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님께서 은퇴하시는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시면서 “평생 목회하면서 집 팔아 바친 교인도 보았고 땅 팔아 바친 교인도 보았고 피 뽑아 헌금한 교인도 보았지만 성질 뽑아 바친 교인은 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다 들 크게 웃었지만, 제겐 심각하게 들렸습니다. ‘나는 성질을 뽑아 바쳤나?’ ‘누구나 ‘자기 성질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닌가?‘
한 때, 제 마음에 '이만큼 목회하면 잘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응답은 제 기대와 달랐습니다. '너는 칭찬받을 것이 없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도데체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주님은 칭찬해 주실 것인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것이 제 성질의 문제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저는 목회를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열심히 목회했습니다.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지나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치밀하고 꼼꼼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성격이 꼼꼼하고 완벽을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꼼꼼하고 완벽하게 일하는 것이 편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힘듭니다. 그래서 치밀하고 꼼꼼하고 열심히 목회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칭찬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고난 제 성질대로 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와 전혀 다른 스타일로 목회를 합니다. 사람이 좋고 누구도 잘 품어주고 매사에 느긋하며 안달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가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칭찬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 역시 자기 성질대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오직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사람입니다. (고후 5:17) ‘나는 죽었습니다’ (갈 2:20) 고백할 수 있는 사람 뿐입니다. 그 사람이 성질도 뽑아 바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