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연휴 (2025년 1월 28일~29일) 일기
<설을 맞으며>
올해 설은 29일(수)이다 보니 국가에서 27일(월)을 특별휴가일로 정하는 바람에 25일(토)부터 30일(목)까지 잇달아 6일을 쉴 수 있다. 황금연휴인 만큼 해외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도 많다.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 벌컥거려지는 심장을 추슬리며 이 주전부터, 형제, 친지들에게 명절 선물을 보냈다. 올해는 큰집 조카 부부가 꼬맹이들 어학연수를 위해 필리핀에 가서 2월 말에나 돌아온다며 미리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그 집을 뺀 17집에 택배(안심 쇠고기)를 사 보냈다. 우리는 설 하루 전날 서울 형님 댁에 설 쇠러 갔는데 올해는 귀경길 폭설 예보 때문에 차를 몰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차표를 찾아보니 28일 새벽 6시 38분 차와 29일(설) 10시 38분 차편뿐이다. 그 차표를 예매해서 28일 새벽 2시에 눈이 떠져 글 좀 쓰다가 5시에 대곡역으로 나가 지하철을 탔다. 동대구역에 내리니 우리 집 쪽에서는 못 본 눈이 역 광장 바닥에 한 겹 깔려있다. 30분 일찍 도착한 터라 둘러보니 <근대 골목 단팥빵>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야, 내가 좋아하는 단팥빵이다.’ 달려가니 따끈따끈한 빵을 막 꺼내어 봉투에 하나씩 담으며 포장을 하고 있다. 하나(2500원) 사서 남편과 반쪽씩 나누어 베어 물었다. ‘야, 내 평생 이렇게 따끈따끈한 빵을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단팥의 달달한 맛도 좋지만, 그 따끈따끈한 온기 맛이 일품이다.
<광희네 집-서울행 입성>25년 1월 28일
수서행 기차가 정시에 와서 올라탔다. 손전화기에 담아온 판타지 동화 쓰던 것을 꺼내어 읽으며 구상하다 보니 잠이 왔다. 기차는 2시간을 달려 수서역에 도착했다. 광희가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와 있었다. 올림픽 공원 근처를 지나면서 광희가 ‘저기가 상우 아지아 식당이에요.’하며 가르쳐 준다. 밖에서만 봐도 고급스러운데, 지금은 저 식당을 밑에 일하던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 외 식당만 해도 몇 개가 된단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허술한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는 건축 전문가로 소개되던 상우 도련님이 변신을 아주 잘한 모양이다. 상우가 대구에서 대학 다닐 때 우리 집에서 일 년간 신세 진 일을 기억하고 광희네 식구를 불러 식사 대접도 몇 번 해주더란다.
“봐라, 베푼 사람은 잊어버려도 신세 진 사람은 기억하고 있잖아.”
우리 부부가 베푼 친절을 내 아들한테 갚고 싶어 하는 상우 도련님의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8시 40분이라 근처 식당에 들어가 따스한 뚝배기에 나오는 한식을 호호 불며 한 그릇씩 먹고, 올림픽 공원 단지 아파트(이번에 이사 온 집)로 갔다. 처음 이사 한다고 했을 때, 내심 ‘집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나쁜 인물을 만나면 평생 모은 돈을 다 털려 마음 고생할 수도 있는데‘하는 걱정까지 했다. 하지만 이사 들어올 사람도 같은 회사 옆자리 사람이고, 이사 갈 주인도 같은 올림픽아파트 더 큰 평수로 이사 간다는 말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게다가 새아기가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갖추고 있던 터라 서로 부동산 소개비도 절약되었다는 말에 ‘역시 똑똑한 우리 새아기야!’싶어 자랑스러웠다.
‘그래도 새집 사서 들어가면 좋을 텐데, 재개발될 아파트를 사다니….’
집 살 때, 20억 8천만 원이라 집 판 돈 14억을 보태어도 모자라서 7억은 대출 내어 보태었단다. 부모로서 좀 보태주지 못해 맘 아프고 미안하고 속상했는데 아파트 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온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윤서는 올해 육 학년이 되는데 볼 때마다 키가 커진다. 다음번에 볼 때면 나를 내려다볼 것 같다. 새아기는 지난 금요일부터 A형 독감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있다. 거실에 놓여있는 소파에 앉으니 건너편 방문도 심플해서 곧 방문을 열고 간호사가 나와서 ‘박경선 손님 들어오세요.’ 호명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혼자 ‘킥킥킥’ 웃어보았다.
