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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 선생
이 홍사
제 아무리 목청을 높이고 핏대를 세워 우겨도
쥐의 뿔은 세상에 없다.
뿔이 난 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그. 러. 나.
고약하게도 쥐뿔은 세상에 존재한다.
-쥐뿔도 모르는 게 깝죽거리고 있어?
말을 하고 보니, 꼭 쥐뿔도 모르는 나를 일컬어 하는 말 같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서 쥐뿔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통용되는 언어속의 쥐뿔 말고 또 다른 쥐뿔이 이 시대에 존재한다는 걸 나는 안다. 쥐뿔이라 불리는 머리가 허연 양반이 쥐뿔을 노래하며 이 시대를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사실을 안다는 말이다.
쥐뿔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문학 동인활동을 같이 하는 시인 중에서 필명을 서각이라고 쓰는 괴팍하고 기이한 양반이다. 서두부터 너무 직설적으로 거론한 건가?
이렇게 누설하면 그 양반한테 혼쭐이 날 텐데?
하지만 말이 나왔으니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쥐뿔도 모르면서 쥐뿔을 아는 척, 한 번 깝죽거려 보기로 하자. 한문으로 서각! 풀이하면 쥐뿔! 그 양반 필명은 누가 지어 올린 것이 아니라 쥐뿔이라는 시를 쓰고 쥐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다가 환갑날을 기점으로 필명을 직접 서각이라고 표기하셨다. 서각, 한문으로 쓰면 쥐뿔이라는 말인데 쥐 서, 뿔 각, 언뜻 생각하니 한문으로 어떻게 쓰는지 재바르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각鼠角이지 싶다. 아무튼. 쥐뿔이다. 없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렇게 지은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어쩌면 내가 미처 읽어내지 못하는 엄청난 미적 요소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권 서각! 권 씨 성을 쓰는 그 양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쥐의 뿔이 연상되지 않고 없다는 의미만 떠올라 나는 권 무(權 無)로 해석한다. 쥐구멍에서 나온 쥐가 귀를 쫑긋 세우면 그게 뿔처럼 보이는데 아무리 쥐뿔이라고 우겨도 그건 쥐의 귀지 뿔은 아니다. 쥐뿔은 권 무(權 無)다. 나는 쥐뿔이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서각이라는 말을 생각하지 않고 속으로 그렇게 호명한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이요.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니....... 색즉시공 공즉시색....... 어쩌면 쥐뿔이란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과 내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권 무 선생은 어느 문학포럼 자리에서 자신이 오리지널 촌놈이라고 촌놈이길 자처했다. 경북 북부 영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그 양반은 대학 시절을 빼고는 영주를 떠나 본 적이 없는 오리지널 촌놈이라고 했다.
반백이 넘어 백발에 가까운 머리를 단발머리에 가깝도록 기르고 있으며 장발을 하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중간 가르마를 반듯하게 타고 있다. 삼십 년 전에 유행이 지나간 헤어스타일인데 여태 고집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통 단발머리로 기르는 남자들은 앞머리의 숱이 없거나 조금 대머리인 사람이 머리통이 허전하여 앞머리가 없음에 대한 보상심리로 단발머리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분은 앞머리와 눈썹까지 성성한데 머리를 기르고 있다. 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으니 그 양반 기이한 말솜씨로 미루어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 사이에 불리는 별명이 모르긴 해도 어지간히 많지 싶다.
오리지널 촌놈이길 자처하는 그 양반은 시집을 두 권 내고 첫 산문집을 냈는데 산문집 제목이 ‘그르이 우에니껴?’ 라는 경북 북부의 진한 사투리를 표제로 삼았다.
‘그르이 우에니껴?’ 난처하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을 놓고 보기만 한다는 모양새의 의미이며 그 지방 사람들은 순박하고 순수한 민심이 녹아있는 말인데 같은 경북이지만 우리 지방 말로 해석하면 ‘그래서 우짜라꼬?’ 가 된다. 그 양반 책 제목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래서 우짜라꼬?’ 라고 반문한다. 두 말의 어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 지방에서 쓰는 ‘그래서 우짜라꼬?’ 는 다분히 도전적인 어감으로 쓰이는 반면 ‘그르이 우에니껴?’ 는 도전적이 아니라 순종적이다.
