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당신의 변화,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04/08월(月)롬 12:1-2, 고후 13:4-5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예수 믿는 것은 본질이 바뀌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행복, 기쁨, 축복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숙제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변할 수 있는가? 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태도, 습관, 모양은 달라질 수 있으나 성향, 그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성경은 인간이 변해야 축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이나 기쁨, 승리의 삶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할 때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길이 열리게 됩니다. “
주님 안에서 인간이 변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상 사람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2).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쫓지 말고 자신을 의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브라함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세대는 우리가 느끼는 세상입니다. 세대는 보이는 것을 기준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자기를 개발하는 자기중심의 삶입니다. 세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뀝니다. 그러므로 세대로 살면 영원히 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롬 6:6). 예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가 못 박힌 것이 보여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삽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롬 12:1). 산제물이란 육신은 살아 있지만 자아가 죽은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이 하십니다.
세례는 내가 죽은 장례식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이 믿어질 때 변하게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롬 6:4)
▣주님이 부활할 때 나도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인 주님이 내 안에 사십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고후 13:5). 내 안에 주님이 주인으로 사시는 것이 믿어질 때 누구나 복되게 변합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는 정도가 믿음의 크기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서도 주님이 일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And...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는 영적으로 어둠의 시대입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는 세대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는 절대적인 것은 없고 상대적 진리를 추구하니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가장 인본주의, 세속주의입니다. 죄에 대한 기준이 없고 논리를 따지는 세대입니다. 이 세대에서 벗어나는 길은 창조주 하나님이 절대적이고 기준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기준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요즘 성공했다는 젊은이들이 마약, 성적 타락으로 치닫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참 만족이 있을 뿐입니다. 수가성의 여인도 세상적인 목마름을 주님을 만나 해결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으면 자칫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신앙을 잘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예수가 주인 된 삶을 살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자녀를 너무도 아끼다 못해 자녀가 우상인 경우를 자주 봅니다. 부모가 매를 들지 않으면 하나님이 매를 드십니다. 자녀를 귀하게 여기되 그 자식이 하나님보다 우선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식을 온전히 주님께 맡길 때 그 자식을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할지라도 신앙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식을 살리는 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실 때 빛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주 깜박하는 일들이 많아집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감사한 것은 조급함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즉시 그 일을 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느려지면서 이제는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문제가 생겨도 즉시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냥 문제를 올려드리고, 주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몸이 먼저 나가지 않고, 주님이 가장 최선으로 인도하시겠지,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그분의 때가 가장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갈수록 담대해지는 까닭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급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급히 움직이시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멈추는 것이 오히려 지름길로 가는 길임을 알게 됩니다. 반드시 되어야 해, 이런 생각이 없어집니다. 내 생각보다 그분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판단하지 않고, 문제 자체를 맡깁니다. 아니 인생 전체를 맡깁니다. 그분이 나의 주인일 때 내가 가장 행복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의 전부가 되실 때 내 삶을 인도하십니다. 나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나의 전부를 아시는 주님은 늘 나에게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여러 곳곳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발견합니다. 날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나의 전부가 되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니 내가 죽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겸손 찬양
https://youtu.be/ZzKBWRWcMlM?si=mFv_FrWHclEXX9q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