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오타쿠 보고서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하는 중에 ‘무화과 오타쿠’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의 닉네임은 브람스. 자기 자신을 ‘무화과 오타쿠’라고 칭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많고 많은 식물 중에 도대체 왜 무화과였는지, 무화과에 과몰입할 요소가 있다면 도대체 그게 뭐일지, 이 무화과 오타쿠는 어떤 계기로 무화과를 사랑하게 된 것일지. 무수한 궁금증이 꽃피기 시작했다.
브람스의 블로그를 탐방하며 그에 대해 알게 된 사실, 하나. 그는 블로그에 작성하는 모든 글에 ‘한 편’으로 시작하는 제목을 단다. <한 편 재배종으로써의 무화과/한 편 악플/한 편 간단한 요기>같은 식이다. 자기가 설정한 규칙을 성실하게 이어가는 자세마저도 고고한 오타쿠다웠다. 둘. 그는 8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다. 셋. 그는 듀오링고를 한다. 넷. 그는 주기적으로 여행을 간다. 다섯. 그는 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윤석열을 찍었다. 여섯. 그의 할머니는 ‘순창 고추장’을 매번 ’순천향 고추장‘이라고 한다. 브람스가 추측하기로 그 이유는 그의 삼촌이 순천향대를 갔기 때문이다. 몇 번을 고쳐 말해도 그의 할머니는 매번 ’순천향 고추장‘이라고 하시니, 그의 집에서는 ’순창 고추장’을 ‘순천향 고추장’으로 부르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일곱. 할머니의 단어 재조합 능력을 이어받은 그의 아버지는 양치질을 양취질이라고 한다. ‘구취를 제거하는 행동’이라는 의미 때문이라고 한다. 사전까지 펴가며 몇 십년 넘게 (그의 블로그 글을 그대로 복붙해 옮김) ”아버지 양취질이 아니라 양치질!!“ 바로잡으려 노력했지만 결과는 “역시 실패”였다고 한다.
그가 스스로를 무화과 오타쿠라고 부른다는 발견으로 시작한 블로그 탐방이 점점 사적인 영역으로까지 깊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람스의 마지막 무화과 포스팅은 21년도 9월이었다. 게다가 다섯 품종의 무화과 열매를 나무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찍은 사진 한장과 “고만고만 합니다. 맛있습니다.“ 라는 한 줄 코멘트가 전부였다. 브람스는 2010년부터 다종다양한 무화과 품종을 기르며 철마다 좋은 질의 사진과 글로 기록을 남겨 왔다. 각 품종마다의 생김새와 맛 비교 기록, 번역되지 않은 외국 원서까지 읽어가며 준전문가의 경지… 아니, ‘무화과계’에 전문가가 있다면 이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정보성 글을 꾸준히 남기는 그는 ‘무화과계’의 파워블로거였다. 오타쿠의 사랑은 어떻게 끝이 나는가. 그의 열렬하던 무화과 사랑은 이제 마무리된 걸까?
그의 무화과 사랑이 시들해졌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다른 한 편, 사랑은 어떻게 오타쿠들을 서로 연결하는지 궁금해졌다. 또다른 ’무화과 오타쿠‘들이 그의 글의 올해 수확을 축하하며 내년 농사를 축복하는 댓글을 달았다. ‘~(물결)’과 ‘^^(눈웃음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축하와 위로, 축복과 부러움을 나눈다. 그들의 흔적을 보면 어쩐지 나도 그들과 비슷한 말투 갖추며 대화 속에 녹아들고 싶어진다. 이런 종류의 상냥함은 ‘식집사’의 자질 같은 걸까? 만나본 적 없는 그들과 소속감을 나누고 싶어진다. 어쩐지 그들의 세계는 느리게 흐르고 안전하게 가꿔질 것만 같다.
이런 기대감으로 나는 다른 무화과 오타쿠들의 블로그까지 염탐하기 시작한다. 또다른 한 블로그는 <무화과 사랑 ‘보광지 농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블로그 소개를 훑어 보니 본격적으로 무화과를 생산하는 농장은 아니었고 무화과와 농작업을 사랑하는 주말 농장 운영 블로그인 듯했다. “몇일 전부터 너구리가 나타나 무화과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너구리!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내일이면 따먹어도 되겠다고 기대를 했는데 다음날 밭에 나가보니 귀신같이 냄새를 맡은 너구리가 어느새 먼저 냠냠 해버렸다.” (글에 덧붙인 이모티콘 : 야구방망이를 무섭게 휘두르는 토끼가 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틀 뒤 너구리 포획기 2개를 설치했고, 다음날 포획기 안에서 발견한 동물은 엉뚱하게도 두려움과 분노가 담긴 눈을 빛내는 고양이 한 명이었다. 그 사이 무화과 두 알이 또 사라졌다.
“너구리는 정말 집요하고 약싹바른 혐오동물입니다. 냄새도 고약하구요.” 너구리를 포획하기 위해 포획기 안에 굴비까지 넣어두었다는 부분에서는 간절함마저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단면만 보고는 판단할 수 없구나. 무화과, 애정, 돌봄, 결실, 너구리, 사람, 먹이 경쟁. 그전까지 상냥한 식집사였던 그가 너구리와의 먹이 경쟁에 돌입했을 때 보이는 또다른 면모는, 조금은 신성해보이기까지 했던 ‘식집사’ 이미지에 균열을 일으켰다. 한 대상에 큰 애정을 품은 사람만이 애정과 비례하는 혐오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반대로 한 대상을 지독하게 미워하는 표현은, 무언가를 그만큼이나 사랑하고 있는 상태의 반작용인 것 같기도 하다. 오타쿠가 된다는 건 한 대상과 지독하게 얽힌다는 것. 무화과 오타쿠의 너구리 혐오를 보며, 어느새 나의 블로그 탐방은 흡사 소설을 읽는 마음이 되어 인물을 분석하고 있었다.
무화과 오타쿠들은 무화과의 어떤 면이 좋은지 내걸고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왜 무화과에 빠지게 되었나는 내 추측의 영역이었다. 식물을 돌보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점은 당연한 첫 단추이다. 거기에 더한 한 가지 발견은 무화과는 다양한 품종이 있는 식물이고, 개성 있고 때로는 희귀한 품종을 뽐내는 수집 취미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귀한 품종을 구해서 잘 기르고 번식시키고(삽목이 놀라우리만큼 잘 되는 식물이라고 한다) 알음알음 장사의 방식으로 배포하기도 한다. 또 서로 선물하며 우정을 다지는 게 이들 커뮤니티의 미덕인듯도 하다. 국내 최대의 무화과 카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네이버 카페 <즐거운 무화과 생활>. 회원수가 무려 2,904명이다. 호기심에 이끌려 나도 회원 절차를 밟게 됐으니, 이제 회원수는 2,905명이 됐다. <자신의 무화과 자랑!!> 이라는 카테고리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홀린듯 가입했으나, 아직 등업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서 둘러보지 못해 아쉽다.
무화과 오타쿠들의 블로그를 거쳐 카페까지 발을 담그고 나니, 쿠팡이 내게 무화과를 광고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