지난 번 문학포럼에서 만났을 때 토의 도중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세미나실에서 나와 도서관 정원 벤치,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 슬며시 다가와서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면 오줌 싸는데?’ 하면서 끊었다던 담배를 한 대 얻어 피웠다. 그 양반 말씀하는 게 항상 그런 식이다.
재작년인가, 그 양반의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고 영주로 문상을 갔었다. 문상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하고 나서 첫마디가 ‘이 먼 길을 우째?’ 그 말 한마디였다. 쥐뿔 선생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상당한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지난 번 만났을 적에 이제 시험 문제 두 번만 출제하면 자유의 몸이 된다고 했으니 벌써 정년퇴임을 하고 쉬는지 모르겠다. 그게 재작년이었으니 분명 정년을 하고 개 멕이는 김 씨와 장가 못간 이 씨 등 변방의 조명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로 세월을 유유자적 보내며 짬이 나면 쥐뿔의 그야말로 쥐뿔같이, 없는 존재에서 있는 것으로 만드는 창조적인 사유를 글로 형상화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지 싶다.
나는 그 양반을 가끔 만난다.
실제로 만나는 게 아니라 내가 구독하는 지방 일간지에 시의 산책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그 양반이 그 코너의 고정 필자다. 누구의 시를 퍼 와서 전문을 그대로 싣고 그 아래 쥐뿔 선생이 나름대로 해석을 달아놓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실리는데 정확히 무슨 요일인지는 모르지만 신문이 오면 그 코너부터 찾아서 훑어본다. 권 서각의 시의 산책! 그 코너에 실리는 시의 논평은 글 쓰는 이의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어떤 때는 내가 풀이하는 것과 상반된 견해가 실리기도 하지만 시를 해독하는 견해상의 차이를 읽는 것도 재미도 보통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양반은 이십대 초반에 중앙 유명일간지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을 했다. 그러니 시력詩歷이 거의 사십 년을 육박한다.
재작년 우리 동인의 문학 포럼에서는 소외받는 지역문학에 대해서 토의했다. 그 양반도 발제자로 앉았는데 오리지널 촌놈으로서 시를 쓰니 문단의 조명 받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하며 수꼴의 영향이라고 했다.
수꼴이 뭔가?
잠시 의문이 일었지만 곧 알게 되었다. 수꼴이란 바로 수구 꼴통을 그 양반 방식으로 표현하는 언어였다. 수구하시고 꼴통하신 여러분들과 수꼴 지역에서 민중시인 저항시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기가 엄청 어렵다는 말도 포함했다.
쥐뿔 선생은 말을 함에 있어서 나와는 달리 어떤 문제든 입에 절대로 거품을 물지 않는다. 어떤 주제를 접해도 흥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조용히,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말하는 습관을 지녔다.
어떤 문제의식을 지적할 때는 더 신중하게 다음 말을 잇곤 한다. 어떨 땐 뒷말을 기다리는데 사람이 좀 답답하기도 할 정도다. 그날 포럼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꼴 지역에서 소외받는, 외톨이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쌓인 게 많은 것 같은데 전혀 흥분하지 않고 조용하고 나직하게 말을 이어갔다. 포럼의 주제로는 상당히 조심스런 문제를 들고 나온 듯했다. 오리지널 촌놈이 수꼴 지역에 있으니 스스로의 사유가 자신도 모르게 수꼴이 되어가는 것 같아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요지였다. 그 말을 에둘러 하는데 거의 십 분 이상이 걸렸다. 그 양반 말씀 하시는 걸 가만히 보면 자기가 뱉은 말에 자기 검열을 하면서 말을 잇는 듯하다. 그렇게 말을 하면 앞뒤가 논리적으로 딱 맞아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말이 딱딱한 게 아니다. 가끔은 자신의 얘기를 듣는 사람이 지겹겠다고 인증하는 듯, 유머도 적절하게 이용하는데 자신은 절대로 웃지 않고 너무 진지하게 유머를 발설하기에 듣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웃어줘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그 양반은 말수가 적은 만큼, 시도 남발하지 않는다.
