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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89편38~52절
제목 : 하나님과 관계회복
시편89편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남유다가 겪고 있는 전쟁의 고통과 고난이 자신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한 고통임을 인정하고 난 뒤,
하나님께로 눈물로 호소하며 회복을 간구하는 부분입니다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고통, 고난/기쁨, 영광 등)의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문제로 고백하고 난 뒤 고통과 고난이라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자신 부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점이고 그것이 진정한 해결입니다.
38~45절에서는 현재의 곤고에 대하여 말하고,
40~51절에서는 구하여 주소서 하고 호소함입니다.
1. 현재의 곤고 (38~45절)
현재의 곤고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생긴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였습니까?
1) 왕을 욕되게 하셨음(38~39절)
“[38]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셔서 버리셨으며[39]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
현재 당하는 곤고함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신 것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믿는 믿음이니,
결국은 그 원인을 찾아 회개함에 이르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고 곤고함을 호소함입니다.
언약과는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나므로 놀랄 수밖에 없었음입니다.
어떤 고라 자손도 심한 고난을 인하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시44:9, 60:10,108:11)라고 하였는데 패전을 인하여 그렇게 부르짖은 것입니다.
여기 시인도 패전으로 인하여 심한 곤경에 빠진 왕을 보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저를 곤고한 지경에 빠뜨린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왕을 가르킨 것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을 뜻합니다.
그럴지라도 저가 언약을 어기고 죄를 지었다면(삼하7:14, 대하12:1)
언약에 제시한 대로 사람 막대기 곧 인생 채찍으로 칠 수밖에 없으니(삼하7:14),이는 회개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과 왕궁 보물을 약탈당하게 한 것뿐이지,
진멸해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왕상14:26, 대하12:9).
르호보암은 그 후 회개하여 겸비해졌으므로,
하나님께서 노하심도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대하12:12).
“버리셨다”는 말은 “거절했다”는 뜻이지 “폐기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에 “폐위했다”는 것은 아니며,
“관을 땅에 던짐”도 왕으로서의 위엄을 떨어뜨려 욕되게 한 것을 이름이지 왕위에서 쫓아낸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으로서 존엄성이 형편없이 되어 버린 것을 지칭한 것입니다.
2) 울을 제하셨음(40~41절)
“[40]그의 모든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요새를 무너뜨리셨으므로 [41]길로 지나가는 자들에게 다 탈취를 당하며 그의 이웃에게 욕을 당하나이다”
패전으로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짐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38~39절),
국가 전체가 도탄 중에 떨어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줄 압니다.
여기서 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포도원에 비유하였으므로(시80:8, 사5:7),
나라의 국방력을 포도원 울타리로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시80:12).
“요새”도 “울타리”의 재설명 이므로 국방력을 지칭한 것입니다.
이 국방력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게하신 것으로 말함은 범죄로 인한 징계인 것을(대하12:2) 깨달음입니다.
이를 알았다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신 징계를 푸시도록 함이 마땅합니다.
“길로 지나가는 자들”이나 “그의 이웃”은 같은 말로서 유대 민족의 이웃 여러 국가들을 말합니다.
저 국가들이 다윗과(삼하8:1~14, 대상18:1~13) 솔로몬에게(왕상4:21, 대하9:26), 정복을 당하여 조공을 바쳐 오다가(삼하8:2, 6, 왕상4:21) 이제 그 국방력의 약화된 틈을 타서 지금까지의 분풀이라도 하듯 탈취하고 약탈하는 반격을 하는 것입니다.
공공연한 전쟁으로 도전하고 나온 것이 나니니까 역사적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았을 지라도 국경선 변방을 약탈하는 불량배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대적을 높이셨음(42~43절)
“[42]주께서 그의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들은 기쁘게 하셨으나 [43]그의 칼날은 둔하게 하사 그가 전장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하셨으며”
대적을 높이시고 유다를 굴하게 하신 것을 뜻합니다.
이것도 주께서 하신 것으로 알았으니 애굽은 주의 손에 들린 막대기 곧 징계의 채찍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음이었습니다.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시고”는 대적을 강하게 능력있게 하셨음을 뜻하고,
“원수를 기쁘게 하셨으며”는 승리하게 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들의 모든 원수”라고 함은 유다의 원수를 가리킵니다.
