요와 같은 수증기막 형태로 '수증기 덮개'(water vapor canopy)라고 일컬어지고 있다.【그림2-14 참조】액체상태의 물에 비해 수증기는 훨씬 가볍고 잘 분산되므로 대기권 위에 골고루 떠있을 수 있다. 죠셉 딜로우(J. Dillow) 박사는 얼마나 많은 양의 수증기가 지구 대기권 위에 담요처럼 둘러싼 형태로 떠있을 수 있는 지를 계산했다. 그 결과 액체상태의 물로서 약 12m(40ft) 두께에 해당됨을 알았고, 이만한 양의 물이라면 40주야 동안 폭우를 쏟아지게 하기에 충분한 양임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하늘의 창이 열리다"라는 창세기 7장 11절의 말씀은 이 수증기 덮개가 어느 정도 불안정한 상태로 변한 후 비로 무너져 내렸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화산폭발을 동반한 깊음의 샘들이 터졌을 때 대기 중에 폭발한 화산재가 퍼져나가 수증기막에 이르렀을 것이고, 먼지 입자들이 물방울의 핵생성을 촉진하여 비를 유발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이 수증기덮개에 대한 또 다른 간접적인 증거를 들 수 있다. 그 당시 지구는 이 수증기 차단막의 효과로 온실과 같이 매우 쾌적하고 온화한 기후를 유지했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학자들은 대홍수 이전에는 지금은 얼음으로 덮여 있는 극지방까지도 포함하여 지구 전역에 걸쳐 쾌적한 아열대성 기후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은 지구 전역에 걸쳐서 무성한 식물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며, 실제로 이러한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현재 극지방에서는 자랄 수 없는 식물들을 함유한 석탄층들이 남극대륙에서 발견되는 등 온화한 기후 조건 하에서만 자랄 수 있는 식물화석들이 극지방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와 같이 노아홍수 이전에는 극지방과 적도지방 사이에 온도차가 없고 현재와 같은 높은 산들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기압차가 형성되지 않아 오늘날과 같은 바람의 움직임도 없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오늘날에는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산맥들과 바람들이 주기적으로 대륙에 비를 가져다주는 매우 중요한 원인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홍수 이전에는 다른 방법으로 지상에 물이 공급되었기 때문에 이런 조건들이 필요 없었다. 우리가 창세기 전반부를 읽어 나갈 때 초창기의 족장들은 평균 900세 이상의 아주 긴 수명을 가졌던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오늘날의 평균수명(약 70세) 비교하여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수증기 덮개의 또 다른 역할을 생각하면 이해될 수 있다. 즉, 노화현상에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해로운 우주복사선의 침투로부터 인류를 보호해 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시광선을 포함한 저주파의 빛들은 통과시키고 고주파의 빛들은 차단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제안은 수증기 덮개 아래에 지금보다 더 큰 분압의 산소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부한 산소는 인간과 동물들의 수명을 연장시켰음에 틀림없다. 이런 사실은 호박(amber : 화석이 된 나무의 진) 안에서 포집된 공기방울 속에 오늘날 보다 약 50% 이상의 산소농도가 있음으로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노아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수명이 길었던 사실을 수증기 덮개의 존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노아홍수 사건 이후에 인류의 수명이 급속하게 감소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성경에 표현되어 있는 여러 흥미로운 사실들은 지층에 남아있는 많은 지질학적 현상과 더불어 원시 대기권 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수증기 덮개(차양)라고 간주되는 "궁창 위의 물"(창 1:7)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한 덮개는 기존 온실효과를 증대시켰을 것이므로 지금보다 훨씬 온화한 기후를 전 세계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Q3 궁창 위의 물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이는 과거에 전 지구에 걸쳐 아열대권이 형성되었다는 증거로 증명될 수 있다. 즉 남극에서 화석이 된 활엽수 숲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최고로 큰 버드나무가 2.5m 정도인 시베리아에서 익은 열매와 초록색 잎을 가진 2.7m 크기의 과일나무가 발견되었다. 이는 과거 한때 양 극지방이 아열대권이었다는 증거이다. 또한 북부 시베리아 해안을 따라 알래스카에 이르는 지역에는 약 500만 마리에 달하는 매머드 유해가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매머드들이 급작스럽게 파묻혔다는 증거는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들의 위 속과 입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입안에는 녹색식물, 불루벨(blue bells), 버터컵(buttercups), 사초과의 각종 목초(Sedges), 야생콩 등이 발견되고 있다.