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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애굽기2장1~10절
제목 : 작은 방주에 탄 아기
태어난 사내아이를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레위 부부는 석 달이나 숨겨 키웁니다.
더 이상 아이를 숨길 수 없어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 강가에 두었을 때,
마침 목욕하러 나온 바로의 딸이 발견하고 아이를 양자로 삼습니다.
1. 모세의 출생(1~4절)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1) 레위 사람 이 결혼을 합니다(1절)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은 모세의 아버지로서 레위 지파 고핫의 아들
'아드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레위 여자'는 모세의 어머니가 될 '요게벳'을 지칭합니다.
가서 - '데려오다'는 뜻.
신부가 본가를 떠나 신랑 집으로 갈 때에는 신부 측 식구나 친척이 동행하는 수도 있었으나, 신랑이 직접 가서 데려오는 것이 당시 고대 근동지방의 일반적 결혼 풍습임이 반영된 표현입니다.
장가들더니(와이카츠) - 이 구절은 문맥의 흐름상 이미 결혼한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곧이어 출생할 모세에게는 훨씬 연배의 누이 미리암과 세살 정도 위인 아론이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15:20).
*출15: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 아들을 낳아 석 달 동안 숨겼습니다(2절)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임신하여 - 마치 모세가 장자로 출생한 것 같은 인상을 주나 4절과 7:7에 따르면, 이때 모세 위에는 누이 미리암과 아론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본서에서 차지하는 모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모세의 출생을 최초로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을 낳아 - 모세의 출생 년도 B.C. 1526년 경입니다.
왜냐하면 B.C. 1446년 출애굽 때 모세의 나이가 80세였기 때문입니다(7:7). 한편 모세 출생 당시의 바로는 애굽 18왕조의 첫 왕 아모세(B.C.1584-1560)의 손자인 투트모세1세(B.C.1539-1514)로서 그가 바로 히브리 신생아 학살의 주역이었습니다.
잘 생긴 것(=준수함)은 외형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내적 순결함까지 내포한 말입니다.
“잘 생긴 것”은 창1장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하신 그 단어입니다.
우발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계획 가운데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것 처럼,
하나님은 모세의 부모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 주셔서 믿음의 용기를 가지도록 하셨고, 하나님의 계획이 그들을 통해 시가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하나님의 주신 그 마음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명령에 반하는 믿음의 도전을 시작합니다.
출애굽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세의 탁월함이 어려서부터 드러남을 보여줍니다.
생후 석달 정도 기간이 지나면 아기의 울음소리도 커지고 활동 범위도 넓어져서 한 귀퉁이에 몰래 숨겨 놓고 키우기에는 힘들게 됩니다.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릎쓰고 모세를 숨긴 그 어머니의 사랑과 용기를 통해, 우리는 모성애의 진면목을 보게 됩니다.
더욱이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노력을 가리켜 바로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한 믿음의 행위라고 격찬하였습니다(히 11:23).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의 계획은 성도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당신의 마음을 부어주시고 순종을 명령하십니다.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순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면 가능해 집니다.
이 마음은 앞장에 히브리 산파들이 가졌던 마음과 동일한 것입니다.
출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세상은 어쩔수 없다는 핑계로 말씀대로 살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말씀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모세의 부모들은 아이를 석달동안 숨겼지만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내보내기로 결정합니다.
3)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3절)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갈대는 나일 강변에 흔한 수중 식물인 파피루스(Papyrus)를 가리킵니다. 물을 다량 흡수하며 성장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대략 3-4.5m의 높이에 이르고 종이나 배를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상자을 '테바'이라 하는데 이말은 노아가 건조한 '방주'를 지칭할 때도
사용된 특수 고어입니다(창 6:14).
*창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따라서 이 말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 외에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그것은 '죄악과 죽음이 넘실대는 위기에서 당신의 백성을 온전히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처소'란 뜻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이 '상자'는 자신의 몸을 바쳐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을 암시하는 예표적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역청(헤마르)은 광물성 피치(pitch)로서 방수, 방부, 도로 포장 등의 용도로 쓰입니다.
당시에는 팔레스틴으로부터 수입되었다합니다.
사해 근처는 역청이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창 14:10).