“새아기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미덥고 안심이 되더라.”
며 보고 웃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새아기야. 그래. 너 실력으로 얼마나 절약했어? 그 돈 내가 상금으로 넣어줄게.’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미숙 고모(우림이 어릴 때 키워준 고모)가 이번에 로봇 수술할 때 좀 보태주느라, 내 팔 다치고 50만 원 드는 MRI를 찍어보자는 병원비도 부담스러워 도망쳐 나와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였다. 점심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새아기는 독감 관리 잘하라고 집에 두고, 우리끼리 남한산성 형님 댁으로 출발했다.
<형님 댁-남한산성 입성>
“경아가 이렇게 빠질 줄 알았으면 형아가 와도 다섯 명이 탈 수 있었는데….”
광희는 자기 차 빈자리에 형을 못 태워 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광희 차로 이동할 때 인원이 다섯 명이 넘어 자기가 빠지겠다고 스스로 집에 남은 형이라 광희도 마음이 좀 아팠나 보다. (그러잖아도 우림이는 동대구역까지라도 따라오고 싶어 했다,)
남한산성 형님 댁이 가까워질수록 설국을 보러가는 기분이다. 온통 하얀 배경 세상, 가는 길만 겨우 눈이 치워져 있는 세상 속을 기어서 가 형님 댁에 도착하니 마당에도 눈을 한가득 받아두었다. 아침에 한 차례 쓸었는데 또 눈이 쌓인다면서 먼저 도착한 남자들은 눈 쓸기 작업에 몰두하고 있였다. 평소 같으면 저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을 텐데. 고기 구워 먹던 바비큐 그릴 두 개가 눈 모자를 쓴 도토리 두 알로 서서 ‘어서 오세요. 우린 이렇게도 잘 놀아요.’ 하며 맞아주어 ‘호호호!’ 웃음이 났다. 광희가 사 온 과일 세트 선물과 내가 얻어서(윤서 외할머니가 보내온 선물) 가져온 마른 버섯 세트 선물을 현관에 부려놓고, 부엌에 들어서니 먼저 온 사촌 질부들이 상차림 일을 거의 다 해놓았다. 나는 ‘별로 할 일이 없군’ 싶어서 2층으로 올라가니 우리가 올 때마다 쓰는 방 방바닥에 이불 한 개를 펼쳐 방의 온기를 따스하게 데워 두었다. ‘아이고 좋구나. 형님 고마워요.’ 하며 잠시 누웠는데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밤새워 작업을 한 터라 자고 일어나니 몸이 좀 개운해졌다. 내려가 어울렸는데 별로 할 일이 없었고, 저녁상을 차리는 것을 보고 이층으로 올라와 광희더러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라고 했다.
“엄마는?”
“경아가 아침 굶듯이 나는 저녁을 안 먹잖아.”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날 동안, 인터넷 ‘밀레의 서재’에 들어가 ‘시간 여행’ 책을 마저 읽다가 내려가니 텔레비전 앞에 모인 사람들이 무슨 트로트 노래 경연을 보며 웃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가수나 가수 지망생들이 노래를 겨루는 무대인데, 춤 발표 무대인지, 끼 발표 무대인지 구분이 안 되는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자정이 되도록 3부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라서 모여 앚아 있다 보니 아주버님은 모처럼 온 동생들과 동생들의 자식들을 위해 분주하게 오가신다.
“저 양반 좀 봐. 동생들한테 뭐 더 먹일 게 없을까 하고 계속 찾아다니고 있네.”
