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같이 뭔가를 해 보자고 권해 올 땐 무조건 응하는 게 좋다.
응했을 땐 그건 자기 자신에게 기회로 주어지니까.
그래서 친구들이 벙개로 소풍 가자 하면 소풍 가고, 여행 가자하면 여행 간다.
강남 아파트는 못 살아도 친구 따라 강남 가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병원 근무하는 친구가 주중에 연차를 쓰고 여고 동기 네 명이 신안군 기점소악도를 가자고 했다.
나는 이미 남편과 다녀 와서 굳이 다시 갈 필요는 없었지만 남편이 아니라 친구들 끼리 가는 거니까 무조건 콜!
주간 일기예보가 여행을 가기로 한 수, 목요일이 비가 와서 주말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또 주중이 아니라 주말에 비가 온다고 했다며 다시 주중으로 바꾸라고 했다.
맘씨 좋은 대기점 민박아주머니께 말씀 드리니 언제든 좋은 날에 오라고 하신다.
최종 일기예보를 보고 수요일에 출발했다.
제네시스 풀옵션을 한 친구의 차는 3시간 30분 걸리는 장거리도 편안했다.
음성지원 네비게이션만 빼고.
네비게이션에다 대고 "신안군 송공항"이라고 몇 번이나 말 해도 못 알아 듣는다. 짜증이 난 친구가
"이 망할 년의 가시나가 뭐라쿠노? 우짜라꼬? 오기가 나서 성공할 때 까지 끝까지 해야지."
하지만 결국 친구가 졌다.
음성 대신 문자입력을 해서 갔다.
첫 번째 휴게소에서 엔젤리너스 커피 한 잔과 함께 내가 만든 샌드위치를 하나씩 먹었다. 따끈한 주먹밥도 먹었다.
열체크를 하는 청년 두 명과 커피판매점 아가씨에게도 아침으로 먹으라고 샌드위치를 하나씩 주었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는 정아가 싸 온 과일을 먹었다.
피로감을 덜하게 한다고 명숙이는 인삼분말가루를 각각 생수병에 넣어 주며 수시로 마시라고 한다.
손바닥만한 완도 전복도 쪄서 말려 간식으로 만들어와 한 마리씩 준다.
도라지 정과 한 뿌리, 홍삼정과도 한 뿌리, 귀리 스넥도 준다.
간식의 퀄리티가 너무 높다.
송공항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정자식당에서 낙지볶음을 시켰다. 통영보다 배로 양이 많다. 서해안 낙지라서 그런지 야들야들하고 맛있다.
김국도, 밴댕이 젓갈도, 김장김치도 너무 맛있다.
정아가 네 명의 주민등록증을 거둬 가 표를 타 왔다.
우리는 바닥이 따뜻한 선실에 앉아 정아에게 페파민트 맛사지를 받았다. 나는 왼쪽 어깨가 고장나고, 명숙이는 오른 발 복숭아뼈 있는 곳이 퉁퉁 부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어깨가 덜 아프다.
정아가 한 시간 넘게 배를 타는데도 도선비가 5천 5백원 밖에 안된다며 통영보다 반값이라는 말에 표를 보니 대기점이 아니라 소악도까지 가는 표를 끊었다.
3층 선장실에 가서 배표를 보여 드리며 매표소에서 표를 잘못 끊었다며 돈을 더 드리겠다고 하니 그냥 목적지까지 타고 가라고 하신다.
역시 예쁘고 볼 일이다.
정아의 미인계에 선장님이 넘어가신걸까?
우리는 대기점에 내려 종을 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민박집 노사장님이 마중 나오셨다.
우리는 1,2, 3, 4코스를 보고 민박집에 짐을 풀고 새로난 임도를 따라 해안길을 걸었다.
돌아오니 민박집에는 저녁상이 차려져 있다.
해물된장에 엄나무 순, 둥글레나무 순, 세발나물, 머위대 무침, 감태와 지주식 김에 달래쌈장도 있다.
알타리 무김치는 아예 양푼 채로 주신다.
우리는 상추 쌈을 싸서 밥을 한 솥 다 먹고 누룽지까지 한 그릇씩 먹었다.
배가 너무 부르다며 막 물이 빠진 노둣길을 동네 마실 가듯이 걸어 보자고 해서 걸었다.
내가 만든 파자마바지와 정아가 선물한 파스텔톤의 무지개무늬 라운드면원피스를 입고 돌아 다녔다.
하루 2만보를 걸었다.
샤워를 하고 또 정아에게 차례로 맛사지를 받았다.
하루 종일 깔깔대며 밤까지 놀았다.
정아의 맛사지는 아주 효과만점이어서 우리 모두 정아가 쓰는 페파민트와 레몬오일을 주문했다. 93,000원이면 맛사지 재료 준비 끝!
자고 일어나 또 샤워 하고 맛사지를 받았다.
아침은 사장님께서 연포탕까지 끓여 주셨다.
친구들이 3시간 반이나 걸리지 않으면 민박집 밥 먹으러 오고 싶다고 한다.
기점소악도를 보고 천사대교를 지나 퍼플섬으로 가는 길에 소현이 신랑이 금일봉으로 준 20만원으로 소고기 등심을 먹으러 갔다.
고기가 아주 맛있는 집이었다
우리는 마스크도 똑같이 퍼플색으로 했다.
퍼플섬은 지붕도, 다리도, 꽃도, 퍼플색이다. 심지어 찻잔과 식기류도 모두.
우리는 그야말로 1박 2일을 알차고 재미있게 다녔다.
역시 무조건 친구 따라 강남 가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