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신문에 기고하는 글입니다.
자본독재 내부의 권력투쟁과 총선
1. 선거가 만드는 희망
자본독재 하에서 총선이나 대선을 통해 이루어지는 권력 이동은 노동자민중과 자본권력 사이의 지배관계에 본질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또한 제국주의적 자본독재로 인한 범인류적 파국의 위협을 극복하는 일과도 거리가 멀다. 그래도 선거는 착취와 억압을 조금 완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일시적으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기도 한다. 이 희망은 대개 실망으로 뒤집혀 왔다. 하지만 절망과 공포 혹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아예 변화의 가능성이 틀어막히거나 온 사회가 얼어붙는 것보다는, 정권심판의 고함소리로 거리 한 모퉁이에서라도 시끌벅적한 쪽이 더 낫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희망의 요체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지배체제의 균열들이 가시화되고, 노동자정치운동이 뿌리 내리는 데에 유익한 토양이 조성되는 데에 있다. 민주당과 국힘당은 자본권력의 주요 분파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배의 효율성 및 지속가능성을 놓고 방법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검찰과 언론 카르텔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자본에 복무하느냐, 민주⋅공정⋅성장 등을 내걸고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제국주의의 길을 열어가느냐가 그 차이다. 이 차이는 노동자정치운동에도 무의미하지 않다. 양자의 권력투쟁은 치열할수록, 그래서 그 본색과 한계가 명확해질수록 더 좋다.
2. 억강부약이라는 정치철학
권력투쟁은 국힘당과 민주당 사이에서만 아니라 같은 당 내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동훈과 윤석열 사이의 기싸움은 오랜 서열관계를 볼 때 아직 큰 의미 없어 보인다. 문재인과 이재명 사이의 권력투쟁은 그보다 훨씬 흥미롭다. 문재인은 촛불의 혜택을 누릴 대로 누리고도 개혁에 대한 범국민적 요구를 묵살하여 검찰독재 정권 탄생에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재명의 집권을 막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최선을 다한 것처럼 여겨진다. 윤석열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퇴임하는 문재인의 표정은 즐겁기 그지없었다. 국민은 불행한데 문재인은 너무 행복한 것 같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이재명은 당원들의 지지로 민주당 대표 자리를 차지했지만, 민주당의 주인 행세하는 친문 의원들에게 지난 2년 가까이 세입자 혹은 굴러들어온 돌 취급을 받아왔다. 그의 원내 지위는 목숨을 건 단식에 이은 체포동의안 가결로 드러났다. 그는 400회 가까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악조건과 친문세력의 끝없는 공세를 자신의 실력과 당원들의 전폭적 지지 덕분에 버텨냈고, 공천권을 통해 실질적으로 당권을 장악해가고 있다. 그를 죽이려드는 언론과 정치권의 광범한 적대적 분위기는 억강부약이라는 그의 정치철학을 떠나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당 내외 기득권세력이 참아주기 어려운 공공의 적이다.
3. 조국당과 민주당의 한계
조국은 진보언론만 아니라 보수언론의 압도적 조명발로 순식간에 검찰개혁의 선봉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도 휘하의 검찰을 통제하지 못했다. 윤석열의 문제점을 뻔히 알고도 검찰총장 임명을 막지 않았고, 특수부의 권한을 키워주었다. 속았다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정치적 무능 혹은 사욕의 증거다. 그 스스로 김건희보다 정치력이 모자랐다고 인정했다. 그는 민주당내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기득권세력 혹은 분권을 표방하는 내각제 추진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겠지만, 노동자민중의 삶과 노동자정치운동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이재명 중심의 민주당은 국힘당만 아니라 조국당과도 권력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노동자민중을 상대로 억강부약과 대동세상의 깃발을 흔들어대며 환호를 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 4대강국을 간판으로 내걸고 자본독재권력의 제국주의적 본능에도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의 경제학에 re100과 경제영토의 확장은 있지만, 저개발국들의 저임금노동, 특별잉여가치의 일시성, 불균등발전에 따른 제국주의전쟁의 필연성 개념은 없다. 그는 자본독재 하의 과학기술발전에 따른 무인화⋅자동화가 초래할 대량실업의 고통을 기본소득으로 싸매며 자본독재를 연명하는 데에 앞장설 것이다.
4. 노동자민중의 지상명령
노동자정치운동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표방하는 억강부약을 말 그대로 실현하도록 촉구할 필요 있다. 또 그것이 자본독재의 경제논리와 충돌하며 절충과 양보와 후퇴를 거쳐 무늬만 남게 되는 과정을 가속화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 한계점을 명확히 예측할 수 있는 한, 독자세력화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자본독재 내부의 투쟁으로 해소될 수 없는 근본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대안의 구체화, 그리고 이의 대중화는 운동 성장의 필수조건이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는 선거에서의 당락이나 의석수 혹은 정파적 유불리 문제를 넘어서는 노동자민중의 지상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