출판물 홍수의 시대에 등단 사십 년이 가까운 시력임에도 불구하고 시집은 딱 두 권을 냈다. 물론 그 양반 자신이 세운 철칙에 의하면 원고청탁서를 보내지 않는 곳에 절대로 원고를 주지 않으며 청탁서를 보내더라도 원고료를 주지 않는 곳에 작품을 보내지 않는다. 또 돈이 십 원이라도 들어가는 시집은 출간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과히 시인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시대에서 발표나 출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 양반 말마따나 수꼴 지역에 처박혀 있으니 더욱 조명을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올 봄에 지역 어느 문학잡지에서 특집으로 그 양반의 시 세계를 다루었는데 같이 영주에 사는 후배시인이 그 양반을 평한 적이 있다. 그 한 부분을 퍼오면, 자기 시에 대한 엄격한 기준점을 갖고 있으며 시를 제조하기보다는 시가 가슴으로 스스로 밀고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발효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시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시에 대한 예의와 염치를 아는 시인이이라고 했다. 그렇다. 적확한 지적이라 공감한다. 공감을 넘어 그 양반은 시에 대한 염치뿐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염치를 분명히 아는 시인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쥐뿔 선생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이 쥐뿔의 노래다. 팔십 년대 후반에 서정성이 짙은 시집을 내고 십육 년 만에 낸 시집인데 스스로 쥐뿔이기를 자처하는 양반이기에 자신이 화합하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쥐뿔같이 호소하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그 양반은 어엿한 문학박사다. 내가 미처 읽어내지 못하는 의미를 시어에 담고 있겠지만 쥐뿔의 노래는 보통 재미가 아니라. 시대와의 불화로 십오 년을 침묵하면서 쥐뿔처럼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라는 듯이 살며 쥐뿔을 노래한 듯싶다.
그 양반 산문집에 말 아끼기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그 한 부분을 퍼오면 ‘서울 사람들은 영남지역 방언을 통 틀어서 경상도 사투리라고 하지만, 경상도 사투리도 지역에 따라 그 특성이 다르다. 경북 북부 지역의 사투리는 대체로 표준어에 비해 음절수가 적다. 그리고 음절과 음절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이 방언을 쓰는 종족들은 가능하다면 말을 하지 않고 살기를 원하는데 어쩔 수 없이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야하니 귀찮기 그지없다는 태도’ 라고 했다.
그 양반이 딱 그렇다. 말을 엄청 아끼고 함축해서 한다.
지금 생각하니 그 양반을 본 지가 이 년이 다 되었다. 나와는 동인활동 말고는 연결고리가 없어 행사 때가 아니면 만나지 못한다. 아니, 행사가 아닌데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벌써 삼 년이 지났다. 지독하게 가문 여름에 우리지역에서 같이 동인활동을 하던 노동 시인이 갑자기 타개했다. 근로기준법이란 노동의 정곡을 찌르는 시집을 낸, 우리 문단에서 걸쭉한 노동시인인데 노동 현장을 전전하며 운동을 하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정말이지 침묵의 장기인 간이 다 녹아버려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이 녹아내리고 침묵의 장기라 자신의 간이 녹아내리는 걸 모른다는 사실을 그 시인으로 하여 알게 되었다.
말하고자하는 내용은 그게 아니라 그 때 쥐뿔 선생이 문상을 왔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이틀째 밤을 새우던 참이었고 경향 각지에서 몰린 글쟁이들을 접대하느라 장례식장 앞 등나무그늘에 놓인 벤치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데 장례식장 마당까지 들어온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시골의 한적한 병원 장례식장이라 그런 곳에서 술판을 벌이는 게 가능했다. 누군가? 자세히 보니 쥐뿔 선생이었다. 아마도 야간 수업까지 마치고 영주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한 모양이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에 온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나는 고인이 된 시인과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며 친분으로 미루어 경향 각지에서 모인 글쟁이들에게는 상주와 다름 아닌 입장이다. 다가가서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자 하는 말이 딱 한마디였다.
