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가 있는 서재13. <빨간 구두>
금지된 욕망

빨간 구두 아가씨
빨간 색은 흔히 정열을 상징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하는 빨간 장미에는 그녀를 향한 정열이 담겨있다. 이와는 달리 빨간 색은 금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19세 미만은 보지 말라는 ‘19금’ 표시에는 다른 색이 아니라 빨간 색이 사용된다. 어찌 보면 빨간 색은 금지된 것을 열망하는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는 색일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은 금지를 하면 할수록 더 열정을 쏟는 존재다. 장발을 단속하던 시대에 젊은이들이 경찰의 눈을 피해가면서 머리를 길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금지된 욕망을 담은 동화가 있는데,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가 그것이다. 이 동화를 통해 인간에 내재된 욕망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보기로 하자.
옛날 어느 마을에 카렌이라는 귀엽고 예쁜 소녀가 병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소녀는 신발을 살 돈이 없을 만큼 가난했기 때문에 여름에는 맨발로 다니고 겨울에는 나막신을 신고 다녀야 했다. 맨발로 걷다가 유리 조각에 찔리기도 하였고, 무거운 나막신을 신고 다니다가 발등에 피가 맺히기도 하였다. 이를 가엾게 여긴 마을의 구둣방 할머니는 카렌에게 빨간 천으로 만든 구두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카렌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신고 갈 검정 구두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빨간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런데 우연히 마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던 돈 많고 인자한 할머니가 장례식에서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을 보고 의아해했다. 그리고 소녀의 사정을 알게 된 할머니는 빨간 구두를 활활 타오르는 난롯불에 집어넣고 카렌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았다. 카렌은 빨간 구두가 부자 할머니와 만나는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이라 생각하였다.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카렌은 어느덧 예쁜 아가씨로 자랐다. 어느 날 여왕과 공주가 여행을 하다가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 공주는 빨간 구두를 신고 있었다. 카렌은 이 세상에서 빨간 구두보다 예쁜 구두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할머니는 교회에 신고 갈 검정 구두를 사기 위해 구둣방으로 카렌을 데리고 갔다. 진열장에는 공주가 신었던 것과 똑같이 생긴 빨간 구두가 놓여있었다. 에나멜가죽으로 만든 빨간 구두는 카렌의 발에 딱 맞았다. 노안으로 눈이 어두워져 색깔을 구분하지 못한 할머니는 그것이 검정 구두인줄 알고 카렌에게 사주었다.
다음 날 예배를 마친 할머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카렌이 자기를 속이고 빨간 구두를 신고 교회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카렌을 심하게 꾸짖고 다시는 빨간 구두를 신고 교회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지만, 다음 예배 때에도 그녀가 선택한 신발은 빨간 구두였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열망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할머니를 따라 마차에 오르려 하자 아침에 교회 앞에서 만났던 늙은 군인이 “예쁜 빨간 구두야, 신나게 춤을 추어라.”하고 외쳤다. 그러자 카렌의 두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며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카렌이 아무리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깜짝 놀란 마부가 카렌의 구두를 벗기고 나서야 비로소 춤이 멈췄다. 자신을 또 다시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된 할머니는 빨간 구두를 저 멀리 버렸지만, 카렌은 몰래 구두를 찾아다가 깊숙이 숨겨두었다.
얼마가 지난 뒤 할머니는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 무렵 마을에서 열리는 무도회 초대장이 왔지만, 카렌은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정도로 병이 깊었기 때문에 옆에서 간호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숨겨두었던 빨간 구두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신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조금은 망설였지만, 카렌은 빨간 구두를 신고 말았다. 그러자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집을 나와 무도회장으로 들어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카렌은 춤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급기야 그녀는 무도회장을 벗어나서 거리로 나와 계속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은 밤낮으로 계속 되었고 빨간 구두는 그녀를 교회 묘지 안으로 데려가기도 하였다. 그때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서 엄숙한 얼굴로 온몸이 뼈만 남을 때까지 계속 춤을 추라고 말하였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카렌은 계속 춤을 추어야만 했다.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가시에 긁혀 옷이 찢어지고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된 카렌은 죄수의 목을 베는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자신의 발목을 자르고 나서야 비로소 춤을 멈출 수가 있었다.
잘린 발목 대신 목발을 한 카렌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교회에서 부모 잃은 고아들을 동생처럼 보살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카렌의 영혼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카렌의 빨간 구두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금지된 욕망
어린 시절 읽었던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는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그 욕망을 버림으로써 용서와 함께 신의 은총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라깡에 의하면 인간은 금지된 것만을 욕망하는 존재다. 즉, 금지된 것이 없다면 욕망도 있을 수 없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19금 영화는 보지 말라고 말했다. 이때 19금 영화는 금지의 대상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안 볼지 몰라도 보고 싶은 욕망은 강렬할 것이다. 물론 금기를 깨고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학생들도 있지만 말이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불량식품을 먹지 말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이 자꾸 먹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금지의 대상은 동시에 욕망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 자신에게 기쁨을 준 것이 현재 금지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기뻤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금지된 기쁨은 잃어버린 기쁨으로써 사람들의 무의식에 각인된다. 어릴 적 구둣방 할머니가 카렌에게 선물했던 천으로 만든 빨간 구두는 카렌에겐 기쁨의 대상이었다. 맨발의 신세를 면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자 할머니를 만나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부자 할머니는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난롯불에 태워버렸다. 카렌에게 빨간 구두는 잃어버린 기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 공주의 빨간 구두는 카렌에게 잃어버린 기쁨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할머니의 노안 덕분에 기쁨의 대상이자 동시에 금지의 대상이었던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
인간은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다. 특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지 않으면 사랑받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그것은 곧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일이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밖에서 낳아 데리고 온 아이가 본처의 자식보다 공부도 더 잘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동화 속 카렌은 할머니의 친손녀가 아니라 데려다 키운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그것은 할머니의 욕망을 읽고 그것에 자신을 맞추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즉, 할머니가 좋아하고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카렌은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할머니의 욕망만을 따르기에는 너무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빨간 구두를 신고 싶은 자신의 욕망에 더 충실했던 것이다. 비록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했지만, 자신의 욕망을 따른 대가치고는 너무 잔인했다. 수십 년이 지나 <빨간 구두>를 다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카렌의 욕망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욕망을 억압했던 중세 기독교적 분위기가 느껴져서 더욱 그랬다.
한때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는 인간의 금지된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욕망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회적 제도나 관습, 이데올로기 등이 우리에게 억압하고 있는 것을 혹여 자신의 욕망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라깡의 지적처럼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일지 모르니 말이다. 의대나 법대에 들어가길 원하는 부모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그것이 자신의 욕망인지 아니면 부모의 욕망인지 아는 방법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실현해보고 확인하는 길밖에 없다. 실제로 의대나 법대에 들어가서 행복을 느낀다면 자신의 욕망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모의 욕망이 자신에게 투영된 것이다. 대학에서 전과를 하거나 휴학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학과를 부모의 욕망대로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화 <빨간 구두>를 통해 나에게 금지된 것과 내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돌아보기로 하자. 혹시 알겠는가? 내가 모르고 있던 진짜 욕망을 발견하게 될지 말이다. 흔히 말하는 자아 찾기는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첫댓글 교수님! 오랫만에 까페에 들어와보았네요 건강하시죠? 올 한해도 건강하게 행복한 나날 되세요. 불교대학28기 김유진 합장
거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안하시지요?
올해도 마음엔 평화, 입가엔 미소 가득한 날들이길 소망합니다.
Calm..
Smile~~
일야 두 손 모아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