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봄 날씨다. 유달리 매운 생강 말린 것, 곶감, 김부각, 사과, 대추차를 나누며 반가운 얼굴들을 만난다. 이원수 선생님의 곡을 부르니 관옥 선생님께서 상을 받은 당신에게는 이원수선생님이 “장래성이 보인다.” 라며 딱 한마디 하시고 떨어진 사람들에게 여러 마디로 격려하시는 일화를 듣고, 파주에서 오신 7년 전 인연을 소개 받고, 예배를 시작한다.
- 오랜만에 맑은 얼굴로 나타난 우림의 손길에 의해 마르코 복음 “새 술은 새 부대에게” 2장 18절 ~ 22절 말씀을 함께 읽다.
- 우림 : 지금 이 시기가 전환의 시기라고 하는데, 새로운 시기가 열리는 시기라고 하는데, 새 술은 오고 있다. 그러면, 새 부대는 뭘까? 라는 질문이 왔어요. 새 부대가 새 술을 담는 새 부대가 질문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두려움으로 살았다면, 고마움, 감사함, 사랑이 새 부대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치듯 들었어요.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새 부대를 준비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관옥 : 당시에 예수님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도저히 못 받아들여. 지금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새로운 세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못 받아들여. 새 술은 낡은 부대에 넣으면 안 되지만, 낡은 술은 오래된 부대에 얼마든지 넣어도 괜찮잖아. 왜 그럴까? 새 술은 부풀어 오른단 말이야. 부대가 터지는데, 오래된 술은 부푸는 것이 스톱됐지. 부푼다는 것이 뭐야? 바뀌는 거잖아. 사람이 안 바뀌면, 몸뚱아리 얘기 말고, 정신, 마음, 그런 것인데, 그것이 끝없이 바뀌는, 바뀌는 것을 내 마음이 허용하면, 겁을 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새 사람이지. 그런데, 바뀌는 것 자체가 겁이 나는 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바뀌는 건데, 이것이 싫은 거야.
에고라는 것은 그것을 절대 허용 안 해. 사람들이 그러잖아. 한 번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이거야. 그러면, 딴 것이 오면 틀렸다. 쳐 내잖아. 보수주의자들이 대개 그래. 어렸을 때 들은 아버지의 한 마디, 그것이 굳어져 잇는 거야. 그것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아. 그것은 낡은 가죽부대지. 새로운 시대가 아무리 와도 못 받아들여. 받아들이면 깨지는데, 신앙인들도 그러잖아. 그런 얘기 아닌가 싶어. 바울은 “내 겉 사람은 날마다 썩어가지만, 내 속사람은 말마다 새롭다.” 속사람이 문제지. 겉의 몸뚱아리야 나이가 먹으면 굳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그러나, 정신은 시퍼렇게 살아있어.
장공선생님 처음 뵙고 얼마 안 됐을 때, 젊은 사람들 보다 훨씬 생각이 부드럽고 진취적이야. 놀랐어. 어쩌면 생각이 저렇게 radical한가, 저것이 어디서 오나, 나이와 관계없지. 젊은 아이들이 더 단단히 굳어져서 아주 보수주의자들 많잖아.
- 파주에서 오신 분 : 파주에 헤이리 마을에 심리상담 명상센터를 하고 있어요. 입춘이어서 걷다가 며칠 시간을 내어서 왔어요. 읽으면서, 제가 한참 괴로울 때 술이라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술을 먹는 사람들은 자기 속사람과 만나는 방법이 없으니 술을 먹으려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원불교도라 성경을 잘 읽지 않았는데, 늘 성경에는 술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 술이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좋은 것, 귀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나를 정화하는 새 사람이라면 내 세계는 지구, 제가 요즘 드는 생각이 제가 누구의 딸도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지구사람인데, 내가 잊고 있었구나. 오랫동안 다른 사람한테 상처받았던, 내가 왜 이러고 살았지? 나는 원래 큰 품의 자식인데, 그렇게 이 이야기가 들려요.