형님 말에 아주버님을 바라보니 정말,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지며 포도주를 내오고, 호두, 쥐포를 꺼내오신다. ‘아차, 나도 오가며 먹으려고 땅콩을 병에 넣어왔지.’ 싶어 여행 가방(형님께 얻은 비싼 가방임) 속에서 땅콩 병을 꺼내와 점심에 쏟아두었다. 형님은 주형이랑 하림이한테 저녁을 찾아줄까 물었다. 고개를 젓더니 나중에 스스로 밥통과 반찬들을 찾아와 밥상 위에 올려놓고 먹는다. 본래 밤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는다며 아까 먹어놓고 또 먹는 먹새가 귀엽다. 이런저런 어울림에 젖어 있는데, 형님은 ‘박경선이 웬일로 일찍 안 자고 이런 프로그램을 다 보노.“ 하며 퉁을 준다. 아까 잠을 푹 자둔 김에 ’좀 놀자‘ 싶어 12시까지 버티다가 자러 갔다.
2025년 1월 29일(음력 1월 1일)
(제사 풍경)
어제 왔다가 집에 자러간 서울 식구들(광희네, 상용이 도련님네. 상백이 도련님네)가 8시에 모두 모였다. 외국 간 집, 독감 걸린 집, 등 유고가 있어 빠진 사람을 제하고 오늘 모인 사람은 18명이었다. 제사상을 차리고 제사를 모실 제관들이 둘러서니 한 방을 가득 채운다. 평소 같으면 마루로 나가 설 일이지만 어제부터 내린 눈이 마룻바닥을 깔고 누워 버티는 바람에 우리는 그 위에 나가 설 엄두를 못 내고 양쪽 방문을 열어 젖혀 두고 방문 앞에 오글오글 모여 서서 제주를 따라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절을 하였다. 그 와중에 나는 해마다 사진 촬영 담당이라, 사진도 찍으며 절을 하였다. 상차람에 들인 시간에 비해 조상이 와서 드시고 가는 시간은 순간이라서 의심이 일었다. ‘귀신이라고는 하지만, 귀신이 과연 이 빠른 순간에 와서 ’휘리릭‘드시고 가셨을까?’ 제사 음식 드시는 동안 좀 더 여유롭게 드시도록 오래 엎드려서 기다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뒤 순서는 형제끼리 둘러서서 새해맞이 절하는 순서였다. 덕담하는 절을 나누고, 아이들 세배를 연차 순서대로 받았다. 광희는 연차 끝이다 보니 집에 가서 윤서 엄마랑 같이 윤서 세배를 받겠다고 해서 그 생각이 좋을 것 같아 절 받기를 마무리했다. 올해 설에는 세뱃돈 줄 사람이 대학생 세 명과 윤서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오시지 못한 작은 아버님 용돈을 상백 도련님 편에 부탁했다.
새배 뒤에 재관들이 먹을 떡국들을 방으로 들였다. 내가 좀 거들려고 끼어들었는데, 조카딸, 조카 아들들이 운집하고 있어 떡국을 방으로 운반하는 일, 설거지하는 일자리도 모두 빼앗겼다. 일자리를 찾아 나선 노인한테 일자리를 아예 양보해 주지 않는 젊은 기운들이야, 내가 늙은이라고 대접하는 처사겠지만, ‘이러다 치매 걸리면 이런 일도 시켜주지 않을 텐데.‘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어 부엌 한쪽 구석에 서서 지켜보고 섰는데 사촌 조카며느리 경숙 씨가 .
“작은 어머님은 방에 가서 먼저 드셔요.”
명령한다. 그래서 형님과 같이 먼저 가서 떡국을 먹자고 해도 형님은 부엌에서 할 일이 많단다. (주인이라고) 나야 할 일 없는 형님 다음 자리 군번이라 하는 수 없어 먼저 방으로 와서 떡국을 먹었다. (아침 겸 점심 겸으로) 떡국을 먹은 재관들이 모두 갈 길을 서둘러 일어나는 바람에 우리도 서둘러 일어섰다.