【그림2-15】매머드의 멸종은 노아 대홍수사건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Q4 '궁창 위의 물'은 지구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높은 에너지를 갖고 인간의 세포를 파괴해 노화현상을 일으키는 X선과 같은 고주파 방사선을 완전히 차폐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증기층은 저주파를 흡수하고 산란시킴으로써 지구상에 온실효과를 일으켜 전 지구를 통해 27℃ 내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으며, 또한 전 지구에 걸쳐 따뜻한 기후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성경은 초기 지구의 기후에 대해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6)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슬은 바람이 없어야 형성되며, 바람은 기압차에 의해 생기며, 기압차는 온도차에 의해 발생된다. 따라서 안개만 땅에서 올라왔다는 이 구절은 지구상에 온도차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또한 노아 이전에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은 900살 이상 살았는데, 이는 온도의 변화가 없는 아열대 기후와 고주파 방사선의 제거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창세의 생태계를 미루어 볼 때 이해될 수 있다.
노아 홍수 이후 등장한 인물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모세는 120세까지, 다윗은 70세까지 살았다는 사실은 노아홍수 이후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생태계에 변화가 생겨 사람수명이 급격히 감소되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창세의 생태계는 거대한 동물들이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대홍수 이전의 인간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의 뇌의 용적이 현대인보다 크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며, 또한 거대한 동물인 공룡이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점은 대홍수와 연관이 될 수 있다.
창세기 1장에는 창조 둘째 날에 하나님은 궁창(하늘)을 만들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 밖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오늘날 대기권 안에 있어 비를 내리게 하는 구름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홍수 이전에는 무지개도 없었다. 창세기 9장 8-17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다시는 생물을 거대한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언약의 증거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음을 보여준다. 즉, 작은 물방울들로 이루어진 구름에 의해 태양 빛이 프리즘에서와 같이 산란되어 무지개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지개를 통한 언약의 사실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로운 것이며, 따라서 이 땅에 무지개가 나타난 첫 번째 사건임을 확신시켜 준다.
창7:11)절에는 하늘의 창들이 열리기 전에 먼저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엄청난 지하수가 터져 분출하고, 화산들도 폭발하여 발생된 엄청난 화산재가 응결작용을 일으켜 하늘의 창들을 열어 엄청난 강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그림2-16 참조】그런데 현대 과학자들이 인정하듯이 40일간에 내린 비만으로 모든 산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전 지구적인 홍수가 되기 위해서는 해저가 솟아오르거나 대륙이 가라앉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바닷물의 육지 침범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아홍수 때 바닷물이 육지에 침범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먼저 비에 의한 지역적인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갔을 텐데, 성경은 방주가 상류지역인 북쪽의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지구상의 여러 곳에 있는 염호의 존재는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했다는 증거가 된다.
염호인 카스피해와 고비사막에 남아 있는 내지해는 육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 두 문제의 해결점이 바로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사실에 있다. 바다 속에 있는 화산이 폭발함으로써 엄청난 해일이 일어났으며 육지는 가라앉고 바다는 솟아오르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육지에 침범해 들어왔다. 현재 수많은 활화산을 지니고 있는 환태평양 화산대는 그 당시의 화산 폭발에 대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지난 1883년 인도네시아의 쟈바섬과 스마트라섬 사이에 위치해 있는 크로카토아섬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이때 화산재는 27 km 이상의 상공으로 치솟았고, 화산재로 말미암아 하늘이 어두워져서 근처 주민들은 대낮에도 등불을 켜야 했으며, 수천 만톤의 화산재가 3년에 걸쳐 지상에 떨어져 마을과 숲을 덮었다. 화산으로 생긴 해일은 높이가 15 m나 달했으며, 화산폭발 후 6주일 동안이나 전세계적으로 폭우가 계속되었고, 3년간 사진으로 인해 기온이 뚜렷하게 내려갔었다.
