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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록(彝尊錄) / 이준록 하(彝尊錄 下)
선공사업 제사(先公事業 第四)
아들인 통훈대부(通訓大夫) 전 선산 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 종직(宗直) 는 찬한다.
무진년 여름에는 경사(京師)에서 나 혼자만 곁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하루는 남학(南學)에서 퇴청하여 식사를 하면서 나를 불러 놓고 이르기를,
“태학(太學)에서 이학(理學)에 관한 책제(策題)로 시험을 보인다는 말을 들었는데, 너도 그 글을 지어 보았느냐?”
하므로, 대답하기를,
“융회 관통(融會貫通)이 되지 않아서 조사(措辭)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더니, 선공이 이르기를,
“처음에는 네가 가르칠 만하다고 여겼는데, 내 희망이 끊어졌다.”
하므로, 나는 부끄러워 흐르는 땀이 등을 흠뻑 적시었다. 나는 그 후로 성리학(性理學)에 종사하였고, 또 무슨 시제(試題)이든 제술(製述)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리하여 이따금 동료들 가운데서 갑자기 실정에 지나친 예찬을 얻기도 하였으니,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戊辰夏。余獨侍側在京師。一日。自南學退食。召余曰。聞大學中試理學策題。汝亦述否。對曰。未融會貫通。難於措辭也。曰。始以汝爲可敎。吾望絶矣。余汗出洽背。自後。從事性理之學。且無題不述。往往於儕輩中。暴得過情之譽。玆可耻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