- 관옥 : (신난다의 정리하는 통역을 듣고는) 여러분은 저 때문에 지금 두 번 강의를 듣습니다. 이 양반이 아주 요약을 잘 하십니다. (웃음) (누구나 횡설수설하셔도 된다는 얘기예요.)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웃음)
- 언연 : 저는 순천에 온 지 3년 됐어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기 와서 3년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생각해 보니, 마무리는 ‘이제 공부를 제대로 해 봐야 되겠다.’ 뭘 하나도 쫓아다녔는데, 맛보기로 했다면, 이제는 그 공부가 뭔지를 모르지만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풍경 소리 보면서 좋은 버릇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생활적으로 뭔가를 시도를 해 보는데, 생활적인 것은 비교적 쉽게 되는데, 언뜻 발견되는 제 생각, 전에는 제 생각이 굳어져 있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제 모습을 발견하면서 제 생각이 굉장히 굳어있다는 것, 보수적이고 고지식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거예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데, 내 모습이니 받아들이자. 그래서, 어떡할 건데, 아직 모르겠어요. 아주 단단하게 쌓여있다. 라는 것만 알아차리고 있어요.
- 관옥 :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으면 잘 될 거야. 그 버릇이 몸으로 하는 버릇은 그렇게 해롭지 않아. 귀를 후빈다던가, 손톱을 물어뜯는 것은 해악을 끼치지 않아. 생각의 버릇은 아주 단단해. 한 사람의 생을 결정하는 거야. 자기만 아니고 옆에 있는 사람을 영향을 미치고. 생각의 버릇이 고약하면 평생 그 생각을 따라 산단 말이야. ‘아, 내 생각이 지금 많이 굳어져 있구나.’ 어떻게 굳어져 있는지는 관계없이 굳어져 있구나. 머리가, 생각이 상당히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구나. 그것이 보인다는 거잖아. 좋은 소식이야. 해야 할 일은 그 버릇에 동조하지 않는 거야. 버릇에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한 번 해 봐. 그것은 생각일 뿐이야. 그것은 네 생각이지. 그것을 고집하지 마. 볼 때마다 다르게 봐. 지금까지 하던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는, 좋은 버릇을 어떻게 다르게 할까. 내가 볼 때, ‘이렇게 하면 참 좋겠다.’ 그런 쪽으로 연습하는 거지.
“왼뺨을 때리면 오른 뺨을 둘러 대라.” 그게 뭘까? 때려서 맞았어. 지금까지는 때린 놈 보는 거야. 그런데, 뺨을 둘러대라는 것은 고개를 돌려서 다른 곳을 봐야해. 때린 놈을 보지 마. 지금까지는 때린 놈을 보고 살았어. 뺨 둘러대라니까 어떤 사람은 “죽여라. 죽여라.” 하면서, (웃음) 더 덤비는데, 그런 오해가 아니고, (웃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 하셨겠어? 지금까지는 때린 놈한테 대들던지, 억울하다고 덤비지 말라는 얘기야. 그거 왜 봐? 내 버릇을 편을 들지 않고, 좋은 버릇이라고 생각을 하면 내버려두고 좋지 않는 버릇이라면 고쳐. 해 봐. 잘 될 거야.
생각의 버릇다음에 바로 나오는 것이 말버릇이야. 옛날 어른들이 말버르장머리 고치라고 하잖아. 생각에서 나오는 거야. 생각은 저만하면 되는데, 말은 나오잖아. 사실은 말버릇도 똑같이 좋지 않은 버릇이라면 거부하고 안 하면 되는 거야.
- 동물맘 : 아이 아빠랑 요즘 생각이 다른 지접에 있어요.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요. 선생님을 요즘 아이아빠가 못 봤잖아요. 그래서, 조금 멀어진 것 같아요. 경제서적을 보면서 공부를 하는데, 뭔가를 할 것을 제안 했는데, 그렇게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을 비쳤더니, “그게 어떤데, 다 그렇게 돈 벌고 살아.” “정승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것은 좋은데,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것은 다른 거 같아.” 그것이 본인은 개처럼 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남들처럼 하는 것이 뭐가 어떠냐는 거예요. 우리는 먹고 살만하니까 지금 버는 것처럼 일해서 잘 벌고 다른 쪽을 안 보면 어떠겠냐. 라고 했더니 온 몸으로 싫어하는 표현을 해요. 제가 별로 반응을 안 하니까, “자네가 싫어하면 한 번 생각을 다시 해 봐야겠네.” 여기까지 얘기는 하더라구요. 전에 같으면 저도 하지 말라는 이유를 막 얘기하거든요. 요즘에는 저 사람이 경험을 해야 하는 건가.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돈을 그렇게 벌고 싶지 않듯이 저 사람도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자유가 있는데, 제가 제 생각과 같지 않다고 막는 것이 맞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새벽에 일어나면 선생님 책을 읽어요. 왜 그 책을 읽냐라고 물으면 이것을 읽으니 이나마라도 이렇게 살수 있다고 얘기해요.