Q7 큰 깊음의 샘이란 무엇이며, 대홍수 당시의 물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성경은 노아홍수를 일으킨 많은 물의 근원은 창7:11)절에 언급되어 있는 '큰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 위에 존재했던 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 중 주요 근원은 '하늘의 창들'에 앞서 먼저 언급된 '큰 깊음의 샘'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깊음의 샘'들은 대홍수 기간 동안 150일간을 물을 내보냈고, 반면에 대기권(하늘의 창) 위의 물의 양에는 한계가 있고, 비는 단지 40일간 내렸기 때문이다. 초창기 지구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다만 표면을 적시고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땅으로부터 안개만이 솟아올라 왔던 것이다(창2:5~6). 안개에 대한 히브리 원어의 뜻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안개와 이들이 모아져서 이루어지는 이슬뿐만 아니라, 간헐천(geyser)이나 광천(spring)과 같은 글자 그대로의 샘들을 의미한다. 결국 이 샘들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흘렀던 4개의 강(창 2:10)들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원래의 창조순서에 있어서 이들 샘물의 중요성을 요한계시록 14장 7절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는데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라고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물들의 근원이 샘을 가리킴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깊음의 샘들이 노아홍수 때 150일간의 물 공급의 중요한 근원이었다면, 그들은 광대한 양의 물을 함유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어째든 우리는 대홍수가 시작되었을 때 이 샘들의 분출과 연관하여 땅바닥의 거대한 균열, 즉 지각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지각내부에 압력을 받으며 갇혀있던 물이 갑자기 분출하게 된 것으로 생각되어진다.【그림2-16 참조】또한 오늘날 폭발하는 화산의 90%이상이 물(주로 수증기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과 노아 홍수시대에 퇴적된 것이 분명한 퇴적암층의 화석지층들 사이에 수많은 화산석들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로부터 깊음의 샘들이 일련의 화산폭발과 함께 거대한 양의 물을 방출한 것으로 믿어진다.
Walt Brown은 지하 16 km 깊이에 1.6km 두께로 엄청난 고압의 물층이 갖혀 있었다가 이것이 터져 나오면서 대격변을 일으켰다는 Hydroplate theory를 제안하고 있다.(34) 또 다른 물의 근원은 하늘과 창의 열림이다. 40주야를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는 사실로부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첫 번째 내린 비의 시작이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창 2:5). 이것은 노아가 엄청난 비가 올 것이라고 그렇게 외쳤지만 노아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없었던 이유일 수 있다. 즉 노아가 이렇게 외쳤던 당시 사람들은 비나 지엽적인 홍수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노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비웃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Q8 노아 홍수가 끝나고 난 후 창일했던 물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노아홍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산을 잠기게 한 엄청난 물이 수개월만에 마르려면 태양은 얼마나 뜨거워야하며, 물은 지구 수권 내에서 순환하는데 그 물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라고 하면서 노아의 홍수를 비판한다. 물들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도 육지를 깎아 바다를 메울 경우 지구는 평균 2.4 km 의 바닷물에 잠기게 될 정도로 지구에는 물이 풍부하다. 노아홍수가 끝나고 창일했던 물이 감소하고, 육지가 드러나는데 가장 큰 원인은 물의 증발이 아니라 홍수기간 중 계속된 육지의 융기와 침강 같은 조산운동에 의해서인 것이다. 즉 지층판의 대이동과 지각 변동에 의해 바다는 깊어지고 대륙이 융기함으로서 물이 후퇴하고 육지가 들어 났다는 것이다. 성경 시편104편 6~9절에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암시하는 기록이 있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산이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다는 것은 과학적 용어로 '조산운동'이라 한다. 퇴적층을 관찰해 보면 대홍수가 있은 이후 전세계에 걸쳐 조산운동이 있었음을 지질학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레베스트산에서 물고기 뼈와 대합조개 등의 화석이 발견되는데, 이는 에베레스트 산이 홍수 이전에는 바다로 덮여 있다가 그 후 융기했다는 성경말씀과 일치한다. 또한 창8:1)절에 보면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면 위의 큰바람은 물의 증발을 가속화시켜 물이 감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며,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지고 시작된 급격한 온도 강하는 극지방에 거대한 규모의 강설과 빙하를 초래하여 물의 감소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4. 노아 홍수의 영향
빙하기는 늘 과학 분야에서 풀어야할 과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북부아시아, 북부유럽, 캐나다, 미국의 1/4 지역이 한때 빙하로 덮였었다는 풍부한 증거들은 발견되고 있지만, 그 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구의 냉각, 태양빛의 감소, 화산폭발 등 여러 시나리오들이 제안되어 왔지만 어떠한 것도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빙하기는 육지에 엄청난 양의 얼음층이 만들어진 시기이며, 얼음 층은 눈이 극지방에 과도하게 축적된 후 무게에 의해 다져질 때 만들어진다. 그런데 얼음은 강도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과도히 축적되었을 경우 무게에 의해 낮은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빙하는 지구의 단지 일부분만을 덮고 있는데, 나머지 지역들은 녹아버려 존재할 수가 없다.
