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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여호수아1장1~9절
제목 : 담대하라
신명기까지는 모세와 제1세대의 이야기였다면,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와 제2세대의 땅 정복 이야기이며, 사사기는 여호수아 이후 뚜렷한 지도자가 없는 제3세대의 땅에서 실패한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서는 모세의 죽음 이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신명기와 여호수아를 별개의 책이 아닌 연속적으로 읽게 하는 문학적 장치입니다ㅐ
동시에 여호수아서는 오경 이후 ‘약속의 땅’에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여는 첫 번째 책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에게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하십니다.
1. 약속의 땅으로 가라(1~2절)
1)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1절)
“[1]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 하여 이르시되”
여호와의 종.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특별한 임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적 명칭입니다.
따라서 이는 본문의 모세 외에도 아브라함(신9:27), 이삭과 야곱(신 9:27), 갈렙(민 14:24), 삼손(삿 15:18), 사무엘(삼상3:9), 다윗(삼하 3:18), 이사야(사 20:3)를 위시한 여러 선지자들(스 9:11), 그리고 신약 시대의 바울(롬 1:1) 등에 게도 적용되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 왕상 6:1의 기록에 근거하여 모세의 임종 시기를 역산하면, 대략 모세의 임종 시기는 B.C. 1405년 경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편 모세의 죽음은 신명기의 마지막 부분인 34장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여호수아서를 모세오경에 연결시켜줄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서가 모세 오경의 계속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 성경(Massoretic Test) 초두가 와우 계속법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실히 뒷받침됩니다(Calvin, Keil).
모세의 수종(시종)자. - 여기서 '수종'(시종)(侍從)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솨레트'는 주로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을 뜻하나, 여기서는 개인적인 업무 보좌관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사환(심부름꾼)이었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모세의 보좌관이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Lange).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이를 '부관'(副官)으로 번역함으로써 그 의미를 충분히 살렸습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기 전 모세의 부관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 이스라엘의 제 2인자였습니다(출24:13;33:11;민 11:28; 신 1:38).
여호수아 - 여호수아가 성경 역사의 표면에 처음 나타나기는 출애굽 직후 아말렉과 맞붙은 르비딤 전투(출 17:8-16)에서였습니다.
그때 이후 그는 시내 산 율법 수여시 모세와 동행했고(출 24:13, 14),
가나안 정탐시에는 갈렙과 더불어 신앙적 보고를 하는 등(민18:8;14:6-9)
모세 곁에서 충실히 모세를 보좌하면서 이스라엘의 차기 지도자로서의 수업을 쌓아갔습니다.
마침내 모세 말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 인정하여(민 27:15-23; 신 31:3, 7, 14)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게 하셨던것입니다. 출 17:9; 민 13:16 주석 참조.
말씀하여 이르시되 - 가나안 정복 전쟁기라 할 수 있는 여호수아서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종종 사용되었는데(3:7;4:1, 15;5:2, 9;7:10;8:1등),
이는 하나님과 여호수아와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며, 동시에 가나안 정복의 참 지도자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 줍니다.
한편 구약시대에 말씀의 전달 방법은 직접적 음성, 꿈, 이상 등 다양하지만(Berkhof), 여기서는 어떤 방법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 여호수아는 모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을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Woudstra).
2)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인 요단 서편으로 행진할 것을 명령합니다(2절)
“[2]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목전에서 죽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가데스에서의 비 신앙적 행위 때문이었습니다(민 20:10-12).
*민20:10~12절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그 속에는 분명 심오한 구속사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민20:12;신 3:27 주석을 참조하라.
이제(웨아타) - 접속사 '웨'는 대체로 '그리고'(and)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그러므로', '그래서'의 뜻이 강합니다.
개역 성경은 이 부분의 번역을 생략함으로써 그 의미를 상실시켰지만 영역본 KJV, RSV, NIV 등은 'therefore', 'so', 'then'등으로, 또한 공동 번역은 '그러니'로 번역함으로써 그 의미를 충분히 살렸습니다.
한편 '아타'는 '지금', '곧장', '이때에'를 뜻하는데, 따라서 '그러므로 이제'를 뜻하는 '웨아타'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인도해야 할 이유 및 시점을 밝혀 줍니다.
여기에서 그 이유는 바로 앞에 서술되어 있는 '모세의 죽음'이고 그 시점은 '곧장'입니다.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 이는 요단을 건너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대상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즉 여기서 지시어 '이'(하제)는 그들이 다름아닌 '모든 이스라엘 백성'임을 강조해 줍니다.
일어나(쿰) - 이 말은 본래 말 그대로 일어서는 신체적 행위를 뜻할 때 사용되는 동사이지만, 군사적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어, 전쟁을 위한 준비(삿 7:15), 전쟁 수행(출 2:17), 전쟁의 승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 요단을 건너. - '내려가다', 급하게 '흐르다'의 뜻을 지닌 '야라드'에서 파생된 '요단'은 '빠르게 흐르는 강'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Lange).
