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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勇將)이 된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를 보며(1)
2025년 7월 6일 행 4:5-22
‘勇將(용장)’은 한자로 ‘勇’(용맹할 용), ‘將’(장수 장)이 합쳐진 단어로, ‘날랜 장수’ 또는 ‘용맹한 장수’라는 뜻이다 역사·문학에서 용장이라 하면 종종 전장에서 용맹하게 군대를 이끄는 뛰어난 장수를 일컫는다.
유년주일학교에서 불렀던 찬송 중에 찬송가에 언제나 빠지지 않고 실려 불리는 찬송이다.
♬ 199. 나의 사랑하는 책 / ❶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후렴 :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❷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 임금 다윗 왕의 역사와 주의 선지 엘리야 바람 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❸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한 일 어머니가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❹ 그때 일은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니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합니다.
작곡: C. D. Tillman 1893 / 작사 : M. B. Williams 1893 / 이 찬송은 19세기 복음전도자 윌리엄스 목사가 작사하고 그와 함께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다녔던 틸만 목사가 작곡하였다. 1893년 보스턴에서 ‘세계 그리스도인 사역자 대회’가 6천 명이나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 집회의 둘째 날 성경에 대하여 설교하려고 준비하였던 윌리엄스 목사는 설교 내용에 맞는 찬송을 고르다가 적당한 찬송이 없자 옆에 있던 틸만 목사에게 작곡을 부탁했다. 그러자 틸만 목사는 윌리엄스 목사가 작시를 하면 자기가 곡을 지어 보겠다고 대답했다. 윌리엄스 목사는 자신의 성경을 만지작거리며 즉시 시를 써 내려 갔다. 그 성경은 자기 어머니가 임종할 때 물려준 것이었다. 윌리엄스 목사는 자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성경을 가르치던 모습, 성경을 읽으며 눈물 흘리던 모습을 생각하며 이 찬송시를 적어 나갔다. 15분도 채 못 되어 마지막 절까지 모두 지은 그는 얼굴에 눈물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 찬송시를 받아 읽던 틸만 목사의 두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곧이어 틸만 목사가 이 찬송 시에 곡을 붙임으로써 이 찬송이 탄생한 것이다.
한편 이 찬송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에 중대성을 깨우쳐 준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어머니가 성경을 읽으며 은혜를 받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자녀들이 보게 될 때 자녀에게 미치는 신앙적 감화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2절에 나오는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 임금 다윗 왕의 역사’는 언제나 고사리 같은 유년주일학교 어린이의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게 하는 찬송가이다.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다니엘과 다윗 왕의 역사는 큰 자부심을 품게 해 준다.
1. 다니엘은 용맹스러운 선지자로 표현 다 못할 정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 ♬ 199. 나의 사랑하는 책 ❷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은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다니엘 6장을 본다 - 다니엘은 그 금지령에 왕의 도장이 찍혀 어명으로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층방으로 올라가 늘 하던 대로 예루살렘 쪽으로 나 있는 창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매일 감사 기도를 드렸다. 다니엘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자들은 다니엘이 어떻게 하는가 엿보고 있다가 그가 날마다 세 번씩 자기 하나님께 기도하며 무엇인가 간구하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자 다니엘을 고소하려는 자들이 때가 왔다 싶어 이렇게 일러바쳤다. ‘임금님, 포로로 끌려 온 유다인 가운데에 다니엘이란 총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임금님의 도장이 찍힌 그 금지령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하루에 세 번씩 매일 자기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아차 싶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니엘을 어떻게 구해 낼 방도가 없을까 해서 해가 질 무렵까지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왕이 어찌할 수 없어 명을 내리자 그 무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니엘을 잡아다가 사자굴에 집어 던졌다. 그러자 왕이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늘 섬기는 하나님께서 그대를 여기서 구해 주시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돌을 굴려다가 굴 입구를 막고 왕의 도장과 대신들의 도장을 거기에 찍어서 봉하였다. 아무도 다니엘을 굴에서 구해 내지 못하도록 그렇게 한 것이다.