-우째 이런 일이?
참 그 양반다운 말이라 생각하고 초상집 분위기도 깜빡 잊고 하마터면 실소를 토할 뻔했다. 정말이지 가능하면 말을 하지 않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한마디 한다는 식이었다. 그 양반이 그 먼 길을 차를 두고 오밤중에 버스를 갈아타고 타고 온 연유는 문상을 와서 고인이 된 시인과 한잔 하고 돌아갈 적에는 영주에서 먼저 와 있는 서각문중의 후배 시인 차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그 양반은 자기가 이루고 있는 집단을 서각문중이라 칭하며 자기가 살고 있는 영주를 꼭 변방이라고 명명한다.
-변방엔 서각 문중이 있다.
거창한 말 같지만 순간적으로 내 뇌리를 훑고 지나가는 말인데 그 양반 방식대로 풀이하면 영주에는 쥐뿔의 글쟁이 집단이 있다는 말이다. 그날 나는 그 양반을 접대하며 술 한 잔 권한 일이 없다. 그 빈소는 그야말로 시인공화국이었다. 밟히고 걷어차이는 게 시인이었다. 수치로 계산하면 문상 온 사람들 중에서 팔 할은 시인이었지 싶다.
내가 자리를 배정하지 않아도 그 양반은 문상을 마치고 알아서 만만한 시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바빠서 못 보았지만 술이 거나하게 취하도록 고인이 된 시인 얘기를 하며 마셨지 싶다. 그 양반이 아니라도 들이닥치는 글쟁이들과 인사를 하고 접대하며 고인이 된 시인의 방식대로, 씨부랄 멀쩡하다가 괜히 죽어가지고 멀쩡한 이웃 생고생을 시키네! 속으로 투덜거리며 나는 이쪽저쪽 다니며 음식을 챙기고 오는 글쟁이, 가는 글쟁이에게 인사하기 바빴다. 그 양반이 돌아갈 적에 상주나 다름이 아닌 나에게 하던 인사도 절묘하고 간단하게 그 양반 식으로 했다.
-그리 알고.
참으로 짤막한 말이지만 무슨 말을 동원해서 수식해도 모든 게 다 통용되고 소통되는 말이다.
그 양반이 동인모임 회장으로 있을 적부터 나는 국내 일과 더불어 해외에 아르바이트 삼아서 일을 벌려놓았다. 국내 건설경기가 시들해지자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처음에는 몽골에서 하다가 지금은 미얀마로 자리를 옮겨서 하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그 동인은 꼭 내가 해외에 있을 적에만 무슨 행사를 하고 모이는 것이다. 번번이 참석은 못 하고 동인지가 나온다고 하면 내 작품만 메일로 보내주고 책만 받아서 보는 실정이다. 그러니 그 양반을 통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미얀마 내 숙소에서 자다가 그 양반을 만난 것이다. 꿈에 그 양반이 갑자기 보인 것이다.
-이 씨방새야!
그 양반이 할 수 있는 욕 중에서 가장 심한 욕이다.
꿈속의 무대는 무슨 문학행사를 하고 뒤풀이 장소인 식당인 것 같았다. 푸짐한 식탁 앞에 앉아 옆에 있는 어느 시인과 군사정권 시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 중에 내가 아는 척을 했다. 미얀마가 아직까지 군사 독재를 하고 이번 대선에서 민주를 외치는 아웅산수지가 출마는 할 것 같지만 직접선거가 아니라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간접선거이기에 아무래도 상대도 안 될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불현듯 마주 앉아 있던 그 양반이 나를 지목하며 파랑새와 비슷한 욕을 하는 꿈이었다. 그리고 나를 쏘아 보는 눈빛이 소름이 끼칠 정도였고 얼마나 약이 올랐는지 나를 지목하는 손가락 끝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꿈이란 언제나 논리적이지 못해서 마주 앉은 사람이 그 양반인 것을 몰랐다. 화를 낼 일도 아닌데 벌떡 일어서는 걸 보니 그 양반이었다. 그 양반의 특유의 반백 단발머리는 어디를 가고 해괴하게도 삭발이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한 마리 새가 되는 그 욕을 듣고 벌떡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시간이었다. 너무나 선명한 꿈이었다. 다시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그 양반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씨방새야!’ 그 욕설은 다음날 아침까지 내 귀에 선명하게 이명처럼 일었다. 생전에 꿈에 보이지 않던 양반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이 양반 신변에 무슨 일이 있는가? 궁금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 양반에게 국제 전화는 못하고 동인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찬찬이 훑어보았다. 카페가 잠잠한 것으로 미루어 별일은 없는 모양이라 간주하고 그 양반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 양반은 어느 면으로 보아도 연구대상이 될 만했다.
