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세상
오종락
지금 이 순간에도 가면을 쓴 온갖 말들이 참말에 섞여 통용되고 있다. 이런 가면을 쓴 말들은 사람들의 대화 속을 타고 넘나들며 교묘한 재주로 부당한 제 몫을 요구하려 든다. 또 전파를 타고 허공으로 이리저리 쉼 없이 날아다니며 갖은 요술로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 모습이 마치 공중에 처져 있는 수천 갈래의 회색 거미줄이 바람결에 나부끼며 착한 몸짓으로 위장하여 곤충들을 유혹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일상생활 속에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많은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 놓인 처지가 된다. 이럴 땐 거짓말이란 것이 왜 생기게 되었고, 이처럼 사람들이 거짓말을 즐겨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짐작컨대 그 까닭은 아마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에서 오로지 참말 만으로 소통하며 살아가기엔 어려움이 있고 또 무미건조한 인간관계를 해소하려다 보니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거짓말이 아닐까 한다. 그러다가 인간 세상의 변화와 함께 거짓말도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처럼 다양한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으로 변한 게 아닌가 싶다.
거짓말 화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상대를 보다 쉽게 요리할 수 있고 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잘 맞는 콘셉트를 용이하게 구성할 수 있는 마력까지 들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화자의 내면 심리와 일치하는 경우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되고 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심리학자 제럴더 제리슨은 “사람들이 참말만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참 끔찍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인간세상에 거짓말의 존재 필요성을 역설한 말이 아닌가. 내가 생각해 봐도 참말만 사용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너무나 무미건조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거짓말은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산물로 참말의 틈새시장에서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짓말이란 도구를 너무 무분별하게 오남용 함으로써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데 있다.
거짓말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늘게 되고 습관화된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거짓말하는 버릇도 처음엔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더 큰 거짓말로 이어진다. 결국엔 고질병처럼 굳어져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끄집어내어 사용하게 된다. 이런 습관은 결국 대인 관계에서 신뢰를 잃게 되고 사회생활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한다.
퇴직 후 개인사업을 하는 동우회 C선배는 내가 사업을 해보니 “요즘 사업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밥먹듯이 곧잘 하더라, 월급쟁이 출신인 나의 사고와는 많이 다르더라”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우리 사회 속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으며 또 먹고살기가 힘들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사회에서는 거짓말이 또 하나의 생존의 도구처럼 활용되고 있구나 싶었다. 애매모호한 거짓말을 사용할 땐 거짓말과 참말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도 곤란한 경우가 있다. 이럴 땐 거짓말의 상습성과 악의가 있고 없음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실이 아닌 말은 대부분 거짓말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거짓말은 각종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며 점점 더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오늘날은 거짓말의 허용범위를 색깔로 분류하기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
거짓말을 색깔별로 분류해 보면 악의가 있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새빨간 거짓말과 새까만 거짓말이 있고, 인간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여 어느 정도 용인되며 그리 비난받지 않고 통용되는 하얀 거짓말, 무지갯빛 거짓말, 핑크빛 거짓말, 노란 거짓말 등이 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이야기’라는 수필에서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약간 하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즉 작가들의 칠색이 영롱한 무지갯빛 거짓말은 용인하는 입장이다.
거짓말과 참말의 관계는 음지와 양지의 관계와 같다고나 할까! 음지가 있어야 양지가 있고, 음지가 있어야 양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듯, 거짓말이 있어야 참말의 존재가치를 더욱 진실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하여 거짓말이란 존재가 재롱을 잘 부리는 귀여운 애완견 같은 그런 존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거짓말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색깔과 타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히 사용하는데 그쳐야 한다.
