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 다녀왔습니다.
가긴 해야 하는데,
가야 하나? 가도 되나? 망설이다가(코로나 때문) 결국 실행에 옮겼던 건데요,
도착하자마자 형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친구집에 가기 위해 나섰지요.
따사롭고 좋은 날이었는데, (장아찌 사업을 하는) 친구 집에 가는 길이 좋았습니다.
그나마 아직은 옛모습이 남아있는 들길을 걸어가는 맛이 특히 좋았답니다. (요즘엔 군산에 가기만 하면 마치 '통관의례'나 되는 것처럼 이 길을 걸어가곤 합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라, 역시 그의 일손을 도우면서 오후를 보냈는데,
일이 끝나자 이 친구,
머리 깎으러 가지! 하면서 앞장서는 걸,
무슨 머리? 했더니,
머리 꺼칠해서 쓰겠어? 나랑 함께 가서 머리 깎고 오자고! 하는 걸,
왜, 남 머리까지 신경 쓰고 난리야? 귀찮어, 안 가겠어! 하면서 거절했는데요,
저녁이 되자 또 다른 친구가 한 잔 하자면서 시내로 나오라는 걸(근 6개월만이라며, 뭔가 격식을 갖춰 한 잔 하자며 어딘가에 '닭 백숙'을 예약하겠다나 뭐래나 하면서), 제가 극구 나가기 싫다며,
차라리 그 쪽에서 시골로 들어오라고 고집을 부렸더니, 어쩔 수 없이(그 자리의 주인공은 저라서) 그가 오는 걸로,
밭에서 채소 좀 뜯어 준비하고 돼지고기를 구워 셋이서 소박하게 막걸리 한 잔을 했답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기본적인 안주도 맛있었고 술 맛도 좋았으니, 그랬으면 됐지요.
물론 오랫동안 얘기하면서 마시느라, 그 친구는 11시가 넘어서야 돌아갔는데요,
그리고 그날 밤은 그 친구 집에서 자고,
다음 날, 그 친구의 비닐하우스('울외 장아찌'를 담아야 해서, 울외 심는 것부터 준비를 해야 해서)에서 일을 돕게 되었는데,
그 날도 날은 좋았는데......
일이 다 끝났는데,
이 친구의 만류와 요청으로 하룻밤 더 자고 가기로 했는데, 저녁에 일꾼을 데려다 주고 돌아온 그가,
이리 나와 봐! 하는데 그 표정이 자못 진지했습니다.
왜? 하고 의아해 하자,
좌우간 나와 봐, 나와 갈 데가 있어! 하기에,
어딜 간다는 거야? 나, 나가기 싫은데...... 하면서, 그냥 간단하게 저녁 먹고 뉴스나 보다가 자지, 뭐...... 하고 안 나가려는데도,
에이, 갈 데가 있어. 나와! 하는데,
저녁 먹으러? 하면서, 왜 집에서 먹지 밖으로 나가 먹으려고 해? 하면서도, 그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아서, 아이, 귀찮게 왜 이 시간에 나가자는 거지? 하면서 하는 수 없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트럭에 올라 '성산'이란 면 사무소에 가게 되었는데,
그가 차를 세우는데 보니 그 옆에 '새로 개업한 식당'이 보이기에,
저녁 먹으려고? 하며 다시 물었더니,
아니, 따라 와 봐! 하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알고 보니 '미용실'이었습니다.
머리 깎게? 하고 제가 묻자,
응, 나도 머리도 깎고 싶고...... 하면서 무작정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 혼자 남아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아이! 왜 머리를 깎으라고 난리야? 하면서, 난, 안 깎을 테니, 혼자서 깎든지 말든지...... 하는 다짐을 하면서, 뒤따라 올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미용실은 그 친구의 먼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곳이라는데, 마침 저녁 때라서 그런지 손님도 없고 우리 둘이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난, 안 깎어! 하는 말까지 하면서 저는 들어갔는데,
오빠, 요즘은 어때요? 하는 등, 자기 친척 여동생과 얘기를 하면서,
일단 커피 한 잔 다오! 하기에,
난, 커피도 안 마셔! 하고 저는 미리 얘기를 했지요. 당연히 커피 두 잔을 타려고 해서였는데,
근데, 왜 머리를 안 깎으려고 해? 꺼칠한 게 보기 싫고만! 하는 친구에게 저는 여전히,
왜, 내 머리 깎는 거까지 신경 쓰고 난리야? 귀찮게시리...... 하며 짜증까지 냈는데,
어쨌거나 커피가 나오자 그가 뜨거운 커피를 입으로 불면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저 커피 마실 때까지 언제 기다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만 있어 봐라! 어차피 서울에 올라가드래도 머리는 깎아야 하는데, 여까지 온 김에 그냥 깎아?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는,
그럼, 저 먼저 깎아 주세요! 이 친구 커피 마시는 사이에. 하는 저였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놀랐고,
제일 간단하게 '바리깡'으로 죽죽 밀어 '스포츠 형'으로 귀가 다 나오도록 짧게 깎아주세요! 하자, 그 여동생이 반가운 듯하면서도 놀라는 눈으로,
안 깎으신다더니...... 하기에,
지금 깎는 게 여러 모로 나을 것 같아서 그래요. 그리고 기왕에 여기에 있는 김에, 그리고 손님도 없으니 금방 깎을 거 아녜요? 하자,
그럼요! 하면서 머리를 깎기 시작했답니다.
물론, 저도 머리를 깎게 될 줄을 몰랐던 순간적인 일이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제 꺼칠하던 머리카락 더미가 뚝뚝 바닥에 떨아지는데,
아이, 시원하다! 하고 제가 소리를 치자,
그렇게 머리를 깎으니까 10 년은 젊어 뵈네! 하며 친구가 웃기에,
무슨? 하는데,
근데, 왜 이렇게 짧게 깎으세요? 하고 그 여동생이 묻기에,
이렇게 짧게 깎아야 오래 가죠. 1 년에 세 번? 정도 깎는데...... 귀 다 나오게 시원하게 깎아주슈! 하며 머리를 깎았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는 참 잘 깎은 것 같드라구요.
어차피 서울에 가서도 이발소에 가야만 했는데,
그러자면 자전거 타고 시간도 내야 하고, 혹시 이발소에 가서도 사람이 많으면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일도 없는 등,
그렇잖아도 귀찮은 일 하나를 해야만 할 어떤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진 순간이기도 해서,
언제든 머리를 이런 식으로만 깎는다면 좋겠다! 하는 생각까지를 하는 저였답니다. 맘 먹은 순간에 바로 순식간에 깎아버리니, 그렇게 쉽고 간편할 수가 없드라구요.
실컷 안 깎는다고 미용실에 들어가서까지도 투덜댔었는데......
다음 날 머리 깎은 모습으로, 부모님 산소에 가는 길(위)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 새벽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첫댓글 이발 잘 하셨습니다.
나도 코로나로 인해 차일피일 하다가 몇 달 만에 이발을 했더니
주변에서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고 다들 좋아했어요.
어제는 고향 친구와 둘이서 고창읍성에 다녀왔는데,
철쭉이 만개했더군요.
작년 이맘때 쯤에는 8순의 수녀님을 모시고 갔었는데.
세월이 무상하군요.
5일까지 고창에 있다가 6일 서울에 가려고요.
장아찌 한 동안 잘 먹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비내리는 일요일 새벽 시골은 정겹기만 합니다.
이제는 머리 깎는 것조차 귀찮으니,
이래서 '늙는다'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