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욕의 명물 브르클린 다리-로블링과 아들 그리고 그 아내가 14년 동안 수고하고 짐지으면서 완공함
한 집념의 건축가가 이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추운 물속에서 교각을 건설하다가 병에 걸리자 아내에게 물려준다.
만나교회 표어: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쉬지말고 기도하라/매사에 감사하라 |
날자: 2025.03.23 주일 낮 예배
말씀: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제목: 소명받은 자의 사명 - 은혜로 나를 부르신 주임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성경봉독: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
- 은혜성가: 서로 사랑하자
은혜로 나를 부르신 주님 - 소명받은 자의 사명(고전1:15b)
소명을 받는 아브람-창12장(족장사의 시작)
날자: 2025.03.23 주일 낮 예배
말씀: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제목: 소명받은 자의 사명 - 은혜로 나를 부르신 주님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성경봉독: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
-은혜성가 서로 사랑하자
찬송: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 들어가는 말씀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은 언제나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그물을 손질하는 중이라면 즉,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면, 제자 된 삶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그곳이다. 소명은 연속성과 맥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내가 나 됨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만세 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택정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 1:15).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초대에 응할 때 제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로 하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 삶의 목적이 변하고 우선순위가 재정립되어 감을 알게 된다. 이것은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올바르게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소명은 연속적이고, 지금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사랑하게 된다는 점에서 불연속적입니다. 시간과 존재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마틴 하이데거):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이에 대답하기 위해는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 곧 현존재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의미를 찾아 알아내는 것(了解, 요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녀이며 형제자매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며 동료입니다. 예수의 제자 된 삶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들을 하나님이 사랑하는 피조물로 여기고, 이들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며 이들의 번성을 돕는 법을 배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이들을 보게 된다. -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동기부여!!!- 나는 날마다 주 안에서 죽노라 - 사도바울의 동기부여!!!
그러나 이런 삶을 살려 할 때 우리의 소명은 대개 어려움에 부딪칩니다.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거나, 우리의 신앙이나 우리 자체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이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 한가운데서 우리 앞에 나타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법을 배우며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합니다.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사는 동안은 늘 그럴 것이다. 이는 우리 소명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지만 때로 이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따라 요해합니다. - 성도들의 이율배반. 주님은 말하는 데 나는 현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가 그렇습니다.
1. 소명받은 자의 사명 - 섞어국밥(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주님 안에 갇힌 사람인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름을 받았으니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엡 4:1). 소명을 받은 자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주님 안에 갇힌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갇힌 자란 스스로의 자발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타의에 의하여 행동합니다. 생각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즉 나의 나 됨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을 갇힌 자라고 합니다. 아 참 그렇지요. 강압적인 모듈에 의해서 처리되어 갇힌 자들은 소위 수감자라고 하는 데 이들은 나의 생각과 신체의 움직임을 당연히 따로 놀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의 부르심, 소명을 받은자는 몸따로 마음따로 즉. 따로 국밥이 아니고 섞어국밥이 됩니다. 따로 국밥은 군청 앞에 콩나물 해장국집에서도 가격 면에서 천원이 더 많습니다. 우리 만나인은 섞어국밥이 먹기도 쉽고 돈도 천원 더 싸고 빨리 먹고 밖에 나가서 일해야 하니까 섞어국밥을 선호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섞어국밥)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합니다.
내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되고 주 안에서 묶인 자로 이제 죽기까지 {사투리와 된소리를 섞어서,}
"충성을 할빠에야 학실하게"(죽기아니면 까물어치기)로 주님의 제자기 되어 하늘의 뜻(아버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문화명령 더하기 선교명령)을 지키고 실천하고 뻗쳐나가시는 우리 만나인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핳헿루야~~~!!!
2. 부름에 합당한 자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 (딤후 1:9,11)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먼저 하나님의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감사할 행동을 합니다. 앞에서 섞어국밥
이야기를 한 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감사하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에서 섞어국밥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 감사하는 마음은 감사하는 행동을 하기 위한 마음에 자세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장로교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이 ‘불가항력적 은혜’에 관한 교리적 진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서 제11장 1항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11장은 소위 "칭의에 대하여"라는 장입니다.
칭의(稱義히브리어: צדקה (tsedeq 체다크(공의), 고대 그리스어: δικαίωσις (dikaíōsis), 라틴어: justificatio, iustisia, 영어: justification, 독일어: Rechtfertigung)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해서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시는(made or declared to be righteous) 하나님의 법적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의롭게 됨’ 또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음’을 뜻하며, 기독교 신학에서 속죄을 통해 죄의 용서와 내면적 쇄신과 동시에 죄인들이 의로워졌다고 선언받는 것이다. 한가지 덧붙여서 드릴 말씀은 미쉬파트라는 히브리어는 극단적으로 하나님의 옳으심이라는 소위 재판정의 정의를 말하는 가 하면, 체다트는 하나님의 자비로운신 마음의 정의 즉, 하나님의 옳으심으로 구분되지만 이런 용어의 관례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교우들 중에서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시고자 할 떄 이런 용어의구분은 필요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신 모든 사람들을, 자신이 정하시고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때에 효과적으로 부르시되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하시며,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처해 있는 죄와 사망의 상태에서 불러내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데, 인간이 거절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은혜로 구원을 이루시고 천국에 이르도록 구원을 효율적으로 완성하신다”(딤후 1:9-11) 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바로 이런 은혜란 것입니다. 이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사로 잡힌 분이 사도 바울입니다. 스스로 고백하시기를 그는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의 택정받은 소위 소명을 받은 자인데 그가 주님을 핍박했습니다.그것은 유대 율법주의에 속하였던 다메섹 회심 이전의 바울이 환골탈퇴하여 이제 주님의 사도로 다시 태어 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주를 믿는 백성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심히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이 ‘자기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에 주님은 뭐라 대답하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그것에 충격을 받은 바울은 곧바로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때 주님은 행22: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행22:10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내가 물었습니다. ‘주여,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거라. 거기서 네가 할 일을 모두 일러 줄 것이다.’ 22:11 그 빛의 광채로 인해 내 눈이 멀게 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내 손을 잡고 다메섹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22:12 그곳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22:13 그가 나를 찾아와 내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사울 형제, 다시 눈을 뜨시오!’ 바로 그 순간 나는 눈을 떠 그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22:14 그러자 아나니아가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해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의로우신 그분을 보게 하시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22:15 당신은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예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22:16 그러니 이제 당신이 망설일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주의 이름을 불러 죄 씻음을 받으시오.’ 22:17 그 후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는 환상에 빠져 22:18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둘러 즉시 예루살렘을 떠나거라. 이곳 사람들은 네가 나를 증언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22:19 내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이 사람들은 내가 여러 회당들을 돌아다니며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때렸다는 것을 압니다.
