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길쌈하는 소녀[게송 174]²⁰⁾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알라위국의 한 마을에 초청을 받아 가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끝내시고 공양 공덕을 회향하는 법문을 베푸셨는데, 이 법문에서 부처님은 오온이 허무하게 변한다는 진실을 말씀하시면서 대중에게 죽음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을 할 것을 간곡하게 권하셨다. 죽음을 바르게 인식하고 철저하게 이해함으로써 마침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행자는 ‘내 생명은 확실하지 않으나 죽음만은 확실하다. 인간의 생명은 매우 불안정한 데 비해 죽음만은 확정되어진 진실이다.’라고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이 같은 진실을 알고 바르게 수행하지 않으면 죽음의 순간이 닥쳐올 때 두려움에 떨며 소리 지르거나 정신을 잃게 마련이다. 그래서 마음이 이두워져 자기가 죽고 나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숲속을 지나다가 갑자기 독사를 만나 두려움에 떨며 소리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죽음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수행을 쌓아 준비하면 그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게 된다. 그는 고요하게 안정된 마음으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숲속을 지나갈 때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다고 뱀이 나타나면 지팡이로 머리를 쳐서 굴복시킨 다음 그 뱀을 멀리 내던져 버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내용의 설법으로 죽음에 마음을 잘 집중하라고 대중에게 간절하게 타 이르셨던것이다. 그러나 법문을 들은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바쁘고 자기 생업에 매달려 있어서 법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수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나이 열여섯이 된 길쌈하는 소녀 하나만이 부처님의 법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마라누사띠(죽음에 대한 마음 집중)를 열심히 수행했을 뿐이었다. 부처님께서 알라위국의 그 마을을 다녀가신 지 삼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 부처님께서는 제따와나 수도원에서 아침 일찍이 지혜의 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살펴보시다가 길쌈하는 소녀가 그동안 열심히 수행하여 이제 소따빳띠 팔라를 성취할 시기가 성숙했음을 아셨다. 그와 동시에 부처님께서는 소녀의 수명도 다했음을 아셨고, 또 소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담마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도 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비구 오백 명을 거느리시고 알라위국으로 가시기 위해 제따와나 수도원을 떠나셨다. 알라위 나라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두 번째로 방문해 주신 것을 매우 기뻐하며 부처님 일행을 환영했다. 이때 길쌈하는 소녀는 부처님이 다시 알라위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제 몸에서 오색 광명이 찬란히 빛나시는 스승님을 다시 뵐 수 있겠구나. 어서 거룩하신 부처님을 뵈러 가야지, 지난번 설법을 들은 이래 나는 그동안 열심히 수행하여 제법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여쭐 것이 많은데 이제 기회가 왔구나.’ 소녀는 기쁨에 들떠 부처님을 뵙는 날만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 아침 베 짜는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로부터 빨리 북실을 감아오라고 전갈이 왔다. 소녀는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법문을 듣는 것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분부를 듣지 않으면 아버지가 화를 내며 자기를 때리고 여러 날 동안 고통을 가할 것이니 그 일도 바쁘다고 판단하여, 빨리 북실을 감아 그것을 아버지께 가지고 가는 길에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기로 생각을 정했다. 이날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끝내시고 나서, 예전 같으면 곧 공양 공덕을 찬탄하는 송경과 설법을 하실 텐데도 웬일인지 잠잠히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 설법을 요청해 보았지만 부처님께서는 아직 법문을 들어야 할 중요한 사람이 오지 않았으며, 잠시만 더 기다리면 그 사람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부처님과 비구 대중 오백 명이 모두 침묵하며 앉아 있게 되었는데, 부처님의 침묵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여 신자들 중 한 사람도 기침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조용히 하회를 기다릴 뿐이었다. 잠시 후, 아버지에게 가지고 갈 북실을 다 감은 소녀가 북실을 담은 바구니를 옆에 끼고 급한 걸음으로 나타났다. 소녀는 부처님과 대중이 침묵하고 계시는 법당의 맨 뒤에서 부처님을 먼발치로 바라보며 기쁨에 젖어 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 그윽히 소녀를 바라보시자, 가까이 오라는 부처님의 뜻을 눈치챈 소녀는 바구니를 바닥에 놓고 부처님 앞으로 다가갔다. 소녀는 공손히 엎드려 세 번 절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소녀에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물으셨다. 그리고 이에 대해 소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또박또박 대답하는 것이었다. 질문 : 너는 어디서 왔느냐? 답 : 저는 모릅니다. 질문 : 너는 어디로 가느냐? 답 : 저는 모릅니다. 질문 : 너는 알지 못하느냐? 답 : 아닙니다. 저는 압니다. 질문 : 너는 알고 있느냐? 답 : 부처님이시여, 저는 모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소녀의 모든 대답을 다 들으시고 나서 소녀가 여래의 질문에 잘 대답하였다고 칭찬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청법 대중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 이 소녀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돌하게 여래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였다고 생각하여 건방지다거나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먼 사람이니라. 그는 법을 이해하는 눈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소녀에게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금방 여래와 주고받은 대화의 의미를 설명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자 소녀는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저희 집에서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한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는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부처님께서는 제게 네가 과거 전생의 어느 곳으로부터 태어났느냐고 물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제게 너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신 것은 제가 죽게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태어날지 아느냐고 물으신다고 생각하여, 저는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선 제게 네가 언젠가는 꼭 죽는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으신 것으로 생각하여 저는 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서는 네가 언제 죽을지 아느냐고 물으신 것으로 생각하여 저는 그것을 모른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소녀가 자세하게 설명하자 부처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중은 어린 소녀의 당돌한 대답에 어리둥절했으리라. 무릇 무지한 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 있나니, 그들은 마치 눈이 없는 소경과 같으리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13-8-174 세상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한다. 오직 몇몇 사람만이 내적 현상을 볼 뿐 마치 몇몇 새들만이 그물을 벗어나듯 적은 수의 사람만이 천상에 태어나며 닙바나를 이룬다.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소녀는 소따빳띠 팔라를 성취하였다. 그런 다음 소녀는 아버지가 옷감을 짜는 곳을 향해 떠나갔다. 소녀가 아버지에게 도착했을 때 소녀의 아버지는 베 짜는 틀 위에 앉아 졸고 있었다. 그는 딸의 인기척에 깜짝 놀라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엉겁결에 북 줄을 힘껏 당겼다. 그 바람에 북이 베틀에서 튀어나오면서 뾰족한 북 끝이 소녀의 젖가슴을 찔렀고, 소녀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자기 잘못으로 딸이 죽었다고 크게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부처님을 찾아가 제자가 될 것을 요청하여 비구가 되었으며,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20) 설법장소 : 알라위국 악가왈라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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