연구라고 하면 주변에 아는 사람 연구가 가장 재미있고, 술안주는 마주 앉은 상대를 씹는 맛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인터넷 카페에서 그 양반이 발표한 시를 읽고 그 양반을 평가하기에는 시에 관한한 내가 문외한이라 한계가 있었다. 그 양반에 대해서 연구 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가 귀국을 해서 집에 자료를 찾아보니 나에게는 그 양반에 대한 자료가 전무했다. 하다못해 시집의 서문이라도 읽어야 하는데 내 책장에는 그를 읽어낼 자료가 아무것도 없었다.
-아하! 내가 쥐뿔에 관해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정말 쥐뿔도 모르면서 쥐뿔에 대해서 아는 척을 했구나. 정말이지 나도 쥐뿔이구나. 뒤늦게 무릎을 치고 그 양반 책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쥐뿔을 읽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양반에게 직접 부탁을 할까? 뭐라고 하지?
연구 대상인 그대!
그대를 뒤집어 까서 연구할 것이니 당신이 쓴 시집과 산문집을 좀 보내 달라?
이렇게 시건방지고 싸가지가 없어 귀싸대기 맞을 인간은 못되는 나는 궁리를 했다. 한참 궁리 끝에 영주에 있는 후배 시인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쥐뿔 선생과 가까이 사는 관계로 나보다는 쥐뿔 선생과 친하기에 쥐뿔 선생의 책을 소장하고 있지 싶다. 이러이러 하니 너에게 쥐뿔 선생의 책이 있으면 좀 보내 달라고 적고 내가 우편물을 받을 주소를 적어서 메일을 날렸다. 그는 나에게 친근감 있게 형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이가 그보다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을 놓는 사이다. 최소한 쥐뿔인 그 양반 보다는 만만한 사이다. 다음날 답장이 왔다. 책을 보낼 것이니 읽고 반드시 돌려달라고. 반드시 그러겠노라고 답장을 보낸 날 허술하게 싸여 봉지가 찢어진 우편물이 왔다.
쥐뿔의 노래는 그런 루트로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책을 보니 후배 시인이 꼭 돌려달라는 이유를 알았다. 쥐뿔 선생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 책 앞에 ‘박 승민 시인께’ 라고 정중하게 적고 쥐뿔 선생의 사인이 그려진 책이라 애지중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집부터 읽었다. 읽다가보니 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그 양반을 읽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시집을 덮어두고 산문집을 잡았다. 그 양반 산문집을 접하기 전에는 책 제목이 ‘그르이 우예니껴?’ 로 알고 있었는데 ‘예’가 아니라 ‘에’였다. ‘그르이 우에니껴?’ 소리 내어 발음을 해보니 내가 섣불리 알고 있었던 것 보다 더 투박하고 순수하다. 표지가 양장본으로 되어있었다. 출판사에서 엄청 신경을 쓴 책인데 서문부터가 그 양반다웠다. 거듭되는 얘기지만 그 양반은 어엿한 문학박사다. 문학박사니까 그런지 모르지만 서문에는 책의 정체성을 짚고 있었다.