3. 자신의 사명을 아는 성도 (롬 1:5~7)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우리 만나교회의 이름처럼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교회라늰 의미의 만나교회,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말하는 "만나" 그리고 맛나는 음식이라는 말을 걍 맛있다를 말하는 의미에서 '만난'음식이라고 철자를 잘 못써서 표현했습니다마는 어쨋든 만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남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수도 있고, 불행한 인생을 살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로마 교회와 성도들을 만나기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요 하는 유행가 가사가 있는데 상당히 의미있는 말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태어나는 것은 사도바울처럼 영원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택정받은 나와 여러분의 생명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 김양금집사님과 부친 이화성공(公)을 만나면서 육신의 생명으로 택정받았고, 육신의 어머니로부터 함께 배잡고 나온 형제들과 인연을 맺었고, 세상에 나와서부터 수 많은 인연의 장막에서 그들을 만났고 헤어졌습니다.
인생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 만큼 중차대한 일은 없습니다. 나는 누구를 만나야 합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대로 똑떨어지게 야문 여성이 힐러리 여사입니다.
힐러리 (Hillary Diane Rodham Clinton, 힐라리 클린톤, 1947년 10월 26일 ~ )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또 그가 대통령이 되고자 했으나 트럼프에게 패하였지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우했던 한 청년을 예일 로스쿨에서 만납니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재임한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을서 46세의 나이로 대통령이 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입니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심으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여러 차례 재혼했으나, 거듭 실패했다. 빌 클린턴은 의붓아버지가 주정뱅이었습니다. 그러나 클린턴이 잘못된 길을 걷지 않고, 잘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등학교 다닐 때, 교회학교 선생님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너는 육의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더 좋은 영의 아버지가 계시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아버지로 삼고, 힘들 때마다 그분과 상의하고, 그분께 네 인생을 맡기면, 너는 승리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었다. 우리의 신창원에게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면 신창원이는 지금 대통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빌 클린턴을 대통령이 되게 한 만남은,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난 경험이다.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미국 각주(50개 주)에서 가장 훌률한 고등학생 가운데 1명씩을 선발해서 백악관으로 초대한 일이다. 그때 초대된 학생 가운데 아칸소스 주에서 선발된 학생이 빌 클린턴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1주는 하나의 국가입니다. 아칸소스 국가에서 가장 훌륭한 학생이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학생을 대표해서, 케네디 대통령과 직접 악수하는 사진이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었다. 이 만남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빌 클린턴에게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으며 그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클린턴은 ‘내가 대통령 된 것은, 케네디와의 악수의 힘 때문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므로 만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만남은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의 만남이 서로 유익을 주고, 영적으로 성숙함을 줄 수 있는 만남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진정으로 끝까지 함께 해 준 사람은 나와 나의 식구들이었고 나의 영혼까지 함께 해 주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후의 세계까지 책임져 주시겠다고(구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후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를 세상끝날 때까지 지켜주신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내가 이런 분을 만났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소명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때로는 하늘아버지라고도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우리는 주님이 주신 기도문을 외울때만 부르는 하늘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니까 이상하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에도 계시고 땅속에서도 나를 지켜주시는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살아계신 주님이시요 하늘에 아버지 입니다.
내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는 그들 나름대로 주안에서 사시다가 하나님의 소명대로 세상을 마감하시고 나는 나 나름대로 하나심이 주신 소명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내가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는 분 그리고 내 모든 것을 다하여 신명나게 바칠 분을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신 것을 믿습니다. 아멘
-맺는 말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를 소명이라 하는데 소명(召命)은 한자로 ‘부를 소, 목숨 명’이다. 이는 ‘왕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을 의미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직분자로 하나님께 봉사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뜻한다. 영어로는 calling이라고 한다. 이런 소명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만나인은 정확하게 인지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새찬송가] 185장 이 기쁜 소식을 (youtube.com)
사명을 모르고 살면, 사람은 쾌락을 좇아 살아간다. 욕심만 자꾸 커진다. 가져도 만족함이 없다. 더 가지려고, 더 누리려고, 더 소유하려고 욕심 부르다가, 죄 짓고, 결국에는 그 죄 때문에 망하게 된다. 돈과 명예와 인기에 목숨을 걸고, 오래 살기 위해, 잘 먹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끝없는 죄의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뿐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목표와 방향이, 그 사명 안에 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셨다.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을 주셨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하나님의 은혜라
[새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축복된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왜 세상에 보내셨는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사명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미 사명이 주어졌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 다만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사야의 그리스도 예표 - 우리 만나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다.
나의 허물 나의 죄악을 인함이라 주님의 피흘리심-징계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강건한 믿음을 받았음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이 시간 마칩니다.