오늘날 육지표면의 10%를 차지하는 얼음층은 과거에는 30% 정도 차지했었으며, 엄청난 량의 물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여 해수면을 약 120m 정도 낮추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4번에서 60번까지의 빙하기가 있었으며, 각각은 오랜 기간 지속됐고, 광대한 시간에 의해 나누어진다고 말하여 왔다. 몇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는 주장은 신생빙하 점토 아래에 풍화된 빙하점토가 있다는 것과 두 개의 빙하점토 퇴적물 사이에 온대지방 식물군과 동물군을 함유하고 있는 지층이 발견된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홍수가 있어 빙하퇴적물이 활발히 재형성되고, 빙하층이 짧은 기간 내에 전진 후퇴하면서 빙하 가장자리의 식물군과 동물군을 퇴적시켰을 경우에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빙하기가 여러 번 있었다는 증거들은 희박하며, 오히려 한번의 빙하기가 있었다는 주장들이 다시 강력히 주장되고 있다.
많은 얼음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강설량이 많아야 하며, 내린 눈이 적게 녹아야 한다. 또한 너무 춥다면 공기는 많은 습도를 가질 수 없으며, 결국 많은 강설을 유발할 수 없다. 많은 강설을 위해서는 많은 증발이 필요한데, 이것은 따뜻한 바다일 때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많은 강설을 위해서는 극지방에 춥지 않은 겨울이 필요하며, 바다에서 증발된 습기가 대륙까지 이동될 수 있는 기후상태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수년동안 축적될 수 있도록 추운 여름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가 빙하기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이러한 상태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 동일과정설에 의하면 과거도 오늘날과 동일하였음으로 이러한 빙하기의 조건들과 모순된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노아의 홍수를 빙하기의 열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홍수전의 지구기후는 전체가 온난한 아열대 기후였을 가능성이 크고, 홍수동안 많은 해저 화산활동으로 인해 바닷물은 덮여져, 홍수가 끝났을 즈음 바다는 오늘날보다 따뜻했을 것이다. 이러한 따뜻한 바다는 습기를 대기 중으로 지속적으로 발생시킴으로서 따뜻하고 축축한 겨울을 만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홍수말기에 육지의 표면은 매끈한 진흙 펄과 같아서 태양열을 흡수하지 않고 상당부분을 반사시켜버림으로서 육지의 온도는 바다에 비해 매우 낮았을 것이며, 이러한 바다와 육지간의 상당한 온도차와 극지방의 냉각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폭풍을 유발하여, 바다에서 증발된 습기를 극지방까지 운반하였을 것이다. 또한 홍수기간에 분출된 화산재들은 대기 중에서 태양열을 반사시켜 추운 여름을 유발하였을 것이다. 많은 증발, 따뜻한 겨울, 강력한 폭풍, 추운 여름의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빙하기였던 것이다. 따뜻했던 바다가 식어지고, 화산활동이 감소되어지며, 식물들이 육지를 덮기 시작하면서 빙하기는 사라졌다. 이 기간은 홍수가 끝난 후 천년보다 적은 기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35)
Q2 어떻게 거대한 파충류(공룡)들이 멸종하였습니까?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는 진화론적인 지질연대로 추정할 때 고생대 말엽에 출현하여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 쥬라기를 거쳐 백악기(Cretaceous)와 신생대 제 3기(Tertiary)의 경계인 약 6500만년 전쯤에 급작스럽게 멸종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두 시대의 머리 글자를 따서 C-T경계라고도 한다. 공룡의 멸절은 현대과학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의 하나이다.【그림2-18 참조】그러기에 공룡의 멸절에 대한 가설 또한 다양하게 제시된다. 그런데 근래 가장 관심을 끄는 가설은 C-T경계에서 발견되는 이리듐(Iridium; 어떠한 온도에서도 탄소, 니켈, 유황, 납, 금 등과 반응하지 않고 내산성임. 백금과 합금하여 이화학 기계 제조 등에 쓰임)과 관련된 것이다. 