형식을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소설이라 할 수도 없다. 변방에 살면서 겪은 것을 바탕으로 했으나 사실 기록이 아니라 허구이니까 수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산문집이라 이름을 붙였다, 고 했는데 읽으면서 분석해보니 산문집이 아니라 꽁트에 가까웠다. 그 책을 한나절 만에 읽었다. 읽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웃다가 사레가 걸리기도 했다. 사무실에 같이 근무하는 막내 여동생은 내가 너무 웃으니까 뜨악한 눈으로 눈총을 주며 무슨 책인가 궁금해 했다.
-나는 오빠 책이 젤 재미있던데 그 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 있는 모양이지?
컴퓨터로 장부를 정리하던 동생이 눈은 모니터에 두고 지나가는 소리를 했다.
-말 시키지 마라. 난 지금 쥐뿔에 대해서 연구 중이다.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줄담배를 피워가며 쥐뿔을 탐색했다.
-오빠는 근무 시간에........ 참 쥐뿔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요. 거, 담배 어지간히 좀 피워요.
말을 마친 동생은 창문을 있는 대로 다 열어젖혔다.
-이렇게 안 피우면 하루에 두 곽을 다 못 피운다.
동생이 등 뒤에서 따가운 눈총을 날렸으나 나는 꿈적도 않고 쥐뿔을 탐색하며 분석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쥐뿔 선생이 나서 살고 있는 변방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곳에서 평교사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가 꽁트 형식으로 실려 있었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생활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허울뿐인 사회형식에 대해 저돌적이라 읽는 순간 통쾌하기까지 했다. 그 양반이 주로 만나는 사람은 소 멕이는 김씨, 장가 못 간 이씨, 머리가 하얀 신씨, 개 멕이는 김씨, 등과 일상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적고 있으며 또 봉두라는 교사의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그를 두고 교포파라고 했는데, 이 해괴한 이름을 지닌 파가 어디서 노는 조폭인가 추적을 해보니 교장이나 교감이 되기를 포기한 교사들이란 말이다. 쥐뿔 선생은 글에 나오는 픽션인 평교사 봉두의 돌출된 행동과 언어를 통해서 불만투성인 세상을 통쾌하게 주무르고 있었는데 봉두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이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쥐뿔이 된 이야기도 자세하게 담겨 있었다.
쥐뿔은 바로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서부터 발원된다.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러 갔다가 숙맥이 되어 자리를 지키는 그 양반에게 춤을 같이 추자는 아가씨에게 ‘쥐뿔도 모르는 게 가만히 있어!’에서 발원되어 서각문중의 큰 맥을 이루고 있다. 그는 유머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산문집에 이렇게 적고 있다. 쥐뿔이 뭐냐고 묻는 어린 아가씨에게 그는 소상하게 설명한다.
우리가 쥐를 잡아서 머리를 만져보면 뿔이 없잖아? 그렇지? 소나 염소는 항상 머리에 뿔이 있지. 그래서 소뿔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거야. 쥐뿔은 말만 있고 내용은 없는 거야. 마치 여기 빈 술잔과 같아. 껍데기만 있고 내용은 없는 거야. 이쁘지? 고등학교 때 수학 배웠지? 쥐뿔의 집합은 공집합이야. 그래서 쥐뿔은 투명하고 맑아.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 쥐뿔이야. 난 순수한 걸 사랑해. 난 말이야 쥐뿔을 무지 사랑한단다.