- 관옥 :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얘기잖아. 전에는 몇 번 얘기하는 일인데, 딱 한 번만 얘기하고 안 했다는 거잖아. 아주 잘 했어요. 다시 하지는 마. (그래도 속에서 막.) 맞아 안 하면 안 돼. 안 들리게 해. 귀에 안 들리게 마음으로. 끊임없이 얘기해.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살자. 깨끗하게 벌고 깨끗하게 살자.’ 그 말을 안 들리게. 해 봐. 그러면 들어. 묘하게 듣는다. (해 볼 께요.) 나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거야. 그것을 뭐라고 하냐면 “영적인 감화” 라고 그래. 육적인 것이 아니야. 말로 듣게 하면 그때부터는 싫어. 하지 말고 안 들리게 속으로 간절히.
(효선 : 안 들리게 하셔서 나도 변하잖아.) (웃음) 나는 아무 말도 안 해. 그런데,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말을 며칠 뒤에 이 입에서 내가 들어. 그런 식으로 한 번 대화를 해 봐. 영의 세계는 그래. (이제 힌트를 얻은 거 같아요. 그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는 제가 보고 있어야하는 힘듦이 있었는데, 말은 하지 않더라도 속으로 계속 할께요.)
(효선 : 잘 해야 하는 것이 선생님은 100프로 내 편이 되어서 말을 해. “당신 정말 하고 싶으면 해.”) 말로만 그러지. 속으로는 아니야. 진짜 상대방의 편이 되어서 얘기해 줘야 해. (하라고 하면 바로 할건데요.) (웃음) 그러니까 예수님이 비유를 할 때, 탕자의 비유를 할 때, 탕자가 나갈려고 할 때 안 말려. 큰 녀석은 나갈 생각을 안 해. 그것도 내비둬. 그것처럼 말리지만 마. 장려는 하지 말고.
하늘 쳐다보면서 물어보라는 얘기정도는 들을 수 있어. 내가 쓴 책을 읽는다는 얘기는 자기한테 뭔가 있는 거야. 희망을 가지고 주식투자라고 하잖아. 자에 이것만 빼면 기야. 투기야. 그러니, 건강하지 않지. 온 세계가 미쳐 돌아가. 요새 중학생도 한다고 하더라. 그런 것에 동조할 수는 없지. 아닌 것은 아닌 거야. 그러나, 영적으로 얘기하면 들어주실 거야.
- 소현 : “새 술은 새 부대에” 하니까 두더지 처음 오셨을 때, 내건 슬로건이었어요. 그 때 생각이 나서 두더지 생각이 났어요. 참 곤난하셨겠다. 이 대목을 보면서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싶으면 낡은 버릇들의 총체인 에고들을 (에고는 다른 말로 하면 버릇 덩어리) 그것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버릇, 새로운 것을 못 받아들이겠다. 하고 있고, 더 해야하는 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 관옥 : 얘들하고 마음 공부할 때, 볼펜을 하나 줘. 볼펜을 들고 있잖아. “네가 가진 볼펜보다 할아버지 볼펜이 더 비싼 거야. 줄 테니 받아봐.” 하고 줘. 내가 해 본 아이들 전부 다 이렇게 받아. (볼펜을 놓지 않고 손가락만 까닥거린다.) (웃음) 내가 그러면 안 주지. “너는 받을 자세가 안 돼 있어.” “왜 안 받아? 더 비싼 건데, 왜 안 받아?” 그러면, 어떤 녀석은 손에 있는 볼펜을 놓고 받아. 그러면, 내가 줘. 잡은 손으로는 아무것도 못 잡는다. 네가 뭘 새 것을 받고 싶으면 낡은 것을 버려라. 버리지 않으면 새것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받는 것은 네 맘대로 받을 수 없지. 줘야지 받지. 버리는 것은 네 맘이야. 너밖에 못 해. 남들이 너 대신 안 해. 놓는 것은 네가 할 수 있어. 잡는 것은 네 맘대로 안 되지. 내가 줘야 하지. 우선은 놔라. 너 가진 것이 뭔지 모르지만, 우선 놓으면 그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네가 받을 수 있다. 아버지는 벌써 준비하고 있다. 뭐든지. 내가 아이들한테 얘기했어. 한 녀석도 처음부터 놓고 잡는 놈은 못 봤어.