(다시 광희네 집에 와서)
우리는 광희 차를 타고 광희네 집으로 다시 오면서, 저녁 10시 48분 발로 끊은 기차표 대신, 혹시 그 앞에 기차표가 나와 있는지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저녁 6시 기차표 두 장이 남아 있단다. 하루 전에 예매한 걸 취소하면 10% 위약금 7,400원을 물어야 한단다. 그게 무슨 문제랴? 광희네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 자리씩 띄엄띄엄 떨어져 앉는 좌석 두 장을 찾아 6시에 탈 수 있는 차표를 예약하였다. 마음이 넉넉해졌다. 우리도 빨리 내려가 지하철 탈 수 있는 시간내에 닿을 수 있고, 광희네도 저희끼리 홀가분하게 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점심을 배달 음식으로 시켜 먹고 3시쯤에 집 앞에 있는 올림픽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바람이 차가워서 외투(형님께 얻은 외투) 위에 목과 얼굴을 감싼 목도리(신교장이 선물해 준 목도리)를 뒤집어쓰고 걷는데 라떼(강아지)는 겨울옷을 입혀놓아도 안아보니 바르르 떨었다. 새벽마다 올림픽 공원에 나와 기 체조할 때 라데도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데, 그때마다 라떼를 보던 할머니들이 귀엽다며 자기네 집 강아지가 입다가 작아진 옷도 갖다준단다.(작아서 귀염 받겠지) 내가 목줄을 잡고 가다 보니 덩치가 자기만 한 작은 개가 지나가면 왈왈 짓고, 큰 개가 지나가면 못 본 척하며 딴 길로 접어 들며 ‘난 무서워하는 게 아니야.’ 위장하는 것 같아 웃음이 실실 났다. 나부터도 라떼보다 큰 개가 지나가면 혹시나 라떼한테 다가와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싶어 슬금슬금 피해 가게 된다. 작은 차 타고 가다 큰 차 만나면, 주눅 드는 마음과 같은 심정이랄까? 그래도 라떼는 기분이 좋은지 아침 산책 때 배변 활동을 했다는데도 또 한 번 한쪽 다리를 들고 똥 두 덩이를 뽑아내어 놓는다. 광희는 비닐봉지에 끌어 담으며 귀찮은 기색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강아지를 키울 수 있지. 내가 저네들 키울 때도 그런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키웠는데 그 마음을 알려나? 하긴 윤서 키우며 경험해 보았겠지.
올림픽 공원 들어서는 입구에 엄지손가락 하나가 조각으로 커다랗게 서서 엄지척을 해주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엄지척을 해주는 기분으로 그 앞에 서서 사진 한 컷을 찍었다. 날씨가 차가웠지만 백제 토성 발굴 작업을 하는 곳까지 가보고,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보호수를 배경으로 사진도 한 컷 찍었다. 5시가 가까워져 수서역으로 막바로 가려다가, 윤서랑 사진 한 장 못 찍은 게 아쉬워 광희네 집으로 돌아갔는데 윤서가 자고 있어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나서는데, 광희가 윤서를 깨워 ‘할머니랑 사진 한 장 찍어라’며 내보낸다. ‘잠자는 아이를…. 윤서도 얼마나 귀찮겠어?’ 옆에 앉은 윤서 얼굴도 뽀로통한 얼굴이다. 현주네 손주 라떼는 할머니가 다니러 왔다 갈 때 이별의 슬픔이 커서 얼굴이 빨개지며 울더라는 일기 글을 카톡방에 올려두었던데, 나는 윤서한테 그리 정겨운 할머니가 못 되고 귀찮게 구는 할미가 되어버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손전화기도 내 인격이 미운지 밧데리가 나가버려 깜깜한 화면이다. 밧데리가 얼어서 제로 상태가 되고 보니, 우선, 손전화기에 예매해 둔 기차표를 볼 수 없어 걱정이 앞선다. 광희가 고속 충전용 선을 빌려주는데도 같은 충전용 선을 사용하라는 메시지만 떴다. 광희가 수서역까지 다시 태워주어 5시 40분에 겨우 도착했다. 남편 손전화기에 담긴 기차표로 자리를 확인하고 16호차가 서는 장소로 뛰어갔다. 올라가 자리 앞쪽에 설치되어 있는 콘센트에 손전화기 연결선을 꽂았더니 자기 선을 만나서인지, 고속 충전기처럼 밧데리가 쭈욱쭈욱 충전되었다. 아까 광희 것 빌렸을 때는 자기 본래 선이 아니라서 (젖먹이 아기처럼) 고속 충전용 선이라도 전기 먹기도 거부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밧데리가 얼면 이렇게 0이 되는 수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기차도 7시 34분 도착 예정이 8시 4분에 도착했으니 결빙 상태 날씨에 30분 연착되었다. 우림이는 가족 카톡방에 연착되는 상황을 찍어 올렸다.