원수들을 기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언약에서는 악한 이유로 저를 해하지 못하게 하고 원수가 강탈치 못하도록 할 뿐아니라 도리어 대적을 치고 박멸하시겠다고 하셨는데(22~23절,삼하7:10),
본절에서는 그 반대이니 언약을 배반하신 것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범죄치 않을 때의 조건이고, 죄를 지으면 사람 막대기와 채찍으로 징계하신다고 하신 것으로서(삼하7:14), 배약한 것은 사람이고 애굽을 채찍으로 들어 징계하신 것이니 언약대로 이행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징개는 회개를 하게 하는 것이니 도리어 사랑의 채찍인 것을(히12:6) 알아야 합니다.
칼날은 둔하게 하였다는 것은 전력을 약화시킨 것을 뜻하고,
“전장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하셨다는 것은 패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4) 그 영광을 그치게 하셨음(44~45절)
“[44]그의 영광을 그치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땅에 엎으셨으며 [45]그의 젊은 날들을 짧게 하시고 그를 수치로 덮으셨나이다 (셀라)”
왕과 국가적 권위를 추락시키셨음을 말합니다.
“영광”이라는 말이“정하다”(레11:32), “깨끗하다”(레12:7)는 동사에서 온 명사로서 “맑음”, “광휘” “광택”을 뜻하는 말이므로 왕위나 국가의 위엄 혹은 권위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를 그치게 하였다는 것이 온 세계에 널리 알려졌던 그 위광을 실추시키셨음을 뜻함이니, 열방의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와 부귀와 국력의 위대함을 보러왔던 (왕상10:23~25) 위광이 이제는 실추되고 없음을 뜻합니다.
“그의 왕위를 땅에 엎으셨으며”라고 한 말은 왕이나 국가의 위엄이 추락되었음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 의 젊은 날들을 짧게 하시고”라고 함은 국운이 너무 일찍 쇠잔해진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수치로 덮으셨나이다”라고 함은 패전으로 국가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망신만 톡톡히 당해 버렸으니 수치에 덮여 싸여 버려서 나타나 보이는 것이 수치뿐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된 형편은 말한 것입니다.
2. 구하여 주소서(46~51절)
46~48절에서는 인생을 허무하게 하셨음에 대하여,
49~51절에서는 훼방당함을 기어하소서 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1) 인생을 허무하게 하셨음(46~48절)
“[46]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47]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48]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인생의 허무함을 인하여 속히 진노하심을 푸시고 구하여 달라고 간구함입니다.
속히 구하여 달라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는데,
첫째는 인생의 연한이 단축함을,
둘째는 무가치한 존재임을,
셋째는 죽어야 할 인생임을 들어서 속히 구하여 주셔서 짧은 기간이나마 영혼을 건지는 일을 하게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니이까”는 속히 구하여 주시기를 원하는 간절한 발언이니,
이는 오랜 동안 성도들의 간구였던 것입니다.
다윗도(시13:1),
아삽 자손들도(시74:1,10,79:5,80:4),
여호와의 사자도(슥1:12),
순교한 영혼들도(계6:9~10) 이렇게 부르짖었으니
교회의 오랜 부르짖음이라 하겠습니다.
시인도 유다의 이 곤경을 속히 구하여 주셔서 다윗에게의 언약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함이니, 에스라인이 아니라고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다 이를 간절히 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왕권의 회복은 그 백성의 복된 평화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는 속히 구하여 주시기 원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시고 종래와 같은 유다의 영광(광휘)을 회복시켜 달라는 것임을 밝힘입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는 인간 생명의 단촉을 이유로 속히 구하여 달라고 구함입니다.
얼마 안되는 시간을 고난으로만 지내고 싶지 않은 것은 인간 공통의 염원입니다.
다윗도 그렇게 외쳤고(시39:5, 대상29:15),
모세도(시90:4~5),
욥의 친구 소발도(욥20:8~9) 그렇게 부르 짖었습니다.
옛 사람들도 초로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짧은 인생살이임을 탄식하는 말입니다.(시39:5).
이 짧은 기간에 하나님 순종하는 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인데 불순종하고 진노 입다가 언제 순종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속히 구하여 주시라고 함입니다.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라고 함은 하나님의 창조가 허무하다거나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니고, 인생의 무가치함을 탄식하는 말입니다.
그것도 무가치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 스스로가 무가치한 자가 된 것을 한탄하는 것입니다.
