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虛靜의 중
‘도’의 본질적인 특징은 곧 ‘함이 없지만 하지 않음이 없음’을 최선의 조화로 여긴다. ‘도’의 조화는 비워 맑아지는 ‘허정’에서 비롯된다. 노자는 ‘도’가 곧 ‘허정’한 존재라 하며 ‘허정’이 ‘도’의 ‘중’임을 강조한다. ‘허’의 지극함과 ‘정’의 독실함이 곧 우주 만물의 존재와 변화의 근본 원리로 ‘중’이라는 것이다.
虛에 이르면 지극해지고, 靜을 지키면 독실해진다. 만물이 나란히 일어남에 나는 그것을 통해 되돌아감을 보니, 무릇 저 만물은 무성하지만 결국 각각의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靜이라고 한다.
노자가 강조하는 ‘허’는 그 마음을 비우는 ‘虛其心’이다. 비워야 그 가운데에 ‘중’이 생긴다. 비움에 이르는 것은 반드시 고요함[靜]을 지켜야 한다. 고요함은 수양을 통해서 비로소 깊이 쌓고 두터이 기를 수 있다. 그래야 ‘중’이 깊고 두터워져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허’는 내심에 대하여 말한 것이고 ‘정’은 외물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안으로 비운다는 것은 정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고, 바깥으로 고요히 한다는 것은 무욕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며 편안하고 담박하며 적막하고, (억지로)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천지의 기준이며 도덕의 지극함이다.
장자는 ‘허정’을 천지 만물의 기준으로서 ‘중’으로 여기고 허정한 마음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도가는 ‘허정’을 ‘중’의 개념으로 근거하여 도에 이를 수 있는 정신 상태로 설명하고 있다. 즉, ‘도’를 체득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일체의 흔들림이 사라져 고요한 ‘중’의 상태에서 질적으로 깨끗이 정화되어 안정된 심리상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구절은 이러한 ‘허정’의 상태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현묘한 거울의 때를 닦아내고 먼지를 닦아내어 외물이 밝음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허정’은 어떠한 오염도 없는 거울과 같은 정신 경계이다. 이같이 ‘허정’은 어떠한 제한이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정을 유지하는 상태로 곧 외물에 치우치지 않는 ‘중’을 의미한다. 때문에 ‘허’는 헛된 환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유 과정에서 모든 내외적인 간섭을 배제한 것으로 사람의 정신이 외물과 현실의 각종 속박을 초월하여 일종의 정신적 자유와 心靈의 순수를 얻어 자유롭지 않은 바가 없는 정신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허’에 오히려 창조의 활동이 내재함을 강조한다. “허의 지극함에 이르고 고요함을 돈독하게 하면 만물이 더불어 지어진다.”라고 하여 참된 존재와 인식에 도달하면 모든 대립이 용해되어 지극히 안정된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때 ‘허’는 현상을 가능하게 하고, 동적 작용을 전제로 하는 ‘정’이다. 이에 대해 王弼은 만물은 ‘허정’에서 출발하고 ‘허정’으로 수렴된다고 해석한다. 이는 ‘허정’은 도가의 생성 원리인 ‘도’의 작용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 ‘허정’의 ‘중’은 고정되거나 고착된 상태가 아니라 동적 작용을 원활히 하는 ‘중’을 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허정’에 대하여 『열자』에서는 ‘心凝形釋’과 ‘骨肉都融’의 경지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심응형석’은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중’을 얻어 忘我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내(마음)‧외적(사물)으로 일체의 ‘是非利害’의 분별심이 사라진 경지로 ‘도’와 합일하는 ‘중’의 경지다. 마음이 응결되고 형체가 풀어지는 심응형석으로부터 골육이 도융되는 단계로 접어든다. 이러한 단계로의 진입은 몸을 가진 존재자가 ‘도’와 합일되는 지극한 정신적인 ‘중’의 경지이다.
『장자』에서 ‘허’는 무려 33곳에서 54번, ‘정’은 19곳에서 38번이나 출현 한다. 『장자』에서 ‘도’는 만물의 근본이며 ‘허정’은 ‘도’의 근본 속성이라 여겼다. 그래서 주로 ‘허정’을 거울과 물로 표현하며 ‘心齋’를 설명한다.
성인의 고요함이란 ‧‧‧ 만물에 어지럽혀지지 않는 고로 고요한 것이다. 물이 고요하면 밝은 빛을 수염이나 눈썹을 비칠 정도이고, 수평의 기준으로 ‘중’을 이루어 목공도 그것(수평)을 법으로 삼는다. 물의 고요함조차도 이처럼 밝은데 하물며 성인의 고요한 마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천지의 귀감이며 만물의 실상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심재의 허정한 마음과 드러난 밝음은 곧 어떠한 욕망의 간섭이 없는 ‘중’의 상태에서 발생되는 高雅한 지각이다. 왜냐하면 고요한 ‘중’ 상태에서 사물을 파악하기 때문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아채면서도 사물에 의하여 동요되지 않는다. 이런 허정의 상태가 바로 ‘중’에 이른 성인의 마음으로 외재적 자연에 순응하면서 만물의 실상을 그대로 마음(거울)에 빛춘다. 『장자』의 ‘심재’가 인간이 도달해야 할 수양적 목표라면 ‘坐忘’은 인간이 심재의 목표에 도달하게 해주는 수단과 같은 것이다. 顔回의 말을 빌려 ‘좌망’을 설명한다.
손발이나 몸을 잊고 귀와 눈의 작용을 물리쳐서 형체를 떠나 지식을 버리고 저 위대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을 ‘좌망’이라 한다.
이처럼 좌망은 형태를 떠나고 앎을 버리는 것이다. ‘심재’는 ‘좌망’을 통해서 얻어지는 순수한 ‘중’의 정신 경지다. 이제 『장자』는 “바르면[正] 고요해지고[靜], 고요해지면 밝아지고[明], 밝아지면 비워져[虛], 하지 않아도 하지 않음이 없게 되는’ ‘중’의 상태 즉 득도에 이른다. ‘허정’이 곧 ‘도’의 ‘중’이며 득도의 길이다. ‘허정’은 ‘정’적이면서 ‘동’의 추세와 활력을 가지고 있다. ‘정’ 가운데 ‘동’이 있고, ‘동’ 가운데 ‘정’[靜中動 動中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