[이우림] [오후 7:36] 사진. 7:37] 21분 연착
[이광희] [오후 7:37] 눈 와서 천천히 갔나 보네요
[이우림 [오후 7:46] 아까 21분이였는데 27분으로 늘어남☹️
[이우림 [오후 7:47] 오 말하는 순간 29분으로 또 늘어남
[이광희] [오후 7:47] 밤 10시 차편 보다 일찍 내려가시길 잘 하셨네 ㄷㄷ
[이우림] 그래 너가 마침 빠른 시간에 잘 찾아서 다행이다
[이광희] [오후 7:48] 뭐 기차가 막히고 그러노 ㅎㅎ
※ 이런 문자를 보면서도 우림이가 집에서 역의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는 줄 알았지. 동대구역에 마중 나와 있는 줄은 몰랐다.
[박경선] [오후 8:03] 8시에 도착
가족 카톡방에 문자를 넣고 어제 갈 때 맛본 단팥빵 세 개를 샀다. 우리가 한 개씩 먹고 우림이 것은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우림이가 전화를 했다. 마중 나와 있는데 지금 어디 있냐고? 그랬구나. 아들을 찾아 헤매다 신세계 백화점 통로에서 만났다. 반가워서 가방에 넣어둔 단팥빵을 꺼내어 ‘마침 잘 됐다. 아직 따뜻하니 먹어봐라.’ 며 주었다. 아들은 빵도 저녁도 집에 가서 먹잔다.
이광희] [오후 8:16] 눈길 오가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집에 가셔서 푹 쉬세여~~
[박경선] [오후 8:33] 형아가 역에 마중 나와 만나서 가고 있다. 집에 가서 저녁 먹어야지. 너도 저녁 챙겨 먹어라.
[이광희] [오후 8:38] 네네 저녁 맛나게 드세요~~
우리 가족은 막바로 대곡행 지하철을 탔다. 9시 조금 넘어 도착해서 냉장고 반찬들을 꺼내어 저녁을 먹었다. 1박 2일 동안 광희가 늙은 부모를 잘 모시고 다녀줘서 고마웠지만, 광희네 식구들이 쉬는 날에도 좀 편히 쉬지 못하게 들락거린 점이 좀 미안했다. (41쪽)
설 풍경-=2018년 2월 15일 설 풍경
목요일. 따스한 날씨
<설 전날 풍경>
ㆍ준비 해간 선물 나누기-설 전날이라 9시30분에 서울 큰댁으로 출발하였다. 가다보니 12시라 점심을 먹고 갈 요량으로 남한산성 근처 순두부집을 찾아들어갔다. 이 근처에서 이 집만 장사를 하나보다. 다른 가게들은 휴일이라는 팻말들을 걸어두어 한산한데 이 집만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능이버섯 순두부전골을 25000원 주고 시켜 우림이랑 남편이랑 셋이 먹고 형님댁으로 갔다. 올해는 우리가 제일 꼴찌로 도착했다. 우리가 집집마다 선물로 사간 황태를 여덟 집에 나누었다. (작은 아버님, 아즈버님, 재건, 재웅 삼촌, 원희, 광희, 사촌 시 동생 상백, 상용이) 건이 삼촌은 오지 않고 참기름 두 병을 보내었고 작은 어머님은 들기름 한 병을 가져오셨다. 사촌 시동생 상백이 댁은 카롤라유 4병 든 선물 셋트를 들고 왔다.
