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용어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끼식물’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끼식물을 ‘선태식물(蘚苔植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한자어 ‘이끼 선(蘚)’, 이끼 태(苔)‘로 모두 이끼라는 뜻이다. 굳이 선태를 구별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용어들은 백과사전에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른다. 아마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명칭을 그대로 인용하다 보니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말로 충분히 의사전달이 가능한데도 한자어로 사용하는 예는 많다. 꽃이 피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을 ’은화식물(隱花植物)‘ 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엔 ’은화(隱花‘)라는 꽃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고사리, 이끼, 쇠뜨기, 석송과 같이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우리말로 ’민꽃식물‘이라는 표현이 있다. 또 ’겉씨식물‘, ’쌍떡잎식물‘이라는 명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나자식물(裸子植物)‘, ’쌍자엽식물(雙子葉植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꼭 한자어로 써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끼식물은 전세계에 약 2만 3000종이 살며, 지구역사로 보면 최초로 육상생활에 적응한 식물군이다. 분류학상으로는 양치식물 가깝지만, 관다발은 발달해 있지 않다. 하지만 엽록체를 가지고 있어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녹색식물로 분류된다.
줄기와 잎은 편평한 엽상체로서 조직의 분화는 적고 헛뿌리가 있다. 무성세대와 유성세대를 거치는 특징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태식물, 蘚苔植物] (두산백과)
이끼식물은 크게 뿔이끼류 · 우산이끼류 · 솔이끼류로 나눌 수 있다. ① 뿔이끼류는 원사체가 짧은 실 모양이거나 없고, 포자는 발아 직후 분화한다. 세포 내에는 1개에서 몇 개의 대형 엽록체가 있다. ② 우산이끼류는 세포 내의 엽록체가 다수 있으며, 포자체는 공 모양의 포자낭이 있으며, 포자낭은 네 개 이상 갈라져 포자와 함께 탄사를 가진다. ③ 솔이끼류는 잎은 나선 모양이고, 포자체는 여러 층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표면에 기실공(氣室孔)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태식물, 蘚苔植物] (두산백과) 하지만 이끼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실제로 이끼가 아닌 것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물이끼‘인데, 이는 이끼류가 아니라 녹조류에 속한다. 또 ’괴불이끼‘나 ’바늘이끼‘라 불리는 것은 ’양치식물‘에 속한다. 산성과 염기성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종이를 만드는 ’리트머스이끼‘도 이끼가 아니라 ’지의류‘에 속한다.
이끼식물은 집 주변 돌담이나 그늘지고 습기가 많은 숲 속 등과 계곡의 바위 틈이나 늪의 가장자리, 물 속 등 다른 식물이 뿌리내리기 힘든 물가에서도 잘 자란다. 비록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지만 생태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산사태가 난 지역이나 화재 등으로 맨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맨 먼저 나타나 정착하면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준다. 이끼가 자라면서 생긴 부식토 덕분에 식물들이 뿌리내릴 수 있고, 이끼 스스로가 작은 동물에게는 안식처와 음식을 제공한다.
나무에 사는 이끼류를 살펴보면, 이끼류는 나무를 그냥 깔개로 사용한다. 많은 이끼류는 아예 뿌리 없이 나무껍질에 딱 달라붙어 있다. 빛을 많이 흡수하거나 양분을 쭉쭉 빨아 먹는 것도 아니고 밑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것도 아니다. 나무에 달라붙어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다. 그게 가능할까? 그런데 이끼류는 가능하다. 다만 겸손하게 살아야만 가능하다. 이끼는 이슬이나 안개, 소나기의 물을 받아서 저장한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끼류가 영양분을 섭취하기 전에 나무 잎사귀가 우산처럼 내리는 비를 가리거나, 나무줄기를 통해 곧바로 뿌리로 내려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껍질 겉면 그 작은 틈에 고인 물은 오래 보관된다. 이끼는 계속 줄기에 달라 붙어 약간의 물을 흡수한 후 습기를 배출하여 숲의 기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무에 보상한다.
그러면 양분을 어디서 얻을까? 땅에서 끌어오지 않는다면 남은 곳은 대기뿐이다. 해마다 숲을 날리며 지나가는 먼지의 양은 엄청나다. 이끼는 그 먼지 섞인 물을 흡수하여 쓸만한 것을 걸러낸다. 이제 남은 것은 빛이다. 비교적 햇빛이 잘 스며드는 소나무나 참나무 숲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빽빽이 들어선 침엽수림이 문제다. 그래서 이런 침엽수림에서는 이끼류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곳에서는 나무들이 나이가 들고 수관(樹冠) 여기저기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충분한 빛이 바닥으로 스며들 때 그제야 슬며시 찾아온다. 이끼류는 보통 25℃ 정도와 약 400Lux의 빛(해가 뜨거나 해질녘 밝기)에서 잘 성장한다.
하지만 활엽수림은 다르다. 이곳에선 봄에 잎이 생기기 전까지 시간과 가을에 잎이 떨어진 후 시간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엔 어둡지만, 이끼는 배고픔과 목마름의 시기에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한다. 어떤 여름날 비가 안 내리는 때에 이끼는 바스락 소리가 날 정도로 건조하다. 대부분 식물은 그 정도 마르면 죽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끼는 그렇지 않다. 어느 날 소나기가 힘차게 쏟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물을 빨아들이고 새삶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이처럼 이끼식물은 비를 저장하고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세포 속에 대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 평균적으로 자기 몸무게의 5배 정도의 물을 몸에 가둬둘 수 있다. 특히 ’이탄이끼(Peat Moss)‘의 경우에는 그 양이 최고 25배에 달한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비가 왔을 때 이끼는 많은 물을 저장해 홍수와 강의 침식 등을 막고, 비가 잘 내리지 않을 때는 저장했던 물을 내놓아 피해를 줄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트머스‘는 보통 불루베리 식재용으로 사용한다. <이탄이끼에 대한 상세한내용은 참고자료 참조>
이끼식물은 동서고금을 통해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탄이끼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를 지혈을 위한 외과치료용으로 사용했다. ’생수태(Sphagnum Moss)‘는 호수나 늪에 사는 조류로 머리카락 모양의 사상체로 분열과 접합에 의하여 번식한다. 과거에는 물 저장력이 뛰어나 상처를 감싸는 붕대로 만드는 데 이용됐고, 요즘은 생리학ㆍ분류학의 실험 재료로 쓰고 식용하거나 약용한다. 중국에서는 이끼류를 식물기름과 혼합해 습진이나 베인 상처, 화상 등을 치료하는 데 이용했다. 특히 우산이끼류의 추출물은 기관지염이나 심혈관 질환, 이뇨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끼는 의약품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연구결과 화학적 성분도 어느 정도 입증됐다. 이 밖에도 이끼는 과거 유럽에서 침대의 속재료와 건축 재료로 사용됐고, 인디언과 에스키모인들이 아기 기저귀를 만드는 데도 이용되는 등 세상에 이롭게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