이강은 해발 2,852m인 헬몬 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호수까지 28km를 흘러 내린후, 거기서 다시 해면(海面)보다 380m나 아래인 사해(死海)까지 직선 거리로 약 104km(곡선거리는 총 직선 거리의 3배에 해당)나 흘러 내려가는 팔레스틴 최장, 최대의 강입니다<4:19-24 강해, 요단 강>.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 - 3절의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6절의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 등의 말과 더불어,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저 주신 선물임을 보여주며, 동시에 당신의 약속을 변치 않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특히 여기서 '주는'(노텐)은 현재 분사형으로,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지금 막 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2. 약속의 땅의 경계선(3~4절)
1) 발바닥으로 밟는 곳(3절)
“[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 하나님께서는 과거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내용(신 11:24, 25)을 상기시키심으로써, 그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시는 당신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Goslinga).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 여기서 '주었노니'(네타틴)는 완료형으로서, 장차 주실 가나안을 이미 주신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Soggin).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은 신실하사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성취시키실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2) 광야와 레바론에서부터 유브라데 강 까지 헷 족속이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2절)
“[2]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장차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땅의 경계가 창 15:18-21과 출 23:31에는 개략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반면에, 민 35:1-14과 본절에는 보다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남쪽으로는 가나안 동남쪽에 위치한 신(Zin) 광야, 서쪽으로는 해 지는 편인 대해(大海) 곧 지중해, 동쪽으로는 큰 하수(河水) 곧 유브라데 강, 그리고 북쪽으로는 레바논 산맥이 그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민 34:1-14; 신 11:24 주석 부분을 참조하라.
헷 족속 - 가나안 7족속 중의 하나로(신 1:7), 족장 시대 때부터 가나안 땅에 거주해 왔던 큰 족속이었습니다(창 23:3, 4;26:34;27:46).
이들 족속은 본래 가나안의 둘째 아들 헷의 후손들로서(창 10:15) B.C. 2000년 경에 이미 소아시아 전역에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후 이들 족속은 가나안 땅으로까지 들어와 가나안 정복 당시 상당히 넓은 판도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헷 족속의 온 땅'이란 표현은 가나안 지경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 것입니다(Keil).
한편 고고학적 문헌을 보면, 초창기 헷 제국의 왕으로 '두달리아'(Tudhalia)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 자를 고임 왕 '디달'(Tidal, 창 14:1)과 동일시 하기도 합니다(D. Douglas,New Bible Dictionary, 9. 528).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 여기 제시된 가나안 지경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잠깐 비슷한 범위의 지경까지 차지된 적은 었으나, 한 번도 그 모든 지경을 완전히 차지한 적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지경은 하나님께로부터 허락된 이상적 범위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 여부에 따라 그 판도가 축소될 수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C. Vonk).
3. 강하고 담대하라(5~9절)
1)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5절)
“[5]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 '너를 능히 대적할 자'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네 앞에 설 수 있는 자'(any man be able to stand before thee, KJV)란 뜻입니다.
인간이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듯이, 여호수아 앞에는 어느 누구도 대적하려고 설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이처럼 특별한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곧 전개될 가나안 정복 전쟁 시 무수한 원수들과의 전투가 있을 예정이었으므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 40년 동안 모세 곁에서 직접 그와 함께 해 주셨던(출3:12;4:12, 15) 하나님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뚜렷히 목격한 여호수아이기에, 지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이 말씀은 그에게 큰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었을 것입니다.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 이 말은 앞서 약속한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라'는 말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말씀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형통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창 26:24;28:15;31:3).
이러한 맥락에서 후일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최후의 말씀을 남기셨는데, 실로 하나님께서 그 택한 자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마 1:23)사상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 흐르고 있는 하나의 큰 맥(脈)인 것입니다.
떠나지 아니하며. - '떠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파는 '기울다', '떨어뜨리다'를 뜻합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이 말은 '떨어뜨리지 아니하며'(Blair)로 번역됩니다.
버리지 아니하리니. - 이 말은 앞에 나오는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편 시 37:25-33에는, 결코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의 수중에 떨어지게 함으로써 그를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2) 강하고 담대하라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 동일한 말이 본장 7, 9, 18절에서도 계속 반복됨으로 그 의미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하게 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자크'는 '손에 힘이 있는 상태'로, 직역하면 '굳건하다'이며 '담대히 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츠'는 '무릅에 힘이 있는 상태'로 직역하면 '용기를 가지다'입니다(사 35:3).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땅을 상속받도록 할 사람이 다름 아닌 여호수아임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 번역은 이 의미를 충분히 살려'...나누어 줄 사람은 바로 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한편 이 사실은 신 3:28; 31:7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신3: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신31: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조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에게 맹세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사실은 민11:12;14:16, 23 등에 나타나며, 신명기에서 집중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신1:8;4:31;6:10;7:12,13;8:1;11:9,21;13:17;19:8등).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의 성공적인 정복을 위하여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3) 율법을 지켜 행히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7절)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오직''는 '확실히', '분명히'를 뜻하며,
'극히'는 '매우', '아주'라는 뜻의 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수식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자인 여호수아의 마음 자세를 더욱 가다듬게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 - 이 구절은 본서에서 율법(모세 오경)을 모세의 저작으로 언급한 몇몇구절들(8:31-35;20:1,2;21:1-3)가운데 첫 구절입니다.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 '치우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수르'는
'빗나가다', '방향을 돌이키다'를 뜻하는 말로서, 이는 하나님의 뜻을 엄격히 따르는 정도(正道)로부터 이탈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성경 상 이 말은 '좌','우'라는 말과 결합되어 자주 묘사됩니다.(신 2:27;5:32; 왕하 22:2).