ㆍ제사상 음식 준비- 작은 어머님댁 질부 둘이 와서 거들고 우리 새아기도 일찍 와 거들다보니 나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사간 앞치마를 하나씩 입혀주니 선물이라고 좋아했다. 나는 뒷전에 나와 있다가 만두 만드는 데 투입되어 만두를 만들었다. 새아기, 광희, 남편, 아즈버님, 윤서, 하진이, 작은 어머님이 일손을 보태었다. 다른 사람들은 솜씨 없다고 비실비실 피했다. 나도 솜씨 없지만 할 사람이 없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형님은 쇠고기, 돼지고기 간 것, 두부 등을 넣어 최고급 만두 속을 만들어 두셨다. 아즈버님이 만두 피 사온 걸 계산하시더니 380개를 만들었단다. 거기다 모자라 밀가루를 반죽해서 몇 개 더 만들었으니 400 개 정도 만든 것 같다. 삶은 만두를 저녁으로도 먹으니 저녁 한 때 차리는 일을 벌었다. 배추전은 웅이 삼촌과 사촌 시동생 상용이 도련님이 앞치마를 두르고 앉아 참 깐충하고 얌전한 전으로 부쳐낸다. 어머님이 보시면 절로 미소 지을 것만 같다. “아이구, 누가 요로콤 얌전히 부쳤노?”하시며 미쁜 웃음을 살살 흘리실 것만 같다.
ㆍ모임 풍경-작은 아버지, 어머님은 대구 숙모님 안부를 물으신다. 우리가 병원 갔다 온 내용이 궁금하신 듯하다. 치매가 심해 나는 못 알아보고 재진이는 알아보더라는 이야기, 일어서 다니지 못하고 누워만 계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작은 아버님도 한 번 다녀오셔야 할 것 같단다. 윤서는 하진이랑 친구 되어 잘 놓고 아이들은 윗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어른들은 아랫방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올 설에는 평창 올림픽이 때 맞춰 열려 우리나라 금메달 소식을 기다리며 볼 공동의 흥밋거리가 있어 좋다. 우리랑 웅이 삼촌, 작은 아버님, 어머님만 큰집에서 자고 사촌 시동생 상백, 상용식구랑 광희네 식구는 밤 자고 내일 아침 일곱 시에 다시 오기로 하고 갔다. 집이 넓어서 모두 한데 엉겨 자도 좋으련만...
2018년 2월 16일 금요일. 설날
<설날 풍경>
음력 설날이다. 제사 드리기 전에 세배 행사가 있었다. 우리는 백만 원을 신권 5만원짜리 20장으로 바꾸어 갔는데 한 장씩만 나눠줘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원희네 아이 하진, 하림, 웅이 삼촌네 하림, 규림, 주형, 광희 네 윤서, 상백 시동생네 현식, 명재, 상용시동생네 연경. 현재. 아이들만 해도 열 명이라 오십만 원인데 작은 아버님 십만 원. 원희 짝꿍과 광희 짝꿈에게도 주다보니 80만 원이 나갔다.
제사상을 차린다. 늘 형님이 주도해 일을 해서 나는 설 자리가 없다. 설거지조차 내한테 돌아오지 않는다.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동서들과 며느리가 말려서. 내 셩격 상 뒤에 서 있기가 영 심심해서 안 좋다.
아즈버님이 새로 산 제사상 두개를 꺼내온다. 한 가운데가 접도록 되어 있다. 저번에 형님께 내가 대구문학상 상금 탄 돈 50만원을 드리며 제사상을 새로 사든지, 형님 수고비로 쓰시든지 하라고 맡기고 간 돈으로 샀단다. 앞으로 대구문학상과 연관 있는 제사상을 차리게 되었으니 뿌듯하다. 제사상에 음식들을 차리는데 보니 내가 사간 황태를 전 밑에 깔았다. 황태가 이렇게 제사상에도 쓰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선물 품목 선택을 잘 한 것 같다.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낼 때 형님이 나보고 동영상을 찍으라고 하신다. 동영상을 찍으면서 보니 절하고 일어서는 모습들이 영화 촬영을 위한 움직임처럼 보인다. 하하 우습다.
제사상을 거두고 떡국을 끓였다. 어제 만든 만두를 넣어 떡국을 퍼는데 큰방에 차려놓은 세 상에 나눠 앉은 식구가 스무 명이다. 여자들 일곱 명은 부엌일을 하면서 앉아 먹을 자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10시 반이나 되어 떡국을 먹으니 아침 겸 점심 겸 식사다. 떡국을 먹고 어제 만든 만두를 일곱 집에 나눠 담고 헤어졌다.