이 C-T경계에서의 퇴적층에서 유난히 고농도의 이리듐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물리학자 알바렛(L. Alvarez)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아들 월터(Walter)가 이끄는 연구팀은 운석에 이리듐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착안, '대운석 충돌의 가설'을 내세워 이리듐을 많이 포함한 대운석의 지구충돌이 지구생물계에 대멸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왜 공룡만 멸종하고 다른 생물들은 살아 남았는가 하는 의문에는 답을 못하고 있지만, 근래 가장 유력하고도 설득력 있는 공룡멸절 이론으로 내세워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오히려 이것이 창조론적인 입장에서 결정된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리듐은 지구의 맨틀에서도 존재하여 화산재에도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C-T경계의 이리듐 퇴적은 과거 심한 화산활동의 결과라고 추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노아홍수 당시를 기록한 창세기 7장 11절의 '하늘의 창들이 열리기' 전에 먼저 '큰 깊음의 샘'(즉 화산폭발 등 큰 지각 변동)이 터졌다는 성경말씀과 잘 일치하는 것이다. 그림2-18에서 보듯 헤엄치는 모습의 이 어룡화석은 아주 완전하여 현미경으로 보면 그 구조의 자잘한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급격한 매몰에 의하여 화석이 형성되었음을 말해주는 자료이다. 즉 홍수와 화산폭발 등 대격변에 의하여 산채로 곧 화석화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림에서 보듯 헤엄치는 모습의 이 어룡 화석은 아주 완전하여 현미경으로 보면 그 구조의 자잘한 부분까지 파악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급격한 매몰에 의하여 화석이 형성되었음을 말해준다. 즉 홍수와 화산폭발 등 대격변에 의하여 산채로 화석화되었음이 분명하다.
Q3 노아의 대홍수에 의해 급격히 화석이 형성되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캐나다의 노바스코티아에서는 수십 수백만년이 걸렸다는 지층을 뚫고 서있는 다지층 나무화석들이 발견되는데, 형체가 남아있는 부분만 해도 3m 이상 되는 아름드리 나무로 큰 홍수가 일어나서 이로 인해 엄청난 퇴적층이 나무를 급격히 뒤덮었음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막 입에 무는 순간에 화석이 된 것도 있다. 이 물고기가 얼마나 급격히 퇴적물에 파묻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의 앨버트에서는 거대한 화산폭발로 한꺼번에 매장된 대규모의 공룡화석 집단이 발견되었는데,【그림2-19 참조】방금 알에서 태어나 눈이 커다랗고 발톱이 나지 않아 마치 개구리 발처럼 보이는 강아지 크기의 새끼공룡들이 알껍데기조각 속에서 생생하게 화석이 된 경우도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 Lompoc 근처 규조토 광산에서 발견된 24~27m 크기의 수염고래(baleen whale) 화석은 기존의 동일과정적 지질학자들을 매우 당혹하게 하였는데, 이 거대한 크기의 고래가 오랜 세월에 화석이 되었다면 뼈들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고래의 완전한 화석으로의 발견은 거대한 홍수에 의해 지층이 급격히 만들어졌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36)
동일과정설에서는 석탄을 구성하는 식물이 자라던 장소인 거대한 민물 습지나 늪지에서 수천, 수만년동안 축적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growth-in-place). 그러나 최근 석탄과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기원은 대홍수와 대격변에 의해 다른 지역에서 이동되어온 동식물의 유기체가 대량적으로 신속히 매몰되면서 압력과 열을 받아 생성되었음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37)
1)몇몇 석탄층은 수십m의 두께로 수백m 폭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넓은 지역의 숲이 빠르게 묻혀야 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숲에서 나무들이 죽은 후 여기저기에 조금씩 묻혀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2)석탄에서는 흔히 물고기, 연체동물, 조개류 등의 바다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바다생물인 Spirorbis (tube worm)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의 석탄식물에 매우 흔하게 부착되어 발견된다. 석탄식물들이 바다 늪지에서 자랐다는 증거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육상식물들이 운송에 의해 바다로 이동되어 혼합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3)석탄화된 나무의 오목한 부분에서 발견되는 물질들은 나무가 있던 원래 장소의 물질이 아닌 것이 많으며, 석탄층 위아래에서 발견되는 점토들도 나무가 자랐던 원래의 토양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4)석탄층은 물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층에서만 발견된다.