*신2:27절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큰길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신5:32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왕하22:2절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 이미 주어진 약속을 통해 볼 때(신8:1;11:8,22-25;28:1, 2, 14;29:9),
이스라엘의 '형통함'은 율법의 준수와 관련하여 조건적인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신약에서보다 형통함과 말씀 준수가 더욱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 '형통하다'의 히브리어 '사칼'은 '번영하다', '성공하다'를 뜻합니다.
신 29:9 주석 참조.
*신29:9절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4) 율법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행하라(8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 율법을 특별히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한 것은 '잊지 않도록 항상 외우라'는 의미의 문학적 표현입니다.
또한 여기서 '떠나다'는 '어기다', '벗어나다'라는 뜻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떠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습니다.
묵상하여. -이 말은 단순히 율법에 대한 이론적 사색이나 명상을 뜻하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의 적용 및 실천을 위해 율법을 깊이 연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시편 기자는 시 1:2에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복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5)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9절)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명한 것이 아니냐. - 의문문의 형태를 사용하여 강한 긍정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 수사학적 표현입니다(민 23:19).
*민23:19절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 신 31:6 주석 참조.
*신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가나안 정복의 성패는 믿음과 순종에 있습니다.
두렵고 무서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강하고 담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마인드 컨트롤로 가능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묵상하고 실천하여 그 함께하심을 누리는 것이다.
묵상 Point
1) 내가 함께하리라
모세가 없다. 출애굽을 이끈 위대한 영도자가 없다.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모세의 수종자였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에 나서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뿐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출애굽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니 가나안 정복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할 자 없으니 여호수아를 대적할 자도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믿는 것밖에는 할 것이 없다.
2) 강하고 담대하라
모세가 없는 현실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고 공포다.
아무리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그는 안 보이지 않는가, 여호수아에게 가장 큰 대적은 불신앙이다.
그 불신앙을 자겨다주는 두려움이다.
대적의 정체와 전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신들의 전력을 과소평가하면 두려움과 염려가 찾아올 것이다. 안 된다.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화하라.
그것이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비결이다.
강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만 강해질 수 있다.
단순한 정신무장이나 최면이 아니다.
강하신 하나님의 현존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3) 다 지켜 행하라
하나님을 의지하되 어떻게 의지할 것인지를 아는 것도 기술이다.
그 감과 촉이 예민해지는 것이 지도자의 첫 자격 요건이다.
하나님은 친히 가르쳐주신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사안마다 율법이 가르쳐준다는 뜻이 아니다.
날마다 율법을 따라서 주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라는 뜻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영성이 형성될 것이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정리해주시고 해결해주실 것이다.
군비 확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 그것이 강함과 담대함의 비결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절 모세는 죽었지만 모세에게 하신 약속(3절)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부재로 마음이 무거울 때 ‘모세가 죽었으니…일어나 요단을 건너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탁월한 지도자였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을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그분의 약속도 변함없습니다.
모세는 제 역할을 다했고, 이제는 여호수아가 다음 분량을 감당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신실한 종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일구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우리의 지도자이시기에, 사람 때문에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5-9절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고(참조. 민 14:1-12), 평생의 지도자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그들을 여호수아가 이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며 반드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은 ‘용기’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요구하시는 담대함은 무모한 호기와는 다릅니다.
방향을 잡지 못한 담대함은 오히려 큰 과오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율법의 말씀으로 바른 지시를 받으라 하십니다.
율법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대로 따를 때, 여호수아는 넉넉히 맡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통해 바른 방향을 찾아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두려운 마음에 서두르지 말고, 잠잠히 말씀에 기대십시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7-9절 정복 전쟁을 앞둔 지도자에게는 전열을 정비하고, 작전을 세우는 것이 더 긴박한 필요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 약속의 실현’입니다. 그러니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이 확신을 갖지 않으면 두려움에 마음이 녹아 하나님을 원망하며 돌아섰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은 말씀에 따라 올바른 방향과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도자에게 율법(하나님의 말씀)은 늘 곁에 두고 주야로 묵상해야 할 행동지침서입니다.
[기도]
공동체-위기의 상황에도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한 마음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열방-여러 이유로 집과 고향을 떠나 거주지를 옮긴 이들이 전 세계 10억 명에 이른다.
각국의 교회가 이주자들을 위한 사역을 잘 개발하고 실천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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