- 동그라미 : 새로운 새에 마음이 많이 갔어요. 저도 순천에 온 지 2년 조금 지났는데, 오늘 앵무산에 처음 갔어요. 우림, 후마, 저랑 셋이 하사에서 저희동네로 내려오는 길이 있어서 갔는데, 새롭게 제가 뿌리를 내린다는 느낌, 요즘 방학을 하고 아이들이 자기 방을 쓴다고 정리를 하고 집도 이사 와서 처음으로 정리를 조금씩 하고 있거든요. 달을 볼 수 있는 데크도 마련되고, 오늘 앵무산 가면서 ‘내가 여기에 살고 있구나.’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 관옥 :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의 차이가 한 번 죽어버리면 변화가 스톱되잖아.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바뀐다는 얘기거든. 변화, 바뀌어. 시체도 바뀌지만, 변화를 겁내지 말자. 한 번도 겪고 보지 못한 일이 닥칠 때, 우선 겁부터 내지 말고, 호기심가지고 만나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만나보면 작고 큰일에 있어서 어떻게 되는지 그때 가 보면 알겠지.
- 간송 : 저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이 크게 왔었는데, 오늘 보니 저한테 들어오는 것이 금식하는 것을 바리세파와 제자들도 했는데, 왜 안 하냐? 질문을 했는데, 답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거야. 결론을 그렇게 냈단 말이예요. 그 상황을 보니까, 그동안의 관습에 너무 억매일 필요 없어. 이런 느낌인 거예요. (억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는 그동안 억매였다는 얘기지.) 그렇죠. 이 분들이 금식하고 그런 것들이 좋은 일일수도 있는데, 지금부터는 안 해도 돼. 선언을 하는 듯한 얘기인 거예요.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지.) 꼭 그렇게 안 해도 돼. 다른 방식이 있을 거야. 내 제자들은 지금 다른 거야. 잘 못하면 위험한 발언이기도 하고, 지금 우리 시기에도 비슷하게 익숙해져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
- 관옥 : 뭐가 있다는 얘기는 어쩔 수 없이 어떤 틀이 있다는 얘기야. 틀은 불가피해. 생명, 씨앗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둘러싼 껍질이 있어. 달걀의 접이 생명인데, 그것을 보호할려면 껍질이 단단하게 있어야 한다고. 그 껍질 자체를 터부시할 거 는 아니다. 껍질이 고착되어 버리면 그렇게 되면 심각해지는 거야. 달걀 후라이를 하던 병아리를 까든, 어쨌든 껍질은 깨져야 해. 안 깨지겠다고 그러면 먹지도 못하고 병아리도 안 되고 그러지 않겠어? 종교는 하나의 틀이야. 종교자체가 포맷이라고. 종교 안에서 사람이 충분히 변화 되서 깨져야 하거든. 깨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고.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 말씀 다 환영한 것은 아니야. 대다수가 환영 안 했어. 특히, 고위층사람들, 많이 안다, 가진 것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세리나 죄인들은 예수님 말씀을 잘 받아들였으면, 율법학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가진 것이 단단하니 안 받아들인 거지. 그러니, 문제를 자꾸 일으키니 죽여 버린 거지. 지금도 계속 돼.
리처드 로어가 “만일 예수가 지금 와서 2천 년 전에 얘기와 똑같은 얘기를 한다면 지금도 십자가를 질 것이다. 그리스도 교인들에 의해서.” 제일 먼저 그를 처형하는 것은 바티칸이 아니겠나. 신부가 그런 얘기를 한다고. “예수가 똑같은 얘기를 지금 와서 한다면 교회가 앞장서서 그를 처형시킬 것이다.” 자기를 상대화한다는 것이 사람이 그렇게 어려운 거야. 항상 자기가 절대자라고 착각을 하는 거야. 왜.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절대야.” 이런다고. 하나님 자신은 끊임없이 바뀌는데, 어떻게 알아. 누가 그랬더라.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 나 아니야.” 라고 끊임없이 얘기한다는 거야.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은 그렇다는 거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니야.”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야. 용기 있게 그렇게 하면 비로소 새 술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되겠지.