술이 불콰하게 되어 어린 아가씨에게 자상하고 섬세하게 쥐뿔을 설명하는 그 양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참으로 그 양반다운 설명이다. 그 설명은 진지하게 듣고 있던 아가씨는 말끔한 눈을 깜박이며 생각하다가 도우미 정신을 발휘하여 아저씨! 나도 쥐뿔 할래요. 하고 그 양반에게 매달리는 것을 형상화해서 쥐뿔이란 시를 발표하게 된다. 그 시가 개 멕이는 김 씨, 소 멕이는 이 씨, 장가 못간 이 씨 등 문학에 관심이 없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다가 그 양반의 별명으로 굳었고 그 별명을 듣다가 백기를 들고 필명을 서각이라 적었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도 실려 있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쥐의 눈과 그 양반의 진지하면서 터무니없는 설명을 듣고 있는 그 아가씨의 눈이 엄청 닮았을 것이라고 간주하며 그 아가씨도 어디에선가 쥐뿔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쥐뿔이 나오자 어디선가 개뿔도 등장하여 서각문중에 가담하게 되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그 양반 말투대로 하자면 쥐뿔은 과히 쥐뿔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을 대충 읽고 바로 포장하여 후배 시인에게 우편으로 돌려보냈다. 그게 책을 받은 지 이틀 만이다. 시집은 제대로 읽지도 않았고 그의 산문집을 보고 있으면 나름대로 그를 연구하고 분석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판단으로 한 번 훑어보고는 책을 일찌감치 돌려보내준 것이다. 그 후배 시인과 책을 주고받는 문제로 통화를 두 번하였으나 쥐뿔 선생의 안부는 기어이 묻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그 양반은 안동 교육대를 나왔다. 그가 고향을 떠나 있었던 유일한 시기였다. 그는 삼청 교육대와 이름이 비슷한 변방 교육대라고 말을 꼬면서 교원 양성소나 다름이 없었다고 했다. 그 양반이 다닐 당시에는 교육대가 이 년제였다. 그러나 그 양반은 낙제를 하여 삼 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교육대를 나오면 군대는 면제의 대상이었다. 초등 교사가 턱없이 부족한 시절의 일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남자들 다 가는 군 생활도 타관에서 해보지 못하고 오로지 변방에 박혀 있던 오리지널 촌놈인 것이다.
교육대를 이 년 만에 졸업했으면 이 년만 객지 생활을 했을 터인데 다행히 낙제를 하여 삼 년을 객지 생활한 것이다. 일 년 더 객지 생활을 한 것이 그 양반에게는 엄청난 것이리라. 낙제를 하지 않고 이 년 만에 졸업했으면 ‘완전히 촌놈’이 되었을 것인데 낙제를 하는 바람에 ‘오리지널 촌놈’이 된 것이다. 그 양반이 왜 당시에 낙제를 했을까? 짐작컨대, 문학 때문이었을 게다. 끼가 있는 양반이라 도서관에 박혀 문학에 관한 서적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학점을 따기보다는 문학 서클을 만들어 끼가 있는 예비 교사들과 모여 교원 양성과 무관한 문학에 대해 논하고 기성 문인들 틈에 끼어 다니며 문학도답게 술을 마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 박사 학위는 언제 받았는가? 그것도 그 양반에게 들은 바가 없으니 순전히 내 짐작에 의존해야 한다. 이 양반 초등교사로 부임하고 병아리 교사시절에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했다. 신문에 동전 크기로 사진이 나왔다고 했는데 그건 겸손의 표현이다. 등단을 하고 문학과 배움에 뒤늦게 극심한 갈증을 느끼며 변방에는 없고 도시에 있는 대학원에 야간으로 등록을 하고 주경야독으로, 이 양반은 그 당시 농부가 아니라 교사였으니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사야독으로 공부를 한 모양이다. 그 당시의 대학원이 있는 가까운 도시는 대구다. 영주에서 수업을 마치고 대구까지 다니며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그 때의 교통사정을 생각하면 고행이나 수행 길이었을 게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극심한 갈증과 자기만족의 목을 축여 주는 일이기에 삼 보 일 배하는 고행의 기분으로 감행했을 게다.
쥐뿔 선생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포리즘을 꼬집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수도승이 말하는 기분이 든다. 이 양반의 시를 읽다가보면 어딘가 모르게 불경과 내통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하긴, 한문으로 시詩를 풀이하면 절寺의 말言이 되니 불경과 내통하지 않는 시가 없겠지만 유독 이 양반 시에는 향내가 난다는 얘기다. 단언컨대, 이 양반 전생에 수도승이었거나 금생에서 시인이 되고 교사가 되지 않았으면 머리를 깎고 목탁을 들었을 성싶다. 머리를 깎고 목탁을 든 쥐뿔 선생 모습을 가만히 상상해 본다.
거, 썩 괜찮은 그림이다.