왕은 왕궁으로 돌아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 어떤 음악 연주도 마다한 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새벽 왕은 일찍 일어나 다니엘을 가두어 둔 사자굴로 뛰어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종 다니엘아, 그래, 아무 일 없느냐? 그대가 늘 섬겨 오던 하나님께서 그대를 구해 주셨느냐? 사자들이 그대를 해치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느냐? 대답해 보아라.’ 다니엘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소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들이 사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무사합니다. 상한 데 한 곳 없습니다. 내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것으로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임금님, 나는 또 임금님께도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임금님께 해를 끼친 적이 있었습니까?’ 이 말을 듣고 왕은 너무나 기뻐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끌어올리라고 명하였다.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 올려 보니 정말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하였다.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사자굴속에서 나온 다니엘이 평생토록 불렀던 찬송이라면 이 곡이라고 말하고 싶다.
♬ 하나님 한 번도 나를 ❶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❷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
★ 그런데 더욱 놀라운 역사는 다리오 왕이 제국 내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 곧 인종이 다르고 쓰는 말이 다른 모든 백성에게 글을 써서 어명을 내렸다. 다니엘이 신앙 정조를 지킴으로 인해 사자굴속에서도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하였다는 사실보다 더 큰 기적은 다리오 왕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경험하여 놀라운 이야기를 온 나라에 전했다는 사실이다.
【‘그대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빈다. 나 다리오가 그대들에게 명을 내리노라. 내가 다스리는 제국 안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겨라.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 영원히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니 그분의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그분의 권세는 결코 꺾이지 않으리라. 그분은 사람을 건지시는 분, 사람을 구해 내시는 분,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이적을 베푸시는 분,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는 분, 바로 그분께서 다니엘을 구해 내셨다. 사자굴에서 아무 흠도 없이 건져내셨다.’】
이스라엘에서 그 어느 누가 이렇게 세계만방에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할 수 있었겠는가? 다니엘은 무서운 시련을 겪었지만,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온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이 다스리던 시대와 바사 왕 고레스가 다스리던 시대에도 많은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2. ‘다윗과 골리앗’으로 유명한 다윗. 과연 다윗은 용맹한 인물이었는가?
다윗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그의 용맹함이다. 방대한 성경의 내용 속에서 다윗만큼 일대기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 일화로 일약 스타로 등극한 다윗은 진정 용맹한 인물이었을까? 성경의 여러 내용을 살펴보면, 다윗과 골리앗 일화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다윗은 양치기 소년이었다. 흔히 양치기라고 하면 사람들은 평화로운 이미지를 연상하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양치기는 매우 힘들고 심지어 목숨마저 위태로운 직업이었다. 그래서 고대의 경우 양치기는 보통 양주인이 소유한 ‘노예’인 경우가 많았고 근대에도 어려운 직업군에 속한다. 양들을 데리고 산과 언덕을 수시로 오르내려야 하는 일은 양치기들에게 매우 많은 운동량이 필요했고 산과 들에는 양을 노리는 늑대들이 즐비하여 언제 양을 덮치려 들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양은 상당한 자산 가치가 있어 심지어 산적들마저도 양을 노렸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수백 마리의 양들을 혼자서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처럼 다윗이 상대적으로 천시받는 양치기였다는 것은 다윗의 가족관계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과 아버지 이새가 지방의 유지이며 상당한 재력가임에도 불구하고 농사일도 아닌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양치기를 시켰다는 점, 사무엘이 아들들을 모두 부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부르지 않았던 점을 들어 다윗이 그의 가족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천시받지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워낙 어렵고 험한 일이라 당시로서도 천대받던 양치기를 다윗은 어린 나이부터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의 남달랐던 용맹함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사울 왕에게 했던 말에서도 엿볼 수 있고, 골리앗과 대결에서 한 말에서도 볼 수 있다(삼상 17:33-36).
삼상 17:33-36 /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소년이었던 다윗이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와 직접 대면하여 겁을 먹거나 도망가기는커녕 그 수염을 잡고 심지어 쳐서 죽이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실로 놀랍지 않은가?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다윗의 용맹함이 범인의 그것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인간의 두려움을 넘다 – 골리앗과의 전투 : 다윗의 용맹함은 블레셋의 유명한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세상에 모든 크고 작은 싸움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말이 일상화되었을까? 골리앗은 블레셋의 장수로써 거인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전투를 위하여 훈련받았다. 그의 온몸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였다. 성경은 그의 무기에 대하여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삼상 17:4-7 /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그의 담대함과 용맹의 근거 – 하나님 : 이처럼 다윗은 용맹하고도 지혜로우며 담대한 지략가이자 위대한 장수였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다윗의 용맹함을 생각할 때 주목해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다윗의 용맹함은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이다.