거짓말은 상대방에게 반드시 말해 주어야 할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부작위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 것 같다. 몇 해 전 메르스 최초 감염자 A씨는 사우디에 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결과가 되었다. 부작위에 의한 거짓말로 인하여 신종감염병 발견도 늦어졌고 결국 온 나라에 불안과 공포를 주며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또한 D광역시 공무원 B씨는 신분을 망각한 채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부작위에 의한 거짓말로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거짓말은 작위든 부작위든 자칫하면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메르스 사건을 접하면서 거짓말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임이나 직장 출근시간에 늦게 도착하면 거짓말을 하면서 이유를 댄다. 게으름 탓에 늦었어도 “차가 막혀서, 급한 일이 생겨서”라는 등의 거짓말로 곧잘 핑계를 댄다. 우리는 그럴 경우 애교로 받아 넘기기 일쑤이다. 이유를 대며 거짓말하는 자체를 한편으론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상대와 대화를 하면서 거짓말을 일정 부분 용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화 내용 속에 거짓말이 일정량 있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약간 중요한 이야기를 들으면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하며 그게 “정말이야?, 진짜인 거니?”라며 몇 차례 다짐을 받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에 거짓말이 얼마나 많이 횡행하고 있기에 만우절까지 정하여 사람들에게 거짓말 해방구를 만들어 놓았을까. 우리 사회의 거짓말은 필요악 같은 존재로써 그 나름대로 하는 역할도 있는 것 같다. 지혜가 담긴 고운 색깔의 착한 거짓말은 가족 간이나 친구와 직장동료 사이에 평화를 선사해 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자칫 이를 남용하면 불신으로 이어져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거짓말이란 인간세상의 언어 상품을 유효 적절하게 잘 사용해야만 할 것 같다. 이를 남용하여 상대방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주거나, 악의적인 거짓말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를 삼갈 줄 알아야 올바른 민주 시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통념을 넘어서는 거짓말은 자칫 범법행위가 될 수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남용하여 신뢰를 잃으면 자기 자신도 곤경에 처하게 될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부득이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에는 먼저 거짓말 색깔을 한 번쯤 분간해 보는 것이 거짓말을 자제하는 하나의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살아가면서 최소한 거짓말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언어 색맹’인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2019.5.11)
* 수필창작반 1년차 초창기 작품을 조탁하여 새로 올려 봅니다. 지금 세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한번 새롭게 구성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사람이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계획적으로 남을 속여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는 거짓말도 있고 부득이 하게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 할수 있는 거짓말도 존재 합니다. 어떤 거짓말이든 거짓말이 결코 바람직 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세계에 난무하는 거짓말들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 주는 거짓말은 하지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공감가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거짓말을 정말 많이 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을 때, 선생님 이야기 해 주세요.. 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저 마음대로 거짓말로 이야기를 지어 내어서 귀신 이야기도 해 주고, 도깨비 이야기도 해 준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거짓말입니다. 하얀 거짓말은 물론 새빨간 거짓말도 한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거나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는 거짓말하기 전에 색깔의 분류를 염두에 두겠습니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사하여 주소서.. 하고 고백성사라도 해야할 듯 합니다 . 스스로도 돌아보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긍정적인 거짓말, 용기를 주는 거짓말, 상대가 듣기좋아하는 거짓말, 그리고 가슴이 뭉클하도록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거짓말, 진심으로 그를 위해 하는 사랑의 말이라면 거짓말에서 제외했으면 싶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그런 거짓말들이 활력소가 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경우가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법을 크게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자신의 체면을 높이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아는 많은 이는 그 내용을 알고 있는데도 정작 그걸 모르는 그는 또 새로운 기짓말을 꾸며 냅니다. 입바른 친구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다투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그냥 듣어 줍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를 속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들은 속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민심입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알고도 모르는 척, 그저 때론 귀 막고 눈 막고 그렇게 무심하게 살아야 할 때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쓰신 글을 다시 조탁하셨다는 그 정성이 돋보이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거짓말을 색깔별로 하얀 거짓말, 무지갯빛 거짓말, 핑크빛 거짓말, 노란 거짓말로 분류한 것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화를 내며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할때만 거짓말의 색깔을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한 거짓말의 색깔을 생각해보며 잘 읽었습니다.
가끔 얼떨결에 거짓말을 해놓고 그게 감당이 안되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있는 자신을 보며 거짓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위해 거짓말해야 될 경우도 있고, 용기를 북돋우기위한 거짓말 등 삶의 윤활유 같은 거짓말도 있는 것같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자주하다보면 면역력이 생겨 거짓말을 밥먹듯 하고도 아무른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여의도의 크다란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 중의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거짓말도 색깔을 잘 골라 해야되겠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