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도 특별한 고령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IMF 이후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구조조정 등이 일상화돼 40대 중반부터
조기 은퇴에 직면하게 되면서 노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너무도 멋진 노년을 보내는 인생의 선배들이 많이 있다. 필자는 관악구에서 어르신 자서전
제작 및 출판을 4년여 진행하면서 너무도 멋지고 훌륭한 분들을 만난 것에 감사드린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이수철 님은 <제2의 인생, 아코디언과 함께>라는 자서전을 2011년에 출판하였다.
충남 강경에서 1935년에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강경은 당시 전국 3대 시장 중 하나였다. 평양, 강경, 대구가 3대 시장이었다. 중부권에서는 강경에 큰
재래시장이 있었다. 당시 강경은 매우 풍요롭고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 요즘은 새우젓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예전만 못하다. 아버님은 강경에서 4남매를 낳았다....
나는 이곳 강경에서 태어났다. 나는 금강에서 수영하며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냈다. 그 실력으로 대학시절
한강을 헤엄쳐서 건너기도 하였다. (제2의 인생, 아코디언과 함께, 이수철, 희망사업단, 서울, 2011, 14~15쪽)
그렇게 평화롭게 어린 시절을 보내던 저자는 일제시대에 소학교에 입학하여 일본식 교육을 받다가 해방을
경험하게 된다. 그 시절을 통과한 분들은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의 간격이 참으로 작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해방도
순간적으로 왔고 전쟁도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어린 시절 저자는 해방 전후 시절과 한국전쟁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해방 전에는 일본말, 일본식으로 교육을 받았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입학 때도 입학시험을 보았다.
연필, 칼 등을 보여주면서 일본말로 물어 봤다. 어느 정도 일본말 시험을 봐서 일본말을 못하면 합격시키지 않았다.
내 누나는 난청이라 불합격되었는데 교육열이 강하셨던 어머님께서는 일본인들이 찹쌀과 계란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종의 뇌물(?)을 써서 딸을 다음해에 입학시켰다. 찹쌀떡과 계란으로 입학을 허가받은 것 같다.
나는 여자들 속에 둘러싸여 살았다. 위로 누님이 두 분, 여동생이 두 명이다. 덕분에 어린 시절에는 여성화되었고
아들선호사상이 있던 시절이라 독자인 내가 귀여움을 독차지 하였다....
그렇게 지내던 일정시대...어느 날 내 나이 10세 때 해방이 되었다... 해방 후 강경 중앙초등학교를 41회로 졸업하고
강경중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한창을 공부해야할 중3때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그것이 우리 가정의 고난의 시작이었다.
6.25때 우리는 농사를 크게 짓고 있어 부르주아로 몰려 핍박을 많이 받았다. 인민군이 마을로 들어와서 온 동네가
공산당에게 장악을 당했다. 당시에는 돈 많은 집안에는 머슴들이 있었다. 세상이 갑자기 바뀌어 머슴들이 완장을 차고
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제2의 인생, 아코디언과 함께, 이수철, 희망사업단, 서울, 2011, 17~19쪽)
당시 저자 가족은 부르주아 계층으로 몰려 9.28 수복이 될 때까지 약 3개월여간 공산당의 핍박을 받았고 주요 도시였던
강경은 미군의 폭격에 의해 도시가 반파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저자 가족은 외곽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생사가 오가는 긴장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저자가 중학교 시절인 50년대 초반에 중등교육학제가 바뀌어서 중학교 3년을 마치고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첫 세대가 되었다. 강경중을 졸업하고 강경상고를 나온 저자는 서울로 대학에 진학하여 건국대학의 전신인 ‘정치대학’에
입학하여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짧은 피난생활을 마치고 수복 이후에는 전시임에도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전에는 중등학교를 6년 다녔다.
일제시대의 학제였다. 우리 일년 선배들은 그랬다. 그러던 학제가 나 때부터 3년, 3년제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는
강경중학교 1회 졸업생이 되었다. 원래대로 하면 강경중학교 4,5,6학년이 강경상고 1,2,3학년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 강경상고는 명문 고등학교였다. 취업률이 매우 좋았다. 진학반 셋, 취업반 하나. 경쟁률이
3:1이었다. 강경, 부여, 서천 일대에서 강경상고를 진학하려 애썼다....
건국대학교 전신인 정치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때는 정치에 관심이 많이 있었다. 해방 직후 극심한 좌, 우익의
분열과 정치적 역동성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강경읍 남교동에 살던 나는 서울로 유일하게 대학 진학해서 동네서
유명인사가 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였다. (제2의 인생, 아코디언과 함께, 이수철, 희망사업단, 서울, 2011, 22~24쪽)
▶다음회에 계속....
유명종/ 희망사업단 대표
● 2014년도 어르신 자서전 제작자 모집 만65세 이상 관악구 거주 주민 10명 선발 문의: 관악구청 도서관과, 02-879-5704, 010-9204-7058
첫댓글 ㅎㅎ 젊을 시절에는 꽤 이 선생님 미남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