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일 월요일
언니
김미순
깜짝 놀랐다. 오삐가 전화했다. 급히 병원으로 갔다. 언니와 오빠가 병원 입원실에 있었다. 삼인실에 들어가마지 어머닌는 는을 감고 굳은 표장으로 언니 손을 잡고 있었다.
골반이 상핬다고 한다. 언니가 청소하고 점심을 먹은 후 언니집으로 갔다. 한참 언니집 청소를 하는데 어머니로부터 일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곧 오줌이 나올 것 같다며~ 언니가 도착하니 벌써 거실 바닥에 오줌을
싸 버렸다. 일어나지 못하니 119에 전화했다. 그리고 병원에 왔다.
나는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낯설었다. 그 나이에 속병도 업고 뭐든 잘 드셨다. 다리만 좀 아플 뿐이었다. 그 나이에 있는 누구든 있는 관절염이 조금 있었으나. 약은 필요없었다
침대에서 내려 오시다가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의사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말라고 한다.치료는 적어도 삼 개월어서 육 개월이 걸린다고 하였다.문제는 돈이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언니와 고막, 홍합, 반지락을 팔아 모은 돈, 시장이 불이 장사를 못하게 되어 자리값과 보상으로 받은 돈 아버지가 돌가실 때 나온 보험료가 전부였다,
방 두 개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아파트에 사는 만족하고 아주 편하게 지냈다.
언니는 중학교 졸업하고 엄마와 같이 장사를 함께 하였다. 오빠를 고등학교 때부터 광주에서 다녀서 일주일에 한 번씩 언니가 반찬을 해서 날랐고 청소도 해 주었다. 사 년 후 내도 오빠 자취집 가까운데서 자취하였다. 언니의 반찬 꾸러미는 커졌고 무거워졌다.
형부 김삼경씨는 용집 가사였다. 위험하지만 돈은 잘벌었다. 그래세 언니는 따로 돈믈 벌지 않이도 삼십 평짜리마파트에 살았다.
그런데 언니집은 가정어린이집 역할.
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김규리, 1학년 김균영, 오빠 안진영의 아들 안대진
내 아들 세살 한영진, 두 살 한명진의 복작복작 대는 소리로 옆집으로 부터 소음 심한집으로 낙인찍혔다. 게다가모빠 올케 김민정씨가 대진이를 데리러 왔다가, 오빠가 언니집으로 올 때같이 저녁밥을 먹고 하룻동안 대진이의 활동을 확인하고 간다고 사였다. 언니집 얘들은 숙제도 아홉시가 넘어야했다고 하였다. 우리집 애들은 무척 소심해서 자기들키리만 놀고 잠도 빨리 잤다고 하였다 그때 나는 강진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남편은 강진 군청에 계장으로 근무했고나는 강진 도암면 먼사무소에서 나도 계장으로 근무했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와서 집 청소하고 이틀 동안 식구들 먹을 것을 챙겼다.
오빠는 오십 안원을 언니에게 대진이 돌봐준다고 쥐었다. 엄마에게도 오십 만원을 드렸다. 나는 언니에 삼십 만을 주고 엄마에게는 이십 만원을 드렸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아이들 용돈도 듬뿍 주었다.애들도 할머니만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느날 오빠가 어머니한떼 신경질적으로 안 좋은 말을 했다.
"어머니,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차도 없는 누나한테 귖삲게 하지 마시고~"
엄마는 드시고 싶은 게 하도 많아 손에 꼽을 수 없이 많다. 보이면 머위 어린잎 나물, 비비추 잎 나물, 쑥부쟁이 잎 나울, 아귀찜, 오리구이 , 전어회와 구이 등등
어머니의 퇴원 기념날, 식구들 모두 오리구이집에 갔다. 한참 젓가락 소리만 들리는데 화장실ㅇ가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언니가 허리를 잡고 겨우 일어났다. 형부가 부축하여 화장실로 갔다.
그동안 언니는 허리에 디스크와 협착증으로 신경을 눌러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다고 한다.관절염도 심해 매일 아침 진통제와 관절영 약을 먹었다고 한다. 형부를부르는 목소리는 무척 경쾌했다.
"시원하다. 대진이도 많이 먹었냐?"
"사이다도 먹어라"
엄마는 모르는 척 오리타메 비빔밥만 정신없이 드셨다.
계산을 하는 형부 곁에서 내남편 한경진의 트림이 크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