5)석탄층의 기본 구성식물(예로 Cordaites, Calamites 등)들은 습지에서는 자라지 못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만 자라는 식물들이다.
6)석탄을 이루는 식물들은 열대 또는 아열대 기후식물인데, 오늘날의 늪지대는 고도가 높은 한랭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또한 열대 또는 아열대 지역은 태양의 증발력이 매우 강렬하여 토탄은 거의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7)석탄층을 뚫고 똑바로 서있는 나무, 지층을 비스듬히 사선으로 통과하고 있는 나무, 거꾸로 뒤집혀 서있는 나무들이 같이 발견된다.
8)석탄식물의 뿌리라고 하는 Stigmaria는 자주 석탄 경계층 아래층서 발견되어 growth-in-place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으나, 나무화석들은 보통 부러져서 조각이 나 있고, 줄기는 거의 붙어있지 않으며, 흐름의 작용에 의해 장축은 잘 정리되어 발견되어지며, 똑바로 선 나무에 의해 관통되어진 채 수평으로 칸칸이 발견되어지는 등 이들이 이동되어 퇴적되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9)종종 석탄층의 옆넓이는 너무도 광대한데 (예로 미국 중부, 동부지역의 석탄층은 10만 평방마일을 넘음), 오늘날 이와 같이 광범위한 늪지대는 없다.
10)만약 석탄형성이 동일과정설에 의해 식물이 자라던 장소에서 축적되어 만들어졌다면, 수천년 동안 이탄축적률과 해수면 상승의 믿을 수 없는 균형이 유지되어야만 한다. 즉 광범위한 지역이 늪지대를 이루어 나무가 축적될 수 있도록 해수면보다는 높았다가, 홍수 시에는 바다물이 흘러 들어올 만큼 낮아야 한다.
만약 석탄 숲이 해수면보다 너무 높다면, 늪과 이탄축적에 필요한 방부 역할을 하는 물은 배수되고 말았을 것이고, 만약 이탄의 축적시기에 바다물이 늪지대를 침습 하였다면, 바다환경은 나무를 죽였을 것이고, 이탄 대신에 다른 침전물이 퇴적되었을 것이다.
11)석탄나무의 토양이라고 생각하는 하반점토(underclay)는 오늘날의 토양과 비슷하지 않으며, 물에 의해 부유된 후 퇴적된(graded bedding) 양상을 보인다. 즉 무겁고 치밀한 물질이 바닥에 나타난다.
12)많은 석탄층들은 하반점토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몇몇 석탄층은 토양으로는 부적합한 화강암, 편암, 역암, 기타 암석층위에 놓여 있다. 또한 하반점토 위에 석탄층이 없는 경우도 많고, 오히려 석탄층 위에 하반점토층이 있는 경우도 흔하다.
13)석탄에는 화성암이나 변성암의 둥근 돌들(boulders)이 뿌리 안에 엉켜서 존재하곤 한다.
14)석탄의 변형은 수백만년 동안의 압력과 열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가온(heating)에 의해서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음이 실험에 의해 입증되었다.
