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강의시간에 사실주의 혹은 리얼리즘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한 학생이 "리얼리즘"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하였다. 잘 몰라서 묻는 질문인지 혹은 뜻을 분명히 해달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예술이나 문학 혹은 영화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기초적인 개념에 대해서 질문한다는 것이 약간은 의아하였다. 그럼에도 요즘 학생들에겐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되었다. 아직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혹은 그 철학적 의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한자 적어본다.
국어사전에는 '리얼리즘'을 '사실주의'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다음과 같이 정의해 주고 있다.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와 함께 19세기 후반에 성행한 문학의 경향이다. 발자크, 스탕달에서 비롯하여, 플로베르에서 확립되고, 다시 졸라의 자연주의를 낳았다. 자연이나 인생 등 문학의 대상을 객관적 태도로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하는 작가의 자세라는 의미로서는 묘사주의라고도 번역된다. 보통 사실주의라고 번역되는 의미에서는 유형적인 표현보다 대상의 개성적 특징을 명확히 묘출하여, 그 미화나 주관에 의한 대상의 변모를 피하고,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자연주의는 그것을 다시 실증주의와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해부하고 분석하려고 한 것으로서, 근대 과학의 성과에서 의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사실주의를 광의로 해석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예술의 근본적 요소라고 생각된다. 다만 무엇을 '사실'로 볼것이냐에 따라 사실주의도 얼마든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켑처-
◆ 리얼리즘의 철학적 의의
사실주의는 일반적으로 서양 예술(특히 회화)의 발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장르로서 '자연주의'가 그 대표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주의를 '미메시스(모방)'이라고 불렀다. 타인을 모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현대인들에게는 '사실주의'하면 왠지 '저급하고 수준 낮은 작품'이라는 편견을 가지기 일 수이다. 하지만 사실주의는 어쩌면 예술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주의가 다만 외형을 모방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통찰하지 못하거나 막연하게 잘못 알고 있는 '숨어 있는 진실 혹은 실재'를 드러내주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리얼리즘'이 된다. 리얼리즘은 낭만주의나 판타지에 대립하는 개념으로써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담고 있다.
1) 사실주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의미에서 '허위' '거짓' '과장' '왜곡' 등을 지양(배격)하고 현실의 사태를 진실하게 나타낸다는 '진실성'의 의미가 있다. '탈 진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짓'과 '과장' '허위' 등이 난무하는 세상에 오직 본 대로 느낀대로 거짓 없이 무엇을 제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가치이다. 어떤 것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이 거짓이나 허위 위에서 설립되었다면 그것은 위선이되거나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다른 직업인과 다른 점이 이것이 아닐까! 과장하거나 거짓을 퍼뜨리거나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선동을 하거나 타인을 모함하는 일이 거의 없이 일상을 오직 진실하게 산다는 것, 이것이 예술가들이 존중받는 진실성의 의미일 것이다.
2) 사람이 모든 순간에 진실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순간에 정당하고 떳떳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했기 때문에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는 철학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예술가는 그의 직업적 특성상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권력에 굴복하거나 세상의 명성을 위해 대중에게 아부하거나 할 필요가 없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이며, 그래서 그는 자유로운 사람인 것이다. 예술가가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항상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사실 고흐는 인상주의 화가 였지만 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토는 "내 그림에는 내 심장에서 바로 튀어나온 무엇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린 최초의 그림 이었던 <감자먹는 사람들>이란 그림은 그가 당시 프랑스 농부 가정의 리얼한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이었다. 이 그림은 그가 그림판매원 시절 친구 화가가 그린 너무나 낭만적인 마치 여성철학자 같은 <농부의 아내> 그림에 대해 실망한 뒤 "진짜 농부를 보여주겠다"고 말한 뒤 그린 그의 첫 그림이었다. <리얼리즘>이 말해주는 철학적 의의는 예술가의 '진실성(정직성)'과 '자유'일 것이다. 추상화가인 칸딘스키도 "내적 진실성이 상실되면 추상화는 사기가 된다"라고 하였다. 추상화는 외형적인 실재가 아닌 내적인 실재를 그린 그림이다. 내면을 제시하기 위해 외형을 포기(파괴)하는 것, 이것이 추상화의 핵심이다. 따라서 사실주의이건 추상주이건 그 핵심에는 '화가의 진실성(정직성)'이 깃들어 있다.
철학이던 예술이던 가장 중요한 기초적 가치는 '진실성' '진정성' 혹은 '정직성'에 있다. 오늘날 거짓과 허위와 선동이 난무하고 이러한 '정직성(진정성)'의 가치가 너무 평가절하되고 있는 시대에 한 번 쯤 '진실성(정직성)'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