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4
지명유래에 담긴 춘천의 정체성 ‘솟음’
<아이야 솟아나라>
“비나이다. 비나이다. 떡두꺼비 같은 자식 하나 점지해 주소서.”
야밤, 그야말로 깜깜한 밤에 솟을뫼 옆에서 한 아낙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여인은 낮에 아이들이 놀다가 무너뜨린 솟을뫼의 흙더미를 원래대로 해 놓고 난 뒤였다. 간절한 여인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을까.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그녀의 희망은 솟을뫼의 영험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 여인은 소원을 이루었다. 삼대독자의 가문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
이 전설은 우리 조상들의 순진무구한 뜻을 담은 심중의 이야기이다. 자식의 점지는 신(神)의 영역이었다. 삼신이든 조상신이든 신이 자식을 점지하고 돌봐 줘야 아들딸을 낳아 대를 이을 수 있었다. 여인이 야밤에 산속에 들어 무덤을 보살피며 기도한 뜻을 알만하다.
<돌부처야 솟아나라>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돌부처야 솟아라.”
어느 스님이 우두산에 올라 소양강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돌부처가 물속에서 솟아 나왔다. 스님은 기쁨에 넘쳐 소양강가로 내려가 돌부처를 보려 하였다. 그러나 돌부처는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 스님은 사흘 밤낮을 돌부처가 솟아나라고 빌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범어(梵語, 인도의 고대어)로 돌부처가 솟아나라고 소리쳤다. 드디어 돌부처는 솟았고, 돌부처의 가호로 시주를 얻어 우두사를 지었다. 강 건너 지내리에서는 밤낮 꽹과리와 북 치며 축하하는 열락(悅樂)의 소리가 울렸다.
이 이야기는 우두사창건에 얽힌 전설이다. 스님의 간절한 기도가 이뤄졌고, 그 기원을 옆 마을에서 축하했다.
<지관이여 솟아나라>
“네가 다시 여인을 만나거든 푸른 구슬을 삼키고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내려봐라.”
훈장은 학동에게 신신당부했다. 학동은 우두동에 살며 우두산을 넘어 율문리 사랑마을에 있는 서당에 다녔다. 학동이 우두산을 넘을 때마다 어떤 여인이 나타나 푸른 구슬을 학동의 입에 넣었다 자기의 입에 넣었다 하며 입을 맞췄다. 학동은 훈장이 시키는 대로 구슬을 삼키고 하늘을 쳐다보려 했으나 여인이 구슬을 달라고 간질이는 바람에 엎어져 땅만 보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우두산 여우고개에 얽힌 전설이다. 학동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엎어져 천문지리를 통달하지 못하고, 유명한 지관만 되었다. 하늘보다 나은 춘천 땅의 소중함을 일컫는 전설이다.
춘천의 우두산(牛頭山)은 하늘소가 강을 건너는 천우도강(天牛渡江)의 천하명당으로 일컫는다. 옛 맥국(貊國) 사람들이 천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렸던 우두산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춘천이 가진 최고의 명산에는 모두 ‘솟아난다’는 주제어가 깃들어 있다.
춘천(春川)이라는 지명도 한겨울 얼음을 녹이고 흐르는 ‘봄물(내)’이다. 옛 고려의 서울 개경에서 정동 쪽에 있는 고을이라 하여 춘주(春州)라 불렀던 땅이다. 그 때문일까. 춘천의 강도 모두 ‘솟음’이다. 소양강(昭陽江), 신연강(新淵江), 자양강(紫陽江), 모진강(母津江)처럼 솟아난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이처럼 춘천인은 아무리 힘들어도 솟아나는 힘을 가졌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의 기상을 가진 사람들이 춘천사람들이다. ‘솟음’은 춘천의 진정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