15)석탄은 5~2억년전 고생대에 대부분 형성되었다고 주장되는데, 석탄 속에서 사람이 만든 도구나 물건들이 발굴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400만년 전에 출현했다는 사람의 도구가 석탄층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석탄 속에서 발굴되어진 물건들은 작은 강철입방체, 쇠로 만든 단지, 철기구, 못(nail), 종, 종 모양의 금속용기, 어린이 턱뼈, 사람 두개골, 사람의 어금니, 화석화된 사람발 등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놀라운 것은 남극지방에도 풍부한 석탄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여러 탐험대들은 남극점(South Pole) 근처에서 화석화된 나무줄기와 석탄의 두꺼운 층을 발견하였는데, 어떤 나무는 길이가 7.3 m, 두께가 60cm나 되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무연탄(anthracite)이 0.9~1.2 m 두께로 30여 층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남극지방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따뜻한 환경이었을까? 일년 중 6개월 동안 밤이 지속되는 곳에서 그렇게도 많은 식물이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거대한 홍수에 의해 떠내려온 식물들이 묻혔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또한 석유에는 포피린이라는 물질이 400ppm(0.04%) 정도로 존재하는데, 포피린은 식물의 성분일 뿐만이 아니라, 동물의 혈액 중에서 발견되는 물질로서 그 유도체는 헤모글로빈, 시토크롬, 비타민 B12 등인 것이다. 그런데 이 포피린은 산소가 존재하거나 산화조건하에서는 급격히 분해되어 버리기 때문에 석유의 기원이 되는 물질은 대량적으로 신속하게 매몰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대격변에 의해 동식물의 유기체가 매우 빠르게 퇴적되었음을 증거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38)
Q5 노아 대홍수가 일어났다면 해수면의 수위가 높아졌을 텐데 이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까?
과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1,000개가 넘는 해저 산들의 정상들은 평평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flat-topped seamounts, tablemounts), 이것은 해저 산들이 해저에서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해저의 거대한 협곡들은 육지의 거대한 강에 의해서 만들어진 협곡들과 매우 유사하며, 대륙붕을 지나 멀리 해양 쪽으로 뻗어 있다. 이것들은 육지에서 형성된 후 바다에 잠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미시간대학의 지질학자인 Kenneth Landes는 "광범위한 지역의 해양저(sea floor)가 수 km 밑으로 꺼져 버렸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하였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기사를 인용한 한겨레 97년1월 3일자 기사는 미국 지리학자 윌리엄 리언과 월터 피터먼이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기사화 했다.【그림2-20 참조】이들은 흑해의 퇴적층을 분석한 결과 신석기 시대 말기에 엄청난 규모의 대해일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광활한 인근 농경지가 침수되는 대홍수가 발생했음이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93년 러시아 연구선이 채취한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약 7,500년전 전 세계 대양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순수한 내해였던 흑해로 바닷물이 넘쳐 들어와 오늘날 보스포러스 해협이 생겼으며, 흑해의 수면이 이전보다 무려 150m나 높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연구발표 했다.
97년1월 3일자 신문에는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에 실린 미국 지리학자 윌리엄 리언과 월터 피터먼이 발표한 노아 홍수에 대한 연구보고서 내용을 기사화 했다.
Q6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 어떤 매머드가 어떤 상태에서 발견되었습니까?
1800년이래 최소 10번 이상의 과학적 탐사를 통해 멸종된 매머드의 신선한 시체가 발굴됐다. 가장 신선한 시체는 북극권내에 있는 북쪽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권에 묻혀있었는데, 알래스카에서만 6구가 발견되었다. 몇 개는 완전한 시체로 발견되었으나, 과학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대개 야생동물이 땅에 드러난 시체의 일부분을 먹어버려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곤 하였다. 1977년에 완전한 형체를 지닌 아기 매머드가 발견되었는데, 나이가 6-12개월로 추정되는 디마라 불리는 어린 수컷 매머드였다.【그림2-21 참조】매우 잘 보존된 살찐 몸체는 약간 경사진 산의 표면 1.8m 아래에 있는 얼음덩어리 안에 파묻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