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부르는 유언 두 편 / 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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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유언장을 읽고 나는 울었다. 나는 본디 좀체 울지 않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권정생 유언장의 첫 대목을 읽고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아주 단순한 구절이었다.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이 구절이 왜 나를 울렸는지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이 유언장을 쓸 때 권정생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유언장을 쓸 정도였다. 그 고통 속에서 권정생은 믿을 만한 사람으로 최완택 목사를 떠올렸고, 그가 돼지 죽통에 오줌 싼 사건을 떠올린 것이다. 술에 취해 돼지 죽통에 오줌 좀 싼 게 무슨 대수랴. 그러나 권정생에게는 돼지도 사람과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었다. 돼지에게 미안해서 돼지 죽통에 오줌 싼 것조차 잊지 못하고 권정생은 유언장의 맨 첫머리에 적은 것이다. 그 깊고 순한 마음이 나를 울렸다.
정지아, <작가의 말>, <<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마이디어북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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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한푼 더 보태어 담배를 사려던 그 돈으로 얼음냉수를 한 그릇 사다가 입에 먹여까지 주니 아내도 황송하여 한숨에 들이켠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 하나 더 사다 주랴 물었을 때 이번에 왜떡이 먹고 싶다 하였다. 덕순이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머지 돈으로 떡 세 개를 사다 주고는 그대로 눈물도 씻을 줄 모르고 그걸 오직오직 깨물고 있는 아내를 이윽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왜떡을 입에 문 채 훌쩍휼쩍 울며, “저 사촌형님께 쌀 두 되 꿔다 먹은 거 부대 잊지 말구 갚우.” 하고 부탁할 제 이것이 필연 아내의 유언이라 깨닫고는, “그래 그건 염려 말아!” “그리구 임자 옷은 영근 어머니더러 사정 얘길하구 좀 빨아 달래우.” 하고 이야기를 곧잘 하다가 다시 입을 일그리고 훌쩍훌쩍 우는 것이다.
덕순이는 그 유언이 너무 처량하여 눈에 눈물이 핑 돌아 가지고는 지게를 도로 지고 일어선다. 얼른 갖다 눕히고 죽이라도 한 그릇 얻어다 먹이는 것이 남편의 도릴 게다.
때는 중복, 허리의 쇠뿔도 녹이려는 뜨거운 땡볕이었다.
덕순이는 빗발같이 내려붓는 등골의 땀을 두 손으로 번갈아 훔쳐 가며 끙끙 내려올 제 제 아내는 지게 위에서 그칠 줄 모르는 그 수많은 유언을 차근차근 남기자, 울자 하는 것이다.
김유정, <땡볕>, 현진건, 김유정, <<한국문학전집 5>>, 삼성출판사, 1985, 40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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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저 유언장 대목을 읽자 바로 김유정의 <땡볕> 마지막에 나오는 덕순 아내의 유언이 떠올랐다. 정지아는 책 마지막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자기는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저 구절을 보자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고 얘기한다. 작가의 말대로 “술에 취해 돼지 죽통에 오줌 좀 싼 게 무슨 대수랴.” 더구나 죽음을 앞두고 쓰는 글에 이런 사소한 내용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웃기기까지 하다. <땡볕>의 “저 사촌형님께 쌀 두 되 꿔다 먹은 거 부대 잊지 말구 갚우.”라는 유언도 마찬가지다. 이 서글픈 부탁이 나오기 전의 상황을 알면 독자도 등장인물과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덕순이는, 열석 달째 배가 부른 아내를 지게에 지고 대학병원을 찾는다. 동네 할아버지에게 그 병원에서 이상한 병에 걸리면 연구 삼아서 월급을 주며 고쳐 준다는 소리를 들어서다.
“병이 괴상하면 할수록 혹은 고치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월급이 많다는 것인데 영문 모를 아내의 이 병은 얼마짜리나 되겠는가고 속으로 무척 궁금하였다.”
의사는 “나올랴다 소문이 적어서 그대로 죽었다”는 진단을 내린다. “그냥 둔다면 앞으로 일주일을 못 갈 것이니 불가불 수술을 해야겠으나 또 그 결과가 반드시 좋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매 배를 가르고 아이를 끄내다 만일 사불여의하여 불행을 본다드라도 전혀 관계 없다는 승낙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곧 수술을 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하겠느냐는 간호원의 재촉에 덕순은 병원에서 월급을 주느냐고 묻는다.
““제 병 고쳐 주는데 무슨 월급을 준단 말이오?” 하고 맨망스레도 톡 쏘는 바람에 덕순이는 얼굴이 고만 발개지고 말았다. 팔자를 고치려던 그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졌”다. 아내는 “죽으면 죽었지 배는 안 째”겠다고 해서 병원을 나온다. 지게를 벗어 “아내를 가만히 내려보니 그동안 고생만 시키고 변변히 먹이지도 못하였던 것이 갑자기 후회가 나는 것이다.”
“쇠뿔도 녹이려는 뜨거운 땡볕”(서두에서도 “중복 허리의 뜨거운 땡볕”이라는 말로 배경을 강조해 놓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배경을 잘 처리한 예로 들 만하다.)이라는 극한 상황에 걸맞게 배 속의 아기는 이미 죽었고, 아내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도 아내는 친척에게 꾼 쌀 두 되 갚을 걱정을 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앞에 두고서도 담담할 수 있으면 아주 냉정하거나 아니면 드높은 경지에 이른 독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 이 두 사람의 유언이 이토록 우리를 울릴까? 한마디로, 여리디여린 심성의 소유자에게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다른 존재의 처지를 헤아리는 능력이 있다. 정지아의 말대로 “권정생에게는 돼지도 사람과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었다. 돼지에게 미안해서 돼지 죽통에 오줌 싼 것조차 잊지 못하”는 것이다. 덕순 아내도 비슷하다. 사촌형님이 어디 쌀이 남아돌아서 꿔 줬겠는가. 덕순이네와 똑같이 가난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은혜를 베풀었으니 크게 고마웠을 것이다. 그래서 죽으면서도 남편에게 갚으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도 이들의 마음은 밖으로 향해 있다. 이런 자비심이 사람을 울리는 것이다. 우리 이상에 가까워지면 감동하게 돼 있다.
권정생의 유언장 내용(전체는 아니다. 다른 대목도 정지아 책에 나와 있다.)을 옮기고 이 글을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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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작가가 책을 팔아 버는 돈)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정지아,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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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 되돌려 주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권정생은 성자다.
첫댓글 권정생은 ‘최완택 목사, 정호경 신부, 박연철 변호사가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는 유언과 함께 10억이나 되는 돈을 남긴다. 그는 생전에 “정호경 신부에게 인세로 받은 오천만 원을 주면서 북한에 옥수수를 사서 보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정호경은 “기꺼이 발 벗고 나서 그 심부름을 해주었다.” 권정생은 전교조 인천지부 해직교사들에게는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돈을 부쳐주기도 했고, 2004년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때는 한겨레신문에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6・25 때 월북한 국민학교 때 최○○ 선생님 부인이 이산가족상봉을 갈 때에도, 돈이 없어 약을 먹지 못하던 이웃 노인에게도 선뜻 지갑을 열었다. 크고 작은 돈을 알게 모르게 썼지만 더 많은 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기영, <<작은 사람 권정생>>, 단비, 2014.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6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