전7: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꾀를 냈다는 그 꾀가 죽을 꾀를 냈으니(창3:6~7),
자신만 죽은 것이 아니고 후손 전체를 죽인 것입니다(롬5:12).
언약을 어긴 자의 후손이라 또 범하여 이 징계를 입은 것이지만,
이제 회복시켜 주시면 순종하기에 전력을 기울일 각오로 이 간구를 하는 것이겠습니다.(인간의 연약성에 대하여는 시편8:4“사람이 무엇이냐”강해 참조)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라고 함은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죄 값은 사망이요(롬6:23), 죄 없는 의인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으니(시143:2, 전7:20, 롬3:10), 죽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인간은 이 땅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이니 죽기 전에 구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 죽지 않게 하여 달라는 것은 영육간 다 포함하는 것이니, 영적으로는 국가 민족 전체가 하나님 경외함이 바로 복구되어 범죄치 않게 하여 국가 민족의 위광이 다시 떨쳐질 수 있게 하여 달라는 것이고, 육신 생명도 살려서 하나님 순종 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하여 달라는 것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 민족 전체적으로나 영육이 다 죽지 않고 살아야 언약의 참된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2) 훼방당함을 기억하소서(49~51절)
“[49]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전의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50]주는 주의 종들이 받은 비방을 기억하소서 많은 민족의 비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51]여호와여 이 비방은 주의 원수들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비방한 것이로소이다”
다윗에게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언약하신 맹세를 따라 구원하시되 주의 언약의 백성이 비방당한 것을 기억하셔서 구원하여 달라는 호소입니다.
더욱이 이 비방은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비방한 것으로서 곧 주를 비방한 것이니 비방자를 거저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맹세하신” 것이란 다윗에게 한 언약을 가리킵니다(35절, 132:11~12, 삼하3:9, 대하7:18, 렘33:21).
그때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맹세하셨으니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함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자손이 비방을 받았사옵고 현재도 그로 인한 곤고함에 처해 있으니 언약을 기억하셔서 이 비방받음에서 구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의 받은 비방”이란 주의 일을 하기 위해 기름 부어 세운 임금과 그 군대가 비방받은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께서 비방한 자들이라고 고발하여 그 들에게 훼방당한 주의 백성을 구하여 달라고 함입니다.
“비방함”이란 “모욕함”(삼상11:2), “치욕”(삼상17:26), “능욕”(느1:3)을 당케 함을 뜻합니다.
백성들 중에 불만과 불평을 가졌던 자들이 이 때에 열방들의 비방을 거들어 함께 비방하게 되어 시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백성들 곧 비방하는 자들 모두가 다 그 “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품”은 “가슴” (잠5:20)을 뜻하는 말로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마음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음을 뜻합니다.
원수들의 능욕도 가슴 아픈 일인데,
같은 백성 되어서 어떤 불만이 다소 있다고 같이 비난하고 대든대서야 어찌 뜻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쓰리게 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이란 왕의 행동을 가리킨 것인데,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기름 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왕을 비방한 것이 곧 하나님을 비방한 것이라고 함을 한번 더 강조하면서 간구한 것입니다.
“행동”으로 번역된 말은 “발 뒤꿈치” 또는 “발자국”을 뜻하는 말인데,
“종적”(시56:6, 77:19)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
그르므로 이 말은 지난 행동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 비방이 다 “주의 원수가”한 것이라고 함은 원수들의 비방은 물론이고 백성들이 비방도 그 근본 원인이 원수들의 비방에 있는 것이므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전의 보물을 약탈한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큰 모독인데(왕상14:26, 대하12:9), 그런 행동은 하면서 곡설인들 얼마나 퍼부었겠는가?
왕궁 보물과 솔로몬의 금 방패까지 다 탈취하였으니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짐은 또 보통이었겠는가?
3. 결론 (52절)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라고 하였습니다.
본절은 본편의 결론인 동시에 제3권이 결론입니다.
“찬송한다”는 말은 “축복한다”는 말이므로 “송축한다”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이름을 기리는 찬송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말의 시상이 명령형이 아니고 수동 분사이기 때문에
“송축하리로다”로 함이 좋습니다.
“아멘 아멘”하고 아멘을 거듭 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다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무엇때문인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세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인생의 문제의 해결점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땅자의 비유가 그 예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