여기서 나무진과 더불어 이것을 칠한 것은 어떻게든 아들을 살려보려는 진한 모성애의 발로입니다.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서 있습니다(4절)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그의 누이는 모세의 친누이로서 훗날 여선지자가 된 미리암을 가리킵니다(15:20;민26:59).
이것은 나일강에 어린아이를 버린 것과는 다릅니다.
성경은 부모들이 모세를 상자에 담아 갈대사이에 두었다고 말합니다.
미리암은 멀리 서서 갈대 상자에 담긴 아기의 신변을 염려하여 애타는 심정으로 지켜 보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2.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발견함(5~6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1)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와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오게 합니다(5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바로의 딸 - 여기 이 공주는 애굽 18 왕조의 창설자인 아모세의 아들
아멘호텝 1세( B.C. 1560-1539)의 딸과 투트모세 1세(B.C. 1539- 1514) 사이에서 태어난 무남독녀 '핫셉슈트'를 가리킵니다.
나일 강(하수) - 애굽의 유일한 젖줄이라 할 만한 나일 강은 고대 애굽인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풍요와 건강을 제공하는 성역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강 유역에는 여인들을 위한 특별 구역을 설치해 두고 일종의 종교 의식으로서, 또는 다산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목욕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일강 유역에 애굽 왕실을 위한 목욕장이 특별히 마련되어 있었으리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울러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이 모든 사실을 익히 알고 계획을 세워 신중히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시녀들 - 여기서 복수로 쓰인 '시녀들'은 공주의 집안일을 돌아보는 하녀들을, 그리그 뒤이어 단수로 쓰인 '시녀'는 공주의 측근에서 특별 시중을 드는 젊은 여자를 각각 가리킵니다.
기록에 의하면 애굽의 고관 자녀들이 목욕하러 갈 때에는 최소한 서너 명의 하녀들을 대동하였다합니다.
거닐 - '이리 저리 배회하다'는 뜻입니다(삼하 11:2).
시녀들은 공주가 목욕하는 동안 주위를 감시하고 경관을 즐길 겸하여 느긋한 마음으로 강변을 왔다 갔다 했을 것입니다.
보고. - '주시하다'는 뜻입니다.
모세를 담은 갈 상자는 매우 정성스럽게 소중히 만들어졌으므로
공주의 특별한 주목을 끌기에 충분 하였습니다.
2)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6절)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불쌍히 여겨 - '아끼다', '긍휼히 여기다'는 뜻입니다.
여기서(하나님의) '긍휼'을 뜻하는 '헤믈라'(사63:9)가 유래했습니다.
실로 긍휼지심(矜恤之心) 이야말로 다른 모든 의식 준수에 선행해야 하는(마 9:13) 참된 사랑의 원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 공주가 아이를 보는 순간 바로 히브리 유아라고 단정할 수있었던 것은
(1) 그 아이의 용모가 셈족 계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며
(2) 그 당시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은 히브리 민족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본절에서는
(1)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당신께서 쓰실 일꾼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시 45:20;벧전 1:5)
(2) 바로 왕의 엄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어린 생명에게 인정을 베푸는 공주의 휴머니즘이 돋보입니다.
3. 어머니 품에서 자란 모세(7~10절)
1)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7절).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2)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옵니다(8절)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가라 - '그렇게 하라', 혹은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 되겠구나'란 뜻입니다. 영역본은 '좋다, 그리하라'로 옮겼습니다.
3)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9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데려가다 - (딴 곳으로) '데리고 나가다'란 의미를 함축합니다.
당시에는 바로의 서슬 푸른 엄명이 내려져 있었으므로 궁중에서는 주워온 히브리 아이를 기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삯을 주리라- 즉 '고용하다', '급료를 주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요게벳이 자기 아들을 기르는 댓가로 삯을 받았음은 주목할 만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제노역에 시달린 나머지 자녀를 양육할 시간조차 얻기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요게벳은 어엿이 양육비까지 받아가면서 모세를 기를 수 있게 되었으니, 여기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가 두드러집니다.
4)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10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히브리인들은 특별한 경우 7살까지 젖을 먹이는 경우가 있다고 하나 대부분은 3살 정도에서 젖을 끊습니다(창 21:8;심상 1:22,23,24;대하 31:16).
