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때린 건 거의 두 달 만인 듯하다.
어제 저녁 9시 정도로 예보된 일인데
0시나 되어서야 소리가 들려왔다.
곧게 떨어지는 묵직한 두드림....
굶주렸던 만큼 더 많이 받기 위해
잠은 미루고 창을 열어 두었다.
소리는 바람을 동반해 내 침대에 닿았고
솜털 같은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 올려
따뜻해진 몸으로 소리에만 집중했다.
난 촉수 펼친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며
우주를 유영했다.
일용할 양식은 그득한데 영혼의 양식 결핍에
메말라가던 나의 뇌가 다시 말랑해지고
나른해진 몸뚱이는 시체처럼 퍼졌다가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감각이 돌아왔다.
여전히 빗소리는 씩씩했고 꾸준했다.
떠날 비가 걱정되는지 자꾸만 잠을 깼다.
모로 누워 듣던 물방울 리듬은 완벽한 치유사였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 들면서 희미하게 외쳤다.
아침 눈을 떴을 때도 거기 있어야 할텐데...
아침은 배반하듯 어두웠으나
비가 나의 간절함을 외면한 듯 고요했다.
가운을 대충 걸치고 베란다로 나가 팔을 내밀었다.
바람만 닿을 뿐 물방울은 없었다.
침대로 돌아와 책 읽어 주는 남자 목소리를
대신해 들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조 히사이시의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먹는데
피아노 소리가 뭉개지고 혼탁해진다.
정지 누르고 들어보니 다시 빗소리.
간 게 아니고 쉬며 에너지 충전을 했는지
밤에 듣던 그 소리보다 더 우렁찼고
한 대 맞으면 살을 관통할 듯이
세차장 물줄기만큼이나 거세 보였다.
믹스 커피를 마셨는데
다시 원두를 내려 실내에 향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비에 젖은 아침을 만끽하니
몸도 마음도 제자리를 잡은 듯 안정되었다.
오늘 같은 날이면 살 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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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엔 슬며시 떠오르는 현실,
오늘 같이 거센 비에 안성마춤인 작업이 있다.
간만에 한 번씩 5천원짜리 자동 세차를 하지만
올 봄 같이 비가 없으면 얼마 되지 않아
먼지가 누적되어 때국물 자국이 생긴다.
사람 손만큼 힘찬 세차기가 있으랴.
큰 비가 올 때는 으레 수작업 생각이 난다.
일회용 우비, 극세사 걸레 두 개와 1m 봉이 준비물이다.
아파트 현관에서 우비를 입고
털 제거용 찍찍이 빼낸 봉에 걸레 한 개를 묶는다.
주차된 차로 가서 봉걸레로 지붕부터 훑는다.
이어 몸체를 손걸레로 쓱쓱 북북 문질러
미세 먼지들을 닦아 낸다.
굵은 빗줄기는 일어난 때국물을 즉시 헹궈준다.
맨살로 맞는 물줄기는 아니지만 내 몸도 닦이는 기분이다.
투명 우산에 떨어지듯
우비 위에 두두둑 떨어지며 부서지는 물방울들은
즉석 연주를 할 재능이 없는 날 한탄하게 할 정도로
경쾌한 소리다.
대충 5분 만 밀고 퍼뜩 들어와야 했다.
좀 더 세밀한 부분의 먼지도 밀었으면 좋으련만
언제 나타났는지 아저씨 둘이 수다 떨며 현관에 서 있었다.
이런 폭우에 차량 샤워 시키는 날
외계인 보듯 한 건 아닌지..
외계인 맞긴 하지만..
가늘고 깊은 곳의 먼지까지 떨진 못했지만
폭우에 말끔해진 내 차량을 몰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https://youtu.be/eB0aROCl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