<광희네 집으로>
우리는 광희네 집으로 왔다. 저녁에 순우가 순나네 집에 가는데 같이 모이자고 전화를 했다. “광희네 집에 왔는 걸?” 했더니 종일 광희네랑 같이 있었느냐고 한다. 하지만 윤서랑 놀아야지 싶어 거절했다. 순나네에 도착했는지 한참 뒤에 순나가 전화 왔다. 내일 내려가는 길에 같이 성지를 가보자고. 우림이가 내일 일찍 내려가서 쉬고 싶어 해서 안 되겠다고 또 거절했다.
저녁은 피자를 시켜 먹었다. 피자 두 판에 56,000원이라는데 맛이 있었다. 광희랑 우림이가 설 쇠라며 우리 부부에게 50만원을 준다. 그걸 받아 우리 돈을 모두 보태어 재분배했다. 광희, 우림, 경아, 사돈 생신이 곧 다가오니 각 20만원씩 축하금으로 주었다. 짱개가 갑자기 너무 떨어 일 당하나 싶어 이불을 덮어주었더니 한참 뒤에 괜찮아진다. 한줌 주먹만한 게 나이가 많단다. 사람만 보면 배를 깔고 드러눕는 모습이 비열하게 삶을 구걸하는 것 같아 서글펐다. ‘안 그래도 되는데 녀석!’ 짖지도 못하고 털도 다 밀고 발발거리며 살면서 음식을 봐도 사람들 상에 덥석 달려들지 않고 눈치를 보는 게 아주 품위 있게 살았다. 윤서도 만화보고 싶다고 엄마에게 제안했는데 공부하고 해야 한다며 거절당하자 구석을 찾아 들어가 숨어 우는 걸 보고 어린 나이에 참 품위 있게 지내는 집안 같았다. 우리 아들 잘 키운 보람을 눈으로 보며 뿌듯해졌다. 광희네 안방 침대에서 우리 부부가 자고 우림이는 침대 밑 매트에서 자기로 했다.
2018년 2월 17일 토요일. 설 다음날
<귀경>
7시 반 쯤 마루에 나갔더니 광희가 아침상을 차려준다. 장모님이 장만해둔 밑반찬에 전에 우리가 사다준 포장곰국을 끓여서 내왔다. 간단하게 차렸는데 집어먹을 게 많다. 아침을 먹으며 “광희야 퇴근 몇 시에 하노?”
물었더니 7시 반 정도 한단다. 그래서 저번에 장모님이 광희네 집에 와서 식모처럼 일한다고 궁시렁거리던 말씀이 생각나서 늘 미안한 생각이 들어 광희한테 부탁했다. “저녁 먹고 나서 윤서랑 놀아주기 전에 잠시 시간 내어 너도 설거지 좀 해레이?”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 다 먹고 나니 윤서 엄마가 일어나고 윤서도 따라 나온다. 우리가 집에 갈 준비를 하면서 윤서한테도 일렀다. “윤서야 할머니가 밥 차려주시면 고맙습니다. 인사 하고 먹으레이.” 했더니 “예!”한다. 어짜든지 사돈어른이 마음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셔야 할 텐데...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고 하니 경아가 전화를 했다. 뭘 또 빠트려놓고 왔나 싶어 받으니 사돈이 준비해둔 곶감을 안 주었단다. 배웅 나온 광희가 곶감을 가지러 가면서 차를 자기네 현관 내려오는 곳으로 가까이 옮겨오라는 손짓을 하며 올라간다. 그러더니 황금색 보자기에 싼 곶감을 차 트렁크에 실어 준다. 8시 45분에 출발이다. 길이 막힐까 걱정했는데 오다가 문경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왔는데도 12시 전에 집에 닿았다. 참 편하게 다녀온 것 같다. 이번 설에는 상하행 때 통행료도 면제 되어 2만 5천원 정도 벌인 셈이다.
점심으로 짜장면을 만들어 먹으며 평창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았다 그러다가 늘 즐겨보던 <불후의 명곡>을 보려고 6시에 KBS 방송국으로 채널을 돌리니 끝에 두 사람만 남아서 노래를 부른다. 시간대가 당겨졌나 보다. 그래도 오늘 책 읽을 생각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