따라서 그 아이(모세)가 바로 공주에게 되돌려진 때는 3,4세 가량 되었던 때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상자는 흘러서 바로왕의 딸에게로 인도되고 이제는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곳에서 모세는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그의 아들이 되니라 - 친 자식처럼 여김을 받았음을 가리킵니다.
이로 보건대 당시 애굽에는 입양의 풍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데반에 의하면 이후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 궁중의 모든 학술을 다 배웠습니다(행 7:22).
여기서 학술이란 철자법, 문법, 역사, 산술, 의학, 기하학, 천문학 등을 통칭합니다.
모세(모쉐)-'끌어내다','건저내다'란 뜻을 가진 동사 '마솨'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본래 애굽어로 '모'는 '물'이란 뜻이고, '우세스'는 '건져냄을 받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원래 이름이자 애굽식 이름인 '모두세스'는 '물에서 건져냄을 받은 자'란 뜻으로 애굽 공주가 아이를 물(나일강)에서 건져낸 것을 기념하여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애굽식 이름은 히브리인들의 발음을 따라 히브리식 이름인 '모세'로 고쳐졌는데, 그 뜻은 '건져내는 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우리는 이 이름의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달을수 있습니다.
즉 그 이름 속에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서 부과하신 민족적 대사명이 한마디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곧 죽음의 강(나일강)에서 '건지움을 받은' 그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굴종과 예속의 땅 애굽에서 구출하여 역시 죽음의 강 (홍해)으로부터 '건져내야' 할 사명을 부여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영적으로 모든 죄악으로부터 건져냄을 받은 자 곧 중생한 자만이 다른 죄인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진리를 암시합니다(마 15:4).
*마15: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하나님은 모세의 부모님들이 만든 가냘푼 갈대 상자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갈대상자는 히브리어로 노아의 방주와 같은 것입니다.
온세상이 멸망을 당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방주를 통해 노아 가족 생명을 보전하셨던것 처럼 갈대상자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으l 사람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바로의 딸이라면 바로 왕과 별반 다를바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갈대상자 안에 모세를 보았을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연민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6절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원문에는 “보라”말이 더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우리 시선을 함께 주목시키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봐야 할까요
아기가 울고 그 아이를 불쌍히여기는 이 상황은 하나님이 만드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연약한 갈대상자를 만들 능력밖에 없지만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갈대상자는 애당초 만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최선위에 더 하실 하나님의 최선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연약한 갈대상자는 여러분의 인생을 구원할 방주가 될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집니다(1,2절).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은(6:20) 바로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기에 모든 시내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라는 바로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들을 숨겨 키웁니다.
이들은 사방으로 두려움이 옥죄어오는 상황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아들을 본 것입니다(행7:20, 히11:23).
*행7: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믿음이 하나님의 일꾼 모세를 살렸습니다.
자녀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2) 최선을 다해 책임지되, 하나님께 맡기는 것도 믿음입니다(3,4절).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겨 기른 부모는 한계에 다다르자 아이를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우기로 합니다.
이는 결코 자포자기(自暴自棄)하거나 우연에 맡긴 것이 아니라, 마지막 까지 최선의 지혜와 노력을 다하여 하나님께 아이의 생명을 맡긴 것입니다.
내 열심과 노력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는 것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일하십니다(5,6,10절).
마침 목욕하러 왔다가 아이를 발견한 바로의 딸은 아기가 히브리 아이인 줄 알았지만 불쌍한 마음이 들어 양자로 삼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모세는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한 바로의 딸에 의해 보호받고, 바로의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된 것입니다.
4) 어린 시절에 받은 믿음의 양육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합니다(7~9절).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모세는 젖만 먹은 것이 아니라 믿음도 함께 먹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았고(2:11),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3:15).
이 믿음이 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굽의 보화를 포기하는 결단으로 나타났고(히11:24~26).
나중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력이 되었습니다.
자녀의 앞날을 위해 부모 된 나는 자녀의 마음에 무엇을 심어주고 있습니까?
혹시 모세가 내버린 성공과 출세 그리고 재물을 축복으로 포장하여 심어주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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