머리를 깎고 가사장삼을 입었으면 법명은 쥐뿔 스님! 아니 서각 선사! 말을 하고 생각해보니 이 양반 머리를 깎았으면 큰 스님이 되었을 건데, 거 참으로 아까운 노릇이다. 말을 지독히 안 듣고, 싸가지 없는 애 새끼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년 없이 중생을 제도할 수 있었을 터인데, 평교사로 정년을 하고 무명 시인으로 쥐뿔이아 노래하며 늙어가고 있으니 그 양반이야 속이 편할지 모르지만 그 양반을 까뒤집어 놓고 연구하는 나로서는 안타깝다. 불가와 연결고리를 만들라고 그 때 꿈에 보일 적에 백발이 아닌 삭발로 보였나?
가사장삼을 입고 삭발한 이 양반의 모습을 가만히 상상해본다. 그러다가 가사장삼이 모포로 변하고 삭발한 머리가 상투머리로 변하며 목탁 대신 손에 들린 물건이 기다란 담뱃대로 바뀐다. 약이 오르게도 모두가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그림이다.
이 양반이 말하는 변방,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 일컫는다.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그 땅을 지켰고 지금도 선비의 기개로 예를 중시하는 고장이다. 선비에 대입하면 이 양반은 제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다. 이 양반은 선비의 반열에 든다. 우선 외모가 깔끔하다. 순전히 내가 만났을 때만 유독 깔끔한 지도 모를 일이다만 나는 선비처럼 외모가 깔끔하다고 단정한다. 또 시를 씀에 있어서 억지로 나오지 않는 시를 제조하려고 안달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선비처럼 점잖게 시의 재료가 가슴으로 밀려들어와 저절로 발효되어 시가 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로 내공을 다진 선비다.
선비나 양반의 반열에 끼이지 못하는 나는 불현듯 이 양반에게 전화를 하여 술이라도 한 잔 나누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러나 전화는 차마 하지 못한다. 최소한 이 양반을 까뒤집어 놓고 연구하는 동안에는 전화를 하면 안 되며 전화할 적당한 구실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난데없이 전화해서 안부를 묻기도 그렇고 뜬금없이 술 한잔하자며 변방인 영주까지 쫒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이 양반이 자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서 실험용 흰쥐에게 권하는 술인 줄 알면 따귀와 정강이뼈를 조심해야 할 일이다.
결론은 이 양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아둔하기 짝이 없는 내 머리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없으면 쥐뿔이라는 아주 고약한 시인이 변방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고하기라도 해야 할 일이다. 무명 소설가의 외침이라 누가 귀를 기울여 줄까만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대나무 숲에서 외치는 우화 속의 이발사처럼, 세상에 별 희한한 쥐뿔도 있다고 외치면 간질거리던 목청의 후련함과 속 시원함만은 만끽할 수가 있을 것이다.
-씨방새들이여! 변방엔 쥐뿔이 있심더!
불특정 다수 씨방새들에게 외쳐보고 싶은 심정이다. 근데 씨방새가 어떻게 생겨먹은 새인가? 불가에 나오는 가릉빈가처럼 삼천만 년 만에 한번 날아오는 극락조인가? 아니면 씨앗이 널린 방석에 염치 불구하고 내려앉는 참새의 한 변종인가?
하! 이제 구실을 찾았다. 그 양반에게 전화할 구실을.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 그 양반 특유의 목청을 흉내 내어 거룩한 목소리로 도대체 씨방새가 도대체 어떤 새인가를 물어보면 되겠구나. 그러면 그 양반은 그게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냐고 그 양반 말하는 방식대로 묻겠지.
-그게 우에?
그렇게 물으면 솔직히 말을 해버리는 것이다. 사실 쥐뿔을 까뒤집어 연구하다보니 그게 어떤 새인가 궁금해서 그런다고 실토하면 자연스럽겠구나. 연구대상이 자신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려 그 양반은 분명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쥐뿔도 모르는 게 깝죽거리고 있어?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 양반 방식대로 대답을 하고 한 번 호탕하게 웃어주면 용서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르이 우에니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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