삼상 17:36-37 /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이 골리앗과 대면했을 때 골리앗에게 했던 말은 또 어떠한가?
삼상 17:45-47 /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이뿐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죽이고자 괴롭혔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2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자락만 베거나 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옴으로써 자신은 사울을 죽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던 모습에서도 그가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심지어 자신의 생사가 좌지우지되는 중요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는가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윗은 그토록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끝내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아 매우 실망하고 있는 자기 병사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삼상 24:6 /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3. 용장이 된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다(행 4:5-22).
■ 곤충학자인 ‘배스티언’이라는 사람이 거미를 관찰하던 중에 아주 신기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가 관찰 중이던 거미가, 나뭇가지나 덤불에 새끼들을 낳아 놓고 잠시 그곳에서 자리를 떠나게 되더라도, 새끼들에게 위험이 닥치면 재빨리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새끼들의 위험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던 ‘배스티언’은 더욱 자세하게 거미의 행동을 관찰하였다. 어미 거미는 새끼들에게 아주 가는 실을 달아서 자기 몸과 연결해 두었다. 만일 새끼들이 위협을 받거나 동요해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게 되면, 어미는 그 실의 진동을 통해서 그 느낌을 감지하였다. 그러면, 어미는 새끼들을 보호하고자 재빨리 돌아오곤 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농부가 자신의 아끼는 소를 키우는 것처럼,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의 밧줄에 매어 끌고 다녔다.’라고 하셨다(호 11:4). 그런데, 그 ‘사랑의 밧줄’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사랑의 밧줄’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잘 지켜 살아야 그 ‘사랑의 밧줄’이 더욱 든든하게 되어 모든 위험과 사고 속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붙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신다.’(요일 3:24)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주님과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모든 걸 다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계신다. 그러니, 하나님과 연결된 사랑의 밧줄을 통해서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누리시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된 사랑의 밧줄을 느슨하게 하거나 풀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일, 사랑의 밧줄이 귀찮다고 해서 풀어버리거나, 아니면 매는 시늉만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그 사랑의 밧줄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사랑의 밧줄’을 잘 챙겨서 든든하게 매고 있을 경우, 어떤 사고나 위험에 처하게 되더라도 안전하게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 말씀 중심으로 살고자 노력할 경우, 그 말씀은 우리에게 ‘사랑의 밧줄’과 같은 역할을 해서 우리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다.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인 사도가 되었을 때에 사도로서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다.
마 28:16-20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막 16:15-20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나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죄인으로 선고받을 것이다.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따를 것인데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만지거나 독을 마시더라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그 병이 나을 것이다.’ 20) 그리고 제자들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주께서 늘 그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이 말씀을 전할 때마다 표적이 따르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확실하게 증거해 주셨다. … 예수께서는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 온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셔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하고 영원한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다.
▶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사도가 된 베드로는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을 고쳐주고 이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베드로가 외친 복음은 꾸며서 한 말이 아닌 직접 경험에서 나온 말씀이기에 굉장한 힘이 실려있었고 듣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이 되었다(행 3:1-8).
행 3:1-8 / 어느 날 오후 베드로와 요한은 3시 기도 시간이 되어서 성전으로 올라갔다. 2) 그들이 성전에 도착했을 때였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 하나가 실려 왔다. 그는 날마다 성전의 미문 앞에 앉아서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해서 먹고살았다. 3)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는 것을 보자 손을 내밀어 구걸하였다. 4)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눈여겨 보았다. 이윽고 베드로가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자 5) 그는 무엇을 얻으려니 생각하고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6) 다시 베드로가 말하였다. ‘우리는 돈이 한푼도 없소. 그러나 다른 것을 주겠소. 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7) 그러면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8) 그러자 그 앉은뱅이는 당장에 다리와 발목에 힘이 생겨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그는 걸어 보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어보기도 하더니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의 사도가 된 베드로는 기적을 베푼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담대히 외쳤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표적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순교할 것을 각오하였기에 그렇게 외칠 수가 있었다. 제자의 단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외침이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베드로의 외침에 듣는 사람들은 놀라며 그저 ‘아멘! 아멘!’할 뿐이었다(행 3:9-26).