- 김장로님 : 다리를 못 쓰던 검정 닭이 며칠 전에 죽었는데, 죽기 전에 알도 낳고 대견했어요. 먹이를 못 먹어서 죽었는지, 들어보니 종이짝 처럼 살이 없었어요. 큰 토끼가 이유는 알 수 없는데, 다리를 못 써서 잘 보고 있고, 새끼 토끼가 8마리가 있어요. 서울에 반려동물들을 위해 여러 가지를 주셔서 잘 받아가지고 왔어요.
- 이장로님 : 지난 화요일 34주기 장공할아버지 추도예배를 다녀왔어요. 코로나로 이번에는 직계가족들만 예배를 드리기로 했어요. 34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가 돌아오신 느낌이 들었어요. 항상 기념 사업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가족들은 참석만 하는 기분이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가족과 함께 한 느낌이었어요. 핏줄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게 산소에서 예배드리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충격적인 일이 있었는데, 장공할아버지를 캐나다에서 망명생활로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어서 모시고 와서 함께 살았는데, 각 대학에서 강의를 초청했어요. 숭실대에서 강의하시고 젊은 역사학자 서경일 교수님이 신랄하게 비판을 당하는 거예요. 그런데, 다 들으시고 교수한테 연락을 하셔서 “당신이 얘기하는 것이 다 맞다. 내 생각과 판단이 다를 수가 있다. 오늘 나를 만나자.” 약속을 하시더니 당신이 공부할 만한 책을 추천받으셔서 그 책을 다 사가지고 오신 거예요. 손주뻘 교수의 그 비판도 받아 주는 품이구나. 그것에 당신을 새롭게 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렇게 살면 참 좋겠다.’ 젊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늘 가지고 계신 90바라보는 어르신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어요. 내가 만나는 그 사람들의 수준에 맞춰서 때로는 아이가 되고, 때로는 어른이 되고, 때로는 할머니가 되어서 맞춰주는 것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워하는 추모예배를 잘 드리고 왔어요.
- 관옥 : 그러니 그 분이 간 뒤에도 자꾸 얘기하는 거야.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거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고집만 안 해도 돼. 내가 질문할게. 내가 바께쓰를 가지고 해변에 가서 물을 한 바가지 떴어. 바닷물이 줄었냐, 늘었냐. (웃음) (바닷물요? 그냥 있지요.) 내가 분명 한 바가지를 떴는데 어떻게 그냥 있어? (바닷물이 있는 곳만 다른 거잖아요. 바닷물이 바다에 잇을 때와 땅에 있을 때만 다른 거지. 바닷물은 그대로 바닷물 아닌가요?) 그런 식으로? (웃음) 그것을 관념이라고 그러는 거야. 그것은 생각이야. 내가 6시 정각에 물 한 바가지를 떴어. 그러면, 분명히 변화가 일어난 거지. 내 눈 앞에서. 아니라고 그럴 수는 없어. 그러니까, 바닷물이 줄었다라고 하는 것이 관념이야. 생각이야. 사실은 몰라. 그 순간에 지구의 기후가 어떤가가 문제야. 전체적으로 구름이 껴서 비가 내렸다. 그 시간에. 그러면, 내 한 바가지 정도가 아니라 네 바가지가 더 늘 수고 있는 거고, 쾌청하고 맑아. 그러면, 더 줄어들을 수도 있어. 말하자면 그래. 정답은 모른다. 그것이 정답이야. 모릅니다. 어떻게 압니까? (웃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상대화 시키는 거야. 나 몰라. 내가 안다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거, 그것은 알아. 내가 모른다는 것은 알아. 너는 그것도 모르지? (웃음) 소크라테스가 그래. 내가 모르고 나는 부족하고 내가 안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그거 한 번 받아들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 당신 생각에 굳어져 있다면 신랄하게 비판할 때, “이 새끼가.” 이렇게 돼.
- “이 세상 어딘가에” 노래 부르고, 이장로님 기도로 마치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