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백산 죽령-천문대-연화봉-비로봉
0. 위치 : 경북 영주시 단산 순흥면 풍기읍, 충북 단양군 영춘 가곡 대강면 단양읍 0. 코스 : 죽령-천문대-연화봉-비로봉-국망봉-비로봉-삼가동 (상행)
10시20분 죽령휴게소 앞이다. 소백산은 비로봉(1440m)을 비롯해 도솔봉(1314m) 연화봉(1394m) 국망봉(1421m) 같은 고봉들로 매우 험한 지세지만 단양군 대강면과 영주시 풍기읍을 잇는 고개로 신라시대에 죽령(689m)이 열리면서 하늘재와 함께 군사목적으로도 주요한 요새가 되어 신라가 한강유역을 넘보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시대는 조령과 더불어 영남지방에서 충청지역을 거쳐 한양으로 잇는 길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처음부터 시멘트포장길을 올라야 한다. 왼쪽으로 잣나무를 심어 시퍼렇다. 그러나 잎이 지고 빈 나무들만 늘어선 자락은 회색빛으로 좀은 을씨년스럽다. 이른 봄날의 초록빛 새싹으로 돋아나던 희망의 빛이나 한창 우거져 짙은 녹음에 하늘을 찌를 듯 패기 넘치던 여름날 울창함이나 하나하나 정성스럽고 곱게 물들여 환하게 수놓던 지난 가을날의 풍성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게 음산하다. 날씨가 사나와지며 구름이 짙어져 휘덮는다.
제2연화봉(1357m) 한국통신중계소 옆을 돌아서니 도로는 아예 빙판길이 되었다. 아주 조심스럽다. 첨성대 모양의 천문대까지 7km 오름길을 경쟁이라도 하듯이 한 시간 반 만에 허겁지겁 올랐다. 쉴 틈도 없이 연화봉을 넘는다. 눈발까지 휘날리며 눈이 허옇게 쌓인 곳도 있다. 그냥 가기에는 위험천만이다. 시린 손으로 금년 겨울 처음으로 아이젠을 꺼낸다. 철걱철걱 비로소 안심이 된다. 빙판을 예상 못한 일부는 곤욕을 치른다. 보잘것없는 아이젠 하나가 이처럼 요긴하게 쓰이며 빙판길 산행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던 걸림돌을 말끔하게 해결해줄 줄이야. 짧은 겨울 해는 언제 어둠속으로 사라지며 헤매게 될지 모른다. 겨울산행에 헤드랜턴과 함께 필수품으로 유비무환이란 말이 새삼 스쳐간다. 사실 크게 짐이 되지 않으면서도 성가시다는 핑계로 빼놓았다가는 낭패하기에 십상이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한 계단씩 당당하게 올라 제1연화봉(1394m)에 닿는다.
바위 틈바구니에 나무는 파이프처럼 길게 뿌리를 늘이고 영양과 수분을 조달한다. 이웃과 경쟁관계가 아닌 그저 제몫을 챙기면 된다. 살아남기 위한 스스로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한다. 나눔도 받음도 없는 홀로 서기다. 바람이 점점 사나와지며 눈발이 휘날린다. 철쭉나무에 하얀 눈꽃 철쭉이 피었다. 민백이재를 지난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주목단지를 지나 천동 다리안주차장이다. 비로봉 정상에 올라선다. 건너다보이는 국망봉으로 행군이다. 그러나 턱밑에 다다랐을 때 되돌아오라는 전갈이 왔다. 산행코스가 부득이 바뀌어 삼가동 비로사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닌데, 이제 목표지점도 멀지 않고 조그만 더 힘을 내면 거뜬하게 갈 수 있을 텐데. 와르르 맥 빠지는 기분에 되돌린 발걸음이 터덜터덜 거린다. 그러나 어찌하랴,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입산통제기간이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 다시 비로봉을 올랐다.
이런 애석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찬 바람은 여전하다. 기차가 철교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나고 말발굽 달리는 소리가 들리고 전쟁터의 아비규환 아우성 소리로 울려 퍼지기도 한다. 나무 계단 위를 걷는 몸이 휘청거린다. 양쪽에 쳐진 밧줄에는 서릿발에 얼음이 맺혔다가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이것이 소백산 비로봉의 칼바람이다. 한 쪽으로 무심코 몸을 돌려보지만 얼굴을 더듬거리는 바람은 이미 턱을 마취시켰다. 민둥산인 정상 비로봉 아고산대의 초지는 누렇게 변하여 키를 낮게 아주 낮게 낮추었다. 그러나 바람은 그들마저 잠시도 그냥 놔두지 않는다. 풀은 온몸으로 연신 조아리듯 바람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들썩거린다. 반항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수십 년 된 나무도 가차 없이 뿌리 채 넘어뜨리거나 우지끈 가지가 부러지고 심지어는 몸통이 찢어지면서 털썩 넘어지지 않던가. 감히 어찌 맞설 수 있으랴.
그런 와중에도 스스로 살아남을 길을 모색한다. 자연은 그런 잠재적 능력을 이미 부여받고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시달릴수록 안으로 더 뜨거운 열기를 모으며 꽃망울이나 돋아날 새싹을 감싼다. 그러나 지금은 거칠 것 없는 민둥산에 바람이 호통을 친다. 뻣뻣이 그곳을 지나치려니 더 화가 났나 보다. 왜 길은 막고 있느냐는 거다. 휘청휘청 밀치며 온몸을 휘감는다. 왜 괴롭히느냐는 말에 바람은 왜 길을 막느냐고 엉뚱하다.
그런데 통통한 황조롱이 한 마리가 열심히 바닥을 훑고 있다.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미 한겨울 혹독한 날씨에 먹이를 구하고 있다. 새라고 아무리 심지 않고 가꾸지 않고 거두어 저장을 않는다고 하지만 너무 쉽게 살아가려 한다. 등산객이 먹다 흘린 음식부스러기에 눈독을 들이다보니 힘들여 벌레를 잡거나 영양가 적은 열매를 쪼며 치열한 경쟁보다 음식 맛에 길들여져 사육을 당하고 있다. 삼가동으로 하산이다.
*. 2007년 12월 01일 6시간 20분 산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