행 3:9-26 /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만일 내가 이 정도로 외칠 수 있다면 원고작성에도 꽤 시간이 걸렸거니와 몇 번이고 수정하고 또 주정하였을 것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이 용장이 된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던 일이 얼마나 지났나? 그런데 이렇게 외칠 수 있다는 것은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사 용장처럼 쓰셨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다.
▶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라고 했다면 베드로가 외치는 말씀을 들은 사람의 수는 전체적으로 2~3만 명 전후가 되었을 것이다.
이에 예루살렘 공회는 난리가 났다. 상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행 4:5-22).
행 4:5-22 / 이튿날 예루살렘에는 온 유대 지도자들과 장로와 율법학자들의 의회가 소집되었다.
6) 대제사장 안나스를 비롯하여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그 밖에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7) 두 사도가 그들 앞에 끌려 나왔다. `당신들은 무슨 권세와 누구의 권위로 이 일을 하는 거요?' 의회가 두 사도를 심문하였다. 8)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존경하는 이 나라의 지도자와 장로 여러분, 9) 오늘 우리가 심문받는 것이 앉은뱅이에게 선한 일을 베푼 것과 또 그가 어떻게 낫게 되었느냐 하는 일 때문이라면 10) 나는 여러분과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애인이었던 저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받은 사람, 메시아이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과 그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받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죽었던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11) 메시아 예수는 `집 짓는 이 쓸모없다 버린 돌이 이제는 어떤 돌보다도 더욱 소중한 돌이 되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분입니다. 12) 그분의 힘을 입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그 이름밖에 없습니다.' 13) 의회원들은 본래 교육도 받지 못해 일자무식인 줄 알았던 베드로와 요한이 그와 같이 자신 있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4) 또 의회는 베드로에게 고침을 받은 당사자가 그 자리에 서 있는 한 병 고친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었다. 15) 그래서 그들은 두 사도를 의사당 밖으로 내보낸 뒤 자기들끼리 회의를 열었다. 16)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들이 큰 기적을 행한 사실만은 우리도 부정할 수가 없지 않소? 게다가 예루살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 일을 알고 있으니 말이오. 17) 어쨌든 저 사람들이 더 이상 떠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오. 앞으로 또다시 예수의 이름을 내세우면 극형에 처하겠다고 경고해둡시다.’ 18) 이렇게 결정을 내리자 그들은 두 사도를 다시 불러들여 앞으로는 예수에 대한 말을 일절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마치 하나님께 복종하기보다는 당신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듯이 말하는군요! 20)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과 말씀을 보고 들은 대로 말할 것이오.’ 21) 의회원들은 더욱 심하게 두 사도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처벌했다가는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하는 수 없이 풀어 주었다. 22) 40년 동안이나 앉은뱅이로 있던 사람을 고친 놀라운 일을 보고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들은 갈릴리에서 물고기나 잡고 있었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사도가 되어 복음을 외쳤기 때문이다.
▶ 이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 성령충만의 일이 일어났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풀려 나온 베드로와 요한은 곧바로 다른 제자들을 찾아가서 의회원들이 한 말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신도들은 한마음으로 다 같이 기도를 드렸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님, 주께서는 아늑한 옛날 주님의 종이며 저희들의 조상인 다윗의 입을 빌려 성령의 힘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들마다 어찌하여 시끄러운가? 민족들마다 어찌하여 군대를 모으고 있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왕들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권력 잡은 자들이 여호와를 거슬러 그분께 기름부음받은 이를 거스르는가?’ 바로 예언에 있는 그대로의 일이 오늘 여기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헤롯왕과 총독 빌라도, 그리고 온 로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한패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종이요,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으신 아들 예수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곳에 모여 저지르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권능과 뜻으로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라는 사실을 저희가 잘 압니다. 오,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 앞에 놓인 저희를 굽어살피시고 주님의 종들이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이룰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기도가 끝나자